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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로 정신이상이 되었던 위이민, 억울하게 세상을 뜨다 (사진)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후베이보도) 2011년 8월 5일 아침, 중공(중국 공산당)의 박해로 8년 째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던 우한시(武漢市) 파룬궁수련생이자, 중난(中南)재경대학의 교우 위이민(餘毅敏)은 고통 속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나이 겨우 49세였다. 위이민은 이전에 다섯 차례 중공 당국에게 납치돼 3번이나 세뇌반에 갇혔고, 1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 선고를 당한 적이 있다. 그리고 약물을 강제 주입하는 박해를 당해 정신이상이 되었었다. 박해 기간 중 위이미는 직장으로부터 불법 해고를 당했고, 가정이 파괴되었고 장기간 수입원이 없어 가난과 병고에 시달려야 했다.

遭迫害之前的余毅敏
박해당하기 전의 위이민(餘毅敏)

被迫害精神失常后的余毅敏
박해로 정신이상이 된 후의 위이민(餘毅敏)

대법은 그녀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었다

위이민은 1962년 4월 13일 출생으로, 중난 재경대학을 졸업했으며 전 후난성(湖北省) 전력건설 제2회사(電力建設第二公司)의 회계였었다. 그녀는 천성이 온화하며 마음씨가 선량했다. 갓 30세가 되던 90년대 초 위이민은 머리속에 혹이 자라는 병에 걸려 수술을 받았는데 몸이 아주 허약해져 완전히 약물에 의지해야 했다. 출근할 수도 없어서 가정에 비교적 큰 경제적 부담을 가져왔으나 치료비보다는 질병의 고통으로 사는 게 죽는 것만도 못한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었다.

1996년, 위이민은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眞ㆍ善ㆍ忍’의 가르침을 충실이 지키며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했고 건강도 좋아졌다. 또 남과 잘 지내고 선량했으며 이익 앞에서도 다투지 않았다. 모순이 생기면 먼저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았고 다른 사람을 선하게 대했으며 불평하지 않았고 근면 · 성실하였다. 동료들도 모두 그녀를 칭찬했다.

위이민의 남편은 그녀가 파룬따파(파룬궁)를 수련한 후, 정신적 · 육체적으로 큰 변화가 있는 것을 보고서 그도 따라서 파룬궁을 연마했다. 오래지 않아 자신이 앓던 폐결핵도 치료 받지 않고도 스스로 완쾌되었다. 시부모는 아들, 며느리가 변화되고 몸도 좋아졌으며 또 부모님에 대해서도 더욱 관심하고 자상하게 돌보는 것을 보고 감동하여 그들도 수련하게 되었다.

위이민은 대법이 그녀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었으며, 그녀의 가족에게 건강을 가져다주었음을 깊이 알았다. 매번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위이민 부부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단체 법공부에 참가했고, 도처로 다니면서 대법을 널리 알렸다. 일가족은 대법을 얻은 기쁨 속에 잠겨있었다.

다섯 차례 납치당하고, 몇 번이나 세뇌반에 갇히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뒤인 1999년 12월 8일 위이민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베이징 경찰에 의해 쳰먼(前門)공안분국으로 납치당했다. 경찰은 뒷짐결박으로 수갑을 채웠는데 살 속까지 패여 들어갔다. 그후 우한시 장한구(江漢區) 완쑹위안(萬松園)파출소 경찰에 의해 우한시 부녀노동교양소(婦教所)에서 보름 동안 불법 구류를 당했다.

酷刑演示:背后反铐
혹형시연:뒷짐결박으로 수갑 채우기

2000년 정월 16일, 우한시 장한구공안국 ‘610’은 각 파출소에 지시를 내려, 또 한 차례 대규모로 파룬궁수련생을 불법 체포했다. 완쑹위안 파출소 소장 저우즈웨이(周志衞), 관할 구역 민경 뤄융(羅勇), 탕솽신(唐雙新) 등 여러 명의 악경들은 위이민의 집에 들이닥쳐 강제로 그녀를 끌어다가 장한구 세뇌반에 가뒀다.

2001년 음력 12월 28일, 위이민이 가족과 함께 한창 설맞이 준비하고 있었는데 완쑹위안 파출소 소장 저우즈웨이가 한무리의 악경들을 거느리고 위이민의 집에 뛰어들어와 다짜고짜로 그녀를 강제로 파출소로 납치했으며 두 손에 수갑을 채웠다. 위이민은 다시 한 번 장한구 세뇌반에 납치돼 박해를 당했다.

2001년 10월 말, 위이민은 완쑹위안 파출소 악경에 의해 파출소로 끌려가 박해를 당했다. 그녀는 지혜롭게 파출소를 벗어났으나 핍박에 못이겨 유랑생활을 했는데 집이 있어도 돌아갈 곳이 없었다. 완쑹위안 파출소 소장은 악경을 거느리고 도처에서 위이민을 수색했으며 동시에 신고자에게 후한 상금을 주었다.

파출소에서 정념으로 벗어난 뒤, 위이민은 그날로 베이징으로 가서 현수막을 펼치다가 베이징 경찰에게 납치돼 베이징 옌산(燕山)구치소에 17일 동안 불법으로 갇혔다가 단식으로 항거한 후 석방되었다.

불법적인 노동교양과 강제 약물 주입 박해를 당하다

한번은 진상전단지를 배포하다가 위이민은 여섯 번째로 납치돼 우한 허완(何灣) 마약중독자 재활원에 수감됐고 1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재활원의 사악한 무리들을 사주해 24시간 동안 번갈아가며 삿된 말과 강압으로 그녀를 전향시키려 했으나 위이민은 그들을 아는 채도 하지 않았다. 악경은 곧 마약범을 교사해서 그녀를 혹독하게 구타하고 비틀고, 잠을 못 자게 하는 등 고문을 가했다. 그러나 그녀는 시종 사부님을 굳게 믿었고 대법 수련에 대해 확고하였다. 악경도 어쩔 수 없었는지 전향시키는 것을 포기하고 장시간 노역을 시키는 것으로 그녀를 괴롭히고 박해했다.

酷刑演示:毒打
혹형시연: 혹독한 구타

2002년 11월, 위이민의 불법적인 노동교양 기한이 만료되었는데도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악경은 도리어 직접 장한구 세뇌반으로 납치했다. 이곳 세뇌반에서 위이민은 약물을 강제 주입하는 박해를 당했는데 당시는 반응이 그리 크지 않았지만 그녀는 천천히 기억을 잃게 되었고 두 발이 아픈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전혀 걸을 수 없게 되었다. 또 악도들은 그녀의 머리를 힘껏 벽에 부딪치고 야만적으로 구타했다.

酷刑演示:撞墙
혹형시연: 벽에 부딪치기

위이민을 박해한 직접적인 책임기관과 책임자들은 장한구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장한구 ‘610’, 장한구 공안분국, 완쑹위안 파출소, 완쑹위안 가도사무실 관련자들이다.

박해로 정신이상이 되고, 가정이 파괴되다

위이민이 얼다오펑 세뇌반에서 나와 2003년 음력 섣달 그믐날에 부어오른 허약한 몸을 끌고 떠난 지 이미 오래된 집 문어귀에 서있었다. 하루 밤을 기다렸다가 손으로 가볍게 문을 두드렸지만 문은 꽉 닫힌 채 조금의 기척도 없었고 살을 에는 찬바람만 얇은 옷을 입은 그녀를 스쳐갈 뿐이었다. 어두운 밤 수척한 얼굴 위로 한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날이 밝기 전 그 자리를 떴지만 며칠 후, 그녀의 남편 왕쓰칭(汪四清)은 이혼서류에 서명하게 했다.

위이민은 몇 년 동안이나 구치소에서 부녀노동교양소로, 세뇌반에서 허완 노동교양소로, 마약중독자 재활원으로 끌려 다니며 비인간적인 박해를 당했다. 그녀 부부는 천 여 날을 함께 할 수 없었고 나이 어린 아들은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으며 끝내는 가정이 파괴되었다.

위이민은 박해당한 기간 중 근무 직장으로부터 불법적인 해고를 당했으며 장기간 수입이 끊겼다. 뿐만 아니라 중공의 잔혹한 탄압으로 행복하던 가정은 파괴되었고, 돌아갈 집도 없게 되었다. 이런 충격에다 독극물을 주사당한 박해로 인해 위이민은 정신이 이상해졌고 걸을 수도 없게 되었다. 땅위를 기어 다녀야 했고 생리가 와도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 온통 피범벅이 되었는데 바지, 침대 등 깨끗한 곳이 조금도 없었다.

파룬궁수련생이 도와주다가 납치당해

처참한 위이민을 보고도 사회구역 서기 차오신윈(曹新雲)은 위이민이 박해당한 사실은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도리어 그녀가 파룬궁을 연마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모독하고 교란했다.

어느 파룬궁수련생이 위이민을 찾아와 보살펴 주었고 경제적 도움과 함께 그녀가 건강을 회복하도록 힘을 다해 도와주었다. 수련생은 그녀를 양로원에 있게 했는데 위씨는 조금만 정신이 들면 법공부를 하고자 갈망했다. 이 두 명의 수련생은 되도록 빨리 그녀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그녀와 함께 법공부를 했는데 이 수련생들도 도리어 중공에게 납치당했다.

위이민은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했던 선량한 회계사로 이처럼 중공의 박해로 결국 생명을 잃었다. 이 비극은 누가 만들었는가? 누가 시비(是非)를 뒤바꾸었는가? 누가 윤리도덕을 상실한 것인가? 위이민의 불행은 중국의 사악한 공산당 깡패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고 처참하게 인권을 짓밟은 생생한 고발이다.

박해에 참여한 기관 및 사람들:

장한구 정법위 서기:구젠차오(辜建橋)

장한구 610사무실 주임:샤오궈슝(肖國雄)

장한구610의 책임 두목:구젠차오(顧建橋)

장한구 세뇌반 두목:후자샹(胡家祥)(위이민을 박해한 원흉)

취선(屈伸) 정룽(鄭容)

완쑹가 사무처 당위원회 사무실

완쑹위안 파출소

주관 박해 소장:저우즈웨이(周志衞)(지금 이미 공항파출소로 전근돼 소장을 맡았음)

완쑹사회구역 서기:차오신윈(曹新雲)

완쑹 칭쑹리(青松裏) 관리 구간 경찰:뤄융(羅勇)

경찰:탕솽신(唐雙新)

허완 마약중독자 재활원

후베이성 전력건설제2회사 총지배인:왕신궈(王鑫國) (2000년에 위이민의 직업을 해고한 직접적인 책임자)

문장발표: 2011년 08월 12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8/12/24524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