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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징전, 생전에 노동교양소서 극심한 괴로움 당해(사진)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후난보도) 후난(湖南)성 위안장(沅江)의 농촌 부녀자 차오징전(曹靜珍)은 후난성 주저우시(株洲市) 바이마룽(白馬壟) 여자노동교양소에서 잔악무도한 학대, 여러 차례의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악도들은 더러운 양말로 그녀의 입을 막았고 넓은 테이프로 입을 봉했으며, 두 손을 거꾸로 채우고 무차별 폭력을 가했다. 그리고 강압 전기봉으로 충격을 가했는데 내장이 모두 구타로 상처를 입어서 구토와 배설물에 전부 농혈이 보였다. 결국 2001년 10월 25일에 박해로 사망했는데, 향년 52세였다.

曹静珍
차오징전(曹靜珍)

차오징전은 1949년 12월 27일에 출생한 후난 위안장현 마궁푸향(馬公鋪鄕)의 농촌 부녀자로, 1996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해 몸이 건강해졌다. 1999년 12월 18일에 다른 파룬궁수련생들과 함께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서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했다가 베이징 악경(흉악한 경찰)에게 무차별폭력을 당했다. 한 악경이 감옥 안으로 걷어차 들여보냈는데, 몸 위에 지녔던 대법서적이 튀어 나왔다. 그녀는 대법서적을 보호하다가 악경과 수감자에게 손발을 밟힌 동시에 구타로 온몸이 상처투성이 됐다. 4~5일이 지난 뒤, 현지 공안국에 의해 원래 고향으로 납치돼 돌아왔다. 현지 구치소에서 일주일 동안 수갑과 족쇄에 채워져, 17일 동안 학대를 당한 뒤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酷刑演示:拳打脚踢

고문 시연: 무차별 폭력

2000년 3월, 1백 명을 넘는 파룬궁수련생들은 현지의 한 주차장에서 단체 연공을 했다. 중공 악경은 차오징전을 납치하고, 한 바퀴 빙 에워싸고 죽도록 때려 그녀의 콧마루와 치아를 부러뜨려 놓고 온몸에 상처를 입힌 동시에 구치소로 납치해 고문학대를 가했다. 족쇄와 수갑을 채웠고, 먹지도 마시지도 자지도 못하게 했으며, 30일 이후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로부터 집안은 평안한 날이 없었다. 현지 공안 악경은 늘 그녀 집으로 가서 교란했고, 여러 차례 불법 가택수색을 감행했다. 집에 사람이 있든지 없든지 상관하지 않은 채, 대법 서적과 녹음기 등 개인 물품을 강탈해갔다. 그녀는 2000년 6월 어느 하루 자기 집에서 단체로 법공부하고 연공을 하다가, 110 경찰에게 구치소로 납치당했고 어떠한 사람도 면회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몇 달 이후, 차오징전은 바이마룽 노동교양소로 납치돼 2년 불법 노동교양을 선고받았다.

2001년 정월 초, 모든 파룬궁수련생들은 사악에 협조하지 않고 파룬궁사부님의 경문을 큰소리로 외웠다. 노동교양소의 악경은 놀라서 완전무장한 특수경찰을 동원해 박해를 감행했다. 파룬궁수련생을 엄관대에 가둬서 매달기 고문, 세워두기 고문과 쭈그려 앉히기 고문을 가했으며 잠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동시에 전기봉으로 전기충격을 가하는 등 고문학대를 가했다.

酷刑演示:吊铐

고문 시연: 매달기 고문

차오징전은 일어나서 악경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이들 좋은 사람들을 이렇게 대하지 마세요. 사람의 심장은 모두 살로 되어 있어요.” 말이 막 끝나자마자 몇 명 악경에게 강압 전기봉으로 전기충격을 당했다. 그녀는 충격으로 땅위에서 마구 뒹굴었는데 줄곧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충격을 가했다. 그 후 1.8미터의 길이에 0.5미터의 너비인 음침하고 축축한 영창실 안으로 들려갔다. 그리고 두 손을 거꾸로 철문 위에 채웠는데 얼마나 오래 동안 채웠는지는 모른다.

酷刑演示:电棍电击
고문 시연: 전기봉으로 전기충격하기

영창실에 갇혔을 때, 특수경찰대대의 대대장 탄샹쳰(譚湘謙)을 우두머리로 한 악인들은 차오징전의 두 손을 뒷짐결박으로 철문위에 채웠다. 그리고 힘껏 가죽구두로 걷어차고 주먹으로 그녀를 구타했다. 그 당시 7대대 대대장을 맡은 딩차이란(丁彩蘭)은 “맞아 죽어도 싸다”고 말했다. 특별히 남자 악경 샤오(肖)[별명은 샤오바(肖疤)라고 불렀는데, 얼굴에 흉터가 있었음]를 우두머리로 한 몇몇 악경들이 그녀를 무차별 구타했다. 당시 차오징전은 구타로 갈빗대가 3대가 부러지고, 위장에 대출혈이 생겼으며 기절했다. 그러나 악경은 거들먹거리면서 떠났다. 시간이 얼마 오래 동안 지났는지는 모르는데, 한 당직을 선 한 죄수가 많은 면적으로 땅 위에 피범벅인 것을 보고 그제야 사람을 불러와서 차오징전을 병원으로 보내 응급처지를 받게 했다. 퇴원한 후 차오징전은 음식물을 먹을 수 없었다. 먹는대로 다 토했으며 몸은 점점 허약해졌다.

이런 상황 하에서, 바이마룽 여자노동교양소에서는 여전히 사람을 풀어주지 않았으며, 여전히 끊임없이 차오징전을 괴롭혔다. 그녀를 ‘전향반’에 들여보내 끊임없이 그녀에 대해 세뇌를 감행했으며, 그녀를 작은 걸상에 앉혔다. 몇 달이 지난 후 차오징전은 점점 상황이 나빠졌고, 박해로 단지 뼈밖에 남지 않았으며 걸을 수도 없게 됐다. 이때 바이마룽 노동교양소에서는 사람이 노동교양소 안에서 사망할까 두려워 그제야 차오징전을 풀어 집으로 돌려보냈다.

차오징전이 집으로 돌아올 때 앉을 수도, 설 수도, 누울 수도 없었으며 사경을 헤맸다. 아들의 보살핌 하에 조금 호전됐지만 여전히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그러나 위안장의 610과 공안정보과 리라이췬(李來群)은 연속 그녀를 박해했으며, 연속 그녀를 위안장 무장부세뇌반으로 납치해 박해를 가했다. 리라이췬은 그녀가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은 꾸민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 후 위독함을 보고서야 풀어주었다. 오래지 않아 그녀는 곧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문장발표: 2011년 08월 04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8/4/2448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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