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일체 사악함을 집대성한 중공의 고문(1): 당겨 채우기, 매달아 채우기

[밍후이왕] (밍후이왕기자 하이타오 종합보도) 파룬궁수련생을 핍박하여 ‘진선인(眞善忍)’수련을 포기시키기 위해, 중공(중국 공산당)은 10여 년 동안 각종 고문을 사용했다. 역사상에서 사람들은 송조(宋朝)의 악비(岳飛)가 충심으로 나라를 위했다가 오히려 간신에게 모함을 당해 ‘피마문(披麻問-온몸에 피가 흐를 정도로 때린 후 천조각을 붙여서 마르게 한 후 다시 떼어내는 고문)’과 ‘박피수갑(剝皮銬-수갑을 꽉 채워 살가죽이 벗겨지게 함)’ 고문을 당했음을 알고 있다. 고문의 처참함에 대해 중국인은 대대로 이를 간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은 고금의 일체 간사하고 음험한 고문을 전부 모았다. 고문은 1백여 종을 초과했는데 마음을 닦고 선을 행하는 가장 좋은 민중의 신체에 사용했다.

酷刑演示:吊铐
고문시연: 매달아 채우기

채우기(銬), 매달기(吊)는 중공의 감옥, 노동교양소, 구치소, 세뇌반 등에서 파룬궁수련생을 집중 감금한 곳에서 사용하는 일종 고문이다. 장시간 동안 고통스럽게 할 수 있고, 즉시 생명 위험이 나타나지 않기에 흉악한 경찰들이 보편적으로 채용한다. 현재 밍후이왕에서 발표한, 파룬궁수련생이 매다는 고문을 당한 전형적인 사례는 2,600여 건이나 된다. 어떤 수련생은 연속 몇 시간, 며칠을 매달려 채워져 사지가 상처를 입었고 하반신이 부었으며 온몸에 식은땀이 철철 났다. 중공의 목적은 바로 파룬궁수련생을 핍박해 신념을 포기시키고 마음을 어기는 말을 하게 하며 ‘수련을 하지 않는다’는 보증서를 쓰게 하기 위해서다.

샤닝(夏寧), 연속 2년간 채우기 고문과 혹독한 구타 당해

이른바 ‘당겨 채우기(抻銬)’ 고문은 랴오닝성(遼寧省) 마싼자(馬三家) 노동교양소의 흉악한 경찰이 늘 사용하는 고문이다. 그들은 두 개의 쇠고랑으로 파룬궁수련생의 한 쪽 손을 높은 침대 위에 당겨서 채우고, 다시 천으로 된 끈으로 다른 한 쪽 손을 아주 멀리 잡아당겨다가 묶어놓는다. 이렇게 해서 고문을 당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허리가 구부정하게 만든다. 그런 다음 다시 고문을 당하는 사람의 두 다리를 묶어서 팔과 손이 시큼하고 저리며 아프게 만든다. 한동안 시간 간격을 두고 당직 경찰은 끈을 풀어주고는 힘껏 팔을 흔들어놓는데 말로는 불구가 될까 봐 두려워서라고 했다. 이 고문을 당하는 사람은 고통으로 온몸이 땀투성이가 된다.

어떤 파룬궁수련생은 감금기간에 심지에 연속 몇 년을 이 고문을 당했다. 50여 세 랴오닝 파룬궁수련생 샤닝(夏寧, 여)은 2008년에 납치당한 뒤, 극히 악명이 높은 마싼자노동교양소에 갇혔다. 그곳에서 2년에 이르는 감금 중에 샤닝은 단식으로 고문박해를 항의했다가 흉악한 경찰에게 2년 동안 야만적인 음식물주입을 당했다. 2년 동안 샤닝은 거의 줄곧 침대 위에 매달려 채워졌는데 거의 매일 모두 전기봉을 이용한 전기충격과 혹독한 구타 속에서 보냈었다. 샤닝은 출옥한 후 다음과 같이 썼다.

“경찰 마(馬)씨가 당직을 설 때나는 첫 번째로 이런 학대를 당했다. 거의 밤 12시가 되어 근무를 교대할 때 흉악한 경찰 장쥔(張軍)이 와서 수갑을 풀어서 나를 선 채 두 손을 침대 윗편에 매달았다. 내 다리는 이미 부어올랐고 이미 한밤중이 됐는데, 다시 세워놓고 매달아 채웠다. 그 느낌은 정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이튿날 아침에 장쥔은 다가와서 또 힘껏 채워놓았다. 경찰이 출근한 다음 둥빈(董彬)과 장줘후이(張卓慧)가 다가와서 수갑을 풀어주고 팔을 흔들었다. 그녀들은 내 손목에 큰 물집이 한층 생겨서 다시 채울 방법이 없게 된 것을 보더니 곧 내 양손을 각각 한 침대 윗편 삼각틀에 채워놓았다. 내 두 손은 마비되고 저리고 아팠는데 특히 오른손이 더욱 저리고아팠다.”

“나는 단식으로 박해를 항의했다. 그들은 낮에 나를 음식물을 주입하는 침대 위에 묶어놓고 입을 여는 기계로 내 입을 벌렸다. 그녀들은 퇴근해도 입을 여는 기계를 내려놓지 않고 여전히 입을 벌렸는데, 기계를 내려놓을 때는 나는 이미턱을 다물지 못했다. 저녁에 그들은 나를 핍박해 서있게 했고 내 두 손을 침대 윗편에 매달아 채워놓았는데 이런 학대는 꼬박 13일 동안 지속됐다.”

“나는 자신이 노동교양범임을 승인하지 않았고 죄수복을 입지 않았다. 나는 단지 진선인(眞善忍)만을 믿었을 뿐이지 법을 위반하지 않았다. 흉악한 죄수는 죄수복을 내 옷 위에 꿰맸다. 그리고 나를 고문실로 끌어다가 여전히나를 박해했다. 한동안 시간 간격으로 당직을 서는 경찰이 다가와서 나를 보았다. 내가 온몸이 땀투성이가 된 것을 보자 수갑을 풀어주고 끈을 풀어주었다. 나는 바닥에 누웠는데 옷까지도 모두 젖었다……”

‘연공하지 않는다는 보증서를 써야 풀어줄 수 있어’

차이루펀(蔡如芬, 여, 46)은 후베이성(湖北省) 우한(武漢)시 신저우구(新洲區)1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으며 파룬따파를 수련한다. 그녀는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으로 되려 했고, 근면 성실하게 글을 가르치고 학생을 교육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사랑하는 좋은 선생님이다. 차이루펀은 이미 전에 두 차례 불법 노동교양을 선고받고, 한 차례 판결을 받은 이외에 또 세뇌반과 구치소 등 장소에 갇힌 적이 있다. 10여 년 사이에 학대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겪었다.

酷刑演示:吊铐
고문시연: 매달아 채우기

차이루펀이 구치소 감방에서 연공을 하자 경찰은 그녀를 철창 위에 매달아 채웠는데 발끝을 겨우 침대 널판에 닿게 했다. 두 손은 수갑 안에 채웠는데 시간이 오래되자 온몸 대부분의 중량이 수갑을 조여 살속에 파고 들었는데 매우 괴로웠다. 장시간 동안 이렇게 매달려 극한의 고통을 감당했다. 화장실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밥도 먹이지도 않았다. 저녁은 또 추웠는데 창문을 열어놓아,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고통과 졸림에 시달렸다. 같은 방안의 죄수가 경찰에게 “그녀에게 연마하지 말라고 말하고 풀어주세요”라고 말하자 경찰은 “그녀는 교사이기에 연공을 하지 않는다는 보증을 써야만 풀어준다”고 말했다. 차이루펀은 연마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고 더욱이 보증은 쓰지 않을 것이라고 표시했다.

후난성 세뇌반에서 쇠우리에 몇 시간 동안 사람을 매달다

후난성(湖南省) 천시현(辰溪縣)의 류위안보(劉元波)는 수리점을 차려 생계를 유지했다. 평소에 파룬궁의 요구에 따라 마음을 닦고 선을 향해 이웃과도 모두 화목하게 지냈다. 이웃들은 무슨 일이 있으면 모두 그에게 도움을 청하기를 원했다. 바로 이런 좋은 사람이 파룬따파 ‘진선인(眞善忍)’의 믿음을 견지했다는 이유만으로 거듭 중공의 박해를 당했다. 2010년 11월 3일에 후난성 화이화시(懷化市) ‘법제교육기지’(사실은 불법 사설한 감옥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해 박해하는 세뇌반임)에 납치당했다.

세뇌반에 며칠 동안 구금당한 후, 왕(王)씨 성을 가진 여성이 와서(그녀는 성 감옥관리국에서 왔다고 자칭했음), 류씨가 이곳의 ‘학습’을 받아들이기를 원하는지 물었다. 류위안보는 ‘나는 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므로 무조건 석방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왕씨는 몸을 돌려 나갔다. 얼마 되지 않아 한 마샤오강(馬小剛)이라고 부르는 40세에 가까운 남자가 왔다. 그는 류씨를 감금한 방안 문틀 위에 철사로 쇠우리를 만들었다. 세뇌반의 몇 사람은 류위안보의 두 손을 수갑으로 쇠우리 안에 채워놓아 발만 땅에 닿게 했다. 이 과정에서 류위안보는 필사적으로 저항한 동시에 큰 소리로 그들의 죄행을 폭로했다. 세뇌반 책임자 양타오(楊濤)는 류위안보의 얼굴 부위를 구타하고 류씨의 손목을 부러뜨린 동시에 화장지로 입을 막았다. 류위안보는 눈앞이 번쩍거리고 두 귀가 윙윙거렸다.

점심에 밥을 먹을 때가 되자 불법 인원은 3시간 동안 매달린 류위안보를 풀어주었다. 풀어줄 때 류위안보는 이미 온몸에 힘이 빠져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 이후에 또 줄곧 6시까지 류위안보를 매달았다. 저녁에는 원래 류씨를 감시하던 두 명의 인원을 제외한 이외에 양타오는 따로 사람을 파견해 번갈아가며 당직을 세워 지키게 했다. 그 기간에 다만 류씨에게 수갑을 풀어줘 한 번만 소변을 보게 했을 뿐이다. 줄곧 이튿날 오전 8시가 되어서야 풀어주었다가, 아침밥을 다 먹은 다음 또 류씨를 매달았다. 이때 류씨의 손목은 모두 마찰로 피가 흘렀고, 발까지 부어올랐으며 정신은 흐리멍덩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양타오 등 사람은‘연공하지 않는다는 보증서’을 꺼냈다……자신에 대한 악인들의 비인간적인 학대에 항의하기 위해 류위안보는 수갑에서 풀려난 이튿날부터 단식을 시작했다.

강제로 사람의 마음을 개변할 수 없다

중공은 고문과 감금으로 파룬궁수련생을 핍박해 ‘3서(三書)’를 써서 대법을 위배하도록 시도했는데, 쓰면 풀어주고 쓰지 않으면 계속 감금하고 고문했다. 이렇게 처리함은 바로 수련생들이 전혀 법을 어기거나 죄를 저지르지 않았음을 설명한다. 중공은 바로 사상과 신앙에서 모든 중국인의 권리를 박탈해 다만 중공의 사당주의(邪黨主義)만을 믿게 할 뿐, 사람들에게 사상 공간과 자유가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강제로 사람의 마음을 개변할 수 없다. 자신이 파룬따파 수련 중에서 심신에 이로움을 얻은 수련생들은 믿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고문을 가할지라도 진정한 금(金)은 연마할수록 더욱 더 순결해 질 수 밖에 없다. 진정하게 피해를 본 사람은 중공을 좇아 양심을 포기하고 대법 수련자를 박해한 졸개들인데 어찌 훨훨 타오르는 지옥의 불길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모르고 있단 말인가?

그 해 진회(秦檜)에게 아첨하기 위해 악비를 모함한 만사설(萬俟卨), 나여즙(羅汝楫)은 어디로 갔는가? ‘송사ㆍ나여즙전(宋史ㆍ羅汝楫傳)’의 기재에 의하면 나여즙은 분상하러 집으로 돌아갔는데 상기(喪期)가 채 차기도 전에 그 자신도 황천길로 갔다. 나여즙의 아들 나원(羅願)은 악주(鄂州)의 부지사로 임직했는데 정치적 업적이 아주 좋았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한 일체 행위 때문에 감히 악비묘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 후 어느날, 나원은 스스로 정치업적이 괜찮다고 생각하고 잠깐 앞으로 다가가서 참배했는데 뜻밖에 막 절을 하자마자 악비상 앞에서 급사하고 말았다. 간사한 자와 나쁜 무리는 여태껏 지옥에서 고문을 당하고 있다. ‘설악전전(說岳全傳)’의 기재에 의하면 큰 못으로 악비를 괴롭힌 사람의 손발을 쇠침대 위에 박았다.온몸에는 칼로 생긴 상처이며, 3일마다 ‘풍뢰지옥(風雷之獄)’, ‘화차지옥(火車之獄)’, ‘금강지옥(金剛之獄)’, ‘냉명지옥(冷溟之獄)’을전부 겪으면서 고초를 겪을 대로 겪어야 했다.

‘천지는 사심이 없고 귀신은 똑똑히 보고 있다(天地无私,鬼神明察).’ 지금까지 흉악한 경찰 신변에서 발생한 인과응보 사례는 이미 수량이 거대한 것으로 악인들에게 정신을 차리기 하기에는 충분하다. 수련자를 해침은 바로 자신을 해치고 후대에게 화를 미치게 할 것이다.

문장발표: 2011년 06월 03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6/3/241816.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