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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후베이 황강시 전신국 위생소 소장 왕젠성이 납치당해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후베이보도) 2011년 5월 3일 전후, 전 황강시 전식국 위생소 소장이자 파룬궁수련생인 장젠성(王建生)은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납치당한 자세한 정황은 다음과 같다.

근 60세인 왕젠성은 전에 부대의 ‘뢰봉따라배우기 초병(學雷鋒標兵)’이란 칭오를 받은 적이 있다.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두 차례나 불법 구류를 당했고, 세 차례나 세뇌반으로 납치돼 불법 구류처분을 받아 16개월 동안 체포당한 적이 있다. 2003년 10월부터, 왕젠성은 박해로 여태껏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 다녔는데, 집이 있어도 돌아올 수 없었다.

그 기간 황강시의 610 사무실, 국가보안과 공안은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늘 집으로 찾아와 가족을 괴롭혔다. 왕젠성의 아들은 황강 사법학원 미술학과에서 2년간 공부했는데 매년 8천 위안의 학비를 내지 못해 어쩔수 없이 퇴학하고 일을 하여 집 생활을 유지하는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없는 아들과 남편이 없는 아내, 두 모자는 서로 굳게 의지해 살아가면서 아이가 가정을 이룰 때까지 함께 가정을 지탱했다. 2011년 3월에 손자가 태어난 후, 왕젠성은 거주하던 곳에서 손자를 보러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겨우 며칠 밖에 묵지 않았는데, 곧 경찰에게 잠복감시 및 납치당했다.

대법을 수련해 심신이 승화되다

왕젠성(남, 1953년 출생)은 전에 54670부대 위생소 소장을 맡은 적이 있다. 20년 동안 군대에서 복무했고 전쟁터에 간 적이 있다. 그는 직장에서 부지런했고 한때는 부대의 ‘뢰봉따라배우기 초병(學雷鋒標兵)’이란 칭오를 받은 적이 있다. 1993년에 전역해 황강시 전신국 위생소 소장을 맡았다. 장시간 동안 업무의 과다로 인해 왕젠성은 피로가 쌓여 10종의 만성 완고성 질병에 걸렸다. 예컨대 인후염, 위축성위염, 만성 B형 간염, 조기 간경화, 요추판돌출 등등으로 매년 적잖은 의료비를 썼다. 왕젠성은 의사였지만 그도 자신의 병을 치료하지 못했다.

1995년 말에 왕젠성은 대법수련에 들어섰다. 파룬궁을 연마해 한 달도 되지 않아 몸에 있던 병은 모두 깨끗이 없어졌다. 집에서 왕젠성은 엄격하게 파룬따파 ‘眞ㆍ善ㆍ忍 (쩐ㆍ싼ㆍ런)’의 법리에 따라 자신을 요구했다. 왕젠성의 아내는 왕젠성이 장시간 동안 군대생활에서 양성된 난폭한 성질을 모두 다 고쳤다고 말했다. 아이는 자랑스럽게 “저의 아버지는 아주 좋은 사람입니다.”고 말했다. 직장에서도 더욱 근면하고 성실하게 업무에 임했으며 청렴결백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중국의 의료계통은 극히 부패한 것으로, 의약회사는 약품을 판매하기 위해 선물을 주고 사례금을 주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당시 약국 동료인 황(黄)씨는 의약회사의 사람과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선물하지 마세요. 왕의사는 파룬궁을 연마하기에 이런 것을 받아들이지 않아요.” 어떤 때에는 보내온 고급차(高級茶葉)를 되돌려 보내지 못하게 되면 위생소에서 공동으로 사용했다. 매년 직장에 상납한 약품 사례금은 4만 8천 위안이 넘었다. 왕젠성이 위생소를 조직하고 주관한 이래 한 건의 의료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왕젠성이 파룬궁을 연마한 후의 변화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와서 배우게 했다. 그들은 말했다. “왕의사는 좋은 사람입니다. 그가 연마하는 공법은 틀림없을 겁니다.”

파룬따파가 사람에게 중덕수신(重德修身)하여 선을 행하게 하며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뛰어난 효과 때문에, 점점 많은 사람들이 대법을 얻게 되었고, 파룬궁 수련자의 좋은 사람, 좋은 일은 끊임없이 생겨났다. 파룬궁은 황강시에서 광범위하게 빠른 속도로 호응을 얻었다. 파룬궁수련생이 시 도서관에 책을 기부한 장면이 황강시 텔레비전방송국 프로그램에서 나타난 적도 있다.

1999년 7월까지 박해가 발생하기 전에, 황강시 황저우(黄州)시에만 적어도 천 명을 넘는 사람이 수련했다.

청원한 것으로 인해 철직당해 근무처에서 전출당하다

1999년 7월, 중공이 전국 범위로 대법을 모함하고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다. 왕젠성은 청원하러 베이징으로 갔다. 톈안먼에서 연공을 한 이유로 무장경찰과 사복경찰에게 톈안먼 파출소로 붙잡혀갔다. 왕젠성은 경찰의 불법 심문을 거부해 대답하지 않자, 수갑이 채워졌다. 이어서 또 등 위에 무차별 폭력을 가했다. 경찰은 거꾸로 채운 수갑을 위로 잡아당겨 올렸다. 이튿날 황강시공안국1과의 샤샤오룽(夏曉蓉)과 원래의 직장 보위과의 팡궈인(方國銀)에 의해 불법으로 황강시로 납치돼 돌아왔다. 이른바 ‘사회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죄명으로 보름 동안 행정구류처분을 받아, 룽왕산(龍王山)의 황강시제2구치소에 갇혔다. 450위안의 급식비를 갈취당한 동시에 왕젠성의 아내는 직장에서는 또 3천 위안의 현금을 달라고 했다.

풀려난 이튿날, 직장에서는 왕젠성에게 출근하라고 했다. 어떠한 사람도 왕젠성과 담화하지 않고, 또 왕젠성의 동의도 없이 직장에서는, 위생소 소장의 직무에서 해직시켰다. 강제로 다른 근무처로 전출시키고, 생활비 3백 위안만 지급하고 일주일에 이틀 휴식에서 하루만 휴식시킨다는 결정을 내렸다. 2002년에 황강 전신국에서는 강제로 왕젠성에게 명예 퇴직시키고. 2003년 연말부터 전신국에서는 왕젠성에게 명예 퇴직 월급을 지급했다.

왕젠성은 원래 직장의 화훼(花卉)기지로 귀양 보내져, 매일 꽃에 물을 주었다. 15kg되는 철통을 들어 올려 매일 몇 십 통에서 백 통 넘는 물을 주어야 했다. 왕젠성은 종래로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일을 하지 않으면 그가 가서 했는데, 임시공마저 모두 아주 탐복했다.

그 기간, 황강시정부 직속 기관 업무 위원회에서 청원하러 간 수련생에 대한 처리 상황을 조사하러 갔을 대, 왕젠성에 대한 처리가 너무 치나쳤음을 인정했다. 직장 보위과 과장 청빙쉐(程秉學)가 왕젠성을 찾아 담화했는데 왕젠성의 태도는 확고했다.

왕젠성은 그 후 또 직장의 화훼부서로 전근돼 꽃을 판매했다. 왕젠성은 가자마자 동료들의 칭찬을 받았다. 왕젠성이 도착하자마자 영업액이 많이 높아졌고, 위생도 강화되었다고 말했다. 이 단락 시간에 전신국에서는 악인을 배치해 비밀리에 왕젠성을 감시했다. 감시 카메라 한대를 보위과 창문 안에 설치해서 왕젠성이 어떤 사람들과 접촉하는지를 녹화하고 관찰하면서 지켰다.

그다음에 전신국에서는 왕젠성을 본 국에서 새로 조직한 슈퍼에 전근시켜 일하게 했다. 한 여성 직원을 배치해 왕젠성을 따라 한 사무실로 와서 감독하게 했다. 왕젠성은 본 국의 직원과 물건을 구입하는 인원에게 파룬따파의 진상과 박해당한 상황을 이야기했다. 어느 한 번은 국의 중요한 책임자가 상황을 알아보러 슈퍼로 왔는데, 그 여성 직원은 “왕의사는 파룬궁을 연마한 후 확실히 좋게 변했어요. 종래로 화도 내지 않아요.”말했다. 이 책임자는 말했다. “당신에게 그를 감독하라고 했는데, 결과 당신은 도리어 그에게 감화되었군요.”

세뇌반에 불법 감금당하다

1999년 말, 전신국 인력자원부의 차이즈쥔(蔡志軍)은 왕젠성에게 세뇌반으로 가라고 했다. 말로는 상부에서 이름을 불렀기에 꼭 가야 하는바, 가지 않으면 그들이 보고하기 어렵다고 했다. 세뇌반에서 왕젠성은 단식을 시작해 ‘전향’을 거부했다. 수련을 견지한 왕젠성과 궈리눠(郭麗娜)는 제2구치소로 끌려가 불법으로 행정구류 처분을 받았다.

2000년 연말, 어떤 수련생이 왕젠성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튿날에 베이징으로 가는 열차번호를 말했다. 집 전화가 감청당했던 이유로, 한 시간 후에 직장 보위과 과장이 왕젠성의 집으로 와서 타오(陶)국장이 왕젠성을 찾아 상담하려고 찾는다고 말했다. 직장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그들은 곧 왕젠성을 시 사법학교에 설치한 세뇌반으로 보냈다. 세뇌반이 결속된 그날, 왕젠성에게 ‘보증서’를 쓰도록 했으나 왕젠성은 단호하게 쓰지 않았다.

16개월 불법 감금당하다

에저우(鄂州)와 황강은 강을 하나 사이에 두고 있다. 악도는 에저우 그곳의 경문은 왕젠성이 준 것이라는 구실을 이유로 해서 2001년 여름의 어느 일요일 오후, 황강시 황저우구 공안분국1과 과장 저우위화(周鬰華)는 성리가(勝利街)파출소 경찰과 에저우시 에청구(鄂城區)공안분국의 경찰 3명을 거느리고, 갑자기 왕젠성의 집에 들이닥쳤다. 그리고 토비처럼 샅샅이 뒤지며 철저하게 검사한 동시에 오토바이와 아들이 사용하는 컴퓨터를 강제로 강탈해갔으며, 왕젠성은 에청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구치소의 경찰은 강제로 왕젠성에게 마보로 쭈그려 앉히기(蹲馬步) 고문을 가했고, 왕젠성의 두 발의 복사뼈 관절의 민감한 부위(나사못 뼈라고 속칭함)를 두드렸는데 마치 목탁을 두드리는 듯이 두드려 매우 아팠다. 그리고 대변을 보지 못하게 했다. 불법 심문 중에 왕젠성은 그들에게 경고했다. “바로 왕젠성을 총살한다 해도 왕젠성은 ‘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고 말할 것입니다.”

왕젠성은 체포증 위에 서명함을 거부했다. 사악은 강제로 왕젠성의 아내에게 황강에서 에청구공안분국으로 와서 그를 핍박해 서명시키도록 했다. 그 기간에 가족이 보낸 돈과 의복과 기타 일용품 모두 경찰과 옥졸에게 횡령 당했다. 맨 마지막에 왕젠성을 풀어주는 그날, 구치소에서는 불법으로 왕젠성의 아내에게 4천 위안의 급식비를 달라고 했다. 불법 감금기간에 왕젠성이 주숙했던 감방의 98%되는 수감인원마저도 모두 ‘大法好’(대법이 좋음)을 인정했다.

이 16개월 사이에, 왕젠성의 심신은 막심한 손상을 입었다. 머리칼은 거의 모두 희어졌고, 173cm인 키에 다만 50kg밖에 남지 않았다. 지병이 도져서 두 차례나 고열이 40도로 올랐으며 폐부위는 심한 고통으로 하룻밤 동안 신음소리를 했다. 그리고 이자도 아팠으나, 구치소에서는 외부에 가서 병을 보이지 못하게 했다. 감방을 바꿀 때, 왕의사는 들려갔다.

불법 감금기간, 황강 전신국에서는 3백 위안 되는 생활비마저도 불법으로 지급을 중지했다. 동시에 에청공안국으로 사람을 파견해 말했다. “당신들은 어째서 왕젠성을 판결하지 않으세요?”

세번째로 세뇌반에 불법 감금당하다

2002년 연말, 전신국 보위과 과장 장즈눙(江支農)(이 사람 역시 왕젠성의 전우임)은 왕젠성이 출근하는 슈퍼로 가서 왕젠성에게 세뇌반으로 가도록 했다. 왕젠성은 가지 않겠다고 견지했는데 약 한 시간 동안 서로 맞섰다.

장즈눙은 직장의 직원과 임시공에게 왕젠성을 강제로 차위에 끌어 올리게 했다. 직원은 한 사람도 따르는 사람이 없었고, 임시공마저 몰래 도망쳤다. 장즈눙은 어쩔 수 없이 성리가파출소에 전화를 걸어, 장(張)씨 성의 경찰 두 사람과 보위과 왕즈쥔(王自軍)을 불러다가 강제로 왕젠성을 납치해 아래 층으로 들어다가 차안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강제로 제2구치소에 설치되어 있는 세뇌반으로 보냈다.

이번 세뇌반에는 파룬궁수련생 4명이 모두 납치당해 왔다. 20일 동안에 거의 날마다 모두 대법을 비난하는 동영상을 틀어놓았다. 왕젠성은 꼬박 이틀 동안의 단식으로 거부해 아무것도 쓰지 않은 채 세뇌반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전신국에서는 2003년 10월부터 왕젠성에게 명예퇴직 월급지급을 정지했다. 왕젠성의 집에는 또 80여 세인 노모친이 계셨다. 2003년 ‘10.1’전, 경찰은 이른바 에청 그쪽의 진상자료 문제를 구실로 삼아, 다시 와서 박해하고, 불법으로 지명수배령을 내려 왕젠성을 체포하려고 도모했다.

왕젠성은 핍박에 못 이겨 집을 떠나, 여태껏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 다녔다. 결국 2011년 5월에 막 태어난 지 오래지 않는 손자를 보러 집으로 갔다가 곧 황강시의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문장발표: 2011년 05월 09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5/9/原湖北黄冈市电信局卫生所长王建生被绑架-2403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