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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8년 판결 당한 류수전, 허베이성 여자감옥서 박해당해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허베이성보도) 허베이성(河北省) 창저우시(滄州市) 옌산현(鹽山縣) 류훙먀오촌(劉紅廟村)의 류수전(劉淑貞)은 파룬궁수련을 견지해 거듭 중공(중국공산당)에게 박해를 당했다. 2004년 11월에 또 불법 체포를 당해 8년의 억울한 재판을 선고받아, 지금 여전히 허베이성 여자감옥[스자좡 루촨(石家莊鹿泉)]에서 잔혹한 박해를 당하고 있다.

류수전은 허베이성 창저우시 옌산현 류훙먀오촌 사람으로 결혼을 하지 않았다. 2004년 11월에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을 한 그녀는 창저우시 옌산현에 납치당한 뒤 창저우시 ‘전향반’으로 보내졌다. 그 후 옌산현으로 돌아와 억울한 8년형을 선고받은 뒤 허베이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당했다.

2009년 6감금구역에 새로 임명된 교도원 우훙샤(吳紅霞)는 사람 수를 보고하지 않았다는 구실로 류수전을 39일 동안 홑옷만 입혀 철문에 채워 밤새 찬바람을 맞혔는데 발이 동상을 입을 때까지 맞게 했다. 연공을 해서 나아졌던 건선이 다시 도졌다. 게다가 시종 사람을 파견해 류수전을 감시하게 했고, 여러 차례 그녀와 같은 방에 있는 사람을 교사해 그녀를 구타했다.

1. 창저우시 멍춘현 공안국에서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하다

2002년 6월 14일, 류수전은 멍춘(孟村)에서 불법 체포당해 그날 밤 악독한 경찰에 의해 옌산현 공안국으로 끌려 돌아왔다. 창저우시 공안국 국가보안지대 지대장 자(賈)모, 지대장 왕이신(王義新), 폭동방지대대 대장 류웨이둥(劉爲東)과 옌산현 대장 왕원핑(王文平) 등 5명은 류수전에 대해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했다.

그들은 그녀 입에서 자료 출처와 유랑생활을 하는 수련생의 행방을 얻어내기 위해 그녀를 둘러싸고 무차별폭력을 가했다. 고무몽둥이를 들고 끊임없이 팔, 어깨, 둔부, 허벅지와 아랫다리를 후려쳤다. 박해에 참여한 옌산의 악독한 경찰 왕원핑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고 휘둘렀다가 땅위에 내동댕이쳐 소파와 바닥에 부딪치게 했으며 쭈그려 앉히기도 시켰다. 머리카락이 한줌씩 빠졌다. 당시 그녀는 학대를 당해 허탈 현상이 나타나 기운이 전혀 없었고, 지각을 잃어 대소변도 3번이나 가리지 못했다. 이날 밤부터 그들은 번갈아가며 나서서 밤낮 잠을 재우지 않았다. 그들은 뒷짐결박을 채우고 전기봉으로 전기충격을 가했으며, 또 만년필로 옆구리를 쑤셨고 담배꽁초로 손목과 발가락(발가락은 지져져 물집이 생겼고, 손목은 24곳이나 화상을 입었음)을 지졌다. 그리고 또 드라이버 뒷면으로 얼굴 양측의 관골을 두드렸으며, 뺨을 때리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이들 악독한 경찰들은 한편으로는 구타하면서 한편으로는 극히 저질스러운 말로 욕했으며 고분고분하게 알려주지 않으면 옷을 깡그리 벗겨 남자 감방에 던져버리겠다는 등등으로 소란을 피웠다……. 류수전은 그들에게 질문했다. “당신들의 집에는 누나나 여동생이 없나요? 당신들은 그녀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하세요?”

이 기간에 옌산현 공안국은 또 여성 수련생 리(李)씨를 불법 체포해 류수전과 가까운 사무실에 가둬 왕원핑 등 사람들이 책임지고 심리했다. 듣기조차 민망한 욕설과 구타 소리가 수시로 들렸다. 옌산공안국 사무동은 소름끼치고 공포적인 곳으로 파룬궁수련생을 학대하는 고문실이 됐다.

그들은 수단을 바꿔가면서 류수전을 학대했다. 한번은 그들은 함석판통을 그녀 머리 위에 엎어놓고, 수건으로 함석판통 입구를 꽉 막고 몽둥이로 통 밑을 두드렸다. 머리는 통안에 놓여있어 호흡이 곤란해졌고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했는데 이렇게 20분 넘게 괴롭혔다. 사전에 그들은 이런 형벌로 사람을 다스리면 몇 분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뽐냈다.

그들은 이쑤시개로 그녀와 다른 한 여성 파룬궁수련생 리위샤(李玉霞)의 열 손톱 안에 박았는데, 피가 아주 멀리까지 뿜어나갔다. 그래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자 곧 두 사람을 상처투성이가 될 정도로 구타해 온몸을 시퍼렇게 멍들게 만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 한 가족은 놀라서 정신병이 도졌다.

한번은 그들은 대나무 이쑤시개를 손가락 끝에 박고도 화가 풀리지 않아 한 경찰을 보내서 압핀을 가져다가 얼굴 위에 박으려 했다. 이 경찰은 한 바퀴 돌고 돌아와서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이 벌어진 후 그는 류수전에게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도 그들이 그녀를 괴롭히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다고 알려주었다. 이렇게 그들은 잠을 재우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그녀를 꼬박 6일 동안 괴롭혔다. 류수전은 단식으로 항의를 표시했다.

酷刑演示:将竹签钉入手指
고문 시연: 대나무 이쑤시개를 손가락에 박기

류수전이 옌산구치소에 갇혔을 때는 이미 학대로 매우 볼품없게 됐고 온몸은 상처투성이였다. 손, 발, 팔, 어깨, 둔부, 두 다리도 부어올랐고 얼굴이 변형했으며, 걷지도 못해 대소변을 보려 해도 다른 사람이 이끌어야 했다. 감방 안의 여 죄수들은 그녀가 이런 모습이 된 것을 보고 모두 울었다. 그녀들은 ‘무슨 죄를 지었는지, 경찰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잔인한지’를 물었다. 류수전은 그녀들에게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죄를 짓지 않았어요. 파룬궁수련생은 모두 마음을 닦아 선해져 좋은 사람이 되려 하기에 죄가 없음을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함을 당하고 이유 없는 탄압을 당할 때, 수련생이 자발적으로 일어나서 진상을 알려 진리를 수호하고 정의를 외침은 더욱 죄가 없어요! 한 정부가 무엇 때문에 국민이 진실한 말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나요? 그리고 전국에 얼마나 많은 수련생들이 구타, 불법 감금을 당했으며 박해로 사망했어요? 누가 옳고 누가 그르며, 누가 착하고 누가 악함을 통찰력이 있는 사람은 보기만 하면 알 수 있어요.”

구치소에 있은 기간, 류수전은 악독한 경찰의 박해에 연속 단식으로 항의했다. 옌산 공안국은 사람을 구타한 흉수를 징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래위로 소식을 봉쇄해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하고, 가족과의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선념이 있는 감옥 경찰과 죄수마저 배후에서 박해에 참여한 악독한 경찰을 욕했다. 한 여성 죄수는 류수전에게 구치소에서 나간 뒤에 꼭 파룬궁을 수련하겠다고 표했다. 한 남성 죄수는 류수전에게 종이쪽지를 전해주었는데, “저는 영원히 진선인(眞善忍)과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좋음을 기억하겠어요!”고 씌어있었다. 그녀는 아주 감동을 받았다. 경찰도 여러 차례 시 국에 전화를 걸어 류수전의 부상 정도가 심각해 몸이 극도로 허약함을 반영한 동시에 옌산현 검찰원에 알렸다. 검찰원에서는 사람을 파견해 부상정도를 검사해서 일일이 기록했는데 아주 분개해 했다. 세상 사람들의 바른 표현은 유력하게 사악을 반격했다. 6월 28일 밤, 류수전은 갑자기 생명 위험이 있게 되어 서우푸(壽甫)병원으로 보내져 응급처치를 받았다. 그 후 경찰은 책임을 미루기 위해 류수전의 가족에게 통지해 그녀를 데려가게 했다. 악독한 경찰은 “이후에 호출하자마자 바로 와야 하고 도망치지 못하며, 도망쳤다면 반드시 붙잡아올 수 있다”고 위협했다.

2. 유랑기간 창저우 악독한 경찰이 현상금을 걸어 납치

2002년 11월, 악독한 경찰은 ‘창저우 석간신문’에 ‘구인 광고’를 실어 현상금으로 류슈전을 포함해 유랑생활을 하던 3명 파룬궁수련생을 붙잡았다.

2002년 11월 7일 ‘창저우 석간신문’의 신문 좌우 판 사이의 좁고 긴 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구인 광고’가 기재되어 있었다.

“류수전(여)은 ××세의 허베이성 옌산 ×××사람이다. 이 사람은 ×××센티미터의 키에 ××몸매이며, ××얼굴에 ××말씨다. 그녀는 2002년 6월에 집을 떠나갔는데, 그녀의 행방을 알고 있는 사람은 즉시 139×××××에 연락하라. 2002년 11월X일 전으로 단서를 제공해 그녀를 찾게 한 사람에게 사례금 5천위안(90만원)을 지급할 것을 약속한다.”

이 외에, 또 두 토막이 있는데 쉬옌후이(許衍輝)와 양웨량(楊月亮)에 관한 것으로, 내용은 비슷했다. 연락 핸드폰은 모두 139××××× 였고, 사례금은 최대 1만 위안(180만원)을 주었다.

문장발표: 2011년 11월 30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1/30/25002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