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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석방 요구하던 저우샹양의 부모, 다시 세뇌반에 납치당해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대륙보도) 3월 16일은 톈진(天津) 빈하이(濱海)감옥[전 강베이(港北)감옥임]의 면회일이다.

오전 8시 30분, 저우샹양의 부모는 두 번째로 고향에서 트랙터를 타고 감옥 정문에 도착해 호소문을 쓴 옷을 입고 생명이 위독해진 아들을 석방해달라고 요구했다. 노부부는 주위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았다.

9시, 감옥에서 많은 경찰이 나왔다. 세 사람은 손에 경찰봉을 들고 두 노인을 포위하고는 동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맞은편에서 많은 차와 사복경찰이 오더니 면회하러 온 가족과 길옆에 있던 차량들을 쫓아버렸다.

10시가 넘자 경찰 10여 명은 저우샹양의 부모를 잡아당기고 강제로 들어서 감옥으로 끌고 갔다. 트랙터도 감옥으로 몰고 들어갔다.

16일 오후, 경찰은 저우샹양의 부모를 창리(昌黎)세뇌반으로 납치했다.

톈진 제3측량설계원 엔지니어 저우샹양은 2003년 5월에 납치당한 뒤에 9년의 불법 판결을 받았고, 2004년 8월 9일에 톈진시 강베이감옥으로 납치당했다. 그는 예전에 악독한 교도관에게 밤새 전기충격을 당해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적이 있으며, 교도관이 연속 30일 동안 밤낮 잠을 재우지 않은 적도 있다. 그리고 여러 차례 독방에 갇혀 ‘땅닻(地錨)’고문을 당했는데, 악경 장스린(張士林)이 ‘독거땅닻’에 가둬 4개월 넘게 학대를 한 것이 가장 오래 당한 고문이었다. 그는 1년이 넘는 단식항의를 시작해 2009년 4월과 5월에 두 차례나 신성(新生)병원과 감옥 내부병원으로 보내져 응급처치를 받았다. 몸이 극도로 허약해져 2009년 7월 28일에는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았다.

2011년 3월 5일, 저우샹양은 다시 한 번 감옥으로 납치당했고 단식으로 항의했다. 2012년 1월 16일, 단식한 지 330일이 넘는 저우샹양은 톈진시 신성병원으로 보내져 응급처치를 받았다. 그러나 몸은 극도로 허약해지고 말라비틀어졌으며, 이미 음식을 먹고 링거를 맞을 수 없게 되었다. 또한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고 설사를 했으며, 심장박동은 겨우 40에 불과했다. 걸을 수도 없는 상태이며 수시로 모두 생명위험에 처해 있었다.

노모는 몇 차례나 감옥 측과 교섭해 저우샹양을 집에서 몸조리를 시키려고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2012년 1월 16일, 저우샹양의 부모는 결국 자신들의 트랙터를 몰고 하루 반 만에야 톈진시 빈하이감옥에 도착했다. 그리고 호소문을 쓴 옷을 입고 감옥 정문에 서서 감옥 측에서 속히 답변을 주기를 기다렸다. 3일째 되던 날 밤에 저우샹양의 부모는 경찰 20여 명에게 트랙터 초막에서 끌려나와 구급차에 강제로 태워져 창이현 세뇌반에 갇혔다. 그 후에 중공 인원이 강제로 고향으로 끌고 갔다.

문장발표: 2012년 3월 17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3/17/2543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