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산둥보도) 사오청뤄(邵承洛, 58)는 산둥(山東) 칭다오시(靑島市) 청양구(城陽區) 류팅가도(流亭街道) 자오촌(趙村) 사람으로, 20여 년 동안 중의(中醫)에 종사했다. 그는 의술이 뛰어나고 마음씨가 착해 현지 촌민과 환자에게 깊이 존중받았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사람이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만으로 청양 법정 재판장에 의해 7년의 불법판결을 선고받았다. 2006년 7월 21일부터 지금까지 줄곧 산둥성 감옥에서 150여 종의 고문박해를 당하고 있다. 2011년 3월, 사오청뤄는 흉악한 경찰(흉악한 경찰)의 박해로 피골이 상접해지고 몸 기능이 쇠약해져 생명이 위독해졌다. 3년 가까이 가족은 사오청뤄를 만나지 못했다.
2011년 7월 6일 오후, 사오청뤄의 가족은 다시 한 번 지난(濟南)으로 면회를 갔다. 오후 한 시 반부터 3시 반까지 기다려서야 리웨이(李偉)라고 하는 경찰(경찰 번호3702642)이 나와서 가족과 대화를 나눴는데, 반드시 파룬궁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표명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면회를 허락하지 않는다면서 사오청뤄가 ‘꾀병(사실은 박해로 불구가 됨)’을 부리고 있다고 말했다. 20여 분 가까이 대화를 나눈 뒤, 리웨이는 “아들이 혼자 만나게 하든지, 아니면 가든지 하시오.”라며 흉악하게 말했다. 사오청뤄의 아들은 아버지를 만났을 때, 여전히 절뚝거리는 것을 보았다. 더욱 여위고 허약해졌으며 정신상태도 매우 나빴다. 그리고 입술이 다쳤는데, 분명 최근에 또 박해를 당했을 것이다. 사오청뤄는 오른손 손가락이 마비되어 물건을 잡을 수 없다고 직접 말했다. 게다가 오랜 시간 밥을 먹을 수 없었는데, 매일 겨우 소금물로 생명을 유지한다고 했다.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 사오청뤄는 현대 중국 의학으로도 완치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질병, 심뇌혈관병, 심장병, 심각한 경추병과 담낭질병 등이 있었다. 하지만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한 뒤, 매우 짧은 시간 내에 모든 질병이 저절로 완쾌되었다. 이때부터 法輪大法(파룬따파)를 굳게 수련했다.
1. 2001년에 3년의 불법 노동교양 처분 받고 고문박해를 당하다
2001년 6월 8일, 파룬궁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사오청뤄는 3년의 불법 노동교양을 처분 받고 칭다오시 노동교양소에서 고문박해를 심하게 당했다. 흉악한 경찰이 사오청뤄에게 ‘츠셰빙(吃鞋餅)’이라고 하는, 가죽 구두창으로 머리를 후려치는 박해를 가해 머리카락까지 벗겨졌고, 구두 밑바닥 부분은 마찰로 닳기까지 했다.
예전에는 쯔보(淄博) 왕춘(王村)노동교양소로 보내져 강제적 ‘전향’을 당한 적이 있다. 이 기간에 악인이 사오청뤄의 두 손을 의자 위에 수갑으로 장기간 채워놓아 두 손이 검게 변하기도 했다. 흉악한 경찰은 전기봉으로 사오청뤄의 각 민감한 부위에 전기충격을 가했다. 이보다 더 심한 것은 한 흉악한 경찰은 손에 전기봉을 들고 사오청뤄에게 “우리들은 당신을 마음대로 때려죽일 수 있으며, 때려죽이면 외부에 당신이 자살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흉악하게 말했다. 사오청뤄는 구타로 온몸이 시퍼렇게 멍들고 두 다리는 검게 변했다. 그 기간에 박해가 심각했던 탓에 그는 병원에 보내졌는데, 흉악한 경찰은 뜻밖에 사오청뤄의 집으로 뛰어가서 의약비를 달라고 했다.
3년의 노동교양기한이 만기된 후, 사오청뤄는 또 형기를 연장당해 2004년 7월 15일에야 석방돼 집으로 돌아왔다.
2. 2006년에 불법으로 7년의 중형을 선고받다
2006년 5월 12일, 사오청뤄는 훙다오가도(紅島街道) 둥다양촌(東大洋村) 채소시장에서 악인에게 훙다오파출소로 납치당했다. 파출소의 5명과 연방(聯防)인원 7명이 사오청뤄를 때리면서 ‘반혁명’이라고 욕했다. 그가 쇼크를 일으킬 때까지 구타했다.
연방인원이 또 사오청뤄를 오후 내내 마구 구타해 다리가 불구가 되어 걸을 수 없게 됐다. 그리고 또 사오청뤄를 진(鎮) 병원으로 들고 가서 B형 초음파 진단기로 진단을 내렸다. 한 무장경찰은 길이가 대략 60cm되는 칼 표면으로 사오청뤄의 얼굴을 6번이나 후려쳤다. 사오청뤄가 폭행은 불법이라고 말하자 흉악한 경찰은 ‘반혁명’을 때린 것이라고 말했다. 구치소로 보낼 때, 청양(城陽)공안국의 한 흉악한 경찰은 사오청뤄가 꾀병을 부린다고 욕하면서 구치소에 남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말했다.
그 후에 사오청뤄는 리창구(李滄區) 리춘(李村)에 위치한 청양구치소에 불법감금 돼 계속 박해를 당했다. 사오청뤄는 사악한 박해에 단식으로 항의했다. 구치소의 의사 리(李)씨는 “호스를 꽂을 때 기름을 바르지 않고 건조한 그대로 꽂으면 된다. 바로 밥을 먹지 않는 사람을 다스리겠다.”고 분명히 말했다. 처음에 악인은 며칠에 한 번씩 사오청뤄에게 주입했는데, 밀가루죽만 사용했다. 그 후에 사오청뤄가 두 번이나 기절하자 그제야 우유를 보태주었다. 어느 한 번은 생달걀을 주입했고 그 뒤로 배가 아팠으나 소장 류씨는 도리어 욕설을 퍼부었다. 의사 리씨가 근무를 쉴 때, 소장은 곧 죄수를 시켜 사오청뤄에게 호스를 꽂게 했다. 류위(劉魚)는 호스에 기계유를 발랐는데, 꽂자마자 메스꺼웠다. 사오청뤄는 그 자리에서 그들의 야만적인 박해를 폭로했다. 소장 좡(莊)씨는 구두를 신은 채로 사오청뤄의 머리를 걷어차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 정부에서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탄압은 형사범을 초과한다고 말했다. 그 후에 강제로 테이프로 묶어놓고 정맥 점적주사를 놓고 음식물을 주입했다.
2006년 7월 20일, 청양법정 재판장은 판결서를 구치소로 보냈는데, 사오청뤄에게 7년의 불법판결을 내렸다. 7월 21일, 사오청뤄는 강제로 산둥성 감옥으로 납치당했다.
그 기간, 사오청뤄는 150종의 고문박해를 당했다. 예컨대, 바늘로 몸의 각 부위 찌르기, 칫솔 손잡이 혹은 나무몽둥이로 갈빗대 긁기, 걸상으로 다리 구타하기, 구두 밑바닥으로 후려치기, 팔 비틀고 허벅지 내리누르기, 발로 배 밟기, 칫솔 손잡이를 손가락 사이에 꽂아 넣고 돌려 피부가 찢기고 살이 터지게 하기, 갈빗대나 팔 부러뜨리기 등이다. 그리고 또 두 손과 두 발을 한 데 묶어 몸이 아치형이 되게 해서 거꾸로 놓은 걸상의 네 다리 위에 놓은 뒤, 졸개가 걸상을 걷어차 땅 위로 내동댕이쳐져 나뒹구는 등등 고문도 있었다.
사오청뤄는 학대로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는데, 등의 흉터만 해도 적어도 10여 곳이 되며 갈빗대 양측의 근육도 솔에 쓸려 없어졌다. 박해에 반대하기 위해 그는 여러 차례 단식으로 항의했다. 흉악한 경찰은 악인에게 지시하여 음식물을 주입하게 했다. 한 악인은 입에서 가까운 쪽의 고무호스를 잡고 한 악인은 고무호스를 집었다가 또 느슨하게 놓았으며, 다른 한 악인은 고무호스 깔때기를 꽉 쥐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끊임없이 깔때기 안에 뜨거운 물을 주입했다. 의사들은 악랄한 태도를 취하며 돼지에게 음식물을 주입한다고 했다. 특히 입원처의 주치의 정젠(鄭劍, 형사범)은 극도로 흉악했는데, 음식물을 주입할 때, 드라이버로 입을 비틀어 치아 두 개가 비틀어져 다쳤다.
사오청뤄는 넉 달 가까이 단식을 한 뒤, 뼈만 남았고 둔부는 며칠 동안 앉자마자 살가죽이 벗겨져 맨 마지막에는 곪아 검게 변했다. 얼마나 많은 밤을 고문학대를 당했는지 모르던 어느 날 밤, 사오청뤄는 뼈가 갈라지는 듯한 아픔에 깨어났고, 악인이 걸상 네 다리를 위로해서 자신을 이 위에 묶어놓은 것을 발견했다. 둔부가 곪아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다. 악인은 또 사오청뤄의 머리를 흉악하게 내리눌렀다. 그 나무걸상은 좁아서 두 발을 펴지 못해 뼈가 부러지듯이 아팠다. 사오청뤄가 굴하지 않자 악인들은 또 직경이 5cm이고 길이가 40cm인 둥근 나무를 땅위에 내려놓고는 무릎관절로 그 위에 꿇어앉게 했다. 그리고 또 둥근 나무 한 가지를 가져다가 사오청뤄의 다리 뒤를 힘껏 누르면서 굽혔다. 한 악인은 또 투명한 화장비누 크기인 나무판자 하나를 가져다가 사오청뤄의 갈빗대를 힘껏 내리누르고 빙빙 돌려 비틀었다. 악인들은 또 사오청뤄를 침대 가로 끌고 가 앉혀 놓고 다리를 아래로 향하게 해서는 전기다리미로 두 다리의 무릎관절 아래와 발목, 총 네 곳을 지졌다.
2011년 3월, 사오청뤄는 사악의 박해로 몸에 뼈만 남았다. 사지가 마비돼 근육이 위축되었으며 신체 기능이 쇠퇴하고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생명이 위급할 때, 사오청뤄는 흉악한 경찰 리웨이(李偉, 11감구역장)에게 인도적 차원의 음식물 주입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악인 장융성(張永勝)은 “리웨이 감구역장이 왜 당신에게 음식물을 주입해주지 않는지 알고 있는가? 바로 당신을 굶어죽게 하려는 것이며, 죽으면 반면교사로 삼으려는 것이다!”고 말했다. 며칠 전에 사오청뤄는 단지 약간의 물과 찌개 국물, 라면 양념에 의지해 생명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사오청뤄의 아내는 여러 차례 지난으로 와서 면회를 요구했지만 거의 매번 모두 문밖으로 쫓겨났다. 그녀는 3년 가까이 남편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2011년 7월 6일 오후, 사오청뤄의 가족은 다시 한 번 지난으로 면회하러 갔다가 여전히 절뚝거리는 그를 보았다. 그는 더욱 여위고 허약해졌으며 정신상태도 매우 안 좋았으며 입술도 다쳤다. 사오청뤄는 오른손 손가락이 마비되어 물건을 잡을 수 없다고 직접 말했다. 게다가 오랜 시간 밥을 먹을 수 없었는데, 매일 겨우 소금물로 생명을 유지한다고 했다.
소식이 엄밀하게 봉쇄된 탓에 그의 가족은 그가 감옥에서 박해당한 상세한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일부 가족은 심지어 수련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면회권리를 박탈당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을 거쳐 전해진 한 두 마디의 소식과 면회 당시의 짧은 대화를 통해, 사오청뤄가 불법감금당한 기간에 이미 상상하기 어려운 잔혹한 고문을 당해 생명이 위독해졌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산둥성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한 파룬궁수련생은 이미 5명(이미 폭로했음)에 달해 모든 친척과 친구들이 모두 조급해하며 걱정하고 있다. 그들은 감옥의 위법행위에 대해 관련 부서에 신고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문장발표: 2011년 07월 16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7/16/2440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