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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닝성 랴오중현 천궈타오가 억울하게 세상을 뜨다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보도) 랴오닝성(遼寧省) 랴오중현(遼中縣) 러쳰리(樂千裏) 자동차수리센터의 직원 천궈타오(48세)는 중공(중국 공산당) 악경(흉악한 경찰)의 박해를 받고 2011년 9월 21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陈国涛
천궈타오

천궈타오는 2011년 4월 26일에 랴오중현 국가보안대대 대대장 리웨이(李偉), ‘610’(중공이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 조직임)두목 펑둥창(馮東昌)이 인솔한 일행에 의해, 직장 책임자의 협조로 납치돼 랴오중현 구치소에 5개월 가깝게 불법 감금당했다.불법 감금당한 기간, ‘610’두목 펑둥창은 천궈타오를 핍박해 ‘회개서’, ‘전향서’, ‘보증서’에 서명하게 했다. 천궈타오는 이런 정신적 학대를 감당할 수 없어서 마음을 어기고 서명했다. 그 후 2011년 8월 10일에 석방돼 집으로 돌아왔다. 8월 12일 이후에 또 선양시(瀋陽市) 장스(張士)세뇌반에 갇혔다. 악인은 강제로 그에게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모독하는 방송을 듣게 했으며, 가족에게 2만 4천 위안을 갈취한 뒤에 풀어주었다. 동시에 그가 인테넷에 접속해 그가 박해당한 사실과 경험을 폭로하지 못하게 했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 그의 가족을 편하게 지내지 못하게 하겠다고 위협했다.

천궈타오는 이유 없는 이번 박해로 심신이 극심한 압력을 감당하지 못해 2011년 9월 21일 점심시간에 갑자기 뇌출혈이 도졌다. 병원에서 두 시간 동안 응급처치를 했지만 불행하게 세상을 떠났다.

천궈타오(1963.7.19.출생)는 1998년에 심각한 류머티스를 앓아 목을 좌우로 돌려 움직일 수 없었고, 두 다리는 한 쪽이 굵고 한 쪽이 약했으며, 발가락은 구부려져 변형되었다. 그리고 허리를 곧게 펴지 못했고 팔도 들지 못하게 되어 스스로 옷을 입을 수 없었다. 또 심장병과 눈은 공막염에 걸렸으며, 배는 안으로 움푹 패여 들어가 매우 굳어져 배가 아파 밥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탕약으로 겨우 몸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집안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의 아내가 낮에는 출근하고, 저녁에 돌아와 늦어도 또 밭에 나가서 풀을 뽑아야 했다. 그는 가족이 그로 인해 고통 받는 것을 피하려고 몇 차례나 자살하려 했다.

1996년, 그는 운 좋게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했다. 수련한 뒤, 그는 진․선․인(眞․善․忍)의 법리로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해 온몸의 질병은 모두 나아졌다. 그는 직장에서 평이 특별히 좋은, 모두가 인정하는 좋은 사람이다. 그의 생질녀도, 그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2011년 4월 25일, 랴오중현 공안국 국가보안대대 리웨이, ‘610’두목 펑둥창은 일행을 인솔해 천궈타오의 직장으로 갔는데, 마침 천궈타오가 출근하지 않았다. 이튿날, 직장 책임자의 협조로, 랴오중현 국가보안대대 대대장 리웨이, ‘610’두목 펑둥창은 일행을 거느리고 천궈타오의 집으로 가서 천궈타오를 납치한 동시에 가택 수색을 감행했다. 집은 이 무리들의 수색으로 아수라장으로 되었다. 천궈타오의 노부친은 중병을 앓고 있어서 가족은 그의 아들이 좋은 사람이 되려다 납치당한 소식을 감히 알려주지 못했다.

천궈타오가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한 기간 동안, 하루 세끼 매 끼니마다 작은 옥수수떡 하나를 주었고, 또 배춧국 안에는 벌레가 떠있고, 국에는 풀과 흙이 있었다. 저녁에 잠을 잘 때 어깨를 세워서 한 사람씩 붙어 잤는데, 몸을 뒤척일 공간이 없었다. 게다가 매일 사당의 노래를 틀어놓아 수련생의 의지를 무너뜨렸다. 천궈타오는 그의 정신이 즉시 무너질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가족들을 너무 연루시켰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가 집에 있을 때 매일 외지에서 출근하고 있는 딸과 전화 교류했다. 딸은 아직 가정을 이루지 않아 이 시달림을 받아내지 못할 것이고, 아내는 또 안정된 수입이 없으며, 연로하신 부모님도 무척 조급하게 그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몸은 매우 수척해졌는데, 또 내심에서 풀 수 없는 압력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는 파룬따파를 수련한 것 때문에 자신의 운명을 개변했고, 그로 하여금 인생의 참뜻을 깨우치게 하여 생활에 대해 신심과 희망으로 충만되게 했음을 깊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도리어 핍박으로 마음을 어기고사부와 대법을 배반했기에 내심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송구스러워 성명을 발표하고 다시 새롭게 수련하려 했지만, 또 리웨이 일행에게 재차 교란당할까 봐 두려웠다. 또 가족은 그가 돌아온 뒤에 출근하지 말고 마음을 조절하라고 권고 했다. 그러나 직장에서 그를 한참 필요로 하고 있고, 또 직장 책임자에게 차마 번거로움을 주고 싶지 않아 출근했다.

바로 이렇게 개인의 득실을 따지지 않고, 각 방면에서 다른 사람을 고려해 준 좋은 사람은 오히려 중공의 마수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에게 외롭고 처량하며 의지할 데 없는 두 모녀를 남기고, 온몸의 상처와 고통을 감수한 채 그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떠났다.

그의 딸은 그의 영전 앞에서 흐느껴 울면서, 그녀는 다시는 아버지를 보지 못하며, 아버지가 보고 싶다며 계속 울부짖었다. 그녀가 가슴에 사무치도록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도, 정말 그녀를 위안할 만한 어떠한 말도 찾지 못했다.

천궈타오를 박해함에 참여한 인원:

랴오중현 국가보안대대 대대장:

리웨이(리웨이(李偉)):직장 전화87820003, 핸드폰13604909199, 집 전화87801119

악경 리훙웨이(李宏偉) :직장 전화27881219, 핸드폰13609839038, 집 전화87806399

랴오중현610두목 펑둥창(馮東昌):핸드폰13804978811

문장발표: 2011년 09월 27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9/27/2472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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