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산둥성 보도) 산둥성(山東省) 창이시(昌邑市) 장링진(丈嶺鎭) 장자부촌(張家埠村)의 장쩡구이(張增貴)와 아내 류위샹(劉玉香)은 ‘진선인(眞善忍)’을 믿었다는 이유만으로 여러 차례 중공(중국 공산당) 사당(邪黨) 인원에게 박해를 당했다. 67세인 장쩡구이는 2010년 4월에 흉악한 경찰이 집안에 뛰어들어 강탈, 납치와 갈취를 한 후 몸져누웠다가 결국 2011년 4월 13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장쩡구이는 1997년 음력 2월 19일에 운 좋게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을 시작한 넷째 날, 대법 사부님께서는 그의 몸을 정화해 주셔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병이 나았다. 그리고 점차 끊임없이 법공부와 연공을 깊게 해 사람이 되는 도리를 깨달았다. 시각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진선인(眞善忍)’ 법리에 따라 자신을 요구했고, 끊임없이 자신의 일언일행을 바로 잡아 좋은 사람으로 변했다. 60세에 가까운 장쩡구이는 밭에 나가서 일할 수도 있었고 오토바이와 삼륜차도 탈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장쩡구이가 그야말로 딴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칭찬했다. 아내 류위샹도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고, 둘째 아들 장쭌위(張尊玉), 셋째 아들 장쭌량(張尊亮)은 1998년 겨울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전 가족은 모두 대법의 무한한 아름다움 속에서 행복하고 평온한 아름다움에 빠졌다.
1999년 7월 20일, 중공 사당과 장쩌민 정치깡패 집단이 서로 이용해 파룬궁을 박해한 이래, 장쩡구이 일가족은 많은 고난을 겪었다. 흉악한 경찰은 늘 그의 집으로 가서 교란하고 체포와 감금을 감행했고 세뇌반에 가뒀다. 매번 이른바 ‘민감한 날’이 오면 사당 인원은 장쩡구이를 붙잡아 전 가족을 편안히 있지 못하게 만들었다.
2000년 음력 9월 11일, 장쩡구이는 창이시 공안국에 의해 창러(昌樂)로 보내져 3년 불법 노동교양을 선고받았다. 교양소에 들어간 후 그는 자신의 심신의 변화로 대법을 실증했고 사부님에 대한 굳은 믿음과 정념정행에 의거해 8일 이후 노동교양소에서 뛰쳐나왔다.
2006년 정월 18일 오후 5시 반, 장쩡구이가 한창 집에서 자전거를 수리하고 있었고 아내는 마침 출근하려고 했는데, 창이시 장링파출소의 6~7명의 흉악한 경찰들이 집으로 들어가서 류위샹을 납치했다. 장쩡구이는 경찰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벗어났다.
큰 아들은 60여 세 모친이 무고하게 감금된 것을 보고 사방에서 사람을 찾아 석방해달라고 요구했는데 총 현금 5천 위안을 썼다. 결국 창이 610사무실의 천샤오둥(陳曉東)을 찾아가서 풀어달라고 요구했는데 그 결과 천샤오둥은 또 2천 위안을 내야 석방해준다고 제안했다. 구치소에서 감금당한 4일 동안 또 3백 위안의 생활비를 요구했다.
류위샹이 나온 후, 두 노부부는 부득이 집을 떠나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둘째 아들 장쭌위와 셋째 아들 장쭌량은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각각 7년과 8년 불법 판결을 선고받았다.
2010년 4월, 장쩡구이가 한창 정원 안에서 양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데 웨이팡(濰坊) 가오신(高新)개발구 국가보안대대의 흉악한 경찰이 담장을 뛰어넘어 그의 집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의 집의 텔레비전 한 대, 녹음재생기 한 대 및현금 5천 4백 위안을 강탈해갔으며 그를 강제로 끌어갔다. 장쩡구이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는데 경찰은 그날 큰 아들에게서 3천 위안의 현금을 갈취해서야 장 노인을 풀어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장 노인은 몸이 허약해져 온종일 밥을 먹지 못했고 몸져 누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결국 2011년 4월 13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문장발표: 2011년 06월 15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6/15/24248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