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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춘샹, 랴오닝 여자감옥에서 박해로 사망(사진)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보도) 랴오닝성(遼寧省) 단둥시(丹東市) 파룬궁수련생 왕춘샹(王春香, 여, 55)은 2006년에 중공(중국 공산당)에게 8년의 불법 판결을 받고 랴오닝성감옥 9감구역 1분대에 감금당했다. 그리고 2011년 9월 25일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王春香

왕춘샹(王春香)

왕춘샹은 단둥 공로공정처의 퇴직 노동자로, 단둥시 전싱구(振興區)에 거주했다. 그녀는 1996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했고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해 좋은 사람이 되었다. 직장에서는 좋은 직원, 가정에서는 좋은 아내, 어머니, 며느리로서 모두 그녀를 좋은 사람이라고 호평했다.

1999년 7월 20일, 중공 사악한 당이 전면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면서 많은 파룬궁수련생이 경찰에게 불법 체포를 당했다. 왕춘샹은 사람들이 중공의 거짓말에 속지 않도록 다른 파룬궁수련생처럼 평화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파룬궁 진상을 명백하게 알렸다. 2006년 10월 31일, 그녀는 단둥 공안국1처로 납치되어 단둥 전싱구(振興區) 법원에서 8년의 불법 판결을 받고 2007년에 선양(瀋陽) 랴오닝성 여자감옥 9감구역 1분대에 수감되어 박해받았다.

감옥 측이 가족에게 사망 원인 감춰

왕춘샹의 가족은 2011년 9월 25일 12시가 넘어서 교도관 우(吳) 과장에게서 온 전화를 받았는데, 왕춘샹이 심장병이 도져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있다고 했다. 30분 후, 우 씨가 다시 전화하여 왕춘샹이 결국 사망하였다고 알려주었으며, 감옥에서 기차역으로 차를 보내 가족을 마중하겠다고 하였다.

26일 오전, 왕춘샹의 남편을 비롯한 가족 일행이 차를 타고 선양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우 씨가 또 전화를 걸어 선양시 정형외과병원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우 씨의 집이 이곳에 있음). 그 후, 차량번호가 AB398(7)인 차 한 대가 일행을 선양 스자(適家)호텔로 데려가 방 두 개를 잡아 주었다.

감구역장 우 씨는 “어제는 일요일이라 감옥 직원들이 쉬었다. 우리는 하루에 밥을 두 끼 주는데 배식할 때 왕춘샹이 자신의 상태가 안 좋다고 했다. 불편하면 좀 누워있으라고 다른 사람이 권하였는데,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입에 경련을 일으키며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즉시 그녀를 감옥 안의 병원(감구역 안의 병원을 가리킴)으로 보내 응급처치를 했으나 상태가 위험하여 바로 감옥 분국총병원으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가족은 “감옥에서 감구역병원으로 옮기고, 또 감구역병원에서 감옥 분국총병원으로 옮기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러나 당신은 나한테 처음 전화를 건 뒤에 30분이 지나 두 번째 전화를 걸었다. 겨우 30분 만에 당신이 각종 수속을 다 밟았단 말인가?”라며 따지자 우 과장은 “특수한 일은 특수하게 처리한다.”고 했다.

가족이 병원 검사 증빙서가 있느냐고 묻자 우 과장이 있다고 해 가족이 증빙서를 달라고 했으나 그는 주지 못했다. 가족은 또 왕춘샹의 옷과 우편물을 달라고 했으나 우 과장은 없다고 했다. 가족이 끝까지 요구하였으나 그는 사망증명서 한 장만 주었다.

왕춘샹의 가족은 장례식장에서 수척해진 그녀의 시신을 보았는데, 시신에는 외상 흔적이 없었다. 오후에 선양에 도착해 교도관을 만난 지 얼마 안 된 가족에게 교도관은 시신을 화장하겠다는 서명을 하라고 했다. 가족이 거부했으나 왕춘샹의 언니가 집에 있는 80여 세의 부모를 보살필 사람이 없다며 슬피 울자 어쩔 수 없이 저녁 8시가 지나 서명하고 시신을 화장했다. 이튿날 가족은 그녀의 유골함을 가지고 돌아왔다.

감옥에서 당한 박해

2007년 겨울, 랴오닝성 여자감옥 흉악한 교도관의 지시를 받은 흉악한 죄수 왕슈란(王秀蘭)과 허이제(何義傑)가 진선인(眞善忍)에 대한 믿음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판자와 신발로 왕춘샹의 머리를 억세게 후려치고 발로 하반신을 마구 걷어찼다. 또한 사람이 없는 차가운 창고에 가두고 혹독한 구타와 고문을 가해 당뇨병과 고혈압이 도져 줄곧 건강을 회복할 수 없었다.

한 번은 왕춘샹의 가족이 면회를 갔는데, 그녀는 공사 현장에서 물을 마시는 것마저 왕슈란(王秀蘭)과 허이제(何義傑)가 제지했다고 했다. 이유인 즉, 물을 마시려면 화장실에 가야 하는데, 두 사람이 그녀를 감시하려고 따라 붙으면 일하는 시간을 지체하여 자신들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가족에게 이 일을 이야기 하자 교도관은 말하지 못하게 했다. 왜 말하지 못하게 하느냐고 가족이 항의하자 경찰은 어쩔 수 없이 다 말하도록 놔두었다. 한 번은 그녀의 언니가 면회하러 갔다가 눈언저리에 멍이 든 것을 보고 곧바로 교도관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묻자 그는 부딪혀서 그렇다고 거짓말했다.

왕춘샹은 매일 강제로 공사 현장에 가도록 핍박받았다. 토․일요일과 상부에서 조사하러 오는 날은 8시간을 일하였고, 나머지 날은 매일 12시간씩 일했다. 이렇게 그녀는 죄수와 함께 매일 8시간 이상 일해야 했다.

불법 체포, 불법 판결

2006년 10월 31일, 왕춘샹은 집으로 올라가다가 자신을 미행한 단둥시 공안국1처의 경찰 차오위자(曹禺家) 등에게 납치되었으며, 불법으로 가택을 수색당해 컴퓨터, 프린터, 복사용지, 대법서적, 각종 진상자료 등을 강탈당했다.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그들이 강탈한 물품은 130모델 차량의 절반가량 되었다. 왕춘샹은 납치되어 아래층으로 끌려 내려갈 때 집 열쇠를 아래층에 있는 이웃에게 주었다. 이웃의 말에 따르면, 그 후에도 경찰이 열쇠를 가져가 두 번째로 가택수색을 하여 현금을 강탈해갔다. 훗날 가족이 왕춘샹과 함께 확인해본바 그때 집에는 대략 2천 위안이 있었다.

왕춘샹이 납치되어 단둥구치소에 감금된 뒤 가족이 면회하러 갔을 때, 그녀는 교도관이 구두를 신은 채 허리를 걷어찼는데 그때까지도 아프다고 했으며, 교도관 왕징(王晶)은 그녀가 고집이 세다고 뺨을 두 대 때리고는 수갑으로 하룻밤을 채워놓았다고 가족에게 말했다. 이튿날 그녀가 감옥으로 이송되었을 때, 검진 결과 심장병, 고혈압, 뇌동맥경화 등이 나타나 감옥에서는 수감을 거부했다고 했다.

구치소 교도관은 두 번째로 왕춘샹을 선양 랴오닝성 여자감옥으로 보내면서 그녀에게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게 했고 가족에게도 통지하지 않았다. 그날 오후에 그녀의 병력서를 가져오라는 감옥 측의 전화를 받은 가족은 서너 차례나 단둥구치소에 가서 교도관 왕징을 찾아 병력서를 달라고 했으나 다들 책임을 떠넘겨 병력서를 받지 못했다. 결국은 일이 흐지부지되어 아직까지도 병력서를 감옥으로 보내지 못했다.

그 후, 가족을 만난 왕춘샹은 구치소의 교도관 왕징에게 속아 선양감옥으로 갔다고 알려주었다. 가족은 2010년에 이미 그녀가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받게 하는 수속을 밟았다. 당시 병원 검사 결과 심장병, 고혈압(혈압은 240수은주밀리미터를 초과했음), 뇌동맥경화, 신장기능쇠약 등이 나타났는데, 관례대로라면 질병이 3가지 이상 있다는 진단이 내려지면 감옥에서는 석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파룬궁을 비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옥에서는 인명을 초개같이 여기면서 박해로 사망할 때까지 석방하지 않았다.

문장발표 : 2011년 10월 10일
문장분류 : 박해진상
영문위치 : http://www.clearwisdom.net/html/articles/2011/10/15/128790.html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0/10/2476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