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보도) 랴오닝성(遼寧省) 다스차오시(大石橋市) 파룬궁수련생 푸옌(伏艶)은 중공(중국 공산당)에게13년 반의 억울한 재판을 당해 지금까지 감옥에 갇힌 지 10년째다. 2010년 9월 그의 어머니 퉁수핑(佟書萍)은 베이징의 변호사를 선임해 딸을 위해 상소했다. 랴오닝 여자감옥에서는 각종 구실로 변호사가 푸옌을 만나는 것을 거부했다. 게다가 박해를 가중시켜 푸옌을 15개월 동안 영창실에 가둬 박해를 감행했다. 2010년 말 푸옌을 위해 상소한 베이징 변호사는 불법으로 면허를 취소당했다. 2011년 3월 5일 퉁수핑은 중공법원이 푸옌의 상소사건을 기각하는 통지서를 받은 지 일주일 만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퉁수핑이 생전에 여러 차례 중공의 박해를 당하다
퉁수핑(여, 78세)은 랴오닝성 다스차오시에서 살았다. 그녀는 원래 뇌혈전 징조, 당뇨병, 골질증식, 심장병, 결장염 등 10여 종의 질병을 앓고 있었다. 매일 약을 한줌씩 먹었지만 호전이 없었다. 1998년 퉁수핑은 베이징에서 친척을 방문할 때 다행히 파룬궁을 접했고, 수련의 길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약탕관을 던져 버리고 병도 없어져 온몸이 가벼웠다. 13년 이래 종래로 약 한 알 먹은 적이 없다.
1999년에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퉁수핑은 2000년 5월에 베이징으로 가서 파룬궁을 위해 상방했다가, 경찰에 의해 다스차오로 납치되어 15일 동안 불법 구류를 당했다. 2001년 초에 퉁수핑은 박해로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2001년 8월에 퉁수핑은 경찰에게 딸집에서 다스차오로 납치돼 돌아왔고, 4개월 넘게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2002년 7월에 70여세인 퉁수핑은 또 잉커우(營口)구치소 세뇌반으로 납치돼 반개월 동안 불법 감금당했다.
딸 푸챵이 3년의 불법 노동교양을 당하다
퉁수핑의 딸 푸챵(伏强)은 불구로 다년간 마비됐었는데 파룬궁을 수련한 후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1999년 ‘720’에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푸챵은 국가의 책임자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이 파룬궁을 연마한 후 심신이 이로움을 얻었음을 설명했다. 이 때문에 경찰에게 보름동안의 불법 구류를 당한 다음, 또 3년의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받았다가 그 후에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게 되었다. 2002년에 또 잉커우시 구치소 세뇌반으로 납치돼, 보름동안 불법 감금당했다.
딸 푸잉이 9년의 불법 판결을 당하다
퉁수핑의 다른 딸 푸잉(伏英)은 여러 방면에 능통했다. 이미 전에 랴오닝 문학원(文學院)에서 공부했고, 북경대학 서양언어학과와 베이징 영화학원(電影學院) 연구팀에서 연수했다. 차례로 안산시(鞍山市) 석탄가스회사 선전부, 베이징 샤오칭(曉慶)잉스(影視)회사, 베이징 텔레비전, 《과세기인재(跨世紀人才)》잡지사에 취임했었다. 개인 전문저작으로는 시집《정녀(靜女)》이고, 다른 사람과 합작한 작품은 《비창을 향수(享受悲愴)》이다.
1999년에 푸잉은 청원하러 가서 파룬궁을 위해 진심의 말을 했다는 이유로, 안산시 리산(立山)분국에 의해 15일간 구류 당했다. 구류당한 기간에 안산시 석탄가스회사에 의해 불법으로 해고당했다.
2000년에 푸잉은 톈안먼에서 납치돼, 다시 한 번 안산시 톄둥구(鐵東區)분국에 의해 15일 동안 불법 구류 당했다. 게다가 루산(爐山)파출소에 의해 5천 위안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2001년 7월, 겨우 34세인 푸잉은 베이징 아시안게임촌 거주지에서 베이징 자오양(朝陽)분국의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게다가 베이징 중급인민법원에 의해 9년의 불법판결을 당했다. 2003년 4월에 랴오닝 여자감옥에 의해 9년의 억울한 옥살이 학대를 당해 얼굴이 전혀 딴 모습으로 바뀌고 머리칼이 희끗희끗해졌다. 감옥에서 대량의 시가를 썼지만 가지고 나오지 못하게 했다.
딸 푸옌이 13년 반의 불법 판결을 당하다
퉁수핑의 딸 푸옌은 베이징에서 장사를 했다. 2001년 8월에 베이징의 집에서 중공 경찰에게 납치당했고, 또 3년의 불법 노동교양을 처분 받아 마싼자교양원에 감금당했다.
2003년 파룬궁수련생 리옌화(李艶華)가 박해당해 사망한 사례가 밍후이왕에 폭로 당했다. 2월 17일에 다스차오 경찰은 현지의 6명의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했으며, 또 이미 불법 노동교양을 당했던 푸옌은 구치소에 옮겨져 다시 8년의 불법 판결을 당했다.
푸옌은 다스차오 구치소에서 박해를 당해 심장병 증상, 고혈압 증상이 나타났다. 그 후 그녀는 병원에서 벗어났다. 2개월 이후에 또 안산에서 납치당했으며 2003년에 랴오닝성 여자감옥에 납치당했다. 다스차오시 법원은 또 랴오닝성 여자감옥까지 따라가서, 푸옌에게 불법으로 5년 반의 가형을 내렸다. 푸옌은 총 13년 반의 억울한 재판을 당했다.
박해 중 가정이 파괴되고 가족이 죽다
2001년 두 딸인 푸잉과 푸옌이 납치당했다. 어머니 퉁수핑은 한때 병으로 드러누우셔서 입원한 적이 있다. 2003년에 두 딸은 랴오닝성 여자감옥에 들어간 후, 70여 세인 퉁수핑과 남편 푸청융(伏承勇)은 푸옌의 세살바기 딸 샤오칭촨(小清泉)을 데리고 간난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게다가 달마다 다스차오와 여자감옥 사이를 분주히 오가야 했다.
2008년, 남편 푸청융은 무거운 충격과 압력 하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고, 무거운 짐을 퉁수핑에게 남겨주었다. 3개월 이후, 그의 셋째 사위는 또 불구인 아내와 단지 세살밖에 되지 않은 외손녀를 남기고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일가족은 다만 과부와 그 자식만 남았을 뿐이다.
딸 푸옌에게 억울함을 씻어주기 위해, 퉁수핑은 2009년에 잉커우시 중급인민법원에 상소했는데, 그 후 무리하게 기각당했다. 2009년 12월부터 시작해서, 랴오닝 여자감옥은 푸옌 가족의 면회권리를 박탈했다.
2010년 4월 장녀 푸원(伏穩)은 압력이 너무 컸던 이유로 뇌출혈로 자리에 몸져누웠다.
2010년 9월, 퉁수핑은 아껴먹고 아껴쓰던 돈 만 위안을 꺼내서 베이징의 정의로운 변호사 장촨리(張傳利)를 선임해 딸 푸옌을 위해 상소하고 변호했다. 그러나 랴오닝 여자감옥에서는 또 각종 구실로 장촨리 변호사가 푸옌을 만나는 것을 거부했고, 또 박해를 가중시켜 푸옌을 영창실에 15개월 동안 가둬서 가족과 변호사가 만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푸옌은 원래 행복한 가정이 있었다. 형기가 너무 길었던 원인으로, 9년을 기다렸던 남편은 2010년에 그녀와 이혼했다. 푸옌의 딸 샤오칭촨이 세살 적에, 엄마 푸옌은 불법 판결을 선고받아, 줄곧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했었다. 10년 동안에 너무 많은 이별을 겪어서 엄마는 단지 어릴적 어렴풋한 기억일 뿐으로 바라볼 수는 있으나 만질 수는 없었다. 샤오칭촨은 이미 13세로 곧 중학교로 올라가게 되었다. 오늘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마저도 떠났는데, 샤오칭촨은 어디에서 묵을 것인가?
퉁수펑 일가는 眞善忍(쩐싼런)을 신앙했다는 이유만으로, 흉악한 당에 의해 가정이 파괴되고 가족이 죽었다. 그들 일가족이 당한 박해는, 단지 중국 대륙의 파룬궁수련생들이 무수히, 심각하게 가정을 박해당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다. 천리는 공정한데, 언제 명확하게 검별할까(天理昭昭,何日明鑒)?
문장발표: 2011년 04월 14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4/14/女儿伏艳陷狱十载-佟书萍含冤离世(图)-23904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