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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야루 제5차 납치, 일가족 다년간 이별의 고통 받다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보도) 2011년 12월 31일 아침 5시가 넘어서 하얼빈(哈爾濱) 샹팡(香坊) 공안분국과 류순(六順)파출소의 24명의 모든 경찰들이 만능열쇠로 문을 비틀어 열고, 불법으로 파룬궁수련생 치야루(祁亞茹)의 집에 뛰어들었다. 당시 치야루는 집에 없었다. 경찰은 그녀의 남편과 아들을 납치하고, 이어서 불법으로 가택수색을 감행하여 많은 물건을 강탈했는데, 유선 전화마저 강탈해갔다. 경찰은 고문하였고, 치야루의 아들을 강박해 아버지 왕더쥔(王德軍)이 수련생임을 말하도록 했다. 그리고 또 자오둥시(肇東市) 우잔전(五站鎭) 치야루의 언니 집으로 가서, 치야루와 그녀의 10살인 딸 왕스위안(王世緣)을 납치했다.

그날 하얼빈의 경찰은, 함부로 대략 30명 되는 현지의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했는데, 이것은 치야루가 다섯 번째로 중공(중국공산당) 당국에게 납치당한 것이다. 12년 동안, 그녀의 일가족은 많은 이별의 고통을 받았다. 지금 어린 스위안은 풀려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어머니가 강제로 붙잡혀 간 과정을 목격한, 어린 스위안의 마음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 스위안의 93세인 할아버지는 갑자기 닥쳐 온 광적인 폭행에 깜짝 놀라고 두려워 어쩔 줄을 몰랐는데, 지금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전의 따스하고 화목하던 다섯 식구의 가정은 고독하게 조손 두 사람만 남아 더욱 처량하다.

치야루는 1998년 5월에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수련하기 전에 그녀는 심한 B형 간염에 걸렸었다. 수련한 후에 난치병이 없어져, 몸이 건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사람 자체가 도량이 넓고 선량하며 온화했다. 평소에 남편은 외지에서 일을 해 전 가족의 생활을 유지했고, 그녀는 세심하게 가사를 돌보고 나이 어린 두 아이를 보살폈다. 고령인 시아버지는 눈이 침침하고 귀가 멀었으며 행동이 느릿느릿했다. 그녀는 인내심을 갖고 항상 시아버지를 매우 효성스레 모셔서 남편이 외지에서 걱정하지 않게 했다. 그 단락의 시절은 치야루 일가족의 행복한 때이다.

그러나 1999년 중공 사악한 당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하면서, 치야루의 평온하던 가정생활은 중공의 교란에 의해 깨어졌다. 그녀는 여러 차례 납치 및 불법 감금을 당한 동시에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심지에 고문학대를 당한 적도 있다. 그녀의 가정 또한 악독한 경찰에게 수 차례의 갈취, 교란과 가택 수색을 당했다.

1999년 7월 22일 아침 7시가 넘어, 치야루는 헤이룽장성 정부 가도 옆에서 하나의 큰 주택으로 납치당했다가, 그 후 팔구(八區)체육관으로 나뉘어 옮겨져 저녁 11시 쯤 까지 감금당했다. 그런 후 강제로 서명시킨 뒤, 샹팡구(香坊區)정부로 압송했고, 류순(六順)사무실에서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2000년 음력 12월 30일 저녁, 치야루는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무장경찰에게 무차별폭력을 당한 뒤에 불법 감금을 당했다. 그 후 베이징 주재 하얼빈시 사무실로 보내졌다. 하얼빈시 샹팡구 류순 파출소의 경찰은 치야루의 집에 가서 천 위안의 현금을 달라하면서, 뻬이징에 치야루를 마중하러 간다고 했다. 하얼빈에 돌아온 뒤, 치야루는 하얼빈시 제2구치소에 감금당했다. 3개월이 지난 뒤, 경찰은 또 강제로 그녀의 가족에게 2천 위안의 담보금을 바치게 해서야 치야루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2000년 6월, 치야루는 악의적인 신고를 당했다. 악독한 경찰 저우뎬린(周殿林)은 먼저 치야루를 납치해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무렵, 류순 파출소의 소장 옌타오(闫濤)는 치야루를 제2구치소로 납치해 감금했다. 치야루는 단식으로 박해를 항의하다가, 강제로 경찰에 의해 옥수수가루에 짠 소금물을 주입 당했다. 20여 일이 지난 뒤, 하얼빈시 샹팡 분국에서는 가족에게 5백 위안의 현금을 달라고 했다.

2003년 4월 10일 오후 2시가 넘어서, 하얼빈시 샹팡구 류순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 저우뎬린, 마원우(馬文武)와 사무실의 두 주임은 치야루의 집에 들이닥쳤다. 게다가 불법으로 가택수색을 감행하여 개인 물품을 강탈해갔다. 당시 치야루의 딸이 태어난 지 겨우 석 달이 넘었기 때문에 납치당하지 않았다.

2005년 3월 6일, 치야루와 아들이 공공버스역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 악독한 경찰 저우뎬린 등 3명은 그녀를 류순 파출소로 납치한 동시에 그녀의 집을 수색 했다. 치야루의 남편은 석방을 요구하러 갔으나 모두 이루지 못했다. 이어 치야루는 3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고, 2005년 4월 21일에 하얼빈시 완자(萬家)노동교양소로 납치되어 연속으로 박해를 당했다.

酷刑演示:背吊铐
고문시연:뒷짐결박으로 매달아 채우기

노동교양소에서 그녀는 핍박에 못 이겨 작은 걸상에 앉아서 사악한 당이 파룬궁을 모욕한 서적과 녹화를 보았다. 그리고 또 강제로 30센티미터 되는 네모난 벽돌 안에 쭈그려 앉혀놓고 손을 등 뒤로 해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한바탕 욕설을 퍼붓고 혹독한 구타를 했다. 악독한 경찰 우바오윈(武寳雲)과 악독한 과장 야오푸창(姚福昌)은 치야루의 두 손을 몸 뒤로 해서 수갑을 채웠다. 그런 다음 포승을 수갑 위에 묶어 몸을 매달았다. 두 발을 지면에서 떨어지게 한 뒤, 다시 전기봉으로 민감한 부위에 전기충격을 가해, 3서(三書)를 써서 당 신청서에 써넣게 했다. 치야루는 노동교양소에게 강제로 노역노동과 정신적 박해를 3년 동안 당했다.

2009년 7월 17일, 류순가도 사무실의 두 주임(그중 한 사람은 자(賈)씨)은 치야루의 집으로 갔다. 치야루 본인이 집에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강제로 치야루의 남편과 아들 딸에게 3서를 쓰도록 핍박했는데, 가족은 쓸 줄 몰랐다. 그래서 이 주임 자씨는 스스로 직접 3서를 썼다. 그런 다음 치야루의 남편을 핍박해 치야루의 이름을 서명시켰다.

박해한 12년 이래, 치야루와 가족은 몇 차례나 심한 이별의 고통을 받았다. 오늘날, 치야루는 또 무고하게 납치당했다. 그녀의 수련하지 않는 남편 왕더쥔과 그녀의 아들 왕치(王祁)도 납치돼 박해를 당했다. 그들 일가족은 선량하고 본분을 지키는데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그들의 고통은 언제나 끝날지? 이지가 없고 무법천지인 이번의 사악한 폭행은 또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지?

이곳에 더욱 많은 정의로운 인사들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치야루와 그녀의 가족에게 관심을 갖길 바란다. 당신의 선량함과 당신의 관심은 정의로운 역량을 더해줄 수 있고, 사악의 발악을 억제할 수 있으며, 또 자신의 마음에 안녕과 미래의 복을 가져올 수 있다.

문장발표: 2012년 01월 15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5/2518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