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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수샤, 랴오닝 여자감옥서 혹독한 구타로 사망한 경과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보도) 왕수샤(王淑霞, 여)는 본적이 랴오닝성(遼寧省) 파쿠현(法庫縣) 다구자향(大孤家鄕)이다. 생전에는 댜오빙산시(調兵山市) 샤오난진[曉南鎭, 원래의 톄파진(鐵法鎭)임] 후자촌(胡家村) 촌민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에 대한 믿음과 진실한 말을 하는 권리를 견지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중공(중국공산당) 사악한 당에게 상해를 입어 다시 한 번 정신 이상이 되었다. 2008년 6월 3일, 당시 나이 45세인 왕수샤는 랴오닝성 선양(瀋陽)감옥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당했다. 이틀 후 즉 6월 5일, 감옥에서는 현지 공안국에 통지를 내려 왕수샤의 가족에게 왕수샤의 사망소식을 전하도록 했다.

가족이 그곳에 급히 갔을 때, 왕슈샤의 시신은 이미 냉동처리 되어 있었다. 입 주변은 전부 터졌고 목과 앞가슴은 청자색을 띠고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고문박해로 사망했음이 분명했다.

2008년 6월 4일 오후 4시, 왕수샤는 랴오닝성 여자감옥에서 당시 ‘마귀대대’로 불리는 8대대로 압송되었다. 당시 그녀가 전향(믿음을 포기함)을 거부하자 교도원 대장 멍리잉(孟麗穎)이 수갑을 채웠다. 또한, 죄수 몇 명이 밤 12시가 넘을 때까지 미친 듯이 왕수샤를 구타했다. 극도의 고통 속에서 왕수샤는 화장실에 가겠다고 했다. 화장실에 갔으나 막 쭈그려 앉자마자 머리가 한쪽으로 쏠린 채 땅바닥에 쓰러져 숨졌다.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죄수는 왕슈샤가 성기를 참혹하게 구타당한 것을 발견했다.

왕수샤는 8대대에서 이렇게 겨우 8시간 만에 박해로 사망했다. 당시 야근 당직을 선 교도관은 소대장 궈구이제(郭桂傑)이고, 바오자(包夾, 감시)죄수는 친스추(秦世秋), 장쓰치(張思奇)이며, 구타에 참여한 죄수는 마하이잉(馬海英), 판진핑(範金萍) 등이다.

사건이 발생한 뒤, 대대장 쭤샤오옌(左曉燕)은 일을 책임진 죄수 친스추(秦世秋) 등을 신속하게 찾아서 형기를 줄여준다는 조건으로 책임을 감당하게 했다. 대장 멍리잉은 경고처분만 받았고 죄수 친스추와 장쓰치는 일주일간 독방에 갇힌 게 전부이다. 그 후 얼마 안 돼 멍리잉은 다둥구(大東區) 사법국으로 전근되었고, 죄수 친스추와 장쓰치는 모두 감형되었다.

문장발표: 2012년 02월 24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2/24/25344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