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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두 리셴원은 그해 어떻게 박해받아 사망했을까(사진)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쓰촨보도) 2004년 10월 25일, 밍후이왕에는 청두 파룬궁수련생 리셴원(李顯文), 위구이잉(于桂英, 餘桂英) 두 부부가 파룬따파 수련을 견지해서 현지 중공 인원에게 납치당한 사실 보도되었다. 리셴원은 신진세뇌반에 납치당해 박해로 사망했고(구체적인 시간은 확인되지 않음), 위구이잉은 노동교양소에서 박해로 정신이상이 되었다. 리셴원이 그 해에 박해로 사망한 일부 상황을 설명하겠다.

李显文
리셴원

리셴원(남, 54세 가량)은 청두 신화인쇄공장 직원으로 청두시 진장구 룽저우로 관할구역 궁눙위안가 72호에서 살고 있다. 리셴원과 아내 위구이잉은 1997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함께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 심신에 크나큰 이로움을 얻었다. 그들은 파룬따파의 은혜에 매우 감사드렸다.

2001년 5월 28일에 위구이잉은 친구에게 파룬궁 사부님의 신경문을 보내 뉴왕먀오파출소 악경에게 납치와 가택수색을 당했다. 악경은 위구이잉을 롄화촌구치소로 납치해 감금했다. 그날 퇴근해서 집에 돌아온 리셴원은 집이 수색당하고 아내가 붙잡혀 갔음을 알았다.

이때 청두시 룽저우로 가도사무처 사회치안 종합관리사무실 인원 장눠(張諾)는 신화인쇄공장 ‘610’(중공이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기구) 인원과 결탁해 리셴원을 박해하려고 계획했다.

리셴원의 납치는 대략 5월 29일과 30일 사이에 발생했다. 그날 오전 리셴원은 여전히 신화인쇄공장에 출근했고, 오후에 퇴근 후 룽저우로사무처로 납치당했다. 이때부터5월 31일 오후 사이에 리셴원은 세상을 떠났다. 그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했을까? 도대체 무엇이 리셴원의 사망을 조성했을까?

5월 31일 오후 1시 반경, 멀리 허난에서 일하고 있는 리셴원의 아들 리샤오둥은 고모 리셴핑의 전화를 받고 아버지 리셴원이 세상을 떠났음을 알게 되었다. 리샤오둥은 황급히 청두로 돌아왔다. 그는 먼저 뉴왕먀오파출소에 가서 불법 감금당한 모친과 함께 아버지의 후사를 처리하겠다고 요구했다. 경찰은 어쩔 수 없이 위구이잉을 롄화촌구치소에서 풀어주었다.

6월 1일, 위구이잉과 아들 리샤오둥은 장례식장에서 리셴원의 시신에 옷을 입히다가 리셴원의 목이 검붉은 것을 발견했는데, 이는 목 졸라 죽인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몸에도 혈흔이 있어서 리셴원이 4층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경찰의 말에 아주 많은 의심이 생겼다. 리샤오둥은 인쇄공장 측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그렇게 많은 사람을 파견해 그를 지키게 했는데, 그가 어떻게 건물에서 뛰어내릴 수 있었겠습니까?”고 질문했다.

리셴원의 친구의 말에 따르면 리셴원은 학자가문 출신으로 닭이나 물고기 등과 같은 동물을 죽인 적이 없다. 그가 대법을 수련한 뒤 수련하는 사람은 살생하지 못한다는 도리를 깊이 알고 있기에 더욱 자살할 수 없다.

6월 4일, 리셴원의 시신은 화장당했다. 위구이잉과 아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리셴원의 초상화의 눈, 코, 귀와 입가에는 피가 흘러나왔다. 이것은 리셴원의 영혼이 아내에게 그가 박해로 사망했고 억울하게 죽었음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일이 처리된 후, 룽저우로 가도사무처 인원 장눠는 리샤오둥에게 위구이잉이 청두에서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통지하면서 어머니를 데려가도록 핍박했다. 이렇게 위구이잉은 핍박에 못 이겨 먼 타향으로 떠났다. 위구잉은 그 후 노동교양소로 납치되어 박해로 정신이상이 되었다.

리셴원은 그해 어떻게 박해로 사망했을까? 사정을 아는 사람은 자세한 상황을 제공하길 바란다.

문장발표: 2011년 06월 24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6/24/24293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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