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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로 정신 이상이 된 가오칭페이, 억울하게 세상 뜨다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보도) 랴오닝(遼寧)성 둥강(東港)시 파룬궁수련생 가오칭페이(高慶飛)는 2003년에 중공(중국공산당)감옥에서 굶주림과 강제노역, 세뇌 등의 학대를 당해 정신이상이 되었다. 그는 2011년초에 참혹한 상황에서 세상을 떠났다. 가오칭페이의 아내 저우훙룽(周洪溶)은 남편이 생전에 박해당한 사실을 다음과 같이 폭로했다.

나는 저우훙룽(올해 64세)이라고 하며 둥강시 샤오뎬쯔(小甸子)진 싼퇀산쯔(三團山子)촌에서 살고 있다. 나의 남편 가오칭페이(高慶飛)는 나와 동갑이다. 그는 1998년 1월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대법을 얻어 수련하기 전에 그는 몸이 아주 좋았지만 성질이 좋지 않았다. 대법을 수련한 후, 그는 대법의 표준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자신을 요구할 수 있었다. 대법을 학습한지 오래지 않아 그는 사람 전체가 모두 변했다. 매일 그는 모두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했으며,무슨 일을 하든지 모두 ‘진ㆍ선ㆍ인’으로 자신을 가늠해 화를 내지 않았으며 진심으로 착해졌다. 그는 사람 돕기를 즐겼고, 시시각각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도록 자신에게 요구해 몸은 더욱 건강해졌다. 이후로 가정이 화목해졌다. 나는 늘 “가오씨는 정말 딴 사람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바로 그의 변화가 너무 컸기 때문에 나는 이 대법의 신기함을 보았다. 1998년 8월, 나도 파룬따파(法輪大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나는 기관지염, 류머티스성 관절염 등 질병들이 모두 나았다. 파룬따파는 우리의 몸을 정화해주었고, 또 끊임없이 우리의 사상과 심령을 씻어주었다. 그때 우리 일가족은 매일 모두 파룬따파의 법광 속에서 화목하고 행복함에 푹 빠져있었다.

그러나 나와 나의 남편이 막 파룬따파를 수련한지 1년이 넘었을 즈음, 중공사당(中共邪黨)은 곧 온 천지를 뒤덮을 듯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해, 총부리를 모두 이들 마음을 닦아 착해지려는 좋은 사람을 겨냥했다. 나의 남편 가오칭페이는 바로 그들의 잔혹한 박해 속에서 정신이상이 되었는데, 결국 2011년 초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다음에 나는 나의 남편이 박해로 정신이상이 되고 사망한 과정을 써내어, 많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중공사당을 바싹 뒤따라 파룬궁을 박해한 나쁜 사람들이 얼마나 사악하며, 그들을 조종한 이 사악한 당이 얼마나 사악한지를 볼 수 있도록 하겠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사당이 온 천지를 뒤덮을 듯이 유언비어를 날조하며, 파룬궁을 모독하고 비난할 때, 나와 가오씨는 마음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그들이 꾸며낸 그런 허튼소리를 듣지 않았고 그들의 교란을 받지 않았으며 모두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평소와 같이 연공을 하고 마음을 닦았으며, 항상 대법을 모두 머리 속에 기억했다.

2000년 7월, 샤오뎬쯔(小甸子)진 파출소 경찰은 퇀산촌의 촌가부 양(楊)씨를 사주해 나의 남편 가오칭페이를 속이고 유인하여 샤오뎬쯔진파출소로 데려 갔다.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은 가오칭페이에게 파룬따파수련을 포기하도록 핍박하고 위협하면서 “오늘 당신이 ‘연마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기만 하면, 곧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가오칭페이는 확고하게 “연마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악독한 경찰은 즉시 가오칭페이를 둥강으로 끌고 가 유치장에 가둬 보름 동안 불법 구류 시켰다. 그는 또 둥강 유치장에서 현금 4백 위안(약 7만2천원)을 불법으로 갈취당하고 풀려났다. 집으로 돌아온 뒤 남편과 나는 여전히 수련을 견지했다.

2003년 5월 28일 오후 5시경, 경찰은 사람을 시켜 가오씨를 샤오뎬쯔파출소로 가도록 전달하게 했다. 그가 간 뒤에 악독한 경찰이 그에게 파룬궁을 연마할지 묻자, 가오칭페이는 확고하게 ‘연마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악독한 경찰 장구이치(張貴琦), 왕싱장(王興江), 왕옌쥔(王延軍), 판퉁량(範同良), 왕촨차오(王全超) 등은 곧 가오칭페이와 샤오뎬쯔의 다른 한 파룬궁수련생 천시핑(陳喜平)를 샤오뎬쯔파출소에 하룻밤 감금했다. 이튿날 아침 번개가 치고 우레가 울더니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다. 그들 악독한 경찰들은 마치 통제력을 잃은 듯이,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무릅쓰고 가오칭페이와 천시핑을 함께 경찰차 위에 끌어올려 둥강 유치장으로 끌고 갔다. 둥강 유치장에서 13일 동안 감금당한 뒤에 또 그들을 둥강 구치소로 옮겨 박해를 가했다.

막 구치소에 도착하자, 악독한 경찰은 곧 죄수를 지시해 그들을 혹독하게 구타했다. 감방 안에서 별명이 ‘샤오둥강’이라고 불리는 죄수는 가오칭페이에게 신을 벗게 했다. 가오칭페이가 신을 벗는 속도가 조금 느리자, 이 샤오둥강은 연속 뺨을 때렸다. 악독한 경찰은 죄수를 교사해 가오칭페이에게 일부 사악한 당의 난잡한 거짓말, 강변과 사설(邪說)을 주입했는데. 그들은 ‘세뇌’라고 불렀다. 그리고 가오칭페이에게 감옥 규정을 외우게 했으나, 그는 외우지 않았다.

대략 일주일이 지난 뒤, 악독한 경찰은 곧 그들을 핍박해 수공일(비닐 꽃을 붙이는 일)을 시켜 그들을 위해 돈을 벌게 했다. 이런 일은 인체에 매우 해로웠다. 그런 낮은 품질의 비닐에는 독이 있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침부터 저녁 9~10시까지 머리는 독이 있는 냄새에 중독되어 터질 듯했고 메스꺼워 괴로웠다. 어떤 때에는 노동기준량을 완수하지 못하여 밤 한 두시까지 해야 했는데, 그래도 완수하지 못하면 악독한 경찰은 죄수에게 사주해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가했다.

酷刑演示:毒打
고문시연: 혹독한 구타

악의 무리 ‘샤오둥강’은 신발뒤축으로 가오칭페이를 걷어찼다. 신발 뒤축에 징을 박았기에 가오칭페이의 요추골마저 채여 부어올랐다. 다쳐서 부어오른 곳은 또 아주 큰 물집이 생겨났다. 이 정도까지 괴롭혔을 때, 악독한 경찰은 여전히 죄수에게 사주해 그를 잠재우지 않았다.

파룬궁수련생 천시핑은 그들의 이런 잔인함을 보고, 악독한 경찰에게 말했다. “그의 연세는 당신의 아버지 연세와 비슷한데, 당신이 어찌 그를 구타할 수 있습니까?” 악독한 경찰은 흉악하게 “입닥쳐!”라고 말했다. 그리고 가오칭페이와 천시핑을 한바탕 혹독하게 구타했다. 이번에 가오칭페이는 구타당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악독한 경찰은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가오칭페이를 괴롭혔다. 밥을 먹을 때, 그의 밥과 반찬은 늘 죄수에게 빼앗겼고 가오칭페이는 이렇게 굶주리면서 일을 했다. 육체적, 정신적 학대는 그로 하여금 나날이 수척해지게 해 몸은 점점 악화되었고 정신은 점점 흐릿해졌다.

2003년 8월 중순, 가오칭페이는 학대로 몸이 형편없이 수척해지고 정신은 이미 붕괴되었다. 이런 상황하에서 둥강시공안국은 강제로 가오칭페이를 단둥(丹東)교양원으로 납치해 박해를 가했다. 그때 가오칭페이는 이미 정신이 흐리멍덩해졌다. 그러나 악인(惡人)은 여전히 가만 두지 않고 그에게 수련을 포기하는 서명을 하도록 핍박했다. 나의 딸이 그의 아버지를 보러 단둥교양원으로 갔을 때, 교도관에게 대략 천 위안(약 18만원)쯤 되는 뇌물을 주었다.

2003년 8월 31일 아침, 가오칭페이와 다른 20여 명의 파룬궁수련생, 단둥교양원에 갇힌 파룬궁수련생 모두는 번시(本溪) 웨이닝잉(威寧營) 노동교양소로 옮겨져 박해를 당했다. 그때 가오칭페이는 이미 정신이상이 되었고, 혈압은 280에 달해 심장병이 빈번히 도졌다. 노동교양소에서는 가족에게 사람을 데려가라고 했다. 가족은 450위안(약 8만 천원)가량의 왕복여비를 썼다. 같은 해 11월 말에 집으로 데려왔다. 집으로 돌아온 뒤, 몸과 정신이 좀 좋아졌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번시웨이닝잉노동교양소는 또 다시 가오칭페이를 핍박해 노동교양소로 가도록 했다. 가오칭페이의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웨이닝잉노동교양소로 갔다. 가오칭페이는 다시 한번 정신적 충격을 당해 노동교양소로 간 뒤에 혈압이 또 높아졌고 심장병이 다시 도졌다. 정신마저 정상이 되지 못해 노동교양소에서는 수감을 거부했다. 가오칭페이는 또 집으로 되돌려 보내졌다.

이때 가오칭페이의 정신은 이미 완전히 정상적이지 못했고 기억을 상실했으며, 혈압은 280으로 올라 완전히 노동능력을 잃었다. 밥을 먹거나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면 집으로 돌아갈 줄 아는 외에, 정상적인 사람의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줄곧 임종까지 7년 동안 늘 밖에서 돌아다녔다.

2011년 초, 가오칭페이는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이 63세였다. 가오칭페이가 불법 박해를 당함은 가족에게 극도의 고통이었다.

가오칭페이는 두 번째 박해를 받은 2003년 5월말부터 사망한 2011년 초까지 적어도 5만 위안(약 9백만 원)의 경제 손실을 보았다.

나는 오늘 나의 남편 가오칭페이가 당한 박해를 폭로해냈는데, 첫째는 더욱 많은 사람에게 파룬따파의 진상과 중공사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진상을 알게 하여, 중공의 사악한 조직에서 탈퇴 하도록 해 자신을 위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도록 하고, 둘째는 그들 박해자들의 양심을 불러일으켜 악행을 멈추고 공로로써 잘못을 씻어 버려 자신의 미래를 구할 수 있기를 바람이다. 희망하건대 이들 박해자들이, 하늘은 절대 대법제자를 박해한 사람을 용서해주지 않음을 알기 바란다. 당신들이 한 일체 일은 모두 그 곳에 기록되어있다! 하늘이 중공을 소멸함이 바로 눈앞에 다가왔다고 한 이것은, 대법제자가 반복적으로 당신들에게 경고한 말로 천만번 지당한 사실이다. 믿지 않는 사람, 여전히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의 끝장은 극히 비참한 것이다!

문장발표: 2012년 01일 05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5/25149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