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톈진보도) 4월 12일, 톈진(天津) 강베이 감옥 밖에서 한 노부인이 “아들의 생명이 위독한데 강베이(港北) 감옥에서는 부모와의 면회를 허락하지 않는다. 아들은 좋은 사람이다.”라고 쓴 흰색 조끼를 입고 서있었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억울하다! 공산당은 도리를 따지지 않는다!”며 동정했다. 이는 톈진시 철도 제3측량설계원 건설비 엔지니어이자 파룬궁수련생인 저우샹양(周向陽)의 모친이 아들을 만나려다가 거부당한 후에 일어난 일이다.
4월 12일 오전, 저우샹양의 부모는 생명이 위독해진 아들을 보려고 서둘러 고향인 창리(昌黎)에서 톈진 강베이 감옥으로 갔다. 저우샹양의 아내와 형수, 누나가 동행했다. 면회수속을 밟는 차례가 왔지만 교도관은 “저우샹양은 만나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노부인이 “왜 못 만나게 하는가? 그런 규정이 어디에 있는가?”라며 물었다. 그러자 교도관은 “상부의 규정이다. 언제 만날 수 있을지는 다시 통지하겠다.”고 말했다. 노부인은 “이미 한 달 넘게 기다렸다. 오늘 꼭 만나야겠다. 만나지 못하게 하려거든 아들을 풀어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교도관은 노부인을 상대하지 않고 다음 사람의 수속을 밟았다. 노부인은 매우 상심하며 그들과 도리를 따졌으나 여전히 듣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아들의 생명이 위독한데 강베이(港北) 감옥에서는 부모와의 면회를 허락하지 않는다. 아들은 좋은 사람이다.”고 쓴 흰 조끼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이 구경을 했고 노부인은 사람들에게 “어미로서 내 마음이 다 찢어진다. 아들은 이미 한 달 넘게 감금돼 생명이 위독하다. 지난달에 여기에 와서 아들이 있는 지 문의했지만 그들은 그런 사람 없다고 나를 속였다. 이곳에 이틀 밤낮 앉아 있었지만 만나게 하지 않았다. 아들은 엔지니어이며 ‘眞ㆍ善ㆍ忍 (쩐ㆍ싼ㆍ런)’을 신앙하는 좋은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작은 가방에 돈을 넣어 아들에게 선물했지만 아들은 거절했다.”고 말했다. 둘러싸고 구경하던 어떤 사람은 동정심에 눈물을 흘렸고, 어떤 사람은 “공산당은 도리를 따지지 않는다. 도리를 따질 곳이 없다.”고 말했다. 또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 갇히다니. 억울하다!”고 말했다. 팔을 들고 “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크게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이때, 강베이 감옥에서는 무장경찰이 출동했다.의 무장경찰 5~6명은 감옥 문어귀에 서있었다. 구경하던 군중들은 무장경찰에게 “이 노부인은 얼마나 존경을 받을 만한 분인가.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용감하게 진실한 말을 하는데, 정말 감탄스럽다. 무장경찰이란 좋은 사람을 보호하고 나쁜 사람을 벌하는 직책이다. 당신들은 맨주먹인 노부인과 ‘眞ㆍ善ㆍ忍 (쩐ㆍ싼ㆍ런)’을 신앙하는 좋은 사람을 이렇게 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잠시 후에 감옥의 정문이 열리더니 큰 차 한 대가 안으로 들어갔다. 노부인이 따라서 걸어 들어가자 한 교도관이 노부인을 잡아당겼다. 노부인은 아들에 대한 걱정과 또 이런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에 갑자기 기절했다. 가족의 끊임없는 요구에 결국 노부인은 오후 세 시 넘어서 마침내 아들을 만났다.
전 톈진시 철도 제3측량설계원의 엔지니어이자 파룬궁수련생인 저우샹양
저우샹양이 박해당한 상황에 대한 약술
저우샹양(38)은 톈진시 철도 제3측량설계원 건설비 엔지니어이다.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중공 경찰에게 납치돼 9년의 불법판결을 선고받고 톈진 철도구치소, 톈진 칭보와(靑泊窪)노동교양소, 톈진 솽커우(雙口)노동교양소, 톈진 지현(薊縣) 위산(漁山)노동교양소, 톈진 허시(河西)구치소에 불법감금 당했다. 2003년 5월 31일에 9년의 불법판결을 선고받았고 그 기간에 수없이 고문을 당했다. 밤새 전기충격을 당해 온몸은 상처투성이였고, 30일간 잠을 못 자게 했다. 그리고 여러 차례 독방에 가두고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등등 고문을 가했다. 2008년 6월 말, 저우샹양은 박해를 저지하기 위해 강베이 감옥에서 1년 넘게 단식을 했다. 몸무게는 겨우 40kg이 좀 넘었고, 몸은 허약해져 걸을 수도 없었으며, 대소변도 스스로 볼 수 없게 됐다. 2009년 7월 28일에야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았다. 2011년 3월 5일, 저우샹양은 탕산의 세든 집 안에서 다시 납치를 당했다.
저우샹양의 노모와 가족은 소식을 접하고 도처로 뛰어다니면서 그의 행방을 알아보았다. 사건을 꾸미는 데 참여한 탕산 국가보안, 원화루(文化路)파출소, 톈진 국가보안, 톈진 강베이 감옥에서 서로 책임을 미뤘다. 탕산 국가보안 측은 톈진 국가보안에서 사람을 붙잡았다며 자신들은 단지 사건처리에 협조했을 뿐이라고 했다. 톈진 공안국에서는 사람을 붙잡은 곳에서 사건을 처리한다며 톈진 국가보안에서는 이런 일이 없다고 말했다. 강베이 감옥에서는 저우샹양이라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아들의 행방을 모르는 노모는 초조했다. 그래서 3월 9일에 다시 강베이 감옥을 찾아갔다. 감옥 문 앞까지 가서 땅에 앉아 아들을 풀어달라고 외쳤다. 교도관 두 세 명이 강제로 노부인을 문밖으로 끌어내 문을 닫았고, 문밖에 간수를 4~5명 더 배치했다. 노부인은 아들을 만나려고 그곳에서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밤 9시 넘어서 다강(大港) 사법소 관계자라 자칭하는 사람 10여 명이 와서는 감언이설로 저우샹양의 모친과 누나를 룬자 콰이제(潤家快捷)호텔로 끌고 갔다. 말로는 이튿날에 이 일을 해결한다고 했다. 이튿날 노부인이 다시 그들을 찾았지만 ‘시간이 없다, 회의를 한다, 자신들 관할이 아니다’며 책임을 미뤘다. 가족은 어쩔 수 없이 또 강베이 감옥으로 되돌아갔고, 감옥 측에서는 기다리라고 했다. 저우샹양의 모친과 누나는 강베이 감옥의 문어귀에서 밤새 앉아있었다. 노부인은 아들이 2009년에 강베이 감옥에서 출옥할 때 목숨이 경각에 닿았던 모습을 떠올리고는 마음이 칼로 베듯이 괴로워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철이 들고 장래성이 있는 아들이 왜 계속 박해를 당해 수차례 목숨을 잃을 뻔 했는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소식에 따르면, 저우샹양은 탕산 국가보안과 원화루파출소의 결탁에 의해 납치당했고, 지난번보다 더 심각한 고문을 당해 지금 몸은 매우 허약한 상태이다. 가슴 통증과 혈뇨가 있고 아랫배에 부스럼이 생겨 아프다. 이미 한 달 넘게 음식물을 먹지 못했으며, 며칠에 한 번씩 링거를 주사하고 있다. 강베이 감옥에서 그에게 야만적인 음식물주입 박해를 강행했다.
탕산시 원화루파출소:
전화번호:0315-2853006
소장:자잉제(賈英傑) (전 탕산 루베이구(路北區)국보대대 대장)13832989898
강베이 감옥:
전화:022-63251056, 022-62071156
자문전화:022-62071052
5감구역 전화:022-62071151
5감구역 1분감구역 022-62071158
문장분류: 2011년 04월 22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문장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4/22/2394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