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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베이 싱타이 리즈친 박해사망 3년째, 가족 고소할 길 없어(사진)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허베이성 보도) 허베이(河北) 싱타이(邢臺)지역 닝진현(寧晋縣) 샤오짜오촌(小棗村) 리즈친(李志勤)은 이미 전에 심각한 폐결핵에 걸린 적이 있는데,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건강을 회복했다. 중공(중국 공산당)이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박해 중에 그는 수련을 견지했다. 2006년 4월에 닝진현(寧晋縣) 국보대대와 ‘610’(중공이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한 불법 기구로 공안, 검찰, 법원 위에 군림)의 박해로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니다가, 스자좡시(石家莊市) 자오현(趙縣)을 전전해 가서 품팔이로 생계를 유지했다. 2007년 9월 12일 밤 11시쯤, 닝진현 국가보안대대와 ‘610’의 악도 선젠중(申建中)이 싱타이시, 스자좡시, 닝진현과 자오현 네 곳의 불법 경찰들을 거느리고 담장을 뛰어넘어 리즈친의 셋집에 들이닥쳤다. 그리고 불법적으로 가택 수색과 납치를 감행했고, 그날 저녁으로 그를 박해해 사망케 했다.

李志勤
리즈친(李志勤)

리즈친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그는 마음씨 착하고 사람 도와주기를 좋아하며, 늘 무료로 다른 사람을 도와 일해주고 보수를 따지지 않는다며 오늘날 사회에서 이렇게 좋은 사람이 너무 적다고들 말했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사람이 오히려 ‘인민경찰’에게 밤중에 집에서 납치된 동시에 하룻밤 사이에 박해로 사망했는데, 범인은 여태껏 법을 어기고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활동하고 있다.

3년 넘는 동안, 리즈친의 가족은 끊임없이 추궁했지만 관련 공안국에서는 한푼의 배상금도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시 신고하면 전 가족을 붙잡겠다고 공갈 협박했다. 리즈친의 아내는 다음과 같이 성토했다.

아내의 성토

나는 허베이성 싱타이 지역의 닝진현 사람으로 올해 60세에 가깝다. 남편 리즈친은 파룬궁을 수련했는데 공안의 흉악한 경찰에게 혹독한 구타를 당해 타향에서 억울하게 사망한지 이미 3년째다. 우리는 농촌의 일반 국민으로 집안 형편이 어렵기에, 변호사가 잠시 받는 비용 3천 위안마저 지불하지 못한다. 상부를 찾자 각부서에서는 서로 미루었고 또 신고할 길도 없다. 여태껏 공안국에서는 공정한 평가를 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푼의 돈마저 우리 집에 배상해주지 않았다. 천리는 어디에 있는가!

남편 리즈친은 1997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있던 모든 질병이 전부 나았다. 우리는 파룬궁사부님과 파룬따파에 아주 감격했고 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眞ㆍ善ㆍ忍’(진선인)에 따라 자신의 마음을 단속해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좋은 일을 했으며, 성심으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었다. 마을 사람들도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999년 7월 20일 이후 이렇게 좋은 공법이 국가의 잔혹한 탄압을 당했다. 일순간에 바람에 피비린내가 섞여 있고, 피가 비가 내리는 것처럼 뿌려져, 그렇게 많은 좋은 사람들이 탄압을 당했고, 그렇게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붙잡혔으며, 그렇게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판결과 노동교양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핍박으로 의지할 곳을 잃고 유랑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2006년의 어느 하루 점심 시간, 닝진현 공안국 정보과 과장 선젠중이 한무리 흉악한 경찰을 거느리고 우리 집에 들이닥쳐 강제로 나의 남편 리즈친을 납치했다. 그가 평소에 각 방면에서 ‘眞ㆍ善ㆍ忍’에 따라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고 사람 도와주기를 좋아하는, 마을사람들이 인정하는 좋은 사람이었던 이유로 이번에 흉악한 경찰이 강제로 사람을 붙잡은 사건도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일어나서 한편으로는 흉악한 경찰들이 사람을 붙잡는 것을 저지하고, 한 편으로는 남편이 순리롭게 벗어나도록 도와주었다. 이로부터 우리도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했다. 여러분은 아시는가?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는 그런 슬픈 괴로움, 위로는 노인이 있어도 효성을 다 하지지 못하고 아래는 또 가정을 이루지 않은 아들딸이 있지만 보살펴주지 못하는 그런 상황은 일반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이렇게 몇 달을 보냈다. 푼돈도 거의 다 쓰게 되자 자오현으로 가서 거주하면서 품팔이로 생계를 유지했다. 2007년 8월 초이튿날 저녁, 우리가 한창 셋집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는데 위험이 몰래 우리를 습격해왔다. 닝진현 공안국의 국가보안대대 대대장 선젠중이 10여 명의 흉악한 경찰을 거느리고 자오현 공안국의 협조 하에, 밤에 민가에 들이닥쳤다. 담장을 뛰어넘어 들어와서 강제로 내 남편을 붙잡아 가려 한 동시에 손과 발로 마구 구타했다. 내 아들이 다가가서 사람을 때리지 말라고 제지하다가 경찰에게 구타당해 움직이지 못하게 된 동시에 그의 핸드폰도 빼앗겼다. 남편도 그들에게 포위되고 구타를 당해 바깥방 바닥에 때려눕혀졌다. 당시 곧 움직일 수 없었는데 흉악한 경찰은 여전히 “꾀를 부리지 마라. 오늘 들어서라도 당신을 붙잡아 가야한다”고 소란을 피웠다.

불쌍한 남편은 그들에게 구타당해 인사불성이 됐다.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어도 가만 놔두지 않고, 여전히 강제로 수갑을 채웠다. 지각도 없이 힘없이 누워있었으나 흉악한 경찰에게 강제로 들려갔다. 그들은 동시에 아들에게 내일 자오현 공안국으로 와서 핸드폰을 찾으라고 말했다.

우리는 당시, 공안국 610조직은 법률 위에 군림하고 법을 알면서 고의로 법을 어기며, 또 대법제자를 강제수용소에 가둬 장기이식을 해서 폭리를 도모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마음이 무척 조급했다. 이튿날 아들은 일부 옷과 물품, 그리고 음식을 갖고 부친을 보러 공안국으로 갔다. 자오현 공안국 사람은 닝진에 있다고 말했다. 아들은 또 급히 닝진현공안국으로 다그쳐갔으나, 닝진현공안국에서는 여전히 자오현에 있고 전혀 데려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서로 책임을 미루었는데, 점심밥을 먹을 때에야 싱타이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붙잡힌 그날 저녁에 곧 이미 박해로 사망했던 것이다!

매우 건강하던 사람이 어떻게 병도 없이 사망했을까? 흉악한 경찰의 혹독한 구타로 사망한 것이 분명하다. 가엽게도 남편은 사망해서부터 화장할 때까지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단지 아들딸만이 싱타이 공안국병원으로 가서 화장서에 동의한다고 서명을 한 다음에야 냉동고에 얼어있는 시신을 맨 마지막으로 한 번 만날 수 있었을 뿐이다. 아이들은 돌아와 눈물을 마구 흘리면서 말했다. “냉장고 안이 그렇게 찬데, 아버지는 맨몸과 맨발바람에 얇은 바지만 입고 계셨어요. 앞가슴과 등 그리고 다리와 발 위까지 모두 상처였어요.” 아이들은 이미 슬픔에 목메어 말을 하지 못했다. 내 마음도 찢어지는 듯이 아팠다. 그는 우리 전 가족의 기둥이었다.

한 생명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려, 우리로 하여금 평온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우며 감당하기 어렵게 했다! 공안국은 뜻밖에 온갖 방법을 다 해서 발뺌하고 황급히 일을 수습했다. 지금까지 범인은 제재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공안국에서 날뛰고 있으며 자유롭게 법 밖에 있다. 심지어 우리가 몇 년 동안 도대체 누가 우리 남편을 때려죽인 범인인지 추궁했으나 공안국은 여태껏 우리에게 알려주지도 않았다. 우리에게 한푼의 배상금도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다시 상소하면 우리 전 가족을 붙잡겠다고 공갈협박 했다. 천리는 어디에 있는가!

문장발표: 2011년 05월 25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5/25/2414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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