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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룽장 지시시 팡시차이, 억울한 옥살이 9년 째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보도) 헤이룽장성(黑龍江省) 지시시(鷄西市) 파룬궁수련생 팡시차이(房喜才, 39)는 이미 9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 박해를 당했다. 그 사이 부모는 비분해 세상을 떠났고, 아내는 박해를 감당하기 힘들어 그와 이혼했다. 팡시차이는 파룬궁 수련을 견지하고 민중에게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2002년에 중공(중국공산당) 사악한 당에게 15년의 불법 판결을 받아 지금까지 무단장(牡丹江)감옥에서 박해를 당하고 있다.

팡시차이는 요리사이며, 지시시 헝산구(恒山區)거리에 거주했다. 과거에 성격이 무척 급해 늘 아내와 다투던 그는 운 좋게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했다. 그 후로 심신이 완전히 환골탈태하여 가정도 점점 화목해졌다.

그러나 1999년 중공 사악한 당은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그는 믿음이 확고하다는 이유로 잔혹한 박해, 혹독한 구타, 총격을 당했다.

다음은 팡시차이가 박해당한 사실이다.

1999년 11월, 팡시차이는 파룬궁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러 베이징에 갔다가 지시시 헝산구 류마오쾅(柳毛礦)파출소 경찰 쭤수칭(左樹淸)에게 납치당해 헝산구치소에 40여 일간 불법 감금당했다.

한 번은 파룬궁수련생 궁하이롄(龔海蓮)과 함께 헝산구 스컹(十坑) 마을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리구이전(李桂珍)이라는 사람에게 밀고를 당했다. 경찰 류마오쾅은 불법으로 팡시차이를 추격해 납치하는 과정에 뜻밖에 그에게 총격을 가했는데, 다행히 빗나갔다.

어느 한 번은 지시(鷄西)경찰이 그를 납치해 매달아놓고 옷을 깡그리 벗겨서 쇠사슬로 밤새 구타했다. 팡시차이가 기절하자 냉수를 끼얹어서 깨웠다. 구타로 온몸이 상처투성이에 피범벅이 되었는데, 손가락에도 상처가 있었다. 그 후, 팡시차이는 악독한 경찰이 주의하지 않는 기회를 틈타 소굴을 벗어났다. 열 손가락을 포함한 온몸의 상처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나았다.

팡시차이가 핍박 때문에 유랑생활을 할 때, 악독한 경찰은 그의 행방을 몰라 여러 차례 그의 아버지를 교란하고 공갈 협박을 감행했다. 심지어는 어머니의 생일날에도 괴롭혔다. 한 번은 분한 나머지 화를 내며 팡시차이의 둘째 형을 인질로 붙잡아 가려고 했다. 결국 어머니는 병이 나서 쓰러졌고 과묵한 아버지는 늘 한숨만 내쉬었다. 90세인 할아버지는 “중공이 이렇게 좋은 사람을 박해하다니. 이 정부는 정말 끝장날 것이오.”라며 비분했다.

2002년 1월, 팡시차이는 다른 파룬궁수련생과 함께 파룬궁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다시 한 번 지시(鷄西)경찰에게 납치돼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다. 2002년 여름, 지시(鷄西) 사악한 당 법원에서 불법으로 15년의 중형을 판결 받아 무단장감옥에 불법 감금당했다.

2004년 8월, 병을 앓던 아버지는 아들을 면회하러 감옥에 갔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아들을 바라 본 아버지는 그리움, 비통, 걱정, 분노의 심정으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짧은 만남은 이렇게 울음으로 끝났다. 그런데 이 이별이 뜻밖에 영원한 헤어짐이 되었다. 2005년 1월 17일, 팡시차이의 아버지가 끝없는 고통과 걱정을 품고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감옥에 있던 팡시차이는 이상하게 마음이 초조하고 정신이 산란해졌다. 불안함을 느낀 그는 집에 전화를 걸었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극심한 비통에 잠겼다.

팡시차이의 아내는 기나긴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2010년에 감옥에 가서 그와 이혼수속을 밟았다.

팡시차이는 일과 가정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박해를 당했다. 중공 사악한 당이 박해를 선동하여 집과 가족을 다 잃고 뿔뿔이 흩어지는 인간의 비극을 조성했다. 지금까지 팡시차이는 감옥에서 박해를 당하고 있다.

문장발표: 2011년 11월 28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1/28/24993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