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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의 억울한 재판과 7년 무고 판결당한 장베이치,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대륙보도) “3박4일 동안의 학대로 저는 머리가 혼미해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데, 그들은 저의 몸에 냉수를 끼얹고 창문을 열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두 손으로 머리를 잡아당기며 왔다갔다 돌렸고 주먹으로 저를 구타하는 등의 고문을 가했습니다. 제가 이미 심하게 혼절한 상황을 보더니 저를 호랑이 의자 위에서 풀어 머리를 땅바닥에 박게 했습니다. 그들은 미리 준비해놓은 가짜 자료를 가져다가 내가 혼미해진 기회를 틈타 강제로 지장을 찍었고, 이것은 곧 그들이 요구하는 자료로 변했습니다.”

이상의 것은 파룬궁수련생 장베이치(張倍齊)가 연길(延吉) 국가보안 특무에게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한 일부를 자술한 것이며, 중공(중국공산당)은 가짜 자료를 이용해 장베이치에게 7년의 불법 판결을 내렸다. 이전에 장베이치는 두 차례 불법 노동교양처분, 한 차례 불법 판결을 당해 모두 8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당한 적이 있다.

장베이치(1964년 출생)는 원적이 칭다오(青島) 핑두시(平度市)이다. 1990년에 지린성(吉林省) 연길시 안도현(安圖縣)으로 이사해 건축, 장식, 자영업 등에 종사했고, 안도현 제2건축회사의 사장을 맡은 적이 있었다. 1996년부터 장베이치와 아내 류메이쥔(劉美君)은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수련한지 오래지 않아 장베이치는 수년간의 담배와 술을 끊었고, 예전의 무척 급하던 성격을 고쳤으며, 아내 류메이쥔의 여러 가지 질병들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후, 장베이치와 아내는 여러 차례 구류, 노교, 판결을 선고받았다. 장베이치는 2000년 7월에 1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2001년 12월에는 두 번째로 노교처분을 받았다가, 2003년 7월에 노교소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2004년 3월, 다시 한 번 납치당했다. 2004년 10월 말 5년의 불법 판결을 선고받았는데, 그 기간에 늘이는 침대고문으로 괴로움을 당해 혼절했다. 2009년 3월 19일에 장베이치는 석방되었다.

2010년 2월 27일에 장베이치는 또 한 번 연길 국가보안특무에 의해 고향인 칭다오에서 납치돼,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한 뒤 7년의 무고판결을 선고받았다. 지금 지린성 궁주링(公主嶺)감옥에 불법 감금당해 있다. 장베이치는 2010년 11월 21일에 공소편지를 다음과 같이 썼는데, 감옥에서 여러 손을 거쳐 전해 나온 것이다.

나는 장베이치라고 부르며, 지린성 안도현에서 살고 있는데 지금 지린성 궁주링감옥에 불법 감금당해 있다. 나는 지린성 연길시 국가보안대대 샤오빈(肖彬), 쉬샤오펑(徐曉峰), 장원슈(張文秀) 등 사람이 나에 대해 불법 인신고문박해를 가해, 지금 대뇌와 허리 그리고 다리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픈 상황에 대해 공소하려 한다.

2010년 2월 27일 오후 두시 경, 내가 한창 산둥성 핑두시 고향에서 다년간 보지 못했던 노 모친과 가족이 집안일을 얘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샤오빈(肖彬)과 평복차림의 사람이 들이닥쳐 나를 미니버스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또 나에게 “꼼짝 말고 외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총을 쏘겠다!”고 했다. 내가 “당신은 누구입니까? 무엇 때문에 사람을 함부로 붙잡습니까? 증명서가 있습니까?”라고 묻자, 한 사람이 달려들어 황급히 나의 근시안경을 벗겨내고 눈앞에서 작은 책을 흔들며 말했다. “나는 공안국 사람이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인가?” 내가 이름을 대답한 뒤 그들은 ‘붙잡으려는 이가 바로 당신이다’고 말했다. 내가 “나는 법도 위반하지 않았는데, 무엇 때문에 함부로 붙잡으려 합니까?”라고 하자, 그들은 “당신은 화룡시(和龍市)법원에서 재판을 열었을 때 참여하지 않았습니까?”고 말했다. 나는 “참여했습니다. 법원에서 재판을 함에 국민이 참여함은 합법적인 것입니다. 게다가 당시 법원은 법정의 심판을 기다림을 허락했기에 나는 법을 위반하지 않았습니다.”고 말했다. 그들은 “당신은 승인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사람을 조직해 법정을 혼란하게 했기에 우리는 연길에서 당신을 붙잡으러 왔습니다.”라고 했다. 이는 완전히 나에 대한 모함이었다.

그들은 나를 핑두시의 한 사무동 안으로 끌어갔다. 그리고 나의 핸드폰, 전자사전, 은행카드, 현금 1천 7백 여 위안(여태껏 돌려주지 않고 있음), 신분증 등을 수색해갔다. 이어서 그들은 문서를 작성하고, 두 손에 수갑을 채워 핑두시 구치소로 압송해 갔다. 그들이 연속해서 구타하고 공갈협박했기 때문에 나의 심장은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다. 구치소의 당직인은 병원으로 가서 진단서를 받았다. 샤오빈 등은 또 나를 핑두시병원으로 끌어가 신체검사를 받게 했는데, 당시 나의 몸 상태가 매우 나빠서 구치소에 수감되지 않을까 두려워 몰래 의사에게 내가 도주범이라고 했다. 의사는 내가 신체검사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간단하게 검사하고 황급히 진단서를 발급했다. 나는 또 구치소로 보내져 8호 감방에 갇혔다.

내가 갇힌 8호 감방의 면적은 30평방미터도 되지 않는데 70여 명의 사람을 감금했다. 나는 강제로 땅바닥위에 하루 밤 동안 내리눌리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나는 옥졸과 죄수에 의해 감옥 밖의 화장실 옆으로 끌려갔다. 밖에서는 눈보라가 치고 날씨는 찼다. 옥졸과 죄수는 연속해서 구타하고 지저분한 말투로 욕했다. 두 시간이 넘은 뒤, 구치소의 당직 교도관이 출근하자 두 죄수는 나를 사무실로 납치했다. 내가 상황을 사실대로 말했으나, 당직 교도관은 죄수를 징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내가 옥졸의 관리를 따르지 않는다며 또 나를 7감방에 가뒀다.

7일 째 되는 날, 연길시 국가보안대대의 쉬샤오펑(徐曉峰)과 정(鄭)씨 등 4명은 나를 핑두시 구치소에서 데려가 청두에서 비행기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또 다시 나의 구두자백서를 썼다. 내가 “무엇 때문에 나를 붙잡습니까? 내가 법정으로 간 것은 합법적입니다. 게다가 공개적인 법정심리로, 법정에서는 우리가 법정에 들어감을 허락했습니다.”고 반문하자 그들은 말했다. “당신은 조직두목으로, 군중을 모아 법정을 혼란시켰습니다. 게다가 파룬궁인을 위해 법정에 나서서 변호함을 허락하지 않는데 이것은 상부의 지시입니다. 우리는 단지 지시대로 당신을 붙잡았을 뿐입니다. 때문에 당신은 운수가 사나움을 스스로 인정하십시오!” 나는 연길시구치소 15호 감방에 감금당했고, 경찰 김(金)씨가 책임졌다. 3월 10일에 나는 또 28호 감방으로 이송됐는데 책임진 경찰은 추이정하오(崔正浩)이다.

酷刑演示:铁椅子
고문 시연: 쇠의자

3월 17일 오후 3시 경, 국가보안대대의 쉬샤오펑(徐曉峰) 등 10여 명은 나를 구치소에서 연길시 연집향(烟集鄕) 북쪽에 있는 한 빈 관의 2층 방으로 끌고갔다. 그들은 먼저 나의 머리를 옷으로 덮어 방안으로 압송해 가서, 나의 두 손과 두 발을 그들이 이미 준비해 놓은 호랑이 의자위에 채웠다. 그리고 허리부위는 조강(粗鋼)몽둥이로 한쪽 끝을 고정해 놓고, 다른 한쪽 끝은 자물쇠로 잠궈 놓아 온몸을 꼼짝하지 못하게 했다. 쉬샤오펑과 팀장 정(鄭)씨 등 10여 명이 팀으로 나뉘어, 한 개 팀이 두 시간씩 하루 24간 동안 나를 돌아가며 고문학대하여 눈을 감지 못하게 했다. 내가 “문제를 내가 다 말했는데도 무엇 때문에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나를 대하는가”하고 묻자, 그들은 “상부에 지시가 있다. 몇 가지 문제를 당신은 반드시 승인하고 대답해야 한다. 우리가 당신한테 어떻게 말하라고 하면 당신은 어떻게 말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당신도 우리를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듯이 당신은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3박4일 동안의 학대로 나는 머리가 혼미해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데, 그들은 나의 몸에 냉수를 끼얹고 창문을 열어 추위에 떨게 했다. 그리고 두 손으로 나의 머리를 잡아당기며 왔다갔다 돌렸고 주먹으로 나를 구타하는 등 고문을 가했다. 내가 이미 심하게 혼절한 상황을 보더니 나를 호랑이 의자에서 풀어내어 머리를 땅바닥에 박게 했다. 그들은 미리 준비해놓은 가짜 자료를 가져다가 내가 혼미해진 기회를 틈타 강제로 지장을 찍었고 이것은 곧 그들이 요구하는 자료로 변했다.

그들은 의사가 나의 부상 정도를 의심할까 두려워 곧 의사를 속였다. 의사는 그들의 가짜 말을 믿고 무책임하게 진단서 한 부를 내주었다. 그들은 나를 구치소로 끌고 갔다. 구치소에서 당직을 서는 경찰은 내가 다친 상처가 심각한 것을 보더니 수감해 주지 않았다. 구치소의 의사는 말했다. “반드시 병원에서 진단서를 발급받아야 우리는 수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책임을 질수 없습니다.” 그들은 또 나를 병원으로 끌어다가 다시 검사했다. 그들은 병원의 진단서를 가지고 나를 구치소로 되돌려 보냈다. 추이정하오(崔正浩)교도관은 두 명의 죄수를 불러다가 나를 감방으로 끌어가게 했다.

연길시 국가보안대대에서는 나에게 불법으로 고문 박해하여, 두 다리가 마비되고 걸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감옥에서 반 개월 넘게 휴양해서야 약간의 감각을 회복했다. 몇 달이 지나서 차츰 호전되었으나, 유류증상은 줄곧 호전이 없었다. 머리는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는데, 어떤 때에는 아픔으로 기절했고 허리와 다리는 늘 마비되고 아팠다.

그러나 시 검찰원과 법원은 연길시 국가보안대대의 가짜 자료에 근거하여 나에게 7년의 불법 판결을 선고했는데, 이것은 강제로 무고판결을 한 것이다.

나는 각급 책임자들에게 하루 빨리 이 일을 철저히 조사해, 나에게 자유를 돌려주며 나의 인신이 상해 받지 않도록 공정한 평가를 하는 동시에 연길시 국가보안대대의 샤오빈, 쉬샤오펑, 정씨 등 사람들의 법률 책임을 추궁하여 나에 대해 배상해 줄 것을 요구한다. 즉시 나를 무조건으로 석방하라! 나의 인신자유와 건강한 몸을 돌려 달라!

문장발표: 2012년 02월 29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2/29/25362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