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지린성보도) 조선족 파룬궁수련생 황규희(黄奎喜)는 지린성(吉林省) 왕청진(汪清縣) 왕청가(汪清街)에서 살고 있는, 왕청 임업국 고등학교 수학교사이다. 황규희는 2004년에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아, 주타이(九臺)노동교양소에서 고문으로 괴로움을 당했다. 황규희는 2009년 9월 23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는데, 향년 69세였다.
1999년 3월 9일, 황규희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1999년에 중공(중국 공산당)의 박해가 발생한 뒤, 그는 많은 파룬궁수련생들과 마찬가지로 거짓말에 속지 않고 수련을 견지했다. 2002년 3월 6일에 연길시(延吉市)공안국, 국가보안대대, 610(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성립한 불법 기구로 공안, 검찰, 법원 위에 군림함)의 3명의 악경(흉악한 경찰)에 의해 자기 집에서 연길시유치장으로 납치당했다.
2004년 5월 13일, 세계 파룬따파일에 황규희는 붓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오늘 5월 13일은 세계 파룬따파일입니다!’를 써서 이 표어를 글자를 밖으로 향하게하고 자신의 집 창문에 붙여 세상 사람들과 이 기쁜 날을 함께 축하하려 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연길시 북산(北山)파출소의 악경이 집안에 들이닥쳐, 황규희를 연길시 북산파출소로 납치했다. 그 후 연길시구치소로 옮겨갔는데, 총 38일 동안 불법 감금박해를 당했다.
2004년 6월 22일, 황규희는 1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아 주타이노동교양소로 보내졌다. 황규희는 이곳에서 각종 고문 및 학대와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막 노동교양소에 도착하자, 악경은 강제로 황규희에게 이른바 ‘결렬서’를 쓰게 했으며, 쓰지 않자 신체가 건장하고 힘이 넘치는 7~8명의 젊은 교도관들이 덮쳐 황규희의 두 팔을뒤로 묶어놓고, 그를 땅위에 넘어뜨린 뒤 힘껏 그를 밟으면서 혹독한 구타를 가하기 시작했다. 당시 황규희는 큰 소리로 “나는 66세 노인이요, 당신들이 이렇게 무리하게 노인을 대함은 옳지 않소. 장쩌민은 매국노인데 그것을 함께 따라 가면 좋은 결과가 없을 것이요. 누가 도리가 있다면 나와 시비를 가르오.”고 외쳤다. 이들 악경들은 황규희와 무슨 시비도 가려내지 못하게 되자, 곧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꼬박 6일 동안 그에게 잠을 재우지 않았다. 어느 하루는 반 냥이 좀 넘는 옥수수떡만4개 주었을 뿐, 뜨거운 물 대신 냉수만 마시는 것을 허락했다. 이로 인해 황규희의 체중은 약 20kg정도 줄어들었다.
악경은 또 황규희에게 좌반(坐板)에 앉혔는데, 어느 하루는 18시간 동안(아침 4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앉혔다. 그 기간에 만약 다리를 조금만 움직여도 결렬서를 쓰도록 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곧 무참하게 때려죽였을 것이다. 황규희는 강제로 6개월 동안 좌반에 앉았는데, 둔부마저 너무 앉아서 곪았고, 바지는 고름에 붙어서 벗지 못하게 되었다. 그들은 여전히 담배꽁초로 그를 지졌다. 그곳에서 황규희가 금강신처럼절대 움직이지 않은 이유로, 악경에게 ‘엄한 관리 중 엄한 관리’를 당했다. 이렇게 단독으로 4층에 갇혀, ‘후랑’(護廊, 복도에서 질서를 책임진 죄수)들을 시켜 엄밀한 감시를 감행하게 했다.
8월 말의 어느 하루, 황규희는 술에 만취된 악경 두 명에게 불려갔다. 당시 그는 곧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이 때문에 더욱 자신의 정념을 확고히 했으며, 동시에 강대한 정념을 발해냈다. 악경은 황규희를 데리고 5층의 한 비밀실로 들어갔다. 방안에 들어서자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풍겨왔는데, 벽 양 편에는 흉기가 가득 걸려 있고 땅위는 온통 피 흔적이었다. 황규희는 첫눈에 사악의 비열한 수법을 간파하고, 엄하게 꾸짖었다. “당신들 이건 뭘 하는 짓이요? 당신들도 사람이요? 당신들은 나에게 뭘 하려 하오? 당신들이 나를 죽이기 전에 나는 먼저 당신들 두 사람을 가만 놔두지 않을거요!” 악경들은 그를 벽에 기대앉게 했지만, 그는 그들의 어떠한 지시도 듣지 않았다. 두 악인이 잠이 들어서야 황규희는 이 재난을 피하게 되었다. 황규희가 복도에 나타났을 때, ‘후랑’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당신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귀신입니까?” 황규희는 “나는 당연히 사람이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묻지?”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얼굴이 창백해져 두근거리며 말했다. “예전에 많은 사람이 들어간 적이 있지만, 한 사람도 살아 나오지 못했습니다. 원래 노동교양소에서 사람을 죽일 때면 곧 이 비밀실로 보냈는데, 모두 만취된 악경이 파룬궁수련생을 이 비밀실로 끌어갔던 것이다.
9월 말의 어느날, 그 두 흉수는 다시 한 번 술에 취해 황규희를 불러냈다. 그중 한 악경은 황규희가 협조하지 않자, 그를 강제로 복도로 밀고갔다. 복도에 도착해서 보니, 다른 한 악경의 손에 물에 흠뻑 젖은 솜옷이 들려 있었고 물이 여전히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5층에 도착해서 황규희는 사악의 음모를 폭로했다. “당신들은 무엇 때문에 이 솜옷을 물에 푹 잠기게 했지? 나를 때려눕힌 뒤에 이 솜옷으로 나의 머리를 감싸서 나를 질식해 죽이려고 그러지?” 황규희는 말하면서 솜옷을 빼앗아 내서, 그 흉수의 머리와 몸위에 던졌는데, 흉수는 몸부림치면서 한참이나 벗어나려고 애썼다. 그 흉수의 몸에서 많은 물이 떨어져 내렸고 한차례의 생사 대결을 거쳐, 확고한 파룬궁수련생 앞에서 패할 수밖에 없었다.
11월의 어느 하루, 이 두 흉수는 또 황규희를 찾았다. 보아하니 이번에는 주도 면밀한 계획을 한 것 같았다. 말하는 것마저도 모두 암호로 했다. 그것들은, 장쩌민이 3개월 전에 파룬궁을 없애라고 했으며, 하나도 남기지 말라고 명령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이곳에서 이미 몇 천 명의 확고한 파룬궁수련생을 때려 죽였는데, 당신을 때려죽인 뒤에 골회를 뿌려버리면 일이 끝난다고 위협했다. 복도로 밀려간 뒤, 과장 정(鄭)모모와 교도관 쑨(孫)모모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5층에 도착한 뒤, 곧 황규희를 비밀실로 밀어갔다. 두 흉수도 따라 들어와서 ‘쾅’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여전이 황규희에게 벽에 기대앉게 했다. 그가 순종하지 않자, 그중의 한 흉수는 곧 노인을 안아서 벽 밑에 내려놓았다. 황규희는 여전히 일어나자, 다시 한 번 안아서 벽 밑에 내려놓은 뒤, 다른 한 흉수는 두 손을 윗 침대 변두리의 가림대를 잡고 두 발로 황규희를 사납게 걷어찼다. 그렇게 큰 사나운 기운은 보통 노인의 머리를 벽에 부딪치게 한 다음 기회를 틈타 살인을 함이 가능했다. 그러나 황규희는 다만 몸이 앞으로 가볍게 기울여졌을 뿐이었고, 그 흉수는 도리어 무겁게 땅위에 뿌리쳐져 끊임없이 아프다고 소리쳤다. 복도에서 동정을 살피던 과장 정모모는 즉시 들어와서 “끝내세요. 됐어요. ‘결렬서‘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고 말했다.
황규희가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노동교양소에서는 모두 그에 대해 수갑을 채우는 것을 멈춘 적이 없다.
2006년 5월 11일, 황규희는 다시 한 번 무고하게 연길시구치소로 납치당했다. 당시 그는 한창 아내와 함께 외지에 있는 둘째 딸의 혼례식(5월 20일은 결혼일임)에 참가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무고한 납치로 딸의 결혼식에 참가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또 40일 동안의 불법 감금박해를 당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노동교양소로 보내려고 했다가, 황규희가 심각한 고혈압과 폐암현상이 나타났던 이유로 그제야 노동교양소로 보내지 않았다.
황규희가 당한 박해는 보기만 해도 몸서리치게 했으며, 지극히 처참했다. 노인이 집으로 돌아갔을 때는 이미 피골이 상접해져 온몸에 기운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걸핏하면 경찰이 교란을 하여 노인으로 하여금 편안한 만년을 보낼 수 없게끔 해 건강을 회복하기 아주 어려웠다. 맨 마지막에는 박해 중에 세상을 떠났다.
문장발표: 2011년 08월 18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8/18/24554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