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상하이보도) 상하이(上海) 파룬궁수련생 저우빈(周斌)은 2001년 1월 17일에 납치를 당한 뒤 12년 불법판결을 선고 받고 상하이 티란차오(提籃橋)감옥에서 근 10년 박해를 당했다. 다음은 그가 당한 일부 박해 상황이다.
저우빈은 원래 부동산업자로 창닝구(長寧區) 톈산로(天山路) 인근에서 살고 있으며, 1995년쯤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저우빈은 사람됨이 솔직하고 개성이 강하며 고집이 강했다. 2001년 1월 17일, 상하이 창닝구 공안분국 국가보안 왕줴(王玨) 등 흉악한 경찰들은 저우빈, 왕쉐페이(王雪飛) 두 사람을 불법적으로 붙잡았다. 중공(중국 공산당) 사악한 당 공안, 검찰, 법원인원들은 저우빈에 대해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한 동시에 비밀리에 체포를 했는데 가족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심지어 재판 당일까지도 그의 가족에게 통지하지 않았다. 그 후 저우빈이 감옥에 들어간 후에야 부모는 저우빈의 행방을 알게 됐다. 짐작에 의하면, 저우빈이 불법 판결을 선고받은 시간은 대략 2001년 12월쯤이다. 저우빈은 구치소로 납치당한 뒤, 주변 사람들에게 파룬궁의 기본 상황을 이야기해주었다가 흉악한 경찰에게 장시간 동안 뒷짐결박이 채워졌다.
저우빈은 2002년 초에 티란차오 감옥으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다. 상하이 지역에서 파룬궁수련생은 불법 판결을 선고 받은 뒤에 먼저 상하이 신서우판(新收犯)감옥으로 납치된다. 그는 도착 보고를 한 후 즉시 티란차오감옥으로 납치당했다. 이어서 곧 작은 감방에 갇혀 벽을 마주해야 했다. 작은 감방 안에는 기본상 다른 시설이 없이 변기통만 있을 뿐이다. 파룬궁수련생은 이렇게 안에서 24시간 동안 있었는데, 활동하거나 책을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침대가 없을 때는 강제로 바닥 위에 앉혀져 두 발을 곧게 펴야 했다. 심지어 겨울에 양말을 신지 못하게 했고 손을 뒷짐지게 하거나 혹은 강제로 다리 위에 올려놓게 하거나, 혹은 두 손을 곧게 펴서 양측으로 45도로 되게 놓이게 해서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일반적인 사람은 20분만 앉으면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파룬궁수련생은 핍박에 못이겨 아침 5시 반부터 저녁 8시 반까지 15시간 이상을 앉아야 했다. 그곳에서는 밖에서 휴식하게 하는 기회가 매우 적었는데 기본적으로 없었다. 특히 전향을 거부한 파룬궁수련생 저우빈, 슝원치(熊文旗), 취옌라이(瞿延來) 등 사람들은 전혀 밖에서 휴식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 동안 앉아 있다가 손발을 조금 운동시키는 것마저도 아주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조금만 움직이면감시하는 죄수가 즉시 다가와서 제지했다.
처음에 흉악한 경찰은 파룬궁수련생들을 사형수와 함께 감금했는데, 고의적으로 이러한 공포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파룬궁수련생을 불법 감금한 중대는 원래 사형수를 감금한 중대로, 원래의 이름은 ‘청년실험중대’[청중(靑中)이라고 약칭]라고 불렀는데, 전 상하이감옥 계통에서 가장 가혹한 곳이었다. 심리적인 공포를 만들고 파룬궁수련생 사이에 교류함을 저지하기 위해 감옥에서는 형사범 3명에게 명령해 24시간 동안 세 팀으로 바꿔가면서 파룬궁수련생에게 감시 박해를 가했다.
저우빈은 신념이 아주 확고한 이유로 모든 사람들에게 파룬따파는 위대한 우주대법임을 성명했다. 다이원룽(戴文龍)을 우두머리로 한 흉악한 경찰들은 강온양책을 병행해 그를 ‘전향’(파룬궁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라고 핍박함)하려고 했지만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 이로부터 흉악한 경찰은 형사범을 선동하고 지시해 그에 대해 속임수를 쓰고 모욕을 가하며 유언비어를 날조하는 등 온갖 짓을 다 했다. 그리고 형사범을 조직해 비판대회를 열어 사람을 괴롭히는 수단으로 고통과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동시에 여러 차례 감시하는 죄수를 지시해 말썽을 일으키게 해서 직접 구타했는데, 원래 구치소에서 불구가 됐던 그는 늘 상처투성이였다. 감시하는 죄수는 그를 때리고도 오히려 저우빈이 먼저 손을 댔다고 모함했다. 그리고 흉악한 경찰 다이원룽은 위선적인 얼굴로 그럴 듯하게 사실을 밝히며 책임을 분명히 밝히는 척했다. 그러나 이어서 곧 사람을 때린 자의 모함을 ‘사실’로 간주해 다시 한 번 저우빈을 모욕하고 욕설을 퍼부어 그의 인격을 모독했다. 흉악한 경찰은 저우빈이 일용품과 음식 등을 구매함을 저지했으며, 또 죄수를 지시해 그의 밥과 반찬을 가로 챘다. 또 밥을 먹을 때면 언제나 그에게 반찬을 아주 적게 주었다.
2002년 11월쯤, 상하이 쑹장(松江) 여자감옥에서는 일부 이른바 ‘이미 전향된’ 사람을 조직해 티란차오 감옥으로 가서 무슨 ‘체험’을 말하게 했으며, 그들에게 친정 면회(親情會見-참가한 수련생은 기본상 부부거나 혹은 친구로, 남녀 쌍방이 모두 이미 불법 판결을 받은 사람임)를 시켰다. 당시 면회한 장소는 티란차오 감옥의 작은 강당이었는데 저우빈은 형사범 두 명의 부축을 받으면서 들어왔다. 앉을 때도 두 사람이 부축해야 했고 일어날 때도 부축을 받아서야 천천히 일어날 수 있었다. 당시 그 자리에 있은 사람들은 본 뒤 어찌된 일인지를 곧 알게 됐다. 수련생들은 마음이 모두 아주 괴로웠다. 저우빈과 여자감옥의 왕쉐페이는 친구인데 동시에 붙잡혀 저우빈은 12년 불법 판결을 선고받고 왕쉐페이는 11년 불법 판결을 선고받았다. 왕쉐페이가 여자감옥에서 마음을 어기고 타협하자 감옥 경찰들은 곧 그녀와 저우빈에게 면회를 배치했다. 저우빈이 사악에게 이 지경으로 박해를 당함은, 여자감옥에서 이미 ‘전향’된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돌아온 뒤 오래지 않아 다수의 수련생은 모두 깨달았으며 많은 사람들은 연속 엄정성명을 썼다.
2004년 한 번은, 저우빈이 잠을 잘 때 두 다리를 구부렸다는 이유로 감시하는 죄수는 사악하게 저우빈이 연공을 했다고 상부에 고발했다. 흉악한 경찰은 뜻밖에 감시하는 죄수를 지시해 구타하게 했으며 동시에 작은 감방에 가두고 두 손을 수갑으로 단단히 채워놓았다. 2004년 말, 흉악한 경찰 다이원룽은 그를 가죽 끈으로(손은 몸 양쪽으로 놓이게 해서, 대략 20센티미터 너비의 가죽 끈으로 허리까지도 함께 채웠는데, 윗몸은 머리를 제외한 외에 움직일 수 없음) 몇 달 동안 채워놓았는데, 몸은 팽팽하게 묶여져 아주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또 목욕도 허락하지 않아 온몸에서 악취가 풍겼다. 한 번은(시간은 대략 2005년 6월쯤) 저우빈이 다리를 틀어올려 가부좌를 하자 몇 명의 감시원들이 한꺼번에 떼지어 몰려와 그를 구타했다. 그 중 한 사람은 또 뛰어오르면서 발로 그의 관절을 걷어찼다. 작은 감방 안은 마치 폭발하는 듯했으며 몇 명의 악인이 사람을 때리는 소리만 들렸다. 당시 당직을 선 한 감옥 경찰이 머리를 내밀어 상황을 파악한 후 소대장 다이원룽에게 사람을 구타한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모두 나서서 제지하지 않았다. 이튿날, 다이원룽은 기세등등하게 달려와 저우빈을 감금한 작은 방안 입구에 서서 소란을 피우면서 말했다. “나는 당신이 구타당했음을 알고 있지만 상관하지 않겠다!” 이번 구타로 저우빈은 다리와 발에 심한 부상을 입어 오랜 시간 동안 절뚝거렸다. 사람을 구타한 자는 어떠한 처분도 받지 않았다.
2005년 2월 24일, 저우빈은 두 손이 채워져 작은 감방에 갇힌 상황 하에서 또 흉악한 경찰의 지시를 받은 죄수에게 난폭한 구타를 당했는데 그의 생식기 부위는 구타로 중상을 입었다.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이러한 저질적인 깡패수단을 실시한 후 이 무리 깡패경찰들은 또 진상을 감추려고 시도했다. 그들은 죄수를 지시해 거짓말을 하게 하고 위증을 서도록 함으로써 인권의 허울을 쓴 상급과 세상 사람들을 속였다. 그러나 이 무리 깡패 우두머리는 바로 상하이 티란차오 감옥의 감옥장에게 ‘가장 젊고, 가장 전망있는’ 사람으로 불리는 어우리강(歐利剛)이다. 그리고 또 중대 교도원 장젠(張健), 저우빈을 박해한 주관 대장 다이원룽과 소대장 궈하이(郭海)도 있었다.
이 일에 대해 저우빈의 어머니는 상하이시 관련부서에 편지를 써서 상황을 반영해, 관련 감옥 경찰에게 관련 책임을 추궁해 법률에서 규정된 그의 아들의 일체 마땅히 있어야 할 권리를 보장하도록 요구했다. 2005년 5월 20일에 밍후이왕에서 이 편지를 발표했다. 하지만 그녀가 요구한 정당한 권리는 한 가지 사항이라도 실행된 것이 없었다. 저우빈은 잔혹한 구타, 학대를 당했지만 어떠한 책임자도 이로 인해 처벌받지 않았다. 직접 구타한 악인이든지, 아니면 배후에서 지시한 흉악한 경찰이든지, 아니면 이들 악랄한 행위를 감싸준 이른바 책임자이든지를 막론하고 처리 받지 않았다.
감옥에 있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그곳 분위기를 잘 모를 수 있다. 모든 흉악한 경찰들의 행위는 결국 모두 합법적이라는 허울에 보기 좋게 꾸며지고 씌워져 있다. 흉악한 경찰의 앞잡이, 이른바 ‘정부에 접근’한 사람들을 지시해 위증을 씌우는 것은 이들 중공 사악한 당 깡패가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수단이다. 사악의 강압 하에 형기를 줄이고 있는 그들 죄수들은 쉽게 양심의 최저선을 깨뜨리고 공산당을 도와 나쁜 일을 한다. 이런 상황 하에서 파룬궁수련생의 어떠한 일처리 방법도 모두 나쁜 사람에게 모함과 헛소문으로 날조당했다. 그런 다음 이른바 ‘감옥규정 질서를 파괴했다’는 ‘죄목’을 뒤집어씌웠다. 감옥의 이른바 관리자들은 그들의 업무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 나쁜 일을 저지르는 데, 온갖 극악무도한 수단을 다 동원했다. 그러나 그들 더욱 고위층의 이른바 책임자, 사악한 610 사람은 이른바 전향 지표에 도달하기 위해 하급 부하의 흉악하고 잔인한 행위에 대해 보고도 못 본 적하거나 혹은 나쁜 사람과 어울려 함께 악행을 저질렀다. 이보다 더 심한 것은 수련생을 직접 박해한 깡패와 함께 사실 진상을 감추는 것이다.
티란차오 감옥에서는 두 가지 상황 하에서 박해하는 정도가 더욱 크다. 하나는 파룬궁수련생이 감옥에 갓 들어간지 오래지 않았을 때인데, 그때는 감옥 환경에 대해 익숙하지 못하다. 그러나 감옥 안은 늘 아주 어둡고 공포적이다. 악인은 이 기회를 이용해 파룬궁수련생의 두려운 마음을 찾아 손을 썼다. 어떤 파룬궁수련생은 또 법률을 이용해 자신을 보호할 줄 몰랐다. 만약 정념정행이 부족하면 사악한 악도들은 유달리 창궐했는데, 정말 일체 법률을 던져 버리고 적나라하게 박해를 감행했다. 만약 감옥에 갓 들어간 파룬궁수련생이 압력을 버텨낼 수 있으면, 사악의 이른바 ‘공견전(攻堅戰)’은 효과가 없는 것이다. 그럼 감옥에서는 곧 전체 감옥의 사악한 환경을 이용해 대법수련생의 고분고분하지 않는 점을 괴롭힌다. 당연히 이때는 파룬궁수련생은 대법에 확고한 동시에 또 사악의 진면목을 분명히 보아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박해가 심각한 상황은 곧 석방될 파룬궁수련생을 겨낭한 것이다. 평소 감옥과 고위층 집권자는 또 일부 인권, 권리의무등 일들을 보기 좋게 꾸민다. 그러나 곧 석방하게 되면 고위층 관리들도 이런 것들을 던져 버리고 하급 부하에게 “그 모모는 어떻게 됐는가? ‘교육’역량을 더 증가해 되도록 빨리 전향하라”고 압력을 가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급 부하에게 ‘반드시 형벌을 집행하는 기간 내에 전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럼 이때에 제1선에 처한 졸개는 곧 무엇도 상관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적나라한 박해를 감행한다. 예컨대 당시 5감금구역의 사악한 당서기 푸커후(傅克琥)는 직접 수련생 양옌후이(楊延輝)를 전향하도록 요구했다. 양옌후이는 3년 불법 판결을 선고받았는데, 10여 일밖에 남지 않아 곧 만기 석방하게 됐다. 깡패 푸커후는 직접 양옌후이에 대해 잔혹한 구타를 계획했다.
2004년, 이미 전에 나쁜 사람에게 속임을 당한 대부분 수련생들은 단체적으로 폭력적인 위협 하에 마음을 어긴 행동을 뒤엎고 진정한 수련자의 상태를 회복했다. 더군다나 박해 사례가 끊임없이 폭로되어 감옥은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화를 냈다. 2005년 중국 설을 쇤 후에 전체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대조절을 감행했고, 또 이미 전에 청중(청년실험중대)에서 ‘주관대장’을 맡은 적이 있던 많은 경찰들 대부분을 전출시켜 새롭게 2감금구역으로 집어넣었다. 2005년 3월 초, 흉악한 경찰들이 감행한 제1차 조절 중에서 많은 파룬궁수련생들은 청중에서 전출당했는데, 그중 린썬(林森), 장난핑(張南平), 런쩌쥔(任澤軍), 리량(李亮), 란빙(藍兵), 천융건(陳永根), 류쩌레이(劉澤雷), 리옌(李巖), 정캉(鄭康), 장융(江勇), 다이량(戴良), 왕젠핑(王建平), 처우선(仇伸) 등등을 포함해서이다. 2005년 4월 중순, 감옥에서는 원래 이른바 ‘전향’을 주관했던 경찰을 전근시겼다. 이번 전근 중에 원래 사형죄수 중대에 감금당했던 파룬궁수련생도 ‘청중’으로 이송됐는데, 그중에 황스광(黃時光), 쉬량(徐亮), 한젠지(韓建極),타오샹웨이(陶湘爲) 등을 포함해서이다.
2007년 12월 말, ‘청중’은 2감금구역에서 10감금구역으로 조절당했다. 초기에 불법 감금당했던 파룬궁수련생을 제외한 이외, 청중은 다시 새로운 파룬궁수련생을 들여오지 않았다. 그러나 사악한 당의 흉악한 경찰은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를 늦추지 않고 다른 감금구역으로 옮겨가서 연속 박해를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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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교환대: 021-35104888에서 각 부서로 전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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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국장, 당위원회 부서기: 정산허(鄭善和)
당위원회 부서기: 리허핑(李和平)
당위 위원(黨委委員): 류장장(劉江江)
부국장: 류중딩(劉忠定)
부국장: 타이쉰(邰荀)(‘610’ 업무를 책임졌음)
부국장: 차이융젠(蔡永健)
정치부 주임: 좡샤오즈(莊孝志)
기율위원회 서기: 웨이위치(魏玉琦)
당위 위원: 주주웨이(朱久偉)
상하이감옥관리국 주소: 상하이시 창양로 111호(上海市長陽路111號) 200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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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위 서기, 부국장: 정산허(鄭善和)
국장, 당위 부서기: 구이샤오민(桂曉民)
당위 부서기: 후쥔(胡軍)
부국장: 위중밍(俞忠明)
부국장: 류화이오(劉懷寶)
부국장: 우치(吳琦)
기율검사위원회 서기: 샤제핑(夏解平)
정치부 주임: 진샤오린(金小林)
감옥곤리국 부순시원: 리카이펑(李開峰)
감옥관리국 부순시원: 웨이웨이(魏巍)
상하이시사법국 변호사업무관리처: 021-24029788
문장발표: 2011년 06월 29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6/29/2431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