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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닝 판진감옥에서 박해받은 장치(張歧), 또 다시 생명위험에 처하다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랴오닝보도) 2008년 6월, 판진감옥에 납치당한 장치(張歧)는 판진감옥 5감구역의 왕하이쥔(王海軍) 등 악경에게 오랫동안 박해를 당해 수차례나 생명이 위독해졌다. 그는 2011년 4월부터 지금까지 단식으로 불법감금과 고문박해에 항의하여 다시 생명이 위독해졌다.

2008년 2월, 장치는 진저우공안국으로 납치당했다. 하루가 지난후, 자오양시 국가보안대대에 의해 자오양현 구치소로 납치당했고, 12일 후에 선양 짜오화감옥으로 옮겨졌다. 2개월 후에 또 자오양시 구치소로 옮겨졌다가, 며칠 후 불법판결을 선고받았다.

酷刑演示:吊铐
고문시연:매달기 고문

판진감옥 5감구역으로 옮겨진 뒤 장치는 과중한 노역노동과 전향을 강요당했고, 자신의 믿음을 모욕하는 3서를 쓰라는 강요를 받았다. 장치가 이를 거부하자 감구역장 왕하이쥔은 대장 우모와 죄수에게 지시해 장치에게 장시간 매달기 고문을 가했고, 여러 차례 장치 등 파룬궁수련생에게 혹독한 구타와 전기충격을 가해 결국 후루다오 대법제자 황리중(黄立忠)을 박해로 사망케 했다. 그는 장치의 온몸에 부종이 생긴 후에도 여전히 장시간 동안 매달기 고문을 감행했다. 감옥에 면회온 장치의 가족은 그의 머리가 커다랗게 부어오른 것을 보았다.

장기간 고문학대를 당한 장치는 몸이 극도로 허약해졌다. 2010년 9월 20일, 장치는 선양 감옥성 총병원으로 옮겨졌다. 2011년 5월 1일, 장치는 또 판진감옥으로 옮겨져 연이어 박해를 당했다.

6월 중순, 장치의 가족은 장치를 보러 감옥으로 오라는 판진감옥 측의 재촉 전화를 받고 감옥에갔지만 경찰은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오전 11시에 이르러서야 몸이 극도로 허약해진 장치가 수갑과 족쇄가 채워진 채 두 사람에게 이끌려 면회실로 왔다. 가족이 감옥 측에 형구를 벗겨달라고 요구하자 교도과 과장 친페이는 난폭하게 말했다. “벗길 수 없다. 그가 죽는다 해도 우리와는 관계가 없다!”

가족이 사무동에 가서 감옥장 쑹완중(宋萬忠)을 찾자 쑹씨는 만나주지 않았고, 행정처장 왕하이쥔(전 5대대 대대장으로 장치를 박해하고 황리중 등을 살해한 흉수임)은 경비를 시켜 가족을 가로막았다. 가족은 형구를 벗겨달라고 요구했으나 왕씨는 허락하지 않았다. 장치의 모친은 왕씨에게 꿇어앉아 말했다. “제 아들은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위어 걷지도, 서지도 못해요. 그를 풀어주세요.” 왕씨는 흉악하게 말했다. “당신은 당신의 아들을 누구로 보는가? 궁궐의 왕자인가? 그는 죽어도 죽은 것으로 치지 않는다. 그가 죽는다 해도 우리와는 조금의 관계도 없다. 감옥에는 규정이 있다!”

오후에 왕하이쥔은 가족을 찾아 장치에게 밥을 먹이게 했다. 가족이 밥을 먹일 때 왕하이쥔은 감옥경찰을 거느리고 책임을 회피하려고 녹화를 했다.

지금 장치는 여전히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하고 있다.

문장발표: 2011년 10월 11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0/11/24775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