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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인재 또 납치당하고 노모는 상심의 눈물을 흘리다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허난보도) 허난(河南) 신양시(信陽市) 파룬궁수련생 쓰더리(司德利)는 전 스허구문화관 미술부문 핵심인물로 직함은 부교수이다. 2011년 6월 7일, 신양시 국가보안대대 ‘610’(중공이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 조직임)은 쓰더리가 근무하던 문화국 직원들과 결탁해 속임수를 써서 자동차로 그를 납치했는데 지금까지 신양시 제1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해 있다. ‘610’ 악경은 이른바 ‘사건’을 이미 스허구 검찰원에 넘겼고 또 법원으로 넘겨 한층 더 박해하려고 한다.

백세가 다된 쓰더리의 노모는 한사코 눈물을 흘렸으며 정신적으로 매우 큰 고통을 입었다. 노인은 전에 대장암에 걸려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후 건강해졌다. 하지만 지난 12년 동안 아들이 여러 차례 붙잡히고 악인이 재산을 몰수한 데다 벌금형까지 부과당하는 등으로 인해 밤낮을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었다.

쓰더리는 파룬궁수련을 견지하며 진선인(眞ㆍ善ㆍ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했던 까닭에 1999년 7월 20일 사악한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610과 국가보안대대 악경으로부터 박해를 당했는데 두 차례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고 한 차례 불법 판결을 당하기도 했었다. 그 동안 악인들에 의한 비인간적인 시달림으로 심신 상에 극심한 상해를 입었다.

1999년 7월부터 2000년까지, 국가보안대대 청산(曾山), 우보(吳波), 왕쥔제(王俊傑)와 민촨(民權)파출소의 악경은 두 차례나 쓰더리의 집으로 가서 불법 가택수색을 감행했으며 대법서적, 녹음기 등 물품을 몰수해 갔다. 동시에 그를 납치해 신양시 제1구치소로 보냈는데 쓰더리는 학대를 당해 18일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다리 두 군데에서는 농혈이 심하게 흘러내려 그치지 않았지만 가족이 면회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30일 후 유치장으로 옮겨졌는데 가족이 면회할 때는 이미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2001년 3월, ‘610’과 국가보안대대에서는 죄명을 뒤집어 씌워 쓰더리에게 1년의 불법 노동교양을 선고했다. 2002년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수련을 견지했던 그는 중공에게 미혹된 수련생들을 일깨워주러 갔다가 국가보안대대 우보(吳波) 등 악도에 의해 1개월 동안 구류를 당했고 2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악경은 쓰더리를 ‘전향’하기 위해 가는 삼베끈으로 매달고 수건으로 입을 막고는 전기봉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 전기고문을 가했는데 쓰더리는 며칠 동안 생활마저 스스로 할 수 없었고 손과 팔에 어혈이 생겨나 붉게 부어오르게 되었다. 석방될 때 치아가 거의 전부 빠졌고 머리칼은 희어졌다. 노동교양 3년 동안의 쓰더리의 월급은 ‘610’의 우톈쥔(吳天君)을 우두머리로 하는 토비 같은 악경들에게 강제로 빼앗겼는데 몇 만 위안이나 되었다.

2005년 8월, 쓰더리는 스허강에서 진상을 알리고 진상자료를 배포하던 중 악인에게 신고를 당했는데 현지 파출소에서는 그를 납치한 뒤 스허구 공안분국 국가보안과로 보내 비밀리에 3년의 불법 판결을 선고했고 정저우(鄭州)감옥(신미(新密)시멘트공장)으로 보내 박해했다.

스허구 ‘610’ 악경의 쓰더리에 대한 박해는 그와 가족의 정상적인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 쓰더리의 아이는 10여 년 동안 웃음이 사라졌고, 10여 년 동안의 학생 생활은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경제적이든지 아니면 교육이거나 생활에서든지를 막론하고 부친의 사랑과 도움을 전부 다 잃었다. 아내는 명예퇴직금 몇 백 위안으로 간신히 어렵게 일가족의 생활을 유지했다.

허난 신양시 스허구검찰원 과장 쉬친(許琴) 13837607892

스허구검찰원 업무담당자 쩡쭝화(程宗華) 13939703538

신양시검찰원 과장 마진쿠이(馬金魁) 13183361899

문장발표: 2011년 10월 12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0/12/2477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