[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윈난보도) 2012년 3월 20일 윈난성(雲南省) 빈촨현(賓川縣) 진뉴진(金牛鎭) 진뎬(金殿) 허우바톈촌(后壩田村)에 거주하는 왕위린(王玉林) 일가는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빈촨현 공안국 경찰에 의해 불법 가택수색을 당한 후 납치되어 조사를 받고 가족들은 풀려났으나 왕위린은 소빈촨현 구치소에 감금되어 아직까지 풀려나지 못하고 박해당하고 있는 상태다.
왕위린 동생 왕레이원(王雷文) 부부가 인근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으며 어머니 장쥐잉(張菊英)이 혼자 집에 있었는데 오전 10시경 정복과 사복 차림의 6,7명 경찰들이 차를 타고 집에 들이닥쳐 일단 먼저 가택 수색을 감행하고 왕위린의 어머니를 협박하여 자신들이 집에 왔음을 알리지 말고 아들을 전화로 불러들이라고 했다. 급히 집으로 돌아오라는 어머니의 다급한 전화를 받은 왕레이원 부부는 영문을 모른 채 집으로 돌아왔다.
왕레이원 부부가 집에 도착해 보니 집안에 3,4명의 경찰들이 앉아 있었고 한 명은 방안에서 컴퓨터를 켜놓고 뭔가를 검색하고 있었다. 또 한 명은 수색으로 찾아낸 ‘전법륜(轉法輪)’ 책을 안채에서 들고 나왔다. 그들은 또 어머니에게 잠겨 있는 다른 방의 문을 열도록 요구했다. 집에 도착하여 이 광경을 목격한 동생 왕레이원은 경찰의 불법적인 가택수색과 위협적인 행동을 지적하며 즉시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경찰은 수색영장을 보여주고 서명을 받은 후 본격적인 수색을 시작했다. 그들은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법상, 파룬따파(法輪大法) 호신부, ‘유유자재(悠游字在)’ 등 CD 8개, ‘명혜주간’ 등을 압수 강탈해갔다. 그들은 압수 수색 후 어떤 증빙 문서도 발급하거나 확인해 주지 않았다. 가택수색에 참여한 경찰은 빈촨현 공안국 국가보안대대 대대장 양위(楊瑜), 전 빈촨현 공안국 정보과장 샹융샹(向永祥) 등이다.
경찰들은 동생 왕레이원의 집을 수색하며 물품을 강탈한 후 본촌에서 거주하고 있는 형 왕위린(王玉林)의 집을 급습했다. 당시 왕위린 부부는 집에 있었는데, 경찰이 집 안의 모든 문을 열라고 요구했고 이에 응하지 않자, 강제로 문을 부수고 난입하여 압수수색을 감행했다. 리훙쯔 사부님 법상, ‘전법륜(轉法輪)’책, 컴퓨터 2대, 프린터 1대, A4종이 한 상자, ‘2012년 전 세계 중국인 새해맞이 공연’ CD, 공 CD 다수 등 4,5백 개의 물품을 강탈해 갔으나 역시 강탈해 간 목록이나 그와 관련된 어떤 증빙 서류도 발급해 주지 않고 왕위린 부부도 납치했다. 또한 동생 왕레이원의 집에 들러 왕레이원 부부와 그의 어머니까지 모두 납치했는데, 악경(사악한 경찰)들은 동생 왕레이원의 소유 자동차를 손수 운전하게 하여 빈촨현 공안국 국가보안대대로 압송 했다.
이들 가족들은 같은 날 오후 3시경 빈촨현 공안국 국가보안대대에 끌려온 후 각각 심문조사를 받았다. 동생 왕레이원의 심문을 맡은 샹융샹은 “파룬궁이 좋은가. 나쁜가?” 하고 묻자, 왕레이원은 좋다고 답했다. “그럼 계속해서 파룬궁을 굳게 믿을 것인가?” 하고 묻자, 왕레이원은 굳게 믿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심문자는 “형 왕위린은 누구와 연계 하고 있는가? 형이 파룬궁진상 자료를 만들고 있음을 알고 있는가?” 하고 묻기도 했다. 이렇게 심문을 끝내고 조서에 서명을 받았으며, 역시 같은 수법으로 어머니 장쥐잉에 대한 심문도 끝냈다. 심문이 끝난 후 왕레이원이 어머니에게 심문할 때 무엇을 물어보았느냐고 묻자, 어머니는 그들이 호신부와 다른 자료는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물었다고 했다. 형수 허자펑도 역시 같은 조사를 받고 그들은 당일 오후 10시경에 귀가했다. 그러나 형 왕위린은 그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동생이 남은 가족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 때 국가보안대대장은 “앞으로 파룬궁수련생을 접촉하지 말 것이며, 또 가택수색을 당한 일과 형 왕위린이 검거된 것을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 내 말을 어길 경우 형에게 불리할 것이다.”라고 협박을 했으며, 심문을 맡았던 샹융샹은 형 왕위린이 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왕레이원은 다음 날 국가보안대대 방문 대장 양위에게, “형 왕위린은 왜 풀어주지 않는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라고 묻자 전날 저녁 가족들이 떠나간 뒤 왕위린은 빈촨현 구치소로 보내졌다고 말했다.
왕위린의 가족들은 원래 건실한 농촌 사람들이었다. 부친은 체구가 건장하고 천성이 강직해서 촌에서는 상당한 명망이 있었다. 왕위린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부친과 함께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갑자기 건장했던 부친이 뇌혈전으로 쓰러졌다. 좋다는 여러 종류의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았어도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특효약이라는 고급 약을 구해서 쓰기도 했지만 한 번의 약값만도 엄청나게 비쌀 뿐만 아니라 역시 효과가 없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어떤 사람의 소개로 파룬궁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 부친이 연공동작의 구결을 기억 하지 못하고 힘들어 하자 왕위린이 글로 적어놓고 돕기도 했다. 이렇게 부친의 연공을 돕다가 왕위린은 운 좋게 리훙쯔 사부님의 ‘전법륜(轉法輪)’책을 만나게 되었으며, ‘이것은 내가 수년간 계속 찾던 것이다.’라는 느낌을 받고 즉시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으로 들어섰다.
부친은 파룬궁을 수련하면서부터 아주 빨리 회복되어 대략 보름 만에 병증이 완전히 사라지고 아주 건강해졌다. 그동안 혼자 걷기도 힘들었는데 50kg 비료 포대를 거뜬하게 어깨에 메고 산위 밭으로 가면서 힘들어하지도 않았다. 이 소식이 주변에 전해지자, 순식간에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촌에는 남녀노소 40,50명이 수련을 하였고 또 다른 촌에서 몇 사람들이 와서 함께 수련하기도 했다. 1998년 ‘노인절’에는 촌에서 부친을 청해 강단에서 공법 시연을 하게하여 촌민들이 모두 배우기도 했다.
왕위린의 어머니 장쥐잉은 남편의 병이 파룬궁 수련으로 완쾌된 것을 보고 역시 파룬따파수련을 하게 되었고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자 그녀를 일생동안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비염(鼻甲炎)이 나았고 그동안 부실했던 몸도 모두 점점 좋아졌다. 뒤따라 왕위린의 아내 허자펑도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하면서 전 가족은 모두 파룬따파의 법광 속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러므로 썩 좋지 않았던 고부관계도 조화롭고 형제간의 갈등 같은 것도 일시에 사라져 온 일가족이 화기애애한 화목한 생활을 하게 되니 온 마을에서도 모두 부러워했다. 이른바 집안이 화목하면 만사가 형통한다고 했으니 집의 농사도 잘되어 가꾸던 귤이 가정에 큰 이로움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1999년 7월, 중공 장쩌민집단은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2001년 설을 쇠기 전, 당시 빈촨현 공안국 정보과장직에 있던 샹융샹은 경찰을 대동하고 왕위린의 집을 급습하여 불법적인 가택수색을 했고, 왕위린을 구치소로 납치해 보름 동안 감금시켰다. 구치소를 풀려난 뒤에도 또 다시 그를 세뇌반으로 이송해 1개월 동안 감금 박해를 가했다. 왕위린은 심신에 매우 큰 상해를 입어 가정에 매우 큰 영향을 조성했었다. 그런데 그는 이번에도 같은 악인들에게 또 다시 납치되어 박해를 받고 있는 것이다.
문장발표: 2012년 3월 29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3/29/25489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