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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동딸이 박해로 사망한 후난성 샹화이샹, 억울한 7년형 받아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후난성 보도) 후난(湖南) 천저우(郴州) 파룬궁수련생 샹화이샹(向懷香, 여-向槐香이라고도 부름)은 2010년 7월 19일에 중공(중국 공산당) 경찰에게 납치 및 가택수색을 당했다. 11월 5일부터 2011년 4월 7일에 4차례나 불법 재판을 당했으며 결국 ‘법률실시를 파괴했다’는 죄명으로 7년 판결을 선고받았다. 게다가 현금 만 7천 1백 위안 및 컴퓨터, CD-RW, 대법자료 등 합법적인 개인 재물을 강탈당했다.

向怀香
샹화이샹

샹화이샹 노인의 외동딸 천리쥐안(陳麗娟)은 이전에 파룬궁을 위해 청원하러 간 적이 있다. 천저우구치소에서 불법 감금당한 기간에 강압적인 시달림으로 정신이상이 됐는데, 집으로 돌아온 뒤 치료를 받아도 효과가 없었다. 결국 2004년 11월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샹화이샹은 1958년 8월 13일에 후난성 헝둥현(衡東縣)에서 출생했다. 후난 재무·회계중등 전문학교를 졸업한 천저우시 건설은행 퇴직간부로, 집은 천저우시 베이제(北街) 91호다. 건설은행에서 근무한 기간에 여러 차례 시(市)와 성(省)급 ‘선진 데이터 근로자’로 평가받았고, 근무하고 있는 업무부서도 중앙급 선진 데이터 업무실로 평가 받았다. 1996년 4월, 그녀는 자신의 신체를 많고 무거운 업무에 적응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소개 하에 파룬따파(파룬궁)를 수련했다. 파룬궁의 신기한 효과는 그녀로 하여금 병고와의 인연을 끊게 했다. 이로부터 다시는 병으로 앓은 적이 없었고 또 주사를 맞고 약을 먹은 적이 없었다. 더욱 행운스러운 것은 그녀가 이로부터 인생의 진정한 의의를 알게 됐고, 우주 특성 ‘진선인(眞ㆍ善ㆍ忍)’에 동화된 것이다.

그러나 공산당의 하늘을 반대하고, 땅을 반대하고, 인간을 반대한 사악한 사상은 일체의 바른 믿음과는 적대적이었다. 그러므로 중공은 제멋대로 굴고 전혀 거리낌이 없이 파룬궁을 탄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샹화이샹 노인은 다른 파룬궁수련생들과 함께 진상 알리기를 시작했으며 한차례씩 박해를 당했다. 2004년 10월 15일과 2007년 2월 7일에 샹화이샹은 대법수련에 확고하고 진상자료를 배포한 원인으로, 천저우시 쑤셴현(蘇仙區)공안분국에 의해 행정구류를 두 차례 당했는데, 매번마다 보름 동안 구류를 당했다. 파룬따파 수련을 견지한 것 때문에 핍박에 못 이겨 두 차례나 퇴직 당했고 1만 2천 위안의 벌금을 부과 당했다.

중공공안 경찰이 한 무리 노부인들을 납치 및 강탈

연세가 이미 육순인 샹화이샹은 2010년 7월 19일 오후에 납치당했다. 천저우 중공 610, 쑤셴구 공안분국 국가보안대대 대대장 랴오빙강(廖秉剛)은 한 무리 경찰들을 인솔해서 샹화이샹 및 그녀와 함께 파룬궁서적을 읽은 적이 있던 무려 12명 되는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했는데, 80세쯤 되는 노인 4명을 포함해서다. 한 무리 젊은 경찰들은 불법적으로 집안에 뛰어들다가 노부인들임을 보자 ‘어!’하고 소리를 내서방안에서 물러나 되돌아갔다.

악경(흉악한 경찰) 랴오빙강이 ‘이리 와!’하고 큰 소리를 지르자 이 경찰들은 다시 한 번 집안에 들어서서 모든 파룬궁서적을 강탈했으며 아울러 현금 1천여 위안을 강탈해갔다. 동시에 경찰은 여전히 샹화이샹 집에서 컴퓨터 등 개인 재물을 강탈해갔는데, 족히 한 차량만큼 실었다. 동시에 현금 1만 5천 위안을 강탈했다.

경찰은 12명 노인 파룬궁수련생을 난타(南塔)파출소로 납치했다. 몇 시간 후, 랴오빙강은 아주 ‘상냥’하게 종이 한 장을 꺼냈는데 위에는 파룬궁수련생들이 함께 연공하고 법공부를 했다는 글이 씌어져 있었다. 그리고는 “당신들이 서명하기만 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고, 저도 결과를 보고하기가 좋습니다”고 말했다. 모두가 이름을 서명하자 랴오빙강은 태도를 바꾸어 말했다. “미안합니다. 이것은 저의 근무입니다.“ 저녁 8시 경에 이르러서야 80세쯤 되는 4명 노인을 풀어주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구치소와 유치장으로 보내져 박해를 당했다.

2010년 8월 13일, 악경 랴오빙강 등은 이른바 증거를 나열해 쑤셴구검찰원 과장 위융중(餘永忠)에게 보고해 불법 체포를 실시했다. 11월 5일부터 2011년 4월 7일까지, 샹화이샹은 쑤셴구 법원에 의해 4차례나 불법 재판을 당했다. 법원에서는 후난 우링(五嶺)변호사사무소의 변호사 샤오즈밍(肖志明)과 류샤오룬(劉曉閏)을 변호인으로 지정했는데, 그들은 모두 중공이 이미 정한 박해 양식에 따라 형식적으로 변호했다.

법원장 황젠가오, 공산당 도와 샹화이샹에게 7년 불법 판결 선고

이튿날에 개정해 심리해도 결과가 없었는데, 그때는 2011년 음력설까지 아직도 며칠 시간이 있었다. 샹화이샹의 남편 천즈챵(陳志强)노인은 얼음장 같은 찬바람과 눈을 맞으면서 공안국, 검찰원, ‘610사무실’과 법원으로 걸어가 그의 아내가 집으로 돌아와 설을 쇠게 석방해 달라고 요구했다. 관련 업무인원은 그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재삼 따져 보고는 모두 ‘병보석’을 해줄 것을 비준하고 허락했다.

그러나, 새로 부임한 쑤셴구법원 원장 황젠가오(黃建高)는 자신의 앞날에 영향 줄까 두려워, 먼저 가족에게 관련부서로 가서 ‘병보석’을 동의한다는 수속을 밟고정식 서명하도록 요구했다. 수속을 다 밟은 뒤에는 또, 협의해 보아야겠다고 말했다.협의할 때 화를 크게 내면서 아랫사람들이 머리가 너무 단순하다며 꾸짖었다. 가족이 다시 와서 사람을 석방해달라고 했을 때 그는 사건을 상급에 보고해야 하기에 이틀 후에 답을 주겠다고 말했다. 이틀 후인 바로 음력 섣달 그믐날에 천즈챵 노인이 재삼 문의했는데, 사람을 풀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노인은 억지로 비분을 참으면서 홀몸으로 구치소로 와서 일부 과일과 물품을 사서 감옥 경찰에게 넘겨주어 아내에게 전해주도록 했다. 폭죽소리가 요란하고 사람들은 모두 온 집안이 단란하게 모여 않았다. 그러나 몰아치는 차가운 바람 속에서 노인은 구치소 담장 아래에 서서 아내가 갇힌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는데, 비참한 그림자는 한 폭의 조각한 목판화 같았다. 사람들은 이 정경을 보고 모두 깊은 탄식을 했다.

2011년 3월 7일 오전, 쑤셴구 법원 원장 황젠가오의 조종 하에, 쑤셴구법원 원장 위융중(餘永忠), 법원 재판장 황융(黃勇), 재판원 셰핑잉(謝萍瑛), 배심원 레이스룽(雷世榮), 서기원 저우판(周帆)은 샹화이샹에 대해 세 번째 비밀 재판을 감행했다. 샹화이샹은 압송돼 차에서 내릴 때,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쳤는데, 때마침 다른 사람이 듣고 즉시 그녀 남편에게 급히 와서 방청하도록 알려 주었다. 지정된 변호사 류샤오룬(劉曉閏)은 현장에서 보조 역할을 해서 변호했다. 1개월 후, 네 번째로 개정해 샹화이샹에게 유기형 7년을 선고했는데, 이른바 죄명은 ‘법률실시를 파괴했다’는 것이다.

파룬따파는 정법으로, 세계 백 십여 개의 국가에 전해져 있으며, 어떠한 국가에서도 비난을 받지 않고 칭찬만 받고 있다. 샹화이샹이 중국의 어느 조례 법률의 실시를 파괴했는지는 모른다. 만약 정말 노인을 모함하려고 ‘법률실시를 파괴했다’는 말을 했다면 그 이른바 ‘법률’도 꼭 중공의 인성을 상실한 사악한 법일 것이다.

문장발표: 2011년 08월 10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8/10/2451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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