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민간예술가 여전히 허베이 지둥감옥에서 박해 당해(사진)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허베이보도) 전 허베이성(河北省) 라이수이현(淶水縣) 린칭쓰(林淸寺)중학교 우수교사이자 민간예술가인 왕더쳰(王德謙)은 사람됨이 정직하고 선량하며, 음악과 미술에 정통했다. 왕더쳰은 파룬궁수련을 견지해 2009년 중공(중국 공산당)에 의해 4년의 불법 판결을 선고받아, 지금까지 여전히 허베이(河北) 탕산(唐山) 지둥(冀東)감옥에서 박해를 당하고 있다. 장기간 동안의 불법 감금학대로 그의 몸은 매우 허약해졌는데 가족은 크게 걱정하고 있다.

왕더쳰은 2008년 3월 12일에 허베이성(河北省) 이현(易縣) 국가보안대대(國保大隊)에게 무고한 납치를 당해, 이현구치소에 1년 7개월 동안 불법 감금당한 뒤 4년 불법 판결을 선고받았다. 2009년 10월 18일에 불법적으로 허베이 탕산 지둥감옥으로 이송됐다. 그는 ‘진선인(眞ㆍ善ㆍ忍)’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옥 경찰의 엄혹한 박해를 당해, 어떠한 사람과 접촉할 수 없었고 또 가족과 면회할 수도 없었다. 이런 폐쇄식 관리제도는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심각한 정신적 학대인데, 그것은 사상이 정상적인 한 사람을 정신이 붕괴되게끔 했는데, 육체적 괴로움에 못지않다.

2011년 5월 18일, 왕더쳰의 가족은 아득히 멀리 있는 고향에서 면회하러 감옥으로 와서, 그의 몸이 매우 허약하고 걷는 것도 다른 사람에 의거해 부축임을 받아야 함을 보았다. 그의 가족과 면회할 때, 감옥의 중대장은 늘 왕더쳰의 신변에서 감시했다.

우수교사이자 민간예술가

왕더쳰(남,60)는 원래 라이수이현 린칭쓰 중학교 우수교사로 허베이성 민간예술가다. 그는 사람됨이 정직하고 선량했으며, 미술과 음악방면에서 모두 조예가 있었다. 그의 조소품은 세밀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워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그의 쌍구 서법은 현지에서 비할데 없이 훌륭하다. 늘 현지 주민을 위해 무료로 창문을 장식해주어 현지 사람들의 깊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관악에 정통했을 뿐만 아니라 또 현악에도 익숙해 스스로 많은 전통 관현악기를 만들어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뒤, 그는 근무에 대해 더욱 근면하고 성실하게 업무에 임했다. 학교에서 교편은 잡은 기간에 그는 글을 가르침에 열심히 책임졌고 열심히 일하면서도 불평하지 않았으며, 혼자 여러 개 학과를 겸해서 음악, 체육, 미술을 전부 그 혼자서 맡았다. 그는 학생을 대함이 화애롭고 친철해서 마치 자녀를 아끼고 사랑하듯 해서 학교 책임자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들의 호평을 깊이 받았다. 그는 예술을 열애했고 또 예술에 헌신했으며 저렴한 가격으로 관악양성반을 조직해서 음악 애호가를 도와 악기 연주와 감상 수준을 제고했다.

왕더쳰의 조각 작품: ‘여덟 신선’과 ‘서유기’

4차례 납치박해로 노동교양소에서 고문학대를 당하다

1999년 중공 사악한 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부터, 매번 명절과 휴일이거나 이른바 ‘민감일’이면, 현지 향정부, 파출소에서는 모두 왕더쳰의 집으로 가서 교란했다. 2001년, 왕더쳰은 학교 교장 류톄청(劉鐵成)에 의해 강제로 수업을 중단 당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매일 출근을 견지했다. 학교에서는 매달 그의 월급을 가로채기 시작했는데 단지 약간의 생활비만 남겼다. 그 후 왕더쳰은 또 현지 향정부 쉬환위(許焕玉) 등 사람에 의해 당교(공산당 간부학교)세뇌반으로 속임을 당해 가서 10여 일 동안 박해를 당했고, 2천3백 위안의 벌금을 갈취당했는데 가족이 초대해 밥을 먹은 등 비용을 추가하면 대략 3천 위안이 된다.

2002년 8월 왕더촨은 라이수이현(淶水縣) 룽먼향(龍門鄕)파출소 악경이 향정부의 중공 사악한 당 관리와 결탁한데 의해 가택 수색, 납치 및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2004년 6월에 박해로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게 되어서야 석방됐다. 그러나 이전에 왕더쳰의 몸은 매우 건강했다. 특히 파룬궁수련을 한 뒤에 질병 없이 온몸이 가뿐했고 걸음걸이도 나는듯 했다. 그러나 이 2년 동안 룽먼향파출소 악경은 그에 대해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했다. 수갑을 살속까지 파고들어가게 했으며, 고무몽둥이로 혹독하게 왕씨의 전신을 후려쳤는데 특히는 등을 쳐서 허리부위는 구타로 손상을 입었다.

酷刑演示:毒打
고문 시연: 혹독한 구타

소장 런멍톈(任孟田)은 왕씨 가족에게 현금 3천 위안을 갈취한 뒤에 여전히 왕씨를 라이수이현 구치소로 보냈다. 구치소에서 왕더쳰은 강제로 하루에 10여 시간 동안 노역 노동을 해서 손은 닳아서 부어오르고 터졌다. 매일 두 끼만 먹였는데, 저질 옥수수떡 안에다 쥐똥을 섞어 넣었으며, 시꺼먼 채소국 안에는 모래가 뒤섞여 있었다. 구치소에서 3개월 동안 감금당한 뒤 왕더쳰은 바오딩(保定) 바리좡(八裏莊)노동교양소로 옮겨져 독방에 7일 동안 갇혔고, 몸은 ‘대’자형으로 침대 깔판 위에 꼼짝도 하지 못하게 묶여진 적이 있는데 그로 하여금 허리부위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프게 했다. 두 다리 근육은 위축돼 걷기도 어려웠다. 특히는 2004년 6월 10일에 석방되기 전, 그는 감옥 경찰 류리제(劉立傑)에게 광적인 전기충격을 당했다. 비명소리는 4층에서 온 운동장과 노동교양소 상공에 울려퍼졌으며 류리제는 “전향을 할거냐, 안 할거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노동교양소에서 나올 때 사람에게 업혀 차 위에 올랐다.

酷刑演示:呈“大”字形绑在床板上
고문시연: ‘大(대)’자형으로 침대 깔판 위에 묶어놓다

2007년 7월 24일, 왕더쳰은 다시 한 번 룽먼향 파출소 부소장 장타오(張濤)와 향정부 인민대표대회 주석 장아이쥔(張愛軍) 등 사람에 의해 불법 가택수색을 당했다. 그는 핍박에 못이겨 1개월 반 동안 유랑생활을 한 뒤 납치당해, 다시 한 번 라이수이현 구치소에 갇혔다. 왕더쳰은 단식으로 불법 감금을 항의했고, 박해로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게 되어 48일 이후에 석방됐다. 그러나 룽먼향파출소 소장 양푸싱(揚福星)은 왕더쳰 가족에게 1천 5백 위안을 갈취했다.

2008년 3월 12일 오후, 허베이성 이현 국가보안대대의 톈궈쥔(田國軍)은 한 무리 악경을 거느리고 세 번째로 왕더쳰을 납치했고 방안을 아수라장으로 뒤졌다. 게다가 왕더쳰의 공예품(점토 인형, 공예 조롱박)을 강탈해갔다. 그 후 왕더쳰은 4년 불법 판결을 선고받아 여태껏 여전히 지둥감옥에서 박해를 당하고 있다.

중공의 박해가 이 가정에 가져다준 극심한 고난

최근 몇 년 동안 박해 중에서 왕더쳰은 ‘진선인(眞ㆍ善ㆍ忍)’에 대한 믿음을 견지한 원인으로 여러 차례 가택수색, 납치, 재물 갈취를 당했고, 집안의 공예품을 강탈당했으며, 직업을 해고당해 고정된 수입이 없었기에 가정의 무거운 짐은 전부 아내 한 사람 몸 위에 떨어졌다. 왕더쳰의 아내는 유치원교사로 근무를 함에 직무와 책임을 다해 왔으며, 늘 무료로 유치원 어린이들에게 벽화를 그려주었다. 왕더쳰이 여러 차례나 이유 없는 박해를 당한 기간, 그녀는 여전히 근면하고 성실하게 업무에 임했는데 심적, 경제적 압력을 감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 룽먼샹 사악한 당 인원의 위협을 당했다. “협조하지 않으면, 당신의 근무 월급도 위험하다.”

왕더쳰은 두 딸이 있었는데, 큰 딸은 선생님에게 파룬궁진상을 알린 이유로 학교에 의해 강제로 중퇴를 당했다. 집으로 돌아온 뒤 그녀는 아버지가 대법을 굳게 믿은 이유로 노동교양처분을 받아 월급지급을 중지 당했고, 80여 세인 할머니가 마비되어 자리에 몸져누워 대소변을 받아낼 사람이 필요했으며 어린 여동생이 보살핌이 필요함을 보았다. 그래서 그녀는 약소한 몸으로 어머니를 도와 이 집을 지탱했다. 아버지가 거듭 박해를 당했던 원인으로, 집은 늘 교란, 감시, 무형의 극심한 정신적 압력을 당해 이 소녀로 하여금 온종일 공포속에서 생활하게 했다. 2008년에 왕더쳰이 납치당한 뒤, 큰 딸도 사악한 당 인원의 속임을 당해 유치장에 갇혔다. 당시 그녀의 여동생은 서로 굳게 의지하며 살아가던 언니가 또 불법 감금당하자 핍박에 못이겨 벽에 부딪히려고 했다.

일가족의 생활은 아주 간고했다. 매번 설을 쇠고 명절을 쇨 때면, 남의 집은 모두 가정이 즐거웠지만 그의 일가족은 노인에서 아이들까지 모두 눈물을 보냈는데 정경이 처참했다. 1999년에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후 행복한 가정에 비할 바가 없는 극심한 고난을 가져다 준 사례는 통계하기 어려울 정도다. 왕더쳰의 일가족의 조우도 단지 폭로해 낸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다.

문장발표: 2011년 08월 30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8/30/2460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