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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박탈——중공이 파룬궁수련생을 괴롭힌 사례 총론 (하)

중공 감옥에서 수면을 박탈한 죄행

11년 이래 수만 명의 파룬궁수련생은 감옥에 갇혀 비인간적인 육체적 괴로움과 정신적 박해를 당할 대로 당했다. 중공(중국 공산당)의 감옥은 사람을 못살게 굴고, 공제하는 사악의 능력은 세계에서 첫 번째에 속하는데, 막 감옥에 갇힌 모든 파룬궁수련생은 모두 비슷하게 심한 고충을 겪어야 했다. 타협하지 않고 전향에 협조하지 않은 수련생에 대해, 그들은 아주 많은 깡패의 비열한 수단을 동원했다. 그중 늘 이용한 것은 바로 수면박탈이었다.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이룬시(海倫市) 보건원(保健院)의 여성 의사 류더칭(劉德清)은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에서 박해를 당했다. “10여 일 동안 잠을 재우지 않았고, 잠을 자기만 하면 이쑤시개로 찌르고 바늘로 찔렀다. 또 솔로 때리거나 판자로 구타했으며, 머리칼을 잡아당겨 벽에 부딪히고 발로 찼다. 그리고 또 대소변을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바닥에 오줌을 누면 깨끗한 옷으로 닦게 했다. ”

고문 시연: 눈을 감는 것을 허락하지 않다

농업부 파룬궁수련생 커싱궈(柯興國)는 장시간 동안 허베이(河北) 선저우시(深州市) 구치소에 감금당했다. 그는 구치소에서 이미 3번의 단식을 했는데, 구치소에서는 뒷짐결박의 방법으로 악의적인 음식물 주입을 감행했다. 그리고 경찰과 죄수에게 혹독한 구타를 당했고 똥통 옆에 거꾸로 매달렸는데, ‘영화를 본다’는 그럴싸한 이름을 갖다 붙였다. 그 후 7년의 불법 판결을 당했다. ‘반성’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바오딩(保定)감옥으로 압송돼 ‘전향’을 강요당했으며, 한쪽 다리는 침대에 1개월 동안 묶여있었다. 각종 혹독한 구타도 그에게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자, 전형으로 간주돼 스자좡(石家莊) 제4감옥에 보내졌다.

스자좡 제4감옥(즉 허베이정 제4감옥)에서 커싱궈는 공견팀(攻堅班)안에 갇혀 ‘아오잉(熬鷹)’고문을 근 50일 동안 당했다. 그리고 쇠고랑을 강제로 차고 일하러 나갔는데, 몇 번 다니지 않아 발목은 이미 문드러졌다. 그의 아내는 농업부의 한 정법과(政法科) 과장으로, 그가 연루되어 승진하지 못했다고 이혼 수속을 밟았다.

허베이성 제4감옥은 문명감옥이라고 표방하는데, 사실은 더 비할 바 없이 어둡다. 이것은 허베이에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가장 큰 기지 중의 하나이다. 이른바 ‘교육처’의 흉악한 경찰 장중린(張中林)은 이곳에서 수련생에게 강제적인 세뇌를 감행한 우두머리로, 감옥 경찰들은 “장중린은 감옥에서 유명한 멍청이다. 10여 년 동안 그가 미치기 시작하면 감옥장마저도 가만두지 않는다. 그를 파견해 파룬궁을 못살게 굴면 가장 적합하다. 10여 년 동안 그에게 진급시키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그에게 진급시키지 않을 것이고 장려금을 좀 줄 것이다. 맨 마지막에 그는 여전히 남을 대신해서 당해야 한다.”

때리고 욕하는 체벌은 밥 먹듯이 하던 일로, 살인하고 강간하고 강탈 따위의 폭력 죄수는 4감옥 경찰의 조력자이다. 4감옥의 흉악한 경찰은 죄수에게 지시해 평소에 수련생을 심하게 관리하여 함부로 수련생을 살해했다. ‘교육처’는 수련생을 박해하는 ‘공견팀’으로, 바로 감구역에 폭력 죄수를 파견해 졸개로 만들어 감옥 경찰과 함께 파룬궁수련생을 ‘지새워(熬)’ 따르게 하고, ‘때려서(打)’ 따르게 했다. 그런 다음 감옥 경찰은 장려금을 얻고 죄수 졸개는 공적을 세워 형기를 줄였다. 어떤 폭력 죄수는 파견돼 졸개로 되었다가 또 주동적으로 물러났다. 그런 잔인한 피비린 박해를 못 봐주겠다며, 차라리 공적을 기록하지 않을지언정 그런 양심을 상실한 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결국 ‘교육처’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가장 인성이 없는 죄수를 찾아 도구로 썼다.

‘공견팀’에서 파룬궁수련생은 강제로 ‘아오잉(熬鷹)’- 지속적으로 잠을 재우지 않고 폭력 죄수와 간경들이 윤번으로 당직을 서면서 잠을 자기만 하면 수건으로 안구를 닦는 고문을 당했다. 악도는 긴 나무 의자를 뒤집어 놓고 강제로 수련생에게 앉게 했으며, 다리를 들고 강제로 걸상 다리에 앉혀서 온몸의 중량이 걸상 다리를 내리눌러 움직이지 못하게끔 했고 움직이면 곧 맞아야 했다. 처음에는 밥을 주었고, 오래지 않아서는 양을 제한했는데 심지어 음식물을 금지하고 물을 금지했으며 화장실로 가는 것을 금지했다. 매일 끊임없이 가짜 신문을 사용하여 세뇌하고, 물어보고, 또 혹독한 구타를 했다. 폭력 죄수의 경험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4일이면 사람은 혈뇨하고 5일이면 곧 정신이 붕괴된다 했다.

5감구역의 3중대 지도원은 폭력 죄수 리화(李華)와 스춘성(石春生)에게 귀띔해 주어 수련생 궈정칭(郭正清)을 엄하게 관리하게 했다. 두 죄수는 늘 구실을 찾아 제멋대로 행동했다. 하루는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데, 스춘성이 고의적으로 궈씨를 밀어 넘어뜨렸다. 궈씨의 오른쪽 다리와 오른쪽 발이 중상을 입고 오른쪽 발은 변형되어 움직일 수 없게 되어 감옥 숙소로 들려가게 되었는데, 스춘성은 여전히 남의 불행을 보고 기뻐했다. 그날 저녁 궈정칭은 화장실을 가는데 앉아서 가거나 기어서 가야 했다. 평소 궈정칭이 말하기만 하면, 무슨 말이든지를 막론하고 리화는 곧 한자되는 복합판(複合板)을 들고 궈씨의 얼굴을 후려쳤는데 줄곧 판자가 선혈에 물들 때까지 후려쳤다. 리화은 “이것은 대장의 지시이다. 궈정칭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소란을 피웠다.

2003년 3월에 공견팀에서 궈정칭은 ‘아오잉’괴로움을 당해 7박 8일을 잠을 자지 못했다. 그 후 3중대 지도원 류루펑(劉汝峰)과 죄수가 연속 3일 동안 혹독한 구타를 가해 수차례나 구타로 기절했다. 여덟 째 날에 얼굴과 손발마저도 모두 변형되었다. 궈정칭은 박해로 불구가 되어 오른쪽 발이 마비되었다.

2003년 2월 26일, 5감구역에서 흉악한 경찰은 파룬궁수련생 류후이민(劉慧民)을 면회실로 납치해서 문과 창문을 꽉 닫고, 강제로 매일 장시간 동안 걸상에 앉혀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장둥성(張東生)과 정샹쳰(鄭向前) 이 두 변절자를 이용해 번갈아가며 세뇌를 감행했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후, 두 사람은 뜻밖에 흉악한 악경을 충동질해 박해를 감행했다. 저녁에 4명의 흉악한 경찰은 류후이민에 대해 공갈협박으로 위협을 주면서 보름 동안 강온양책을 병행했지만 아무 쓸모도 없었다. 그렇게 되자 곧 류후이민을 무대 방송실에 가두고 ‘아오잉(熬鷹)’과 혹독한 구타를 실시했고 화장실도 못 가게 했다.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는 것을 금지했으며 겨울에 솜옷을 입지 못하게 했다. 바지 안에 대소변을 보게 해서 다시 바지를 씻게 한 다음 젖은 채로 입게 했다. 그리고 걸상을 뒤집어서 강제로 걸상 다리위에 앉혔고, 잠을 재우지 않았다. 졸면 마른 수건으로 눈알을 닦았다. 흉악한 경찰 장중린(張中林)과 심복 죄수인 왕스밍(王仕明)이 직접 파룬궁수련생 류후이민을 구타해 갈비뼈를 부러뜨렸고, 무릎으로 명치에 강한 타격을 가했는데 하마터면 그를 때려죽일 뻔 했다. 그는 심한 손상을 입어 기억력을 상실했다.

죄수가 그 후에 한 말에 따르면, 어느 날 밤에 사악의 우두머리 경찰 장중린과 그의 유능한 졸개가 또 왔다. 어두컴컴한 작은 방안에서 류후이민에 대해 광적으로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류후이민은 맞아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 앉았으며, 또 맞아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 앉았다……흉악한 경찰들은 때리다 지쳐서야 그만 두었다. 이튿날 날이 밝아서야, 류후이민의 옷과 바지에 이미 온통 선혈이 흘렀음을 발견했다. 씻어주려 했지만 류후이민은 원하지 않았다. 그 흉악한 경찰은 죄수에게 지시해 그의 음부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다. 당시 류후이민은 곧 바닥에 쓰러졌고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악도들은 강제로 그의 옷을 벗겨냈다. 그 후 류후이민은 감옥 숙소로 압송해 돌아온 후 또 강제로 나가서 노동을 했다.

파룬궁수련생 궈정칭(郭正清, 43세)은 2001년 4월 25일에 차에 앉아 톈안먼 진수이교(金水橋)를 지날 때 너비가 70센티미터인 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쓴 현수막을 펼쳐 군중들의 환호와 공명을 일으켰다. 불법으로 경찰차에 붙잡혀 들어간 뒤, 사람들이 많을 때 또 머리를 내밀고 法輪大法好를 외쳤다. 경찰은 달려와서 1미터 길이로 된 경찰 곤봉으로 바로 그의 얼굴을 향해 때렸는데 곤봉은 ‘펑펑’하는 소리를 냈다. 코피는 오랜 시간 동안 흘렀다. 궈정칭은 쉬안화(宣化)구치소로 불법 압송돼 여러 차례 혹독한 구타를 당했고 한 차례 구타로 3시간 동안 기절했다.

2002년 11월 궈정칭은 스자좡 4감옥으로 불법 압송 당했을 때, 다리는 이미 곱장다리가 되었고, 두 발은 밖으로 벌어져 변형되어 신을 신지 못했으며, 걷기도 어렵게 되었다. 그리고 손은 이미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며 변형되었다. 또 잇달아 혹독한 구타를 당했고, 2003년 3월에 4감옥에 의해 공견팀(攻堅班)을 전향시키는 ‘아오잉’식의 고문을 당했다. 7박8일을 잠을 재우지 않아, 결국 어느 날 밤에는 혹독한 구타로 기절했다가 밤중에야 의식을 회복했다.

오늘날 궈정칭은 오른쪽 다리가 구타로 불구가 되었지만, 여전히 대법에 대한 굳은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아픔으로 죽을지언정, 스스로 목숨을 끊어 대법에 먹칠하지 않으려고 했다.

란저우(蘭州)감옥에서 교도관을 주관하고 있는 부감옥장 스톈유(石天佑), 간쑤성(甘肅省)감옥 관리국 국장 왕중민(王忠民)은 란저우감옥 내에서 파룬궁에 대해 ‘문화대혁명식’의 광적인 박해를 감행했다. 각 감구역의 경찰들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데 적극 참여함을 격려하고 동원하기 위해, 뜻밖에 내부 회의에서 “어느 감구역에서 먼저 파룬궁수련생을 전향시키면, 나는 란저우시의 큰 음식점으로 청하겠다……”고 선포했다. 그래서 각 감구역에서는 뒤질세라 앞을 다투며 남보다 못함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다. ‘차바퀴식’의 악독한 수단을 채용해 파룬궁수련생을 광적으로 괴롭히고 혹독하게 구타했다. 8감구역의 표현이 더욱 돌출적이었는데, 당시의 란저우감옥은 정말 참혹한 살육의 현장으로 공포감에 소름이 끼쳤고, 일반 죄수들마저도 극심한 압력을 느꼈다. 당시 란저우감옥은 50여 명의 파룬궁수련생을 감금했는데, 비인간적인 괴로움과 학대를 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파룬궁수련생의 견강한 의지를 무너뜨리기 위해, 란저우감옥에서는 당시 베이징에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몇 명의 이른바 ‘고수’를 청해다가 전문적으로 감옥 경찰에게 ‘전향 경험’을 전수했다. 그들이 채용한 가장 주요하고 가장 효력이 있는 수단은 ‘아오잉’고문인데, 파룬궁수련생에게 약간의 휴식 할 기회가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사람은 나흘을 넘기지 못해 그 고통을 참기 어렵게 된다. 그들이 이렇게 하면 상처도 없고 죄증도 없게 된다. 스톈유는 진귀한 보물을 얻은 것 같이, 각 감구역에서 대대적으로 모방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당시 스톈유는 정말 히스테릭하고 미친 듯이 잔인한 정도에 이르렀다.

2005년 10월, 간쑤성 사법청 청장 팡보(龎波)가 재임해 있을 때, 금방 간쑤성감옥 관리국 국장으로 전근된 왕중민(원래는 린샤주(臨夏州)공안국 국장인데,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한 이유로 사악한 당에게 이용당했음)은 간쑤성 각 감옥의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광적인 박해를 가했다. 외지에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한 사악한 수단인‘차바퀴식’의 고문을 끌어들여 박해를 감행했다. 파룬궁수련생을 봉쇄식으로 된 독방이거나 혹은 영창실 안에 가두고, 창문은 전부 모두 봉쇄해 외부사람도 접촉하지 못하게 했으며, 또 외부사람이 알지 못하게 했다. 24시간 동안 파룬궁수련생에게 잠을 재우지 않고, 경찰과 경찰이 지시한 바오자가 24시간 동안 번갈아가며 당직을 서면서, 한시각도 떠나지 않고 강제로 파룬궁수련생에게, 이른바 ‘전향’을 할 때까지 위협했다.

후베이성 징저우시(荆州市) 사스구(沙市區) 파룬궁수련생 양셴펑(楊先鳳)은 2001년 3월 6일에 사스시 중산(中山)공원 잉관산좡(鷹冠山莊) 안에 불법 감금당했다. 그녀에게 잠을 재우지 않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미 전에 고추가루물을 그녀의 눈과 입안에 넣었고, 잔혹하게 8박9일을 괴롭혀 양셴펑으로 하여금 기절하게 했다.

상하이 교통대학 전자정보학원의 청년 교사 궈샤오쥔(郭曉軍)은 2010년 1월 7일에 바오산(寳山) ‘국가보안’에게 납치당했다. 어떠한 증거도 없는 상황 하에, 국가보안경찰은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습관적인 수법 -‘아오잉’고문을 채용해, 그에 대해 학대를 감행했다. 게다가 스포트라이트를 사용해 그의 눈을 쪼였는데, 눈은 달마다 모두 적어도 한 차례의 ‘일과성 실명(一過性失明)’ 증상이 나타나곤 했다. 이것은 일종의 눈이 강한 자극을 받은 것으로 인해 초래된 돌발성 증상으로, 병세가 일단 도져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바로 치료를 받지 못하면, 곧 영구성 실명으로 될 수 있는 것이다. 궈샤오쥔의 눈 문제는 바오산 국가보안대대의 흉악한 경찰이 혼자 만들어 조성된 것이다.

사람들은, 눈에서는 모래를 문지를 수가 없다고 늘 말하는데, 그건 정말 약간의 먼지도 담을 수 없다. 그러나 중공 악도에게 있어서, 눈으로 하여금 고문의 고통을 감당하게끔 함으로써, 흉악하고 잔인하게 파룬궁수련생을 학대하는 목적을 달성하려 했는데, 그들은 정말 목적을 달성했다. 우리는, 파룬궁수련생의 눈 안에 고추, 겨자기름, 평유징을 문지르고 또 혹독한 구타 고문을 감행한 사실을 보도록 하자.

후베이성 징저우시(荆州市) 사시구(沙市區) 파룬궁수련생 양셴펑(楊先鳳)은 2001년 3월 6일에 불법으로 사시 중산공원 잉관산장(鷹冠山莊) 내에 감금당했다. 그녀에게 재우지 않게 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미 전에 고추가루물을 그녀의 눈과 입안에 넣어서 잔혹하게 꼬박 9일 동안 괴롭혔는데, 양셴펑은 시달림으로 기절했다.

주인팡(朱銀芳)은 청두(成都)파룬궁수련생이다. 그녀는 쓰촨(四川) 난무쓰(楠木寺)노동교양소로 납치당했을 때, 악경 판룽(潘容)은 노교인원 천리옌(陳立燕), 장옌(張燕)에 대해 말했다. “주인팡에게 눈을 감게 해서는 안 된다. 만약 눈을 감기만 하면 너희들에게 책임을 묻겠다.” 천리옌은 펑유징을 주인팡의 눈에 떨어뜨려, 주인팡은 펑유징의 자극으로 근본 눈을 뜨지 못했다. 그리하여 천리옌과 천룽(陳容) 등 사람들은 그녀가 눈을 감고 있으면 곧 구타했다. 주인팡은 눈을 약간 뜨다가 또 감았는데, 결국 또 한바탕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수면박탈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죄악——눈이 감당한 고문

광저우 개발구 푸후이춘(普輝村)파룬궁수련생 탄사오웨이(譚少維)는, 2002년 7월에 ‘훙산(紅山)을 마약중독자 재활원 학습반’으로 납치당했다. 그곳에서 어지러운 물을 주입당하고, 바늘로 온몸을 찌르기 고문과 고추물을 주입당한 뒤, 악도들은 졸지 못하게 했고 눈을 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악도들은 일본 와사비를 그녀의 눈, 코와 입안에 발랐는데, 한참만 지나면 또 한 번 발랐다. 눈물과 콧물, 침이 자극으로 인해 줄줄 흘러내렸지만, 변태적인 악인들은 뜻밖에 이 분비물들을 그녀의 입안에 넣어 강제로 삼키게 했다.

광저우시의 다른 한 세뇌반인 ‘황부구(黄埔區)사상교육학습반’에서, 이런 유형의 고문은 더욱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광저우시 하이주구(海珠區) 쯔라이다제(紫來大街)의 파룬궁수련생 판메이샤(範美霞)가 과거에 스스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피곤함이 극한에 이른 저에게 눈을 감지 못하게 하기 위해 폭도들은 강제로 저의 머리를 바닥을 향해 내리누르고 콧구멍은 위로 향하게 했어요. 그런 다음 저의 코와 눈안에 고추물, 독한 술을 떨궈 넣거나 혹은 와사비를 발라 놓았어요.”

와사비는 일종 자극성이 아주 강한 조미료로, 냉채를 만들 때 사용함이 좀 많은데, 사람을 자극하면 줄곧 재채기와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러나 악경은 파룬궁수련생을 괴롭힐 때 뜻밖에 많은 사용량으로 이런 유형의 조리료를 사용했다. 지린시 파룬궁수련생 왕민리(王敏麗)는 2007년 3월에 지린시 웨산로(越山路) 경찰견 기지로 납치돼, 국가보안 악경의 혹독한 구타와 고문학대를 당했는데, 겨자기름을 여러 병이나 주입당하는 박해를 당했다. 악경은 심지어 한 병이 되는 겨자기름을 왕민리의 눈 안에 쏟아 넣어, 왕민리는 한쪽 눈이 실명하고 한쪽 다리는 악경에게 나무몽둥이로 구타당해 부러졌다.

겨자가루, 고추, 펑유징은 모두 극히 강한 자극성을 가지고 있기에,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상해는 매우 컸다. 일반적인 액체, 사람의 땀을 포함해서, 눈에 대한 상해는 역시 가볍지 않다. 치치하얼시의 파룬궁수련생 장구이친(张桂芹)은 2001년 4월에 톄펑(鐵鋒)형사경찰대로 납치했을 때, 형사경찰대의 경찰은 곧 그녀의 눈 안에 비눗물을 주입한 적이 있다. 박해로 사망한, 나이가 겨우 34세인 랴오닝성(遼寧省) 푸순시(撫順市) 칭위안현(清原縣)의 파룬궁수련생 쉬다웨이(徐大爲)는 중공의 4개 감옥에서 8년의 박해를 당했다. 링위안(凌源)감옥에 있을 때, 큰 괘에 올리기 고문박해를 당한 적이 있다. 평상 위에 8호 철사로 대자 형으로 반듯하게 눕혀서, 네 개 방향으로 가장 극한까지 늘리게 했다. 24시간 동안 모두 걸려 있었는데 대소변마저도 침대 위에서 보게 했다. 세수를 하지 않아서 눈물과 땀이 눈에 배어들어가 견딜 수 없었다. 일반적인 사람은 3일이면 극한까지 감당했지만, 쉬다웨이는 첫 번째로 7일 동안 걸려 있었다. 그 후에 또 여러 차례 이런 유형의 고문을 당했다.

이런 유형의 큰 괘에 올리기 고문은 바로 오마분시(五馬分尸)고문처럼 아픔으로 사람은 땀이 비 오듯 흐른다. 땀은 사람의 눈 안으로 흘러들어갔는데, 바로 그렇게 육체적 괴로움을 감당하는 동시에 눈은 또 땀에 담가져 있어야 했다. 이런 것은 우리는 직접 체험할 수는 없지만, 그런 고통을 그래도 약간은 상상할 수 있다.

파룬궁수련생의 눈에 실시한 고문 중, 왕왕 중공의 다른 일종의 고문 ‘아오잉(熬鷹)’을 결합해 사용한다. ‘아오잉’은 바로 사람에게 잠을 재우지 않은 것인데, 강제로 사람에게 잠을 재우지 않는 가장 좋은 방식은 바로 파룬궁수련생의 눈을 괴롭히는 것이다. 다시 아래의 예를 들겠다.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파룬궁수련생 허우리화(侯麗華)는 전에 아이민(愛民)분국의 경찰에게 납치당한 적이 있다. 폭도들은 그녀를 꼬박 5일 동안 잠을 자지 못하게 괴롭혔다. 허우리화가 눈을 감기만 하면, 폭도들은 곧 그의 눈까풀을 힘껏 후벼놓은 동시에 추잡한 말을 뒤섞었다.

산둥 웨이팡(山東濰坊) 파룬궁수련생 리슈전(李秀珍)이 지난감옥에서 박해를 당한 기간에, 악인들은 이미 연속해서 28일 동안 기본상 리슈전에게 잠을 재우지 않았다. 리슈전은 참으로 눈을 뜰 수 없게 되었지만, 인성을 완전히 상실한 악인들은 곧 테이프를 눈언저리 주변에 붙여 아래위로 잡아당겼다. 어떤 때에는 또 빗자루 막대기로 눈까풀을 받쳤다. 그리고 산둥 웨이팡노동교양소에서, 악인들은 파룬궁수련생의 수면을 박탁하기 위해 뜻밖에 손가락으로 눈알을 튕기고, 수건으로 눈을 후려치는 방식을 채취해 학대를 감행했다.

‘눈알 튕기기 고문’은 파룬궁수련생을 학대하는 또 일종의 고문이다. 악인들은 이것을 일종의 재미로 여겼는데, 심지어 그것을 일종 경험으로 서로 전수했다.

지린 퉁화시(通化市)의 파룬궁수련생 왕구이밍(王貴明)이 지린감옥 1분감구역에 납치당했을 때, 4감구역에는 별명이 ‘성성이’라고 불리는 죄수가 있었는데, 각종 박해수단을 죄수 루쓰주(陸絲柱)에게 가르쳤다. 그중의 하나의 수법이 바로 손가락으로 눈알을 튕기는 것인데, 한 번 튕기면 곧 눈앞이 번쩍거리고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다. 그들은 배운 뒤 곧 이것으로 왕구이밍을 괴롭혔다.

후난성(湖南省) 솽펑현(雙豊縣) 음식회사의 직원 양쥐성(楊菊生)은 2004년에 주저우(株洲) 바이마룽(白馬垅)여자노동교양소로 납치당했을 때는 이미 65세였다. 악인들은 이미 그녀에게 연속 13일 동안 주야로 잠을 재우지 않았으며, 눈을 깜박이지도 못하게 했다. 어느 한 번은 너무 졸려서 눈을 한 번 감았다가, 악경 위안자(袁佳)의 지시를 받은 마약범에게 눈을 백 번 넘게 구타당했다. 이 죄수는 무엇으로 구타했는지, 지금까지 모른다.

또 일부는 중공이 봉쇄한 것 때문에, 우리는 잠시 확실한 소식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파룬궁수련생의 시신에서, 우리는 여전히 일부 눈에 대한 고문 상해를 얼마간 보아낼 수 있다. 예컨대:선양(沈陽)파룬궁수련생 왕진중(王金鍾)의 시신은, 몸은 벗겨진 채 다만 팬티만 입고 있었는데,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다. 눈구멍은 시퍼렇게 멍들어 깊숙이 꺼졌고 눈은 흐려있었으며, 입은 벌려져 있었고 광대뼈는 튀어나왔다. 그리고 뺨은 검은 색을 띠고 살이 없었으며, 태양혈은 움푹 꺼져 들어갔고 목 부위의 후골은 피부를 받치고 있었다. 두 어깨는 좁고 두 팔은 성냥개비 같았으며, 또 갈비뼈, 복부, 골반, 허벅지, 아랫다리, 발, 총적으로 온몸의 아래위에는 뼈와 근육 뿐, 살은 없고 몸은 움츠려 굽어져 있었다. 시신은 보기에는 몸무게가 20~30kg 사이었는데, 온몸의 검은 색을 띤 피부 밑에는 뼈로, 마치 불에 말린 듯 했다. 시신은 무장경찰 4명에 의해 황급히 들려나갔다.

파룬궁수련생의 눈에 대해 고문학대를 감행하는 이런 유형의 사건은 매우 보편적으로, 거의 매일 모두 관련된 보도가 있다. 3월 23일에 밍후이왕에서 3편의 보도를 했는데, 안에는 모두 눈에 대한 고문에 관련된다. 《펑청시 바오산진파출소의 악경 천리신의 죄악》중에 이런 한 단락의 말이 있다:

“랴오닝성 펑청시(鳳城市) 바오산진(寳山鎭) 파출소의 전 소장 천리신(陳立新)은 수련생의 연로하신 부친 앞에서, 주먹으로 수련생의 얼굴 위, 눈 위를 구타했으며 발로 걷어찼다. 노인은 말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살아왔으나, 나의 아들이 좋은 사람이 되려함에, 또 이렇게 손해를 끼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노인의 말은 아주 솔직했는데, 누가 좋고 누가 나쁨을 사람들은 똑똑히 가리기가 매우 쉬웠다.

밍후이왕 2011년 2월 23일의 보도《산시(山西) 진중(晋中)감옥 경찰이 지시한 죄수, 왕즈강을 혹독하게 구타해 실명시켜》에서 결말에 다음과 같이 썼다.

“왕즈강(王志剛)을 접촉한 사람은 모두 그가 성실하고 선량하며, 너그럽고 사람 돕기를 즐김을 알고 있다. 왕즈강은 1996년에 파룬궁을 연마하기 시작해서, 이미전에 1998년 전국에 큰 물이 진 기간에 책을 빌려준 수입 전부, 1만 5천 위안을 기부하였다. 당시《타이위안(太原) 석간신문》에서 보도 한 적이 있다. 이렇게 우수한 청년은 오히려 이유없이 이런 혹독한 구탈를 당해, 그의 심신에 극심한 상처를 조성했다.

왕즈강은 실명되었으나 그의 사적, 그가 ‘眞ㆍ善ㆍ忍’을 추구하는 정신은, 오히려 영원히 우리 이 세계에 남겨주었다.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한 그들은, 그들의 눈은 실명되지 않았지만 내심은 도리어 이상하게 불분명하고 혼탁하며 캄캄하다. 이런 사람들로 하여금 왕즈강처럼 그렇게 많은 돈을 기부하라면 가능할지 가히 상상할 수 있다. 누가 좋은 사람인가? 누가 나쁜 사람인가? 누가 나쁜 사람을 이용해 좋은 사람을 박해하는가? 중국인의 눈은 아주 분명하게 보고 있다.

그러나 친구, 당신이 이 문장을 읽을 때, 파룬궁수련생들은 바로 중공의 고문을 흠씬 당하고 있음을 당신은 의식하고 있는가?. 그중에 바로 수면을 박탈하는 고문학대를 포함해서이다……

문장발표: 2011년 04월 14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4/14/23899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