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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닝 싱청시 쑹차이훙 여사, 악독한 경찰의 구타로 사망(사진)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성 보도) 랴오닝(遼寧) 싱청시(興城市) 파룬궁수련생 쑹차이훙(宋彩虹) 여사는 2011년 12월 30일 파출소로 납치돼, 유치장에서 악독한 경찰에게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결국 2012년 1월 15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나이 41세였다. 쑹차이훙은 마싼자(馬三家)노동교양소에서 3년 동안 잔혹한 박해를 당했고 이어서 불법적으로 5년형 판결을 받아 랴오닝 여자감옥에서 박해를 당했다.

납치와 혹독한 구타당해 사망

쑹차이훙과 저우리전(周麗珍)은 2011년 12월 30일에 새해 달력으로 진상을 알리다 악인(惡人)에게 붙잡혀 댜오위타이(釣魚臺) 파출소에 납치당했다. 쑹차이훙은 박해를 저지하기 위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소리 높이 외치다가, 댜오위타이 파출소에 근무하는 두 명의 젊은 경찰에게 구타당했고 그날 저녁에 후루다오(葫蘆島) 유치장으로 납치당했다.

이튿날, 유치장에서 쑹차이훙는 이름 말하는 것을 거부했다. 동시에 연속 “파룬따파하오, 하늘이 중공을 멸(滅)하므로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등을 소리 높이 외쳤다. 파출소 소장 장쥔펑(張俊峰)은 몇 명의 경찰을 거느리고 쑹차이훙을 감방에서 끌어내 다른 방에서 장시간 동안 혹독한 구타를 가했다. 쑹차이훙이 의식을 회복했을 때 한 말로는 4, 5명의 경찰이 그를 바닥에 때려눕힌 뒤, 머리카락을 잡고 배를 밟고 등을 걷어찼다고 했다. 그리고 장쥔펑은 때리면서 소란을 피웠다는데 “톡톡히 때려주어라. 그래도 그녀가 이름을 말하지 않을지, 소리를 질러 외칠지를 두고 보겠다!”고 전했다. 게다가 또 전기 경찰봉 몇 개를 꺼내 더욱 심한 악행을 저지르려 하다가 한 여성 경찰의 권고로 멈췄다고 했다. 감방으로 돌려보내진 뒤에 쑹차이훙는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계속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가래 속에는 피가 섞여 나왔는데 어떤 때에는 온 입에서 선혈을 토해내고 기침을 했으며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그 후 장쥔펑은 더욱 쑹차이훙을 핍박해 이름을 말하게 하려고 시도했다가, 쑹차이훙의 몸 상태가 매우 나빠졌음을 보고서야 그만 두었다.

1월 6일(금요일)에 쑹차이훙은 가끔 의식을 잃는 상태가 나타났다. 장쥔펑은 자신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 두려워 사건 처리 부서에 전화를 걸어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도록 요구했다. 댜오위타이 파출소의 담당 경찰은 쑹차이훙을 후루다오시 중심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검사를 했다. 의사는 입원하도록 요구했지만 경찰은 거부했다. 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하라고 했으나 모두 하지 않았으며, 또 쑹차이훙을 유치장으로 돌려보냈다. 1월 8일(토요일)에 쑹차이훙의 몸 상태는 더욱 악화됐고 가끔 정신이 흐리멍덩해졌다. 유치장에서는 다시 한 번 사건 처리 부서에 통지를 내린 뒤, 가족이 쑹차이훙을 유치장에서 데리고 나와 싱청시 병원으로 보내 입원치료를 받게 했다.

쑹차이훙은 심각한 구타와 혹독한 구타를 당한 뒤 장시간 동안 음식을 먹지 못했던 이유로, 급성 요독증에 걸렸다. 그리고 또 유치장 내부에서 치료하기 가장 좋은 시기를 지체한 뒤에 후루다오 313병원으로 옮겨졌던 이유로, 1월 15일 즉 이튿날 아침 7시경에 쑹차이훙은 313병원 신장 내과에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쑹차이훙을 사망케 한 주요 책임자는 후루다오 유치장 소장 장쥔펑이다. 불법으로 지시해 유치장에 보낸 과정 중, 싱청시 610 쑹창장(宋長江)과 천(陳)모와 싱청 국가보안대대 대장 장리쥔(張立軍)은 모두 참여했다. 소식에 따르면, 쑹차이훙이 후루다오 유치장을 떠난 뒤, 장쥔펑은 처음의 사납고 포악한 모습을 숨기고 함께 불법 감금당한 다른 한 파룬궁수련생를 지극정성 보살펴 주는 방식으로 책임을 모면하려 했다. 1월 15일에는 돌봐준 수련생에게 자신이 파룬궁수련생을 아주 잘 대해주었음을 증명해달라며 서명까지 받았다.

이미 노동교양소와 감옥에서 잔인한 박해를 당해

쑹차이훙은 싱청시 자오자완(趙家灣) 사람이다. 1999년 7월 20일, 베이징에 간 뒤에 현지에 불법 구류를 당했다. 구류소에서 연공을 했다가 강제로 수갑과 족쇄가 채워졌다. 1999년 10월 10일 석방된 뒤, 1999년 10월 13일 둥산(東山)체육장으로 가서 연공하다 유치장으로 붙잡혀 가 1999년 10월 31일 3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쑹차이훙은 마싼자(馬三家) 노동교양소에서도 잔인한 박해를 당했다. 연속 두 차례 중국의 전통 새해를 모두 독방에서 보냈다. 두 손과 발은 이중 쇠고랑에 고정되어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고, 늘 악도에게 혹독한 구타를 당해 온몸은 성한 곳이 없었다. 더욱이 족쇄는 그의 발을 마찰시켜 상처투성이로 만들었다.

노동교양소 형기가 만기된 2002년 8월 22일에 선양시(沈陽市)의 사당(邪黨) 중급인민법원, 검찰원은 직접 마싼자 노동교양소로 가서 이른바 ‘재판회’를 열었다. 3명의 파룬궁수련생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높이 외치자 악독한 경찰은 놀라고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이들을 둘러싸고 잔혹하게 구타했다. 소장 쑤징(蘇境)은 현장에서 히스테리를 부리고 큰 소리를 지르며 외쳤다. “판결을 7년으로 고친다!” 당시 경찰 어느 한 사람도 감히 말하지 못했고 전 노동교양소는 죽은 듯이 조용했다. 현장의 파룬궁수련생들은 잇달아 “파룬따파하오. 수련함은 죄가 없다”는 등 구호를 외쳤다. 경찰은 벌떼처럼 몰려와서 머리카락을 틀어잡고 입을 막았으며, 무차별폭력을 가해 회의실에서 끌고 떠나가서 1층에 있는 영창에 던져버리고 입에 테이프를 감았다. 회의가 끝난 뒤에 구호를 외친 사람을 따로따로 3개월에서 6개월로 형기를 연장하는 박해를 가했다.

쑹차이훙과 파룬궁수련생 리둥칭(李冬靑), 리리밍(李黎明)은 5년 불법 판결을 받았는데 선양시 청난(城南) 쑤자툰구(蘇家屯區)]에 위치한 구치소로 1개월 넘게 납치되다 다베이(大北) 여자 감옥으로 이감돼, 늘 구타를 당했고 욕을 먹고 매를 맞았으며 전기봉에 충격을 당하는 등 괴롭힘을 당했다. 리둥칭 여사는 중공의 불법 노동교양과 판결, 정신병원에 갇히는 등 박해로 정신이상이 됐으며 2011년 상반기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이 49세였다.

소식에 따르면, 쑹차이훙은 선양시 구치소에서 ‘호랑이 의자에 앉기’ 고문을 당해 다리가 부어올랐으며, 또 큰 솜이불에 덮여 구타당했다. 쑹차이훙은 학대를 당할 대로 당했으나 여전히 ‘파룬따파하오’를 견지해 불렀다. 악독한 경찰들은 곧 그녀에게 약물을 주입해 그녀로 하여금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쑹차이훙은 깨어나면 여전히 외쳤다. 쑹차이훙은 여자감옥으로 보내져 더욱 심한 고문을 받았다.

(역주: 박해 관련 책임자와 부문에 대한 상세 정보는 아래 링크된 중문
원문위치 참조바랍니다.)
문장발표: 2012년 01월 17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7/2519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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