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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부터 노동교양을 당한 정바오화가 거듭된 박해로 세상을 뜨다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허베이 보도)허베이성(河北省) 런추시(任丘市) 화베이(華北) 석유 종합7처(石油綜合七處)의 여성 파룬궁 수련생 정바오화(鄭寳華)는 고등학생 때 중공(중국 공산당)의 노동교양 박해를 당했다. 지나온 여러 해 동안에 불법 감금, 불법 박해를 당한 시간을 함께 합하면 7~8년이 된다. 그 기간에 거듭 고문과 학대를 당했는데, 탕산 카이핑노동교양소에서 학대로 폐결핵 말기로 생명이 위독해져 음식물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2011년 4월 18일에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나이 겨우 32세였다.

정바오화는 수련을 하지 않았을 때는 약골로, 말하는 것마저도 기운이 없었고 안색이 누렇고 몸이 수척했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온몸의 질병들이 전부 없어졌고 생기가 있고 왕성해졌다. 1999년에 정바오화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중공 장,뤄(江羅) 깡패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한 원인으로 그녀는 박해를 당해서, 여러 차례 불법 감금과 노동교양을 당했고 각종 고문과 학대를 당했다. 밍후이왕의 2000년 보도에 따르면, “정바오화는 런추시 화베이 유전교육학원 고중3학년 학생 때, 2000년 3월 17일 스자좡시(石家莊市)노동교양소로 납치당했다. 첫 날에 뺨을 20여 대 맞았다. 그후 죄수복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두 차례나 끈에 묶이고, 여러 차례 고무몽둥이에 구타당했거나 무차별 폭력을 당했다. 그녀는 손목 부위의 뼈를 움직이며 아파했다.

2008년 7월 6일, 정바오화는 탕산 쭌화(遵化)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악인에게 무고당했고, 쭌화세뇌반으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으며 악인에게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10여 일 후에 카이핑노동교양소로 불법으로 보내져 박해를 당했다. 카이핑노동교양소에 있던 기간에 정바오화는 카이핑 여자노동교양소의 흉악한 경찰에게 여러 차례 고문을 당했는데, 예컨대 혹독한 구타, 세워두는 고문,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하기, 장시간 동안 잠을 재우지 않기,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등이다. 아래는 단지 몇 가지 사례를 들었을 뿐이다.

2008년 11월 초, 정바오화는 박해를 저지해 자신이 죄수임을 승인하지 않아 죄수복을 입지 않고, 인원을 보고하지 않았다가 흉악한 경찰 왕원핑(王文平)에게 경찰이 사용하는 몽둥이로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흉악한 경찰 루하이춘(陸海存)은 전기곤봉으로 그녀의 두 손등에 전기충격을 가했고, 그녀를 교육과 의자 위에 4일 동안 채워놓았다. 탕산의 11월 초의 날씨는 여전히 아주 추웠는데, 흉악한 경찰은 여전히 교육과 방 안의 창문을 활짝 열었다. 정바오화는 구타당하고 추위에 떨어 결국 땅 위에 기절했다.

2009년 1월 1일, 파룬궁 수련생들은 집체적으로 인원을 보고하지 않았고, 불법으로 몸을 수색하는 것과 박해를 저지했다. 그후 며칠 동안 연속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정바오화는 의자에 6일을, 바이펑위(白鳳玉)와 런수펀(任淑芬)은2일을 묶여 있었다. 그리고 류수거(劉淑格), 허우팡(侯芳), 류샤오쥔(劉曉君), 양먀오(楊淼), 리후이(李慧)는 교육과에 끌려가서 복도 안에 세워져 하루 동안 추위에 떨었다. (아침8시부터 오후 5시까지). 흉악한 경찰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여전히 견지하는 것을 보자, 이튿날 오후에 인원을 보고하지 않는 모든 수련생들을 전부 밖에 끌어다가 추위에 떨게 했는데(왕란펑, 양먀오는 몸이 좋지 않아 추위에 떨지 않은 것을 제외) ‘얼음 감옥에 갇히다(坐冰牢)’고 불렀다. 밖은 차가운 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드는데 20여 명이 서있었다. 마침내 정바오화는 연일 박해를 당했던 원인으로 땅 위에 기절해 쓰러졌다.

2009년 2월 26일, 파룬궁 수련생 정바오화와 류샤오쥔 등은 연공한 것 때문에 흉악한 경찰에게 발견된 후, 또 흉악한 경찰에게 교육과의 의자 위에 10일 동안 채워져 있었는데 여전히 창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열흘 째 되어서야 그녀들을 방으로 돌아가게 했다. 그러나 흉악한 경찰은 그녀들의 침대 깔판을 뜯어내고, 정바오화와 류샤오쥔을 각각 침대 틀 위에 채웠다. 이것은 가장 잔혹한 것인데 채워진 사람은 일어서지도 못하고 쭈그려 앉지도 못하게 되어, 몸에 대한 손상은 매우 심각하다. 7일 후 류샤오쥔의 몸은 몹시 안 좋았다. 흉악한 경찰은 일이 생길까 두려워 그제야 그녀들에게 하룻밤을 재웠다.


시연 사진: 뒷짐결박으로 채우기

이튿날, 흉악한 경찰은 정바오화와 류샤오쥔 등의 옷을 전부 가져가 다만 몸에 입은 보온내의 상의과 바지만 남겼을 뿐이다. 흉악한 경찰이 어떻게 박해를 가하든지 그녀들은 여전히 아침에 정공(靜功)을 연마했다. 흉악한 경찰은 감시기에서 발견하고 모든 당직을 서는 흉악한 경찰 전부가 덮쳤다. 함께 전기곤봉을 들고 그녀들에 대해 광적으로 구타하고 광적으로 전기충격을 가했다. 흉악한 경찰 왕원핑은 미친듯이 연속 정바오화의 뺨을 30여 대 구타했다.

이어서 흉악한 경찰은 또 정바오화를 교육과로 끌어갔다. 온 방안의 경찰은 연속해서 구타하고 밟으면서 정바오화를 의자 위에 11일 동안 채워놓아서야 그녀를 방으로 돌아가게 했다. 방에서 또 7일 동안 쭈그려 앉혀두는 고문을 가했다. 악을 행한 흉악한 경찰로는 왕원핑(王文平), 옌훙리(闫紅麗), 딩샤오광(丁小光), 양하이펑(楊海風), 왕위펀(王玉芬), 자펑메이(賈鳳梅) 이다.

2009년 3월 26일, 정바오화는 단식으로 항의해 흉악한 경찰의 학대와 폭행을 당했다. 첫 날, 흉악한 경찰은 정바오화를 생활용수 공급실로 끌고 가서 옷을 깡그리 벗기고(단지 속옷만 입혔음) 야만적으로 음식물 주입을 하려 했다. 의사가 없자 흉악한 경찰은 일반 죄수를 시켜 음식물을 주입하게 했다. 정바오화가 “그녀는 의사가 아닌데 일이 생기면 누가 책임지는가?”고 묻자 흉악한 경찰은 정바오화가 말썽을 부린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이 정바오화의 머리칼을 틀어잡자 흉악한 경찰들은 그녀의 얼굴을 사납게 때려, 얼굴은 구타로 상처를 입었으며 녹색이 나는 물을 흘렸다. 이튿날 여전히 음식물을 주입했다. 감옥 의사 왕훙리(王洪利)와 허훙웨이(何洪偉)는 정바오화에게 음식물을 주입할 때, 여러 차례나 폐에 꽂아 넣었는데 뽑아낸 호스마저도 피가 묻어 있었다. 매번 음식물 주입은 그녀로 하여금 비강 출혈, 설사, 구토하게 했고 몸은 극도로 고통스러웠다. 더욱 잔인한 것은 매일 음식물을 주입하고 도리어 화장실로 가지 못하게 한 것이다. 연속 9일 동안 정바오화의 배는 부풀어 올라서 앉지도 곧게 서지도 못했다. 다만 두 팔을 몸 뒤로 해서 반쯤 침대 위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는데,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겪었다.

酷刑演示:野蛮灌食
고문 시연: 야만적인 음식물주입

5월, 정바오화는 몸에 열이 오르고 기침을 심하게 했다. 병원에서 검사를 했는데 폐결핵 진단이 내려졌다. 그후 점점 심각하게 토했을 뿐만 아니라, 수시로 고열이 올랐다. 이런 상황 하에서 흉악한 경찰은 폭행을 삼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더욱더 잔인하게 그녀를 박해했다. 그녀에게 겉옷을 입히지 않았고 매일 또 그녀를 생활용수 공급실로 끌어다가 야만적인 음식물주입을 했다.

5월 19일, 흉악한 경찰은 다시 한 번 정바오화와 양먀오를 옮겨 함께 있게 했다. 정바오화는 몸이 허약한 원인으로 몸에 자신의 보온내의 상의와 바지만 입게 했다. 흉악한 경찰은 연속 그녀 두 사람에 대해 박해를 실행했다. 인격을 모독했고, 화장실로 가서 대소변을 보지 못하게 했으며 집안에서 대소변을 보게 했다. 두 사람은 강력하게 항의했다. 일주일 되는 아침, 정바오화와 양먀오가 연공을 할 때, 옌훙리는 수갑과 끈을 들고 들어왔다. 양먀오는 즉시 이미 7일 동안 화장실로 가지 못했다고 제출해 화장실로 가겠다고 요구했으나, 옌훙리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런 다음 양먀오에게 수갑을 채웠다. 이때 양먀오는 큰 소리로 “옌대장이 사람의 옷을 벗기고 화장실로 가지 못하게 합니다.”고 외쳤다. 정바오화도 동시에 “옌대장이 우리들의 옷을 깡그리 벗기고 화장실로 가지 못하게 합니다.”라고 크게 외쳤다. 옌훙리는 즉시 끈을 들고 직접 양먀오의 입안에 밀어 넣었고, 손가락으로 그의 혀뿌리를 잡았는데 그는 호흡이 가빠 하마터면 질식할 뻔 했다. 옌훙리의 귀뜀 하에 한 일반죄수는 수건으로 정바오화의 입을 사납게 밀어 넣어 그로 하여금 온 입가에서 피가 흐르게 했다. 열흘 째가 되어서 (9일 동안 화장실로 가지 못했음) 정바오화와 양먀오 두 사람은 몸이 매우 허약해졌고 저녁에 이미 정상적으로 잠을 잘 수 없게 되었으며, 누울 수 없게 되었다. 정바오화의 배는 임신한 사람처럼 부풀어 올랐다. 오후 4시가 넘어서 감옥 경찰은 의사를 불러왔고 곧 두 사람을 화장실로 가게 했다. 장시간 동안 박해를 당한 것 때문에, 두 사람은 그 며칠 동안에 전부 혈뇨했다. 그후 오래지 않은 시간에 두 사람은 또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하다가 옌훙리와 의사에게 강제로 음식믈을 주입할 때 거의 기절하게 되었다.

10월 초, 흉악한 경찰은 또 정바오화와 양먀오를 함께 가뒀다. 그날의 날씨는 이미 아주 추웠다. 그 두 사람은 거듭 옷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11월 초에야 털옷과 털바지를 돌려주었다. 그러나 정바오화의 솜옷과 오리털 재킷은 거부해 돌려주지 않았다. 북쪽 방안인 ‘빙고’는 한랭하고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기타 일반 죄수는 2~3층의 요를 깔고 이불을 세 벌 덮었지만 그녀 두 사람은 하나의 요, 이불 한 벌을 덮었다. 바로 그녀들에게 추위에 떨게 해서, 저녁에 근본적으로 잠을 잘 수 없고 늘 추위에 깨어나게 했다.

11월 15일, 정바오화는 더욱 심각하게 토했다. 게다가 고열이 나서 정신을 잃고 깨어나지 못했다. 병원에 보내 검사를 받았는데, 폐결핵 말기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병원에서는 피를 뽑으려 했지만 의사는 어떻게 해도 피를 뽑아내지 못했다. 노동교양소에서는 죄책을 감당할까 두려워 급히 전화를 걸어 그녀의 가족에게 통지를 내렸다. 그녀의 부모는 그제야 생명이 위독해진 정바오화를 집으로 데려왔다.

정바오화가 집으로 돌아온 후, 카이핑 노동교양소의 흉악한 경찰은 빈번히 교란했다. 정바오화의 부모는 딸이 다시 박해를 당할까 두려워, 온종일 안절부절하지 못했고, 밥을 먹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는데 일가족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정바오화를 박해한 흉악한 경찰:

루하이춘(陸海存, 남 37세로 추정): 전 여성대대 대대장으로 현 관리처 처장

왕원핑(王文平,여, 39세):5대대 대대장

옌훙리(闫紅麗, 여, 39세):6대대 대대장,원래는 지도원으로 ‘국제추적조사단(國際追查)’에 의해 악인으로 지목됨.

양하이펑(楊海鳳, 여, 42세):6대대 중대장

왕위펀(王玉芬, 여, 30세)

자펑메이(賈鳳梅, 여, 43세)

왕훙리(王洪利, 남): 병원 원장

허훙웨이(何宏偉, 남):의사

또 흉악한 경찰 왕옌화(王艶華), 딩샤오광(丁小光) 등이 있다.

탕산 카이핑 여자노동교양소: 전화:0315-3363939, 0315-3363751, 0315-3363752, 0315-3375878

관리처 전화:0315-3367086

정무처(政務處) 전화:0315-3362474

카이핑 노동교양소 여자대대 3중대 전화:0315-3360973

옌훙리(闫紅麗) 전화:0315- 3363939;13731538990;13930546184

주소:탕산 카이핑구 둥신위안(東新苑) 703동1문202실 그의 남편 핸드폰:13582929858

루하이춘(陸海存) 주소:탕산시 카이핑구 마자거우(馬家溝) 마좐(馬磚) 주택단지18동 1문 201실,쳰시 다위(遷西大峪) 사람.

왕원핑(王文平) 전화번호:0315- 3363939 핸드폰:13932586676

양하이펑(楊海鳳) 전화번호:0315- 3362033 핸드폰:13933376562

왕옌화(王艶華) 전화번호:0315-3363939;0315-3365892

왕훙리(王洪利) 전화번호:0315-3364968;핸드폰: 13663159123

문장발표: 2011년 04월 21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4/21/读高中时即被劳教-郑宝华屡遭迫害离世-23935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