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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박해를 당한 후난 사범대학 교사 장더잉, 억울하게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후난성 보도) 후난성 사범대학 교사인 파룬궁수련생 장더잉(蔣德英,여)은 중공(중국 공산당)의 장기간의 박해 하에 결국 2010년 8월 18일 오전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이는 겨우 59세였다.

일생동안 정직하고 본분을 지켜온 장 교사로서는 자신이 차디찬 쇠감옥에 갇힐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차례 노동교양소에서의 비인간적인 경험은 책과 일생동안 씨름해 온 이 지식인으로 하여금 진실하게 중공 사당의 잔혹함을 보게 했다.

장더잉은 원래 후난 사범대학 문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1999년 7월에 중공 장쩌민집단이 헌법을 위반해 파룬궁을 박해한 이래, 단지 ‘진선인(眞善忍)’ 대법에 대한 믿음을 꿋꿋이 지켰다는 이유로 그녀는 여러 차례 불법적으로 붙잡혀 갇혔다. 2009년 4월, 의지할 곳을 잃은 지 이미 1년이 넘은 장더잉은 또 한 차례 납치를 당했으며, 아울러 다시 한 번 바이마룽(白馬壟) 노동교양소에 감금당했다. 박해로 하반신, 다리와 발에 부종이 생겼고 복부도 부어올랐다.

파룬궁을 연마해 다시 건강을 얻었던 남편이 중공 박해 중 세상을 뜨다

장더잉의 남편 양쥔량(楊軍良)은 전 후난 사범대학 공업원 부교수로, 이전에 척수공동증(脊髓空洞症)에 걸린 적이 있어 전국 각 큰 병원으로 치료하러 갔지만 모두 효과를 보지 못했다. 1997년경에 양쥔량, 장더잉 부부는 차례로 파룬따파 수련에 들어서서 심신에 이로움을 얻었다. 특별히 양쥔량은 파룬궁을 수련한지 오래지 않아 세계에서도 난치병으로 기록 된 척수공동증이 뜻밖에 기적적으로 나아졌다! 남편이 건강을 회복하자 그들 가정에는 다시 기쁨이 넘쳤다.

그러나 일가족의 행복한 시간은 그리 오래 동안 지속되지 못했다. 1999년 7월, 중공은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온 천지를 뒤덮을 듯한 파룬궁에 대한 모독선전 중에서 진상에 똑똑하지 못한 주변 사람들의 냉대와 멸시 하에, 또 늘 집으로 ‘면담’하러 찾아오는 직장과 사회구역 인원들에 직면해, 장더잉과 양쥔량은 무거운 돌에 짓눌린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파룬궁을 수련한 후 심신의 확실하고도 거대한 변화와, 파룬궁서적에 씌어있는 아주 명백한 사람으로 되는 이치에서 그들은 파룬궁은 정법이며, 사람에게 반본귀진(返本歸眞)하도록 가르치는 고덕대법임을 똑똑히 깨달았다. 그러나 긴 세월의 무거운 압력 하에 양쥔량의 심신은 심각한 손상을 입고 지병이 도져 2003년 1월에 세상을 떠났다.

남편이 떠난 후 장더잉과 딸은 서로 굳게 의지하며 살아갔다. 그러나 중공 당국에서 파룬궁을 수련하는 민중에 대한 감시와 탄압, 박해 때문에 장더잉 모녀는 편안한 생활을 보낼 수 없었다. 2005년 말에 이르러 장더잉은 자신의 믿음을 견지했고 또 민중에게 파룬궁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차례로 6차례나 중공 당국에 납치당했다.

바이마룽 노동교양소에서 잔혹한 괴로움을 당하다

2005년 12월 20일 저녁, 웨루(嶽麓)공안분국 경찰은 장더잉의 집에 뛰어들려 했는데, 그녀는 문을 열어주는 것을 거절했다. 정당한 직업에 종사하지 않는 경찰들은 장더잉 집 밖에서 지키면서 그녀를 곤경에 빠뜨렸다. 그 기간 610사무실[‘문화대혁명팀’과 흡사한 게슈타포(Gestapo)식 기구로,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를 책임짐]은 장더잉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에게 문을 열도록 핍박했으며 “이미 당신의 ‘상황’을 알고 있다. 1개월을 지키더라도 당신을 붙잡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후난 사범대학 문학원의 모 여원장은 장더잉에게 전화를 걸어, 학교 근무가 바빠서 즉시 그녀가 출근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그녀를 속여 문을 열려고 시도했다.

21일 오후 5시가 넘어서, 7~8명의 경찰은 장더잉이 문을 여는 기회를 틈타 집안에 뛰어들어 강제로 그녀 몸을 수색했으며 수갑을 채웠다. 그날 저녁 8시경, 장더잉은 창사시공안국 웨루분국으로 납치당했다. 집에는 그녀와 서로 굳게 의지하며 살아가던 딸만 남았다. 이전에 창사시에서 이미 4명의 파룬궁수련생이 12월 20일에 납치당했다.

장더잉은 웨루구 공안분국의 모함으로 1년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아 주저우(株洲) 바이마룽 여자노동교양소로 납치돼 불법 감금당했다.

중국 각지의 노동교양소와 감옥은, 줄곧 중공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고 감금하는데 사용하는 주요 장소다. 동시에 사람을 유혹하기 위해 ‘장려금’, ‘주택 분배’, ‘간부 발탁’등을 내세워 일부 경찰을 부추겨 박해에 직접 참여하게 했다. 일부 양심을 상실한 경찰도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를 높은 직위에 오르고 이익을 얻는 ‘지름길’로 삼았다. 그들은 중공의 ‘전향’목적에 도달시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수단이든 모두 사용했다.

노동교양소에 도착하자, 장더잉은 곧 이른바 ‘공견방(攻堅房)’에 떠밀려 들어갔다. ‘공견방’은 바이마룽 노동교양소에서 폭력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세상과 동떨어진 은폐된 장소다. 옆방에서 들려오는 파룬궁수련생이 구타당하는 비명소리를 듣기만 하면 경찰은 장더잉에게 “당신은 들었는가?”하고 위협하며 말했다. 그런 다음 장더잉에 대해 무차별 폭력을 가했다. 땅바닥에 원 하나를 긋고는 ‘감옥 속 감옥’이라 불렀으며, 세워두는 고문과 쭈그려 앉히기 고문을 가했고 히스테리적으로 혹독하게 구타했다. 그리고 잠을 자지 못하게 했고 세수를 하지 못하게 했으며, 또 화장실로 가지 못하게 했다. 그녀는 구타로 구토했지만 뱃속으로 다시 삼켜야 했다.

장더잉은 강제로 꿇어 앉혀져 땅위에 눌려 넘어뜨려졌다. 졸개는 한편으로 구타하면서 한편으로 소리쳤다. “나는 내 목숨으로 대가를 치르더라도 당신을 때려죽이겠다. 당신은 그래도 ‘전향서’를 안 쓰겠는가?” 장더잉은 학대로 온몸에 부종이 생겼고, 코와 입에서는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경찰은 여전히 그만 두지 않고 그녀의 속옷을 벗겨버렸다. 그리고 그녀 몸 위에 파룬궁과 사부님을 모독하는 저질스러운 말을 썼고, 수건으로 장더잉의 입을 막았다. 다섯 사람은 그녀 손을 잡고 강제로 미리 써놓은 ‘전향서’(파룬궁을 연마하지 않음을 보증하고 비난한 문자 등을 가리킴) 위에 서명하도록 핍박했다.

문명사회에서 생활한 사람은 이런 비인간적인 행위를 상상하기가 매우 어려우며, 양심의 최저선도 사람들이 이런 잔혹한 사실이 존재함을 접수하길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산집권통치의 오늘날 중공 사회에서 ‘안정은 일체를 압도한다.’, ‘조화 사회’라는 가짜 명목으로 감옥 안이나 사람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 이 한 무리 선량한 민중을 대했다. 1999년부터 지금까지 10여 년 간 이 같은 잔혹한 박해가 지속적으로 상연되고 있다.

납치, 강제적 철거,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을 하다

시련을 경험한 뒤 2006년에 장더잉은 노동교양소에서 집으로 돌아와 딸과 만났다. 2008년 4월, 장더잉은 파룬궁 진상을 알리다가 진상에 분명하지 못한 사람에게 신고당해, 노동교양소에서 집으로 돌아와 딸과 만난 지 2년도 되지 않아 또 창사 웨루구 공안분국 경찰 쩡쉐룽(曾學龍), 웨루구 ‘610’인원 리웨에(李月娥), 쑤런량(粟仁良) 등 사람들에게 납치당했다. 장더잉 집의 현금과 파룬궁서적 등 개인 물건도 모두 강탈당했다.

붙잡힌 지 9시간이 지나 장더잉은 웨루구 공안분국에서 기민하게 벗어났으며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을 했다. 경찰 쩡쉐룽과 후샹양(胡向陽) 등 사람들은 끊임없이 장더잉의 행방을 추궁했으며 다른 파룬궁수련생 집으로 가서 교란했다.

2008년 올림픽 기간에 현지 ‘610’ 등 불법 인원의 지시 하에 장더잉 집의 자질구레한 물건을 모아두던 방은 강제로 철거당했고, 집안은 온통 난잡하게 어질러졌다. 그리고 그녀의 퇴직금 전액도 강제로 공제 당했다.

다시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아 심각한 병태가 나타나다

2009년 4월,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을 한 지 이미 1년이 넘은 장더잉은 다시 납치를 당했다. 4월 27일, 장더잉은 창사시 쭤자탕(左家塘)치안유치장으로 납치돼 불법 감금당했다. 그 후 장더잉은 창사시 웨루구 공안분국의 모함으로 2년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선고받아, 같은 해 5월 11일에 주저우 바이마룽 여자노동교양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장더잉은 두 번째로 바이마룽 노동교양소에 불법 감금당한 뒤, 하반신과 다리 그리고 발에 부종이 생겼고 복부가 부어올랐다.

몸에 심각한 병 증상이 나타난 상황 하에서 장더잉은 가족의 부축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건강은 호전되지 않았으며, 결국 2010년 8월 18일 오전 10시 경에 세상을 떠났다. 장더잉은 성실하고 본분을 지키며 마음씨가 선량했다. 그녀는 원래 행복한 가정을 꾸렸는데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운동’ 중에 산산조각이 났다. 그녀의 사망은 친척과 친구들에게 끝없는 비통함과 그리움을 가져다주었다.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본래 겪지 말아야 할 시련과 고통을 너무 많이 감당했다. 중공 사악한 당의 전제적인 독재 통치는 60여 년간 중화대지를 짓밟았고, 만들어 낸 매 한차례 ‘운동’은 중화의 아들딸을 박해했으며, 장더잉과 같은 이러한 수많은 비극을 만들었다. 중공을 바싹 뒤따라 박해에 참여한 그들 불법 인원 중에, 장래에 꼭 자신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해 지은 죄행을 갚아야 함을 생각한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는가?

박해 직장과 개인 전화(구역 번호: 0731)

후난 사범대학 ‘610’전화:

리웨에(李月娥)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했음) 88871398(집), 88872300(사무실)

쑤런량(粟仁良)(간사,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한 공범자) 88838169(주택), 88872300(사무실)

창사시 웨루구 ‘610’전화:

웨이빈(魏斌)(이미 퇴직했음. 그러나 아직도 이 일을 하고 있음)

창사시 웨루공안분국 전화:

국장: 샤샤오어우(夏曉鷗)

경찰: 쩡쉐룽(曾學龍), 후샹양(胡向陽)

수사대대 대대장 : 장전(張震)

수사대대 교도원 : 천쉐옌(陳學艶)

전화 교환대: 88861900(전화 교환대에서 다른 전화번로를 문의할 수 있음)

사무실: 88861924

호중과(戶證科): 88614629

문보과(文保科): 88856786

제1치안관리대대 : 88835502

다른 전화: 88861901, 88861902, 88861903, 88861904, 88861905, 88861906, 88887898, 88855688, 88833899, 88611226, 88861931

주소: 창사시허시 신민로(長沙市河西新民路)

우편번호: 410006

웨루공안분국 제저우(桔洲)파출소: 88882638

후난사범대학 문학원 전화:

원장 사무실 : 88872570

행정사무실: 88872504

당위원회 사무실: 88872505

중문학과: 88872509

학생 사무실 : 88872571

기계실: 88872511

성인교육사무실 : 88872572

연구와 연구생 사무실 : 88644039

‘고한어 연구’ 편집부: 88872560

팩스: 88838161

주소: 창사시 웨루산 얼리반(長沙市嶽麓山二裏半)

우편번호: 410081

문장발표: 2011년 10월 19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0/19/24806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