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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 치샤시 왕즈성이 당한 혹독한 구타학대

글/ 산둥 파룬궁수련생 왕즈성

[밍후이왕] 왕즈성(王志生, 62세)은 산둥성(山東省) 치샤시(棲霞市) 추이핑구(翠屏區) 셰자부촌(葉家埠村)의 농민이다. 10여 년 중, 파룬따파(法輪大法) ‘진ㆍ선ㆍ인(眞ㆍ善ㆍ忍)’ 수련을 견지하다가 당국 중공(중국 공산당) 인원에게 한 차례 또 한 차례의 흉악한 박해를 당했다. 그는 자신이 박해를 당한 데 대해 다음과 같이 공소했다.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배우기 전에 나는 원근에서 교활하기로 유명했으며, 몸을 형편없이 만들어 위병, 장염, 골 증식, 신경성피부염, 이명, 허리와 다리가 아픈 증상 등 각종 질병에 걸렸다. 이로 인해 몸무게가 단지 51kg밖에 나가지 않았으며, 온 얼굴에 주름이 잡혀 마치 70세 노인처럼 보였다. 당시 사는 의미가 없어 사회 조류를 따라 미끄러져 내려가고 말았다.

하지만 기쁘게도 1998년 7월에 운 좋게 파룬따파를 수련하게 되었다. 대법책을 읽고 리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眞ㆍ善ㆍ忍’ 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었으며, 매일 연공을 견지하고 좋은 일을 해서 철저히 자신의 예전의 행위를 바꿨다. 나도 모르게 각종 질병들이 모두 없어졌으며, 사상 경지도 매우 크게 제고되었다. 나는 자신이 연공을 해서 이로움을 입은 상황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파룬따파가 좋음을 알게끔 했다.

그러나 1999년 7월부터 중공 사악한 당이 박해를 일으킨 이래, 진상을 알리고 대법을 실증하다가 차례로 여러 차례 불법 가택수색을 당했고, 두 차례 불법 노동교양처분(모두 5년임)을 받았으며, 다섯 차례 구류당하고 두 차례 강제로 세뇌반에 들어갔다. 노동교양소, 유치장, 세뇌반 이 사악한 소굴 안에서 나는 심신에 끝이 없는 고통과 학대를 당했다. 피비린 박해를 거치면서도 다행히 나는 걸어 나왔다. 이 과정 중에서 나는 시시각각 모두 사부님께서 점오해 주시고 가호해 주심을 감수할 수 있었는데, 이 역시 이렇게 많은 마난을 겪고도 내가 여전히 확고하게 대법 중에서 수련할 수 있는 역량의 원천인 것이다. 아래에 내가 소굴 안에서 박해당한 사실을 세상에 공포함으로써, 모든 세상 사람에게 사악한 공산당의 사악한 폭행을 똑똑히 알게끔 하겠다.

2000년 4월, 치샤시 공안국 ‘610(장쩌민의 지시로 설립된 불법기구로서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고 법률 위에 군림하는 불법기구임)’ 두목 탕궁밍(唐功銘)의 지시 하에, 치샤시 공안국과 청난(城南)파출소의 한 무리사람들이 집적 우리 집으로 와서 불법 가택수색을 감행했다. 그들은 사부님의 법신상, 대법책, 자료, 연공 시디, 녹음기 하나를 강탈해갔으며, 나를 구치소로 납치해 1개월 동안 괴롭혔다. 6월 초, 내가 진상을 알리러 베이징에 갈까봐 두려워한 청난파출소의 악경 하오젠쥔(郝建軍)과 추이핑취(翠屏區), 악인 린잉쉬(林應許) 등은 탕궁밍의 명령 하에 우리 집에 와서 나를 납치해 구치소에 가둔 채 한 달간 괴롭혔다.

매번 구치소에 들어오면, 감옥의 왕초는 몇 명의 사악한 죄수를 거느리고 나를 둘러싸거나 혹은 땅위에 내리누르고는 한바탕 폭력적인 구타를 가했다. 이어서 감방에서 끌어내 몸을 수색하고 머리를 빡빡 밀었으며, 사진을 찍고 지장을 찍게 했다. 교도관은 강제로 감옥 규정을 외우라고 나를 핍박했고, 노예처럼 매일 14~15시간 동안 노역노동을 하게 했다. 그리고 매일 저녁에 당직을 서도록 핍박했고, 잠을 자거나 연공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2명의 죄수더러 나를 감시하게 했다. 불법심문을 할 때, 나를 쭈그려 앉혀놓고는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매일 옥수수떡으로 한 끼만 주었는데, 속은 전부 모래여서 감히 씹어 먹지도 못했다. 끼니마다 단지 짠지 한 조각, 아니면 국물 한 국자만 주었다. 그리고 반찬 안에는 심지어 온갖 벌레가 다 있었는데, 모두 시장에서 사람들이 구입하지 않는 쓰레기 야채였으며 씹어지지도 않았다. 죄수들까지 모두 구치소에서 먹는 것은 돼지먹이거나 개밥이라고 말했는데, 그것마저도 배불리 먹지 못했다. 구치소의 박해 하에서 몸은 극심한 상해를 입었다.

파룬따파 ‘眞ㆍ善ㆍ忍’ 에 대한 믿음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같은 해 9월 초 어느 날 저녁, 악경 탕궁밍이 청난파출소의 하오젠쥔과 류야오페이(劉堯飛), 쉬(徐) 모모 및 추이핑취, 그리고 부서기 리즈융(李志勇), 장샹란(張香蘭) 등 악인을 지휘해 또 나를 납치했다. 동시에 대법책, ‘논어’도편, 그리고 대법자료를 강탈해갔으며, 나를 파출소로 보내서 철창에 두 손을 채웠다. 악경은 내가 몸에 달고 있던 파룬장을 빼앗으려 했다. 내가 주지 않자 악경은 무차별 폭력을 가해 나를 땅위에 내리눌러 놓았다. 그들은 파룬장을 빼앗아 땅위에 놓고 발로 밟았다. 밥도 주지 않고 꼬박 하루 동안 채워놓았다. 이튿날 저녁에 또 나를 구치소에 가둬서 한 달간 괴롭혔다. 석방된 뒤, 직접 나를 양로원에 보내 폐쇄식 ‘전향’ 을 감행하면서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가족과 나 자신이 항의하자 보름 쯤 후에 나를 풀어주었다. 이 1년 동안, 여러 차례 감금을 당해 집안의 양식과 과수원 생산량이 줄어들어 심각한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사악의 강압박해 하에서, 우리 많은 대법수련생들은 수련을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시시각각 사부님의 ‘眞ㆍ善ㆍ忍’ 의 요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었으며, 시간이 있기만 하면 법공부와 연공을 했다. 이에 악도들은 화가 났다. 2001년 5월 초, 치샤시 ‘610’ 은 세뇌반을 조직해 강제로 대법수련생을 ‘전향’시켰다.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의 왕위성(王玉生)의 지휘 하에, 대면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체포했다. 당시 나는 한창 과수원에서 사과에 수분(授粉)하고 있었는데, 악경 7~8명이 다가와 나를 붙잡았다. 나는 이렇게 사악의 박해를 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곧 나무 밑에서 산 위로 달렸다. 이후로 나는 유랑생활을 하게 되어,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었고 가족이 있어도 볼 수 없었는데, 그것은 정말 하루가 일 년 같았다! 낮에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밤만 되면 하룻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랐다. 수련생의 집은 갈 수 없고, 친척과 친구의 집도 갈 수 없었다(듣는 말에 의하면, 며칠 전에 악경이 차를 몰고 치샤진 첸양워촌(前陽窩村)에 있는 내 고종사촌 처제의 집에 가서 나를 찾았다고 했음). 사람들은 모두 사악한 공산당의 연루정책을 두려워했다. 나는 늘 큰 산위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오늘 저녁은 어디에서 보낼지를 생각했다. 그 후에 들은 말에 의하면, 내가 떠난 뒤에 악경이 거의 매일 우리 집에 가서 교란했는데, 어떤 때는 한밤중에 문을 두드려 가족은 늘 잠도 감히 잘 수 없었다 한다. 우리 집은 그들이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갔는데, 그들이 함부로 짓밟는 곳이 되어 버렸다. 사악은 나를 붙잡지 못하자 곧 아내를 샤오좡(小莊)세뇌반으로 붙잡아가서 박해를 감행하고 22일 후에야 풀어주었다.

7월 1일 저녁에 나는 몰래 집으로 돌아갔는데(가족도 내가 돌아온 것을 몰랐음), 촌의 악인에게 발각되었다. 아침에 몇 대의 경찰차가 왔고 악인 10여 명이 담장을 뛰어넘어 우리 집에 들이닥쳤다. 나는 한창 연공을 하고 있었는데, 두 악인이 내 머리를 내리눌렀고, 다른 한 사람은 내 팔을 비틀어 경찰차로 밀어 올렸다. 당시 나는 팬티만 입은 채로 샤오좡세뇌반에 갇혔다.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세뇌를 거부하고 ‘전향’도 하지 않으며 또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자 그들은 나를 작업실에 가둬넣고 외부인과 접촉하지 못하게 했다. 25일 후에 그들은 또 나를 네 번째로 구치소로 납치했다. 8월 1일, 날도 아직 밝지 않고 비가 억수로 쏟아질 때, 나는 강제로 2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치샤시 ‘610’ 은 장쩌민을 바싹 뒤따라 파룬궁을 박해함에 천리를 거슬러 나아갔다. 이미 2년 동안 정지했던 세뇌반은 2004년 8월 중순에 사그라진 재가 다시 타올랐다. 그들은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광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세뇌반으로 납치해 강제로 세뇌를 감행했다. 2005년 1월 11일(즉, 음력설 전)에 머우중화(牟忠華), 탕궁밍은 청난파출소의 악경을 지휘해 우리 집에 들이닥쳐 나를 샤오좡세뇌반으로 납치했다. 그들은 직접 나를 두 칸짜리 빈 방안에 밀어 넣었고, 악인 몇 명이 단시간에 나를 에워쌌다. 어떤 이는 심지어 침대로 뛰어올라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공갈협박하면서, 나를 “과녁으로 삼고 권법을 연마 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이렇게 치고 박고했는데, 사람으로 하여금 단시간에 지옥에 들어가게 하여 생존할 희망이 없음을 느끼게 했다.

酷刑演示:背吊铐
고문시연:뒷짐결박으로 채워서 매달기

늘 물을 마지지 못하게 했는데, 어떤 때는 며칠간 물을 한 모금도 주지 않았다.

그들은 나에게 무차별폭력을 가하고 각종 고문을 사용하는 등 꼬박 7일간 수법을 쓸 대로 다 썼다. 그 기간 머우인룽(牟因容), 창인쿠이(常因魁), 녜(聶)XX가 당직을 설 때, 내가 눈을 감기만 하면 그들은 곧바로 손바닥으로 내 눈을 후려쳤다. 때리다 손이 아프면 곧 두꺼운 책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후려 쳤는데, 맨 마지막에 책이 다 닳아서 찢어지면 가시가 달린 보온 물주머니로 내 얼굴을 후려쳤다.

15일 밤, 밤이 깊어 매우 고요할 때, 창인쿠이는 내 오른쪽 눈을 구타해 멀게 했다. 그는 뜻밖에 기뻐하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이 ‘외눈박이’ 사진을 자신의 친구한테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그 후에 그는 때리다가 두 손에 힘이 빠지자 구두를 신은 채로 나의 두 아랫다리 앞을 마치 축구공 차듯이 걷어찼다. 어떤 때는 구두 뒤 굽으로 나의 발가락을 꽉 밟았는데, 발가락을 하나하나씩 모두 이렇게 하려고 했다. 그들이 나를 걷어차는 데는 무슨 시간제한이 없었다. 식전, 식후, 그리고 오고 갈 때(매일 적어도 2~3백번 차임) 걷어차고 싶으면 걷어찼다. 어느 한 번, 창인쿠이는 내 입을 비틀어 열고, 철근으로 된 작은 망치 같은 물건을 입안에 꽂아 넣고 왔다 갔다 하면서 내 치아를 두드렸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두드려 치아가 다 흔들거렸다.

꼬박 7일 동안, 나는 사악에게 구타당해 두 번이나 기절한 적이 있다. 매번 학대로 기절하면 그들은 곧 몸에 냉수를 끼얹었다. 날씨가 아주 춥고 큰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지만 나는 옷을 매우 적게 입고 있었다. 냉수의 자극으로 시간이 지나 정신을 차리기만 하면 곧 철관 위에 매달아 채웠다. 어떤 때는 작은 방안 안의 화로 옆에 매달아 불을 세게 때서 나에게 불을 쬐게 하고는 문을 닫았다. 그들은 모두 더워서 밖으로 달려 나갔다.

장시간 매달려 있었기에 두 손은 조여져 두 줄기의 큰 피 상처가 생겼고, 벌어진 두 손목 상처 틈 사이로 뼈가 보였다. 두 손등은 큰 찐빵만큼 부어올랐고, 두 다리는 부어올라 바지도 입을 수 없었다. 8일째 되던 날, 대변을 화장실에 갔으나 다른 사람이 나를 부축해도 쭈그려 앉지 못했다. 20여 일이 지나도 우리에게 세수를 하거나 이를 닦지 못하게 했고, ‘전향’ 시키는 사악한 녹화를 우리에게 강제로 보게 하면서 이른바 ‘체득’을 쓰게 했다. 그리고 연공을 하거나 경문을 외우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신체적으로 이렇게 심각한 박해를 당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나를 핍박해 매일 나가서 아침체조와 달리기를 하게 했으며, 눈을 쓸고 차를 닦고 물을 긷고 석탄을 내리는 이런 일을 시켰는데, 나의 당시 신체적 능력을 초과한 노동이었다. 나는 심신에 극히 심각한 상해와 모욕을 당했다.

악인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고 소위 ‘전향’ 인원수를 완수하기 위해, 음력설 후에 5번째로 나를 샤오좡세뇌반에서 구치소로 보냈다. 구치소에서 20여 일간 시달림을 받은 뒤, 2005년 4월 12일에 다시 한 번 왕춘노동교양소로 불법으로 보내져 3년의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왕춘, 이 사악한 소굴 안에서 매일 노역노동을 했는데, 일을 함에 수량을 규정했다.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점심과 저녁에 모두 연장 근무를 시켰으며, 한 달에 단지 이틀만 휴식을 취하게 했다. 그리고 또 다른 노동을 배치했는데, 위생청결 노동, 차에 싣고 내리는 일과 다른 잡일을 시켰다.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는 단체로 녹화나 텔레비전을 보도록 핍박하여 사악의 세뇌를 감행했다. 그리고 강박으로 이른바 한 달 총결을 쓰게 해서 지명하는 회의를 열었다. 악경은 늘 감방과 몸을 수색했다. 누가 경문을 지닌 것을 수색해 내기만 하면 즉시 수갑을 채워서 화장실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여름에 모기에게 물리게 했다. 겨울에는 몸에 냉수를 끼얹고 꽁꽁 언 솜옷, 솜바지를 입혔는데, 이렇게 추위에 떨게 했다. 또 전기봉으로 전기충격을 가해서 ‘전향’ 하도록 핍박했다. 매끼 모두 무국이었는데, 줄곧 5월까지 몇 달간 먹었다. 누가 노동교양소의 이른바 규정대로 하지 않으면, 당사자의 형기를 늘렸다. 나는 노동교양소에서 법을 위반한 신고편지에 서명을 했다는 이유로 감금, 세뇌를 당하고 형기도 연장되었는데, 세 번에 걸쳐 1개월 넘는 형기를 연장 당했다. 누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한번 외치면 격리시켜 매달고 전기봉으로 전기충격을 가했다.

장쩌민을 우두머리로 한 사악한 정치깡패집단은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선량하고 무고한 수련생을 잔혹하게 박해했는데, 근본적으로 ‘헌법’을 위반하고 인권을 침범한 것이며 천인이 공노할 일이기에 반드시 역사의 심판과 하늘의 징벌을 받을 것이다. 사람이여, 빨리 깨어나라! 악당을 따라서 자신의 생명을 잃지 말고, 다시는 자신의 양심을 침묵하지 말며, 함께 이번의 사악한 박해를 반대하여 정의로움과 선량함이 다시 인간에게로 되돌아오게 하자!

문장발표: 2011년 08월 24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8/24/2458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