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쑹후이란 박해로 다리 절단 직면, 구치소 책임 회피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성 보도)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허강시(鶴崗市) 경내의 신화(新華)농장의 쑹후이란(宋慧蘭ㆍ60)은 2010년 12월 13일에 다시 한 번 중공(중국 공산당) 경찰에게 납치돼 고문을 자백을 강요당했고, 탕위안현(湯原縣) 구치소에서 독극물을 주사당했다. 짧은 2개월 사이에 원래 건강하고 자유롭게 걸어다니던 사람이 박해로 기억이 흐리멍덩하고 다리와 발이 검게 됐으며 발이 썩어 다리뼈가 드러나 절제할 위험에 직면했다. 하지만 탕위안현 구치소에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신화농장 국보대대의 리융(李勇) 등 사람은 현지 파출소와 결탁해 쑹후이란 가족을 쫓아다니며 교란했다.

4월 11일 오후, 신화농장 공안국 국보대대의 리융 등 사람과 헝터우산진(橫頭山鎭) 파출소의 불법 경찰은 경찰차를 몰고 헝터우산진 중학교로 가서 쑹후이란의 생질녀 남편을 찾아 쑹씨의 주소를 물었다. 동시에 그녀는 보석된 것이니 매달 꼭 자신들을 한 번씩 만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그녀 사위가 아래(정거장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있는지를 물었으며 동시에 그의 이름을 말하게 했다. 그런 다음 그들은 또 차를 몰고 주차장으로 가서, 그녀의 사위를 찾아 딸의 주소도 물었다. 동시에 그녀의 딸이 어디에서 출근하는지, 핸드폰 번호 등은 무엇인지를 물었는데 쑹씨 가족으로 하여금 편안히 있을 수 없게 했다.

쑹후이란은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 온몸이 병으로 가득했다. 신우신염, 신장결석, 류머티즘관절염, 간염을 비롯해 자궁근종으로 자주 하혈했다. 사는 것이 고통이었다. 이로 인해 부부사이도 좋지 않아 싸움이 그칠 줄 몰랐다. 1997년 그녀는 운좋게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한지 몇 개월 만에 온몸에 있던 질병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건강이 회복되자 가정도 화목하게 변했다. 2010년 12월, 쑹후이란은 헝터우산으로 일을 보러 갔다가 임시로 수련생 쭤슈원(左秀文)의 집에 머물렀다. 12월 13일 오전에 헝터우산 파출소 소장 왕쉰제(王訓傑), 간수소 경찰 위무춘(於木春), 화촨현(樺川縣) 국보대대의 둥훙성(董洪生), 자유(賈友), 댜오(刁)씨 성을 가진 경찰 등이 담장을 뛰어넘어 정원 안으로 들어와 불법적으로 쭤슈원 집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토비(土匪-산적)처럼 강탈을 하는 동시에 쑹후이란, 쭤슈원, 왕단과 그의 모친을 납치했다.

화촨(樺川)파출소와 구치소에서 쑹후이란은 혹독한 구타, 강제 자백을 당했다. 단식으로 박해에 반대하다가 화촨현 병원에 끌려가 몇 병의 독극물을 주사당했다. 화촨현 구치소의 팡(龎)소장을 우두머리로 해서, 매일 10여 명 경찰들이 밤낮 번갈아가며 쑹후이란을 가해했다. 매일 저녁마다 쑹후이란의 두 발에 족쇄를 채우고 두 손에 수갑을 채워 대자형으로 침대 위에 늘여 놓고 야만적으로 음식물을 주입했다. 12월 31일, 쑹후이란은 탕위안현 구치소로 옮겨져 연속 박해를 당했다.

탕위안현 구치소 소장 옌융(閆勇)은 쑹후이란에게 말했다. “쑹후이란, 당신이 또 돌아왔는가. 당신은 아직도 지난번처럼 그렇게 단식해서 나가려고 상상하는가. 당신은 이 생각을 단념하라. 어림도 없다.” 동북의 겨울밤 영하 20~30도 되는 상황 하에, 그는 쑹후이란을 차디찬 바닥에 자리를 펴서 재웠고 다만 얇은 비닐 이불만 덮게 했을 뿐이다. 쑹후이란은 매일 저녁 추위에 온몸을 떨었는데, 이로 인해 자궁하수가 생겨 새빨간 살이 음부에서 아래로 드리워져 매우 고통스러웠다.

쑹후이란은 계속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했다. 옌융, 리(李)교도관, 장(薑)교도관, 또 차이(蔡)씨와 리(李)씨 성을 가진 교도관, 양리(楊麗)라고 부르는 교도관은 그녀를 바닥에 꽉 억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동시에 쑹후이란에게 수갑을 채워 강제로 빨리 정체불명의 약물 한 병을 주입했다. 이 독극물은 쑹후이란으로 하여금 전신에 참기 어려운 극심한 고통을 조성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게 했고, 말까지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어떤 경찰은 다가와서 비웃으며 말했다. “별일 없어. 부작용이 없어.” 차오윈팅(喬雲亭)이란 소장이 또 다가와서, “가만히 있지 않으면 고리를 채워 땅에 못으로 박아 놓겠다”고 위협했다.

酷刑演示:打毒针(注射不明药物)
고문 시연: 독극물 주사 (정체불명한 약물을 주사하다)

쑹후이란은 극히 고통스럽게 저녁까지 견뎌냈는데, 오른쪽 무릎 이하와 오른발이 전부 검은 색으로 변했음을 발견했다. 무릎 이하는 전부 감각을 잃고 몸은 뻣뻣해 졌으며 걷지도 못했다. 의사가 왔고 경찰도 그 자리에 있었다. 쑹후이란은 “내 이 다리는 바로 당신들이 주사를 놓은 탓이다”라고 말했다. 여 감옥의사는 쑹후이란의 다리와 발을 본 다음 말했다. “이 다리는 불구가 됐군요.”

2011년 3월 1일, 탕위안현 구치소에서는 쑹후이란이 구치소에서 사망해 책임을 감당할까 두려워, 쑹후이란의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데려가게 했다. 쑹후이란은 가족이 구치소에서 데려갔다. 당시 쑹후이란의 몸은 뻣뻣해졌고 눈빛은 흐리멍덩했으며 말할 수 없었다. 손과 발은 뻣뻣해져 굽히지 못했는데 마치 목석 같이 어떠한 반응과 감각(당시 가족은 겉모습만 보았을 뿐, 다리와 발의 상황은 아직 모르고 있엇음)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가족은 그제야 쑹후이란의 오른발 이하, 발등, 발가락이 전부 괴사해서 검은 색을 띠고 누런 진물을 흘리고 있음을 발견했다. 만지면 뻣뻣했는데 두드리면 마치 철판처럼 소리가 났다.

가족은 둘째 날과 셋째 날에 연속 쑹후이란을 데리고 자무쓰시(佳木斯市)의 두 개의 큰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게 했다. 의사는 본 다음 모두 말했다. “이미 치료할 가치가 없습니다. 다만 절단할 수밖에 없는데 생명위험이 있습니다.” 가족은 상심하고 고통스러웠으며 극도로 분노했다. 돌아가서 탕위안현 구치소를 찾아 치료할 자금를 내놓도록 요구했다. “당신들은 무슨 약물을 사용해서 그녀를 이 지경으로 해쳤는가?” 차오씨 성을 가진 소장은 마음이 켕겨 말했다. “무슨 약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심장을 치료하는 약을 사용했습니다.” 기율검사위원회를 책임진 란(蘭)씨 성을 가진 서기가 말했다. “사람이 그렇게 됐는데 당신은 무엇 때문에 또 데려갔는가. 이튿날에 또 어째서 데려오지 않았는가?” 게다가 온갖 방면으로 가족을 위협하고 얼버무려 죄책을 전가했다.

다음은 가족이 당시 탕위안현 구치소 소장 차오윈팅의 사무실에서 그와 나눈 대화로, 당시 방안에 또 기율검사 서기(란씨)가 있었다.

가족: 아주 위험한 상황입니다. 병원에서는 우리를 하얼빈으로 가도록 했습니다. 원래의 병력서를 요구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확실한 진단을 내릴 방법이 없습니다!

차오씨: 병력서가 없습니다!

가족: 당신들이 그녀를 치료할 때 모두 병력서를 쓰지 않습니까?

차오씨: 그건 당신에게 줄 수 없습니다. 한 부 복사하는 건 가능합니다.

가족: 사람이 아주 위험합니다! 발과 다리까지 검어졌습니다! 당신들은 책임을 져야합니다!

란 서기: 사람이 그렇게 됐는데 당신들은 어째서 데려갔습니까?(태도가 아주 흉악했음)

가족: 당시 당신들이 우리를 오라고 불러서 우리는 차에 앉아서 왔습니다. 당신들이 사람을 들어내올 때는 옷을 입고 양말을 싣고 있어서, 우리는 그녀의 증상을 보지 못했습니다. 집에 도착한 후에야 그제야 발견했습니다!

란 서기: 그럼 당신은 이튿날에 무엇 때문에 다시 데려오지 않았습니까? (태도가 아주 흉악했음)

가족: 사람이 그 정도로 됐는데, 우리가 병원으로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란 서기: 어디 병원으로 갔습니까?

가족: 자무쓰2원(佳木斯二院)입니다!

란 서기: 어느 과에서 어떻게 보았습니까?

가족: 우리는 칼라 초음파를 했습니다.

란 서기: 내가 봅시다.(가족이 란씨에게 컬러 초음파를 보여주었다. 란씨는 본 다음 슬그머니 사라졌다.)

가족(차오씨에게 말했음): 당신들은 그녀에게 무슨 약을 주사했는데, 그녀가 그 지경으로 되었습니까? 어떻게 괴롭혀서 그 지경으로 만들었습니까? 또 고리로 채워 땅에 못으로 박아 놓겠다고 위협했다면서요.

차오씨: 무슨 약을 주사하지 않았습니다. 심장을 치료하는 약입니다!

가족: 그녀는 심장병이 없는데 당신이 무슨 심장을 치료하는 약을 주사합니까? 당신들이 그녀를 박해해서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당신들이 우리에게 의료비를 주어야 합니다!

차오씨: 우리에게 무슨 돈이 있습니까?

가족: 우리는 농촌 사람으로 우리에게는 돈이 없습니다.

란 서기: 당신들이 사람을 데려갔으니 우리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가족: 당신들이 관계없다고 한 이상, 그럼 당신들은 서명하시오!

차오씨: 나는 서명할 수 없습니다! 나는 당신들이 재판을 걸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차오윈팅은 쑹후이란의 다리와 발가락은 모두 검어졌음을 시인하지 않고 이렇지 않았다고 말했음).

가족: 당신들 이것이 잡아떼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사람을 마중한 이튿날에 곧 병원에 갔습니다.

란 서기: 당신에게 진단서가 있습니까? (가족이 진단서를 꺼내자 란씨는 본 다음 말이 없었음)

차오씨: 당신은 위(상부)를 찾아가도 좋습니다!

가족: 어디가 위입니까? 위에 누구입니까?

차오씨: 공안국입니다.(사건처리 부서)

가족: 그럼 당신이 우리에게 서명해주십시오.

차오씨(서명을 거부): 당신들은 돌아가서 속히 치료를 하세요. 모든 영수증은 남겼다가 이후 보상해 준다고 말했습니다. 국가보상법이 있습니다.

가족: 사람이 이미 이 지경이 됐는데, 당신들은 또 그녀를 보석하려고 가족에게 서명하도록 핍박합니까? 이렇게 하면 그녀가 건강을 회복하는데 영향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보석을 취소하십시오.

차오씨: 당신은 법을 알기나 합니까? 이것은 공안국에서 한 것으로 나와 관계없습니다.

가족: 당신은 국가 법률을 위반했습니다. 이것은 고의적 상해죄입니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대참사 중에서 쑹후이란은 거듭 박해를 당했다. 2002년 3월에 그녀는 1년의 불법 노동교양을 선고받았고, 2002년 3월에 그녀는 다시 한 번 납치당한 후 3년의 불법 노동교양을 선고받았다. 2008년 4월에 그녀는 또 한 차례 경찰에게 납치당했는데, 구치소 경찰은 강제로 그녀를 찬 시멘트바닥에 꼬박 2일간 앉혀놓았고, 또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고 머리를 벽에 박았다. 2010년 7월 1일, 쑹후이란은 탕위안현의 9명 파룬궁수련생과 함께 탕위안현 지샹진(吉祥鎭) 서우왕촌(守望村)으로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해 사람을 구하다가 악인에게 납치당했다. 탕위안현 구치소에서 쑹후이란은 줄곧 생명이 위독해질 때까지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했다. 악인은 책임을 감당할까 두려워 그제야 그녀를 풀어주었다. 그녀는 가족에게 들려 돌아왔다.

문장발표: 2011년 04월 27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4/27/23970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