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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솽청시 납치사건, 36명이 불법 노동교양 당해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보도) 하얼빈시(哈爾濱市) 솽청시(雙城市) 50여 명 파룬궁수련생들은 2011년 11월 13일, 중공(중국공산당) 당국에 납치당했다. 현재 그중 36명이 불법 노동교양을 당했고 7명은 불법 판결에 직면했다.

파룬궁수련생 왕민(王敏)은 솽청시 제6중학교 물리교사로 중학교 3학년 졸업반 반주임을 맡고 있다. 그녀의 학생들은 “저의 일생 중에서 가장 행운인 일은 왕민 선생님을 만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왕민이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은 것 때문에 그녀 학생 중에 중퇴하고 학교로 다니지 않는 학생이 있다.

파룬궁수련생 캉창장(康昌江)은 솽청시 제3중학교 고중 2학년 어문선생님이자 담임으로 역시 3중학교의 핵심이다. 많은 학부모는 명성을 흠모하여 아이를 캉 선생님의 반으로 보냈다. 왜냐하면 캉 선생님은 어문을 잘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관건적인 것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사람이 되는지를 가르쳤다. 학생들은 캉 선생님이 가르친 어문은 특별히 외울 필요도 없이 모두 기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캉 선생님의 학생들은 그들을 가르친 적이 있는 학생이든지, 이미 대학에 합격되어 들어간 학생이든지, 아니면 한창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이든지를 막론하고 캉 선생님이 납치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에 치를 떨지 않는 학생이 없었다. 이렇게 좋은 선생님을 정부에서는 무엇 때문에 감금하려 할까? 특히 캉 선생님이 한창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은 갑자기 선생님이 수업을 하러 오시지 않자 심리적으로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새로 맡은 선생님은 “너희들은 단념하거라, 캉 선생님을 돌아오지 못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어떻게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나라는 어찌된 일인가? 무엇 때문에 좋은 선생님은 갇혀야 하는가? 무엇 때문에 바로 학생들의 인생 전환기에 가장 사랑하는 선생님을 붙잡아 가는가?

1. 큰 납치

2011년 11월 13일, 43명 파룬궁수련생들은 솽청시 도시건설국 가속루 모 수련생 집에서 수련심득을 교류했다. 그날 11시쯤, 5명 파룬궁수련생들이 일이 있었던 이유로 도시건설국 가속루를 떠났다. 그중 3명은 북쪽 방향으로 갔는데 길목은 이미 경찰차에 의해 가로막혔고 어떤 사람이 그녀들을 미행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래서 속히 떠나 미행자를 뿌리치려고 했는데 경찰차 안에서 확성기로 “그들은 먼저 붙잡아라. 지금 올라가면 그들이 문을 열어주지 않을 것이니, 그들이 12시에 발정념을 끝내고 스스로 문을 열기를 기다리라. 움직이지 말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이 3명 파룬궁수련생은 악독한 경찰에게 추격당해 납치당했다.

12시 10분쯤, 방안 파룬궁수련생들은 교류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문을 열었다. 열자마자 특수경찰이 벌떼같이 밀려들어 방안에 들이닥쳐 즉시 현장에 있는 모든 파룬궁수련생들에게 일종 약물을 뿜었다. 모든 수련생들은 즉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10일이 지난 뒤 이런 형식의 약물은 또 일부 파룬궁수련생들의 눈을 충혈되게 했다. 모든 특수 경찰들은 모두 손에 전기봉을 들고 있었는데 수련생들이 움직이기만 하면 곧 전기봉으로 충격을 가했다.

당시 방안은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몇 평방미터 되는 방안에는 100~200명 사람들이 동시에 들어갔는데,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몸 아래로 내리눌렸다. 이어서 두 명의 경찰이 한 명의 파룬궁수련생을 한 명씩 밖으로 끌어냈다. 대다수 파룬궁수련생들은 모두 신을 신지 않은 채 곧 강제로 차량으로 납치당했다.

그런 다음 경찰은 파룬궁수련생을 솽청시 순찰대로 납치해 한 명씩 심문을 감행했다. 밤중 10시가 넘어 일부분 수련생은 불법으로 하얼빈시 제2구치소에 갇혔고, 일부분 수련생은 솽청 구치소에 갇혔으며, 또 일부분은 솽청 유치장에 불법 감금당했다.

13일 오후, 불법 경찰은 파룬궁수련생 뤄옌제(駱艶傑)의 집을 불법 가택수색할 때 뤄옌제의 집으로 뤄옌제의 아들을 보러 온 장샤오옌(姜曉燕)과 팡구이란(方桂蘭)을 납치했다. 동시에 뤄옌제의 아들 판원퉈(範文拓)를 납치했다. 오후 3~4시가 넘어서 대법교류회에 참가하지 않은 파룬궁수련생 캉창장과 왕야리(王雅麗)를 납치했다. 저녁에 불법적으로 캉창장의 집을 수색할 때 파룬궁수련생 두 명이 캉창장의 집에 있었는데 한창 가택수색을 감행하던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소식에 의하면 이번 납치사건은 헤이룽장성 공안청에서 직접 감행했고 특별히 항목팀을 성립했다고 한다. 구체적 사건처리 인원은 어떠한 증명서도 꺼내보이지 않았으며 어느 부서인지를 질문했을 때에는 모두 성 공안청이라고 자칭했다.

2.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하다

장샤오옌(姜曉艶)은 2011년 11월 13일, 친구 뤄옌제의 집으로 놀러 갔다가 문에 들어서자마자 뒤에서 압박을 당했다. 그 후 끌려가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었으며 무장 경찰에게 감시당했다. 그날 저녁에 함께 솽청시 구치소로 보내졌다. 11월 24일, 형사 구류를 당한 동시에 하얼빈시 제2구치소로 보내졌다. 장샤오옌이 11월 24일, 하얼빈시 제2구치소로 보내진 그날 오전부터 시작해 전문사건팀에서는 그에 대해 심문을 감행할 때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했다. 3~4명 사람들이 있었는데, 한 사람이 물으면 다른 사람들이 듣고 있었다. 그 후에는 두세 사람이 그에 대해 심문을 감행했다. 그러나 모두 자신의 신분을 알려주지 않고 단지 장샤오옌에게, 장샤오옌 등 솽청 파룬궁수련생들의 사건을 심문하기 위해 성과 시에서 전문사건팀을 성립했다고 말했을 뿐이다. 기본상 매일 오후에 장샤오옌의 두 팔은 심문실 뒷면 의자 위에 거꾸로 채워졌다. 아주 넓은 의자에 손을 거꾸로 해서 수갑으로 채웠다. 몇 명의 사건처리 인원이 힘껏 비틀어서야 수갑을 채울 수 있었다. 의자 뒷면에는 가름대 하나가 있었고, 앞에는 또 쇠로 된 물건이 있었는데 장샤오옌의 목을 막았다. 사건처리 인원은 비닐끈을 수갑 위에 씌운 다음, 가름대 위에 매달았으며, 또 힘껏 끌어올렸다.

酷刑演示:吊铐
고문시연: 매달기 고문

매달렸을 때 장샤오옌은 가슴 한가운데만 숨이 있었을 뿐이다. 처음에는 그래도 정상적인 호흡을 할 수 있었으나 약간씩 허리 아래에 지각이 없어졌고 손도 감각이 없었으며, 가슴 한가운데 윗부분으로만 숨을 쉴 수 있었는데 또 숨을 거칠게 쉬었다. 그리고 팔과 다리마저 지각이 없었으며 눈을 감자마자 곧 기절했다. 매달려 있을 때, 어떤 사건처리 인원이 시계를 보았고 풀어 내려놓을 때 어떤 사람이 라이터로 끈을 태워 끊었다.

장샤오옌이 혼절한 뒤 사건처리 인원은 곧 끈을 풀어주었다. 그런 다음 또 장샤오옌에게 팔을 안마해 주어 혈을 통하게 했다. 장샤오옌의 반응에 의하면, 혈액 순환이 회복했을 때 매우 고통스럽고 괴로움을 느꼈다. 사건처리 인원은 동시에 또 시계를 보았다. 장샤오옌이 정상적임을 거의 회복했음을 보자 곧 그를 감방으로 보냈다. 6일 동안 심문했는데, 5일 동안 고문을 감행했다. 그 후에는 그의 팔이 뚝(탈구했을 수 있음)하는 소리가 나서야 연속 고문을 가하지 않았다. 이외에 어느 하루는 장샤오옌에게 의자 아래에서 손을 거꾸로 뒷짐을 지게 해서 위로 치켜들게 했는데, 장샤오옌이 기절해 아무것도 모를 때에야 풀어주었다.

장샤오옌은 현재 몸이 매우 허약하다. 신체검사에 의하면 심각한 빈혈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늘 갑자기 기절했는데 몇 차례나 감옥 외의 병원으로 보내져 치료를 받았다.

소식을 아는 사람이 폭로한데 의하면, 뤄옌제와 톈샤오핑(田曉平)도 마찬가지로 각각 따로 2시간 넘게 이러한 고문을 당했다. 이번 솽청 납치사건 중, 불법적으로 납치당한 대다수 파룬궁수련생들은 불법 심문당하는 과정에 고문을 당한 적이 있다. 대부분 수련생은 노동교양소 안에서와 구치소 안에서 면회를 허락받지 못했거나 혹은 면회했다 해도 감시하는 상황에서 면회했기에 많은 내부 상황은 여전히 알 방법이 없었다.

현재 이미 집으로 돌아온 9명 사람은 각각 왕위펑(王玉凤), 뤼수야(吕淑亚), 자오싱유(赵兴有), 왕청리(王成礼), 량위밍(梁玉名), 왕구이전(王桂珍), 쩌우궈옌(邹国彦), 랑수윈(朗淑云), 판수더(范淑德)이다.

다음 36명이 불법 노동교양을 당했다. 자오옌쥐(趙艶菊),가오수쥔(高淑君), 왕슈칭(王秀靑), 훙바오자(洪寳家), 청사오녠(程少年), 판원퉈(範文拓), 마치량(馬起良), 완윈룽(萬雲龍), 푸원칭(付文慶), 친하이룽(秦海龍), 완윈펑(萬雲鳳), 차오진시(曹進喜), 바이옌링(白艶玲), 왕샹펀(王相芬), 자오슈잉(焦秀英), 마훙샤(馬紅霞), 장리쥐안(姜麗娟), 장슈전(姜秀珍), 왕야리(王亞麗), 량시파(梁喜發), 두야민(杜亞敏), 쉬리보(徐立波), 두리화(杜麗華), 궈수윈(郭淑雲), 루광원(陸廣文), 자오수윈(趙淑雲), 자오톈링(趙天玲), 량옌(梁艶), 팡구이란(方桂蘭), 장바이화(張百華), 왕민(王敏), 자오위팡(趙玉芳), 우진란(吳金蘭), 두펑민(杜鳳敏), 천구이친(陳桂琴), 류수윈(劉淑雲). 그들은 각자 따로 1년 반에서 2년까지 불법 노동교양을 당했다. 팡구이란은 불법 노동교양을 당한 뒤, 첸진(前進)노동교양소에 갇혔다. 그녀는 반성문 따위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4명의 일반죄수에게 세면실로 끌려가서 옷을 깡그리 벗겨졌다. 그리고 하얼빈의 12월 날씨에 창문을 열어놓고 몸 위에 냉수를 끼얹었다.

酷刑演示:泼冷水
고문시연: 냉수 끼얹기

완윈룽(54)은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 간질, 심각한 심장병, 위궤양 등 질병을 앓았는데 수련한 뒤 전부 완쾌됐다. 완윈룽은 1999년 7월 22일, 첫 번째로 납치박해를 당했다. 그는 수많은 파룬궁수련생들과 함께 하얼빈시 정부로 가서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했다. 결과 솽청구치소에 반년 동안 납치당했다가 2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아, 헤이룽장성 이몐포(一面坡) 노동교양소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다. 두 번째로 완윈룽은 솽청 경찰에 의해 창춘(長春) 자오양거우(朝陽溝)노동교양소로 납치돼 3년 불법 노동교양을 받았다. 노동교양소에서의 첫 1년 반 사이에 박해로 간 복수증상이 나타나 생명이 위독해져서야 가족에게 2시간 내에 사람을 데려가라는 통지를 내렸다. 이것은 세 번째로 불법 노동교양을 당한 것인데 지금 쑤이화(綏化)노동교양소에 불법 감금당해 있다.

불법 기소를 당해 지금 여전히 하얼빈시 제2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해 있는 파룬궁수련생은 옌팅전(顔廷珍, 예전에 리샤오옌(李曉燕)이라고 불렀음), 장샤오옌(姜曉燕), 톈샤오핑(田曉萍), 뤄옌제(駱艶傑), 거신(葛欣)이며, 솽청구치소에서 불법 기소와 불법 감금당한 두 명의 수련생은 웨바오칭(岳寶慶)과 캉창장이다. 옌팅전은 하얼빈 제2구치소[야쯔촨(鴨子圈)]에 불법 감금당했는데 당시 나이 겨우 38세였고 박해로 심장병 증상이 아주 심각하게 나타났다. 가족이 여러 차례나 하얼빈 제2구치소와 솽청 공안국으로 가서 면회를 요구했으나 그들은 책임을 떠넘겼다.

지금 불법 기소당해 있는 4명 수련생 가족은 이미 무죄변호를 하려고 정의로운 변호사를 선임했다.

문장발표: 2012년 03월 13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3/13/25416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