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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성 용정시 일가족 다섯 명이 참혹한 박해를 당해 한 명이 사망하다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지린보도) 지린성 용정시 파룬궁수련생 량슈링의 일가족은 12년 동안 중공(중국공산당)에 의해 8차례나 불법판결, 노동교양 처분, 약물박해를 당했고, 잔혹한 박해로 인해 한 명이 사망했다. 량슈링은 그녀 일가족에 대한 사당(邪黨)의 피비린내 나는 박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폭로했다.

우리 가족은 1994년에 운 좋게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해서 대법수련 중에서 많은 이로움을 얻었다. 남편은 수련한 지 3일 만에 간의 복수가 사라졌다. 우리 온 가족의 심신은 수련 중에서 매우 큰 이로움을 얻었다. 그러나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한 1999년 ‘7ㆍ20’ 이후에도 수련을 견지하여 우리 가족은 중공 당국의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파룬궁을 위해 올바른 말을 했다가 사당에게 납치당해

1999년 7월,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 우리는 7월 20일에 성과 시정부에 가서 파룬궁 수련자는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선량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가 그날 오후에 현지 유치장에 납치당했다.

집에 돌아온 뒤 사당의 선전 대변인이 온 천지를 뒤덮을 듯이 파룬궁을 모함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곧 사당 우두머리인 장쩌민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가 파룬궁을 믿음은 좋은 사람이 되고 건강한 몸을 얻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정권에 흥미를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의 수련의 환경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알려주었다. 악경(惡警)은 사사로이 편지를 뜯어보고 우리 가족을 전부 구치소로 납치해서 3개월 동안 가두고 설이 되어도 풀어주지 않았다.

파룬궁을 위해 올바른 말을 하기 위해 나와 남편은 2001년 12월 10일에 열차에 올랐다. 천안문 광장에 도착하자 5~6명의 경찰들은 나의 머리카락을 잡고 경찰차로 끌고 간 뒤 혹독하게 전기몽둥이로 구타했고, 이틀 뒤에 현지로 납치했다. 현지 공안국 정보과 과장 장잉펀은 악경에게 지시해 나의 입과 머리를 맹렬하게 구타해서 나는 머리가 어지러웠고 코와 입에서 피가 났다. 그들은 구타하면서 욕설을 했다. “당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쳐봐라.” 악경은 번갈아 가며 남편을 구타해 기절시켰다. 악경 김응윤은 구둣발로 남편의 손을 사납게 밟고 일어나지 못할 때까지 구타했다.

2002년, 악경 강미분의 지시로 나는 신경을 손상시키는 약물을 강제로 주입당해 왼쪽 다리가 9년이 넘도록 아팠고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게 되었다.

酷刑演示:打毒针(注射不明药物)

고문시연:독극물 주사

사위가 박해로 사망

2004년, 나의 사위 차이푸천은 진상자료를 프린트하다가 연길시 악경에게 납치되어 불법판결 10년을 받아 지린시 궁주링감옥에서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악경(惡警)은 늘 그를 감옥에 가두어, 여러 개의 전기봉으로 충격을 가했고, 생식기 등 민감한 부위에도 전기충격을 가했다. 2010년 9월 15일에 차이푸천은 박해로 사망했다.

酷刑演示:电棍电击

고문시연: 전기봉으로 충격을 가하다

2005년, 악경은 또 다시 나의 남편과 아들을 납치했다. 악경 부셴촨은 불법체포령 위에 서명하라고 핍박했다. 내가 서명하지 않자 부셴촨은 가죽주머니로 나의 얼굴을 사납게 때리고, 다리와 허리를 걷어찼다. 첫째 날 오전부터 이튿날 새벽 3시까지 구타를 해서 나는 걸을 수 없게 되었고, 허리를 곧게 펴지 못해 90도로 굽었다.

2005년 여름, 남편과 아들은 주타이노동교양소로 납치당했다. 노동교양소에서 주는 밥은 매우 열악했다. 한번은 국을 담은 통 안에서 큰 쥐 한 마리가 나왔는데도 그들은 마시라고 핍박했다.

2006년 5월, 악경은 다시 한번 우리 집을 불법수색하여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강탈해갔다. 그리고 또 다시 나를 납치해 구치소에 10개월 동안 불법 감금했다. 그 후 4년의 불법판결을 내려 헤이쭈이쯔감옥으로 납치했다. 내가 수련을 포기하지 않자 악경은 유다(猶大)와 악도를 교사해 각종 방식으로 나를 괴롭혔다. 5시부터 저녁 11시 반까지 강제로 세워두는 고문을 가했다. 20일 후 나는 통증 때문에 서 있을 수 없게 되었고, 두 발은 부어올라 신발을 신을 수 없게 되었다. 갑자기 온몸에 식은땀이 났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갑갑해져 땅위에 쓰러졌는데 악도는 여전히 “감옥에서 사망지표를 주는데, 몇 사람이 죽는 것은 별 일 아니다.”라고 큰소리쳤다.

불법으로 양로금 지급을 중지하여 경제적 박해를 가하다

2009년 10월 말, 나는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왔는데 사당 인원에게 퇴직금을 횡령 당했다. 나는 직장을 찾아갔으나, 직장에서는 ‘610’이 퇴직금 지급을 중지시켰다고 말했다. 내가 ‘610’을 찾자 ‘610’주임 리하오는 나에게 소란을 피웠다. “당신은 해고당했으므로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나는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했고 변호사는 양로금 지급 중단은 위법행위라고 말했다. 내가 이치에 근거하여 최선을 다해 변론하자 직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양로금을 지급해 주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그들은 다시 한 번 불법으로 나의 양로금 지급을 중지했고, 지금까지 경제적으로 나를 박해하고 있다.

문장발표 : 2011년 11월 19일
문장분류 : 박해진상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496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