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밍후이왕통신원 후베이보도) 후베이 영어교사 천만(陳曼.女.40대)은 2년 전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중공(중국공산당)에 납치돼 불법적인 재판으로 7년형을 선고받고 후베이성 우한(武漢)여자교도소에 감금되었으며, 온갖 박해를 견디지 못한 70대 모친은 비분강개(悲憤慷慨) 속에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천만의 남편 장웨이제(張偉傑.47) 마저 우한시 공안국1처에 납치되어 이른바 후베이성 ‘법제교육소’ 라는 곳에 불법 감금되어 고문학대를 당하고 있으며, 목격자에 의하면 그는 혹독한 구타와 고문으로 현재 매우 위중한 상태라 한다. 장웨이제는 이번의 납치 감금이 열 번째로 알려지고 있다.
고문시연: 혹독한 구타
근면성실하고 유능한 강사가 무고하게 해고당해
장웨이제는 하이난(海南) 화인(華銀)국제신탁투자회사 우한증권부의 유능하고 사람 좋다는 평판을 들으며 성실하게 근무하던 직원이었다. 그러나 과거의 그는 몸이 마비되는 증세 때문에 각처를 찾아다니며 병 치료를 했지만 치료의 길을 찾지 못 하고 절망감에 빠져 있다가 어쩔 수 없이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여 정상적인 사람으로 변했다. 오히려 정상적인 일반 사람들보다도 몸이 더 좋았다. 그는 금융계통에서 근무했던 관계로 원래 건전치 못 한 취미와 생활에 젖어 있었다. 예컨대 술 담배는 물론이고 도박까지 하면서 성질도 아주 나빴다. 그러나, 파룬궁을 수련한 뒤 이런 좋지 않은 습관과 행동들에 큰 변모가 발생한 것이다. 과거에 그를 만났거나 접촉 했던 사람들은 모두들 사람이 돌변했으며 아주 인상이 좋아졌다고 했다.
그의 아내 천만은 여자대학의 영어강사였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체질이 약하여 잔병이 많았으며 사지 무력증세가 심했었다. 심신은 온갖 질병으로 고통의 나날이었으며, 가정에 막대한 경제적 부담까지 주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파룬궁을 수련한 후부터, 몸의 모든 병증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정신면모가 새롭게 변해서 직장에서의 근무도 달라졌다. 맡은 업무에 대해 책임지고 열심히 일했으며, 특히 책임자가 배치하거나 부여한 임무에 대해서는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근면히 수행해, 학교는 물론이고 동료 교사와 학생들로부터도 호평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집에서는 어른을 효성으로 모시고, 자녀에게는 자상한 보살핌과 바람직한 방향으로 교육을 했으며, 이웃과는 모두 화목하게 지내는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 지적이고 교양 있는 선량한 부부가 단지 파룬궁수련을 하며 진선인(眞善忍)의 원칙에 따라 좋은 사람으로 되려고 했다는 이유로, 파룬궁 박해 12년 사이에 아내는 무고하게 직장에서 해고당했고, 그러고도 부부는 10여 차례에 걸쳐 납치, 가택수색, 구류, 강제세뇌, 두 차례의 노동교양처분, 7년의 중형을 선고받았으며, 이런 과정에서 혹독한 구타와 고문학대를 당했다. 이로 인해 모친은 비분 속에 세상을 떠났으며, 계속해서 남편마저 중공에게 납치를 당해 가정이 완전히 파괴되어 그 참혹함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다.
아내는 생계를 위해 보충학습반을 꾸리다가 중형을 선고받다
아내는 직장에서 해고당한 뒤 여러 차례 납치당했고, 풀려나서 생활을 위해 부부가 회사를 설립했다. 회사 경영을 위해 각처로 분주히 다녔으며, 또한 가정살림을 위해 일을 해야 했으며, 연로한 모친의 수발도 들어야 하는 바쁜 나날이었다. 바로 이런 시기에 남편 장웨이제가 중공에게 두 번째로 납치당해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게 되자, 회사는 자동으로 영업이 정지되었다. 그렇게 되자 호구지책으로 어쩔 수 없이 어린 학생들을 모집하여 영어 보충학습을 시켜주는 일로 겨우 생활을 유지했다.
2008년 2월 11일 (음력1월 5일) 아내 천만이 우한시 위자터우(餘家頭) 차이린(柴林)빈관의 한 방에서 아동영어겨울학교 보충학습반을 열었는데, 우한시공안국1처의 10여 명의 경찰들이 갑자기 뛰어들어, 방안에 있던 여교사와 10여 명의 학생과 학부모 모두가 납치돼 끌려가서, 천만 교사는 유치장에 불법 감금 됐다.
2009년 4월 10일 천만은 영어 보충학습 사건과 관련하여 후베이성 우한훙산구법원에 회부되어 재판을 받아 7년의 중형이 선고되어, 후베이성 우한여자교도소에 불법 감금됐다. 이렇게 되자, 이런 박해를 견디지 못한 70대 노모는 비분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남편도 여러 차례 납치당해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래, 장웨이제는 중공에게 열 차례나 납치당했고, 두 차례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1999년 7월 20일 청원을 했다는 이유로 납치돼 장한구(江漢區) 창칭(常青)파출소에 끌려가 감금당했다가, 7월 23일 우한시공안국 9처9대대로 이송돼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받는 고통을 당했으며, 7월 26일 우한시공안국1처에서 다시 주예산(竹葉山)으로 이송됐으며, 8월에 뤄양후(羅陽湖)로 다시 이송돼 감금됐다.
2000년 12월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베이징시공안국19처 악인에게 혹독한 구타를 당해 왼쪽 눈을 다쳤다. 그런 후 량샹(良鄕)파출소에 감금당해, 파출소장 자오(趙)모가 악인들 몇 명을 지휘하여 장웨이제를 수갑을 채워 매달았다. 그리고는 저희들끼리 그가 언제 용서를 구할지에 대해 내기를 걸었다. 그러나 효과가 없자. 수갑을 풀려고 했으나 추위에 수갑이얼어붙어 있었다. 그들은 장 씨의 옷을 모두 벗기고 농구골대 위에 수갑을 채운다음 하루 밤을 꼬박 추위에 떨게 했는데, 밤이 되자 벗긴 몸에 냉수를 끼얹었다.
고문시연: 팔 뒤로 매달기 고문(背吊銬)
2001년 1월, 장웨이제는 장안구(江岸區)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가 허완(何灣)노동교양소로 보내져 1년간 불법 감금을 당했다. 그 기간, 노동교양소의 악경 장이(張義)는 수감돼 있는 다른 자들을 이용해 파룬궁수련생을 혹독하게 구타하고 괴롭혔다. 7대대의 악경 야오췬(姚群)은 그들 악인에게 지시하여 장웨이제에게 강제로 음식물주입을 시키면서 음식물주입으로 죽여버리겠다고 언명했다.
2002년 7월 18일, 화차오(花橋)파출소의 악경 창셴화(常憲華), 류위산(劉玉山)은 호구조사 명목으로 불법 가택수색을 자행한 후, 장웨이제를 파출소로 납치했다가 단수이츠(丹水池)세뇌반으로 보내 박해를 가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자, 세뇌반에서 수감을 하지 않겠다고 하여 다시 단수이츠구치소로 이송됐으며, 2002년 8월 16일에 다시 단수이츠 세뇌반으로 이송돼 불법 감금된 후 박해를 당했다.
2007년 3월 21일, 장웨이제는 출근하는 도중에 혹독한 구타를 당하며 납치돼 후베이성 세뇌반으로 끌려갔다. 그는 심각한 위협을 받아 협심증과 혈압이 극히 높은 증상이 나타났다. 37일 이후에 장안구 천자지(諶家磯)세뇌반으로 이송돼 감금됐다. 장안610두목 후사오빈(胡紹斌)은 여러 차례 류팡(劉芳), 추둥성(邱東升) 등의 악인에게 지시해 장웨이제가 각급정부, 인민대표대회, 검찰기관에 쓴 상소편지를 빼앗아갔다. 그러나 장웨이제가 두 번째로 상소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이를 알게 된 후사오빈은 장웨이제에게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가해 머리, 허리, 발가락 관절에 부상을 입혔다.
2007년 12월 21일, 화차오파출소에서는 장 씨를 허완노동교양소로 이송했다. 그날 저녁 악경 레이창원(雷昌文), 다방레이(答邦磊)는 수감자인 죄수 류녠(劉年), 마약범 쉬융(徐勇), 탕젠(湯健) 등을 시켜 장 씨를 구타해 갈빗대골절상을 입혔다.
두 부부가 다시 동시에 납치 감금되다
부부는 불법으로 납치당하고 구금당했다. 2007년 3월 21일, 장웨이제는 우한시공안국1처의 경찰에 의해 37일 동안 성 세뇌반에 감금당한 뒤 장안구 천자지세뇌반으로 이송 감금됐다. 부인 천만은 2007년 6월 8일, 천자지세뇌반으로 납치 감금됐는데, 납치된 남편을 구하려고 했다는 이유였다. 그녀는 우한시 부교소(婦教所)와 세뇌반에서 3개월 동안 불법 감금을 당하면서 온갖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의 고문 박해를 당했다.
2007년, 장웨이제가 중공에 의해 불법 납치됐다는 사실이 폭로되어 세계에 알려지면서 국제사회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 유럽연맹이 중공과 인권대화를 하는 사건 중의 하나로 부각됐다. 그러나 중공은 이런 형세 하에서도 멸망 전의 단말마적 광적인 심태에 처해 있어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또 아내인 천만을 납치했다.
중공은 아내 천만에게 7년의 불법 중형 선고를 한 것이다. 그들은 그녀에게 온갖 고통을 가할 대로 가한 2년이 넘는 사이에 가족과 서로 대면조차 못하게 했는데, 그런 중에 중공은 또 남편 장웨이제를 납치한 것이다. 2011년 5월 5일 오전, 그는 납치돼 우한시공안국1처 국가보안대대의 4~5명의 악경에 의해 납치됐다. 그러나 그를 납치하고도 장기간 가족에게 알려주지 않았는데, 이는 암흑가 법죄조직의 수법과 다름이 없었다.
양심이 남아있는 목격자가, 봉쇄가 철저한 인간지옥의 마굴인 후베이성 법제교육소에서 죄없는 장웨이제가 가장 혹독한 구타와 고문을 당하고 있어 매우 위중한 상태에 처해 있음을 알려서 그가 납치됐음을 알게 된 것이다. 매일 밤마다 이 마귀굴 속에서 들려오는 폐가 파열 될 듯한 비명소리는 가장 혹독한 구타와 고문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장웨이제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교양이 있고 학식이 있는 이 부부는, 파룬궁을 수련해 심신에 이로움을 얻어서 마비된 몸은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공의 파룬궁에 대한 박해는 인간을 파괴하고, 가정이 파괴되고, 가족의 죽음과 억울한 옥살이와 끔찍한 고통을 당하게 했다. 정말 선과 악은 경계가 분명하다고 말할 만하다.
문장발표:2011년 7월 3일
문장분류:박해진상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7/3/24334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