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 통신원 허베이 보도) 2011년 10월 29일 오전, 전하는 소식에 의하면 저우샹양(周向陽)의 아내 리산산(李珊珊)이 탕산 국보대대에 신천지(新天地) 슈퍼 매장에서 붙잡혔다. 그녀는 강제로 끌려가면서 큰 소리로 주변 사람들에게 외쳤다. “우리 가족에게 변호사를 선임하게 해주세요!” 이렇게 리산산은 강베이 감옥에 갇힌 남편의 억울함을 씻으려 감옥을 고소하려던 중에 붙잡혀 다시 박해를 당하게 됐다. 현재 리산산은 펑룬(豐潤) 세뇌반에 불법으로 납치되어 감금됐다.
탕산시 국보대대 경찰은 줄곧 톈진시 강베이 감옥과 결탁하여 올해 3월 5일 저우샹양과 리산산을 붙잡은 적이 있었다. 이번에 리산산은 또 다시 붙잡혔다. 이유는 리산산이 톈진에서 강베이 감옥을 고소한 것이다. 리산산이 대중들에게서 연대 서명지지를 받자 탕산시 국보대대는 법에 따라 촌민들의 인권을 보호하지 않고 오히려 무고한 연약한 여성을 박해했다. 중공(중국공산당)의 이러한 수법에 탕산 사람들은 치를 떨고 있다.
반 년 동안 전 톈진 제3탐측 설계 엔지니어 저우샹양은 두 차례나 톈진 강베이 감옥에 납치당했다. 가족은 지속적으로 고소하고 항의했으며 반(反)박해의 힘은 갈수록 커져갔다. 우선 불법으로 노모에게 면회권을 박탈한 것에 대해 항의했다. 노모는 호소문이 적힌 옷을 입고 감옥 문 앞에 서서 강베이 감옥이 전에 저우샹양에 대하여 지묘(地錨)고문, 전기충격 등 고문으로 박해한 것을 고소했다. 나중에 아내 리산산은 친필로 ‘젊은 부부의 고난의 나날들 – 7년의 기다림, 9년의 억울한 감옥살이’라는 공개 서신을 발표했다. 공개 서신은 십여 개의 해외매체에서 잇따라 전재되었다. ‘고난의 나날들’을 읽은 사람들은 분분히 장한 고향의 아들을 구출하는 연대 서명용지에 서명했다. 9월 말에 이르자 연명숫자는 2천3백 명에 달했으며 국내외에서 비교적 큰 영향을 일으켰다.
1,500여 명의 대중들이 서명하여 저우샹양을 석방할 것을 요구하면서 법에 따라 감옥의 고문 범죄를 처리하라고 했다.
저우샹양 구출을 지지하는 더욱 많은 대중이 서명했고 현재 숫자는 2천3백여 명에 달한다.
사람들의 연대서명요청과 변호사, 가족의 엄숙한 공소의 압력에 감옥 관리국과 톈진 검찰원은 톈진 강베이 감옥 범죄혐의자 부감옥장 리궈위(李國宇), 감옥 구역장 장스린(張仕林)에 대하여 조사할 것이라 답변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법기관은 말로는 조사를 한다고 하나 변호사가 제공한 증거에 대하여서는 조사를 실시하지 않았고 조사의 성질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 또 행정업무에 관한 공개 원칙을 실행하지 않았다. 변호사가 감옥 당사자를 만나 사실을 조사하려 했으나 감옥 측은 공공연히 방해하며 직무를 더럽히는 행위를 했다. 또한 저우샹양에게 사실을 조사한 자료에 서명하도록 감옥 측에 부탁했으나 감옥 측은 전달하지 않았다. 이러한 것은 모두 법을 집행하면서 법을 범하고 있음을 스스로 노출한 것이며 범죄를 옹호한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그 후에 가족은 또 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의 질의로써 ‘입안감독서’를 제출했으나 검찰원은 여전히 조사하고 있다고 답변만 했을 뿐 정해진 기한이 없었다.
전에 리산산은 저우샹양을 위하여 고소하다 중공의 박해를 당했는데 불법으로 15개월간 감금당했다. 리산산은 석방된 후 여전히 처음 마음먹은 대로 저우샹양의 정황을 지속적으로 파악해 나갔다. 현재 리산산은 펑룬 세뇌반에 불법으로 감금되어 재차 박해에 직면해 있다.
(역자주: 박해관련 부문과 책임자 명단 세부사항은 아래 링크된 중문을 참조바랍니다)
문장발표: 2011년 10월 3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0/31/24853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