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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 고문: 지환, 지닻

글/ 페이푸(飛瀑)

[밍후이왕] 중국 대륙 파룬궁수련생이 진선인(眞善忍)에 대한 믿음을 견지하고, 민중에게 진상 알리기를 견지한, 이것은 본래 정당한 국민의 권리를 행사한 것이며, 역시 민중의 알권리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파룬궁수련생은 도리어 중공(중국 공산당)에게 불법 노동교양, 판결을 선고받았다. 노동교양소와 감옥 등 암흑 장소에서 중공 경찰은 강제로 파룬궁수련생들에게 마음을 어기고 믿음을 포기하도록 태도를 표시하게 했고, 의지가 굳은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각양각색의 고문학대를 감행했다. 지환(地環), 지닻(地锚)이 바로 그 중의 두 가지 잔인한 형구이다.

지환 형구는, 땅위에 하나의 쇠고리를 고정해 놓는다. 그러나 일단 경찰이 악독한 마음이 나와서, 다른 형구와 지환을 결합해 사용하거나, 혹은 종류를 바꿔가면서 지환을 사용할 때면,형벌을 받는 파룬궁수련생이 감당한 고통은 말로 형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상황 하에, 악경(흉악한 경찰)은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이런 형벌을 실시할 때, 보통 두 손을 채운 뒤에 다시 지환 위에 채운다.

酷刑演示:铐地环
고문시연: 지환에 채우다

다롄시(大連市) 파룬궁수련생 딩전팡(丁振芳)여사는, 1999년 11월에 다롄구치소로 납치당한 적이 있다. 그 기간에 구치소의 소장 왕(王)씨는 차례로 두 차례나 그녀를 지환에 채운 적이 있는데, 첫 번째는 10일 동안 채우고, 두 번째는 40일 동안 채웠다. 지환을 아주 팽팽하게 박아놓아, 그녀로 하여금 머리를 들지 못하고 허리를 곧게 펴지 못하게 했으며, 손과 발은 거의 한데 채워놓았다.

이것은 일종 가장 간단하게 채워놓은 지환의 방식이다. 비교적 자주 보는 것은 또, 바로 파룬궁수련생을 지환에 채우는 동시에, 다시 다른 고문을 가하는 것이다.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허강시(鶴崗市) 둥산구(東山區) 파룬궁수련생 저우자오샹(周兆祥)은, 2005년 초에 제2구치소로 납치당했다. 악경은 그를 지환에 채워놓고 고문을 실시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구타했고, 그는 지환에 2개월 동안 손이 채워졌다. 두 발은 1.2미터 정도 되는 쇠몽둥이에 의해 벌어졌으며, 한쪽 손을 발에 채워놓아 서있지도, 눕지도 못하게 했다. 이렇게 장시간 동안 일종의 자세가 취해져 저우자오샹이 감당한 고통은 정말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도 못할 정도이다.

또 다른 지환을 채우는 잔혹한 방식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람을 뒷짐결박해서 지환에 채우는 것이다.

헤이룽장 치치하얼시(齊齊哈爾市) 파룬궁수련생 판번위(潘本餘)는 베이안(北安)감옥에 납치당했을 때, 그가 조금도 느슨해지지 않고 끝까지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해 사망시킨 악경에 대한 성토를 견지했던 이유로, 감옥에서는 일심으로 그를 죽여 입을 막으려고 생각했다. 악경은 그를 독방에 가둬 70여 일 동안 박해했다. 독방 안에서 그에게 뒷짐결박으로 지환에 채웠고, 죄수에게 구타당해 머리가 깨지고 피가 흘렀다. 그는 박해로 혈뇨하고 피를 토했다. 두 손은 뒷짐결박으로 잡아당겨져 지환에 채워졌던 까닭에 팔은 피가 통하지 않아 손목과 팔 근육마저 모두 곪았다. 팔의 뼈사이에 새살이 돋아나서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다. 맨 마지막에 판번위에게 형구를 벗겨줄 때, 그의 두 팔은 여전히 채워진 자세대로 이미 움직일 수 없었다.최고 혈압은 60이고최저 혈압은 30이었으며, 온종일 혼미해져 수시로 사망할 수 있었다.

被酷刑演折磨致奄奄一息的潘本余
고문을 당해 사경을 헤매는 판번위(潘本餘)

악경이 만약 조금만 지환을 변동하면, 형벌을 받는 사람의 몸은 핍박에 못이겨 다른 자세를 유지해야 했다.

장쑤(江蘇) 양저우(揚州) 공업직업기술학원의 여교사 장루이화(張瑞華)는 2006년에 장더우(江都)구치소에 납치당했다. 구치소 소장 리싱왕(李興旺), 교도원 쑤샤오메이(蘇曉梅)는 그녀를 영창실 안에 가뒀다. 동시에 그녀에게 물 내리는 똥오줌통 위에 앉게 하고 두 손과 두 발을 모두 똥오줌통 변두리의 지환에 채워 놓았는데, 앞가슴은 거의 다리에 붙혀지고 허리는 굽어져 바로 펴지 못했다. 두 손은 만터우(중국 만두)만큼 부어올랐고, 허리와 등 그리고 앞가슴은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으며 다리와 발은 저려났다. 이렇게 그녀를 78시간 동안 괴롭혔다.

한계가 있는, 폭로해 낸 문자 중에서, 우리는 악경이 이렇게 할 때 그녀의 하신의 옷마저도 벗겨냈을 가능성이 아주 큼을 보아내기 어렵지 않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이런 고문과 똥오줌통을 한데 연결시킬 수 있었겠는가? 그녀를 꼬박 며칠 동안이나 연속해서 학대했음이 분명하다. 이렇게 고정하면 배설하는 문제를 고려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고문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모욕인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지환 이런 고문은, 다른 곳에서는 ‘지정(地釘, 지면에 박다)’이라도 부른다. 만약 지환의 방식을 다르게 변환해서 다시 일부 다른 형구를 보탠다면, 그곳은 바로 또 다른 일종의 고문으로 변해 버린다. 톈진(天津) 빈하이(濱海)감옥, 이를테면 예전의 강베이(港北)감옥에서는, 지극히 잔인한 고문이 있는데 ‘지닻’이라고 부르는데, 바로 이것으로 변종되어 온 것이다.

전 톈진시 철도 제3조사측량 설계원 공경처(工經處) 건설비(造價) 엔지니어 저우샹양(周向陽)은, 톈진 강베이감옥에서 바로 이런 고문을 당한 적이 있다. 이런 유형의 지닻 고문은 ‘독거’와 한데 결합해 사용했기에, 또 ‘독거 지닻’이라고도 부른다.

周向阳
저우샹양(周向陽)

이른바 ‘독거’는 영창실의 큰 방안 안에다 몇 개의 작은 방안의 간격으로 죽 늘어 놓았다. 모든 ‘독거’는 길이 3미터, 너비1미터이고 높이는 1.6미터로, 창문이 없이 문만 있었을 뿐, 어두침침하고 축축했으며 got빛이 들어오지 못했다. 지붕에는 24시간 동안 전등을 켜놓았고, 지면에는 한 편에 2미터 길이로 된 곳에 대략 높이가 2~3센티미터인 나무판자를 펴놓았으며, 다른 한 편은 시멘트바닥이었다. 형벌을 당하는 파룬궁수련생은 나무판자 위에 반듯하게 누워서, 두 팔은 ‘V’자형으로 밖을 향해 폈는데, ‘독거’의 너비가 1미터밖에 되지 않았던 원인으로 팔을 곧게 펴지 못한 채 손은 지환에 거꾸로 채워졌다. 그리고 무릎 이하의 아랫다리부위와 발은 시멘트바닥에 드리웠는데 족쇄가 달려있었다. 족쇄는 지면에 채워져 손과 발은 활동할 수가 없었다. 매일 이렇게 ‘닻’에 24시간 동안 채워졌을 때, 허리와 팔은 참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웠으며, 지면에 닿인 발뒤축마저도 닿아 문드러졌다. 이런 고통은 강압 전기봉으로 조성된 상해를 훨씬 초과했다. ‘독거’안에는 일반적으로 형사죄수 세 명이 바오자(包夾)감시를 해서, 끊임없이 ‘닻’ 고문을 당하는 파룬궁수련생을 괴롭혔다. 그리고 또 감옥 경찰은 ‘독거’밖에서 감시하고 있었는데, 만약 안에서 동정이 없으면 곧 바오자 죄수에게 말했다. “도대체 하겠느냐 안하겠는냐? 형기를 줄이고 싶지 않냐? 줄이고 싶지 않으면 나가라.” 어느 형사죄수가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한 수단이 만약 감옥 경찰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 바꾸거나 혹은 감점당하는 처리를 받았다. 때문에 죄수는 이러한 압력과 형기를 줄여주는 유혹하에서 끊임없이 갖은 방법을 다해 파룬궁수련생을 학대했다.

저우샹양은 이전에 가족에게 강베이감옥에 감금당해 ‘독거 지닻’박해를 당한 상황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독거 안에서 저는 땅위에서 ‘닻’고문을 당했는데, 세 명의 죄수가 저를 지키고 있었어요. 한 사람이 저의 머리 위의 부분에 앉아서 힘껏 저의 손을 밟았어요. 저의 머리는 그들의 사타구니 밑의 두 다리 사이에 놓여 있었는데 그 자체가 바로 모욕성질을 띠고 있었어요. 다른 한, 두 명의 형사죄수는 저의 발 밑 부분에 앉아서, 끊임없이 저에게 파룬따파를 모독하는 문장을 읽어 주었으며 늘 때리고 욕하면서 모욕했어요. 심지어 어떤 죄수는 나를 위협해서, 죽여버리겠다고 말하면서 힘껏 저의 다리를 내리눌렀어요. 아랫다리의 절반은 허공에 드리워졌던 원인으로 참기 어려운 심한 고통을 느꼈어요. 감옥 경찰 쑹쉐썬(宋學森)은 독거 밖에서 감시하면서, 바오자가 끊임없이 방법을 다해서 저를 괴롭히도록 유혹했어요. 저는 감당능력이 거의 극한에 달했어요. ‘지닻’에서 내려 왔을 때는 허리를 줄곧 곧게 펴지 못했는데, 몇 달 동안이나 구부러졌어요.”

이 감옥에는 또 일종의 ‘지닻’고문이 있는데 더욱 악독했다. 이런 고문은, 철판으로 만들어진 관통(管桶)으로 만들어졌는데, 박해를 당한 사람의 두 다리부터 둔부에 이르기까지는 마치 말뚝처럼 곧게 땅위에 고정되어 두 다리는 굽히지 못하게 되었다. 다시 수갑으로 두 손을 땅위에 채워놓아 박해를 당하는 사람은 핍박으로 허리가 땅위로 굽어졌으며 다리는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이런 고문은 사람에 대해 괴롭히는 극한은 두 시간인데, 리시왕은 뜻밖에 악경에 의해 ‘닻’에 10여 시간 동안 고문을 당했다. 밤중 0시까지 고문을 당해서야, 그가 이미 사망되었음이 발견되었다. 리시왕이 박해당한 시간은 바로 올해 7월 29일이다.

중공의 고문은 몇 가지 종류가 있는가? 얼마나 잔혹할까? 우리는 하나의 지환 고문과 그 변이된 고문에서 보면, 고문의 많고 적음과 모든 고문의 악독함은 모두 중공의 독성과 밀접하게 하나로 연계되어 있다. 중공의 고문은 바로 중공의 악독한 본성의 체현이다.

문장발표: 2011년 08월 18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8/18/2455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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