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산둥보도) 2011년 5월 13일 오전, 산둥성(山東省) 웨이팡시(濰坊市) 스쿠이원구(奎文區) 베이위안 가도사무실(北苑街辦) 쩌얼좡촌(則爾莊村) 파룬궁수련생 궈자훙(郭家宏), 궈자푸(郭家福), 궈자성(郭家勝) 세 형제는 집에서 국가보안대대의 불법 인원에게 납치당했다. 이전, 그들 세 형제는 불법 노동교양, 판결을 당한 적이 있는데, 그의 부모(궈후이밍(郭會明), 추이즈민(崔志敏))은 궈자성이 불법으로 중형판결을 당한 기간에 심각한 충격을 입고 연이어 세상을 떠났다.
궈후이밍(郭會明), 추이즈민(崔志敏) 부부
세 형제와 그들의 부모는 1996년에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그들 부모의 각종 질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세 형제는 사람됨이 관대하고 부모에 효도하여 전 가족은 행복하고도 상화했다. 그러나 중공(중국 공산상)이 파룬궁을 박해한 뒤, 그들은 근근이 眞善忍(쩐싼런)을 믿어 좋은 사람으로 되려한 것 때문에 거듭 박해를 당했다.
작은 아들 궈자성이 10년의 무고판결을 당하다
1999년 6월, 궈자성은 자전거를 타고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간 뒤, 직장(웨이팡 비닐공장(塑料廠))에 의해 여러 차례 불법 감금을 당했다. 그 후 박해로 직업을 잃고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 다니게 되었다. 유랑하던 기간에 두 차례나 세뇌반으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다.
2002년 10월 28일 저녁, 궈자성은 셋집에서 웨이팡 공안에게 납치돼, 스쿠이원구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해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그 기간에 창러(昌樂)노동교양소에 납치돼 괴로움을 당했는데, 학대로 눈빛이 흐리멍덩하고 피골이 상접해져 가족마저도 감히 알아보지 못했다. 2003년 4월 16일에 스쿠이원구 사악한 당의 법원에 의해 10년의 무고판결을 선고받아, 산둥성감옥 11감구역에 불법 감금당했다.
동시에, 궈자성과 함께 무고판결당한 파룬궁수련생은 또 웨샤(岳霞), 웨핑(岳平) 모자(웨이청구(濰城區))가 있는데, 웨샤(岳霞)여사는 12년의 무고판결을, 웨핑은 3년의 무고판결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장좐정(張傳正), 궈슈훙(郭秀紅)부부(팡쯔구(坊子區))는 모두 10년의 무고판결을 선고 받았다.
부모가 박해로 세상뜨다
2000년 10월, 당시 연세가 69세인 궈후이밍 노인은 파룬궁을 위해 진상을 설명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다가, 도중에 납치당했다. 납치당해 돌아온 뒤 불법 감금, 갈취을 당했고 집의 전원이 끊겼다. 그 후 작은 아들 궈자성이 납치돼 불법으로 중형판결을 당한 기간에 심각한 충격을 입은 이유로, 2003년 2월 11일에 세상을 떠났는데 연세가 72세였다.
추이즈민 여사(웨이팡시 전 가죽제품공장의 퇴직 직원)는 작은 아들이 중형판결을 선고받고, 남편을 잃은 이중충격을 받은 상황 하에, 2004년 12월 14일에 세상을 떠났는데, 연세가 66세였다.
두 형제가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다
2007년 9월 11일 오후 1시, 웨이팡시 스쿠이원구 분국에서는 대량의 사복한 흉악한 경찰들을 출동시켜 궈자푸, 궈자훙의 집을 포위해 그들 두 형제를 납치했다. 집안의 모든 물건들은 깡그리 강탈당했다. 두 형제는 납치당할 때 다만 팬티만 입고 끌신을 신었을 뿐이다. 한 달이 넘은 뒤 북방의 날씨는 이미 추워졌다. 친척은 여러 차례 알아보았지만 촌위원회 인원과 흉악한 공안은 서로 책임을 미루었다. 몇 달이 지나서야, 두 형제는 모두 1년 반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현재, 세 형제는 단지 眞善忍을 믿고 좋은 사람으로 되려했다는 이유만으로 집에서 다시 한 번 납치당했다. 궈자훙과 궈자푸는 구치소에 불법 감금돼 있고, 궈자성은 세뇌반에 불법 감금돼 박해를 당하고 있다.
부록:
2003년 4월 16일, 스쿠이원구 사악한 당의 법원에서 궈자성, 웨샤, 웨핑 모자, 장좐정 궈슈훙부부에게 무고판결을 내린 관련 책임자:
재판장:뤄웨이친(羅衞琴)
판사: 황원밍(黄文明)
판사: 양쑹쑹(楊松松)
서기원: 쉬샤오린(徐小淋)
문장발표: 2011년 05월 19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5/19/曾遭冤狱迫害-山东潍坊三兄弟又被劫持(图)-24111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