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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진시 둥리구 둥구이잉이 생전에 당한 박해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톈진보도) 톈진시(天津市) 둥리구(東麗區) 파룬궁수련생 둥리잉(董桂英, 키 150cm)은 2000년 2월부터 2006년 6월까지 차례로 적어도 9차례나 중공(중국 공산당)의 흉악한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박해로 생명이 위독해졌는데 결국 2009년 11월 17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흉악한 경찰은 그녀의 병세를 물어본 적이 있으며, 다시 한 차례 납치박해를 시도했다. 그녀에 대한 박해에 참여한 적이 있는 주요 인물은 류창(劉强), 마위치(馬玉起), 한쥔성(韓軍生), 한밍(韓明), 창완신(常萬新) 등이다.

둥구이잉(여,56)은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는 일년 내내 병으로 앓아 누워 늘 남편과 아들이 업고 윗층으로 올라갔다. 집안에서 아무 일도 못했고 생활도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아야 했다. 이 때문에 그녀도 다른 기공을 배웠는데 모두 효과를 보지 못했다. 1999년 초에 그녀는 ‘전법륜(轉法輪)’ 책을 보았고 이것이 바로 그녀가 찾아왔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로부터 책속의 ‘眞ㆍ善ㆍ忍(진선인)’의 법리에 따라 자신을 요구해, 가족과의 모순을 없앴고 몸도 하루하루 좋아졌으며 집안일도 다퉈가면서 하기 시작했다. 그녀와 가족은 그제야 진정한 행복이 무엇이지 경험했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기 위해, 2000년 2월에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사악한 당에게 불법 납치를 당했다. 감금 기간에 야만적인 음식물주입을 당했고 근 40여일 동안 감금당해서야 풀려났다.

2002년 1월, 공안분국의 흉악한 경찰 류창과 마위치는 파출소 경찰 한쥔성과 한밍 등을 거느리고 여섯 번째로 그녀 집에 들이닥쳐 그녀를 납치하고 불법 가택 수색을 감행했다. 둥구이잉은 불법 노동교양을 선고받아 톈진(天津) 반차오(板橋) 여자노동교양소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다. 그녀는 키가 150cm에 불과했지만 강제로 매번 50kg에 가까운 콩을 담은 마대를 메게 했다. 매일 바오자(包夹-밀착감시 역할을 하는 수감자)는 그림자처럼 곁에 따라다니면서 박해했다. 그녀에게 잠을 자지 못하게 했고 말하지 못하게 했으며, 또 그녀를 때리고 욕하는 것은 더욱 밥먹듯하는 일이었다. 강제로 세뇌자료를 듣고 보여주어 그녀의 심신에 극심한 상처를 입혔으며, 몸에는 심각한 병증이 나타났다. 병세가 가중되었지만 노동교양소에서는 여전히 그녀를 풀어주지 않고, 톈진 젠신(建新)노동교양소로 옮겨 연속 박해했다. 게다가 또 가족에게 노동교양소로 돈을 보내주도록 요구해, 한편으로 박해하면서 한편으로 치료를 해주었다. 결국 중병이란 진단이 내려졌으며 가족의 강력한 요구하에 5천 위안의 보증금을 바쳐서야 노동교양소에서는 병보석으로 그녀를 석방해 치료받도록 동의했다.

집에서 간호하는 기간인 8월 어느 하루 밤중, 한무리의 흉악한 경찰들은 또 그녀 집에 뛰어들었다. 그중 이름을 모르는 한 사람이 연속해서 둥구이잉을 잡아당기고 끌면서 파출소로 납치했고 구실을 찾아 노동교양소로 되돌려 보내려고 타산했다. 둥구이잉이 그들에게 선악에는 인과응보가 있다는 천리를 알려주었다. 경찰은 화가 나서 둥구이잉을 땅위에 때려눕혔고, 그녀는 복부에 심한 통증이 생겨 움직이지 못했다. 그 후 둥리(東麗) 중의원에 보내져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중의원에서 치료하지 못하자 또 톈진 허둥(河東)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수술을 받은 후 난소암 2기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후 이틀만에 둥리분국과 노동교양소의 흉악한 경찰들은 가족의 비통함과 환자의 고통도 상관하지 않고 병실로 가서 마치 범죄자를 대하듯 큰 소리로 “일어나라, 우리와 이야기를 하자”고 고함을 질렀다. 가족은 감히 말을 하지 못했다. 같은 병실에 있던 환자들까지도 눈뜨고 보지 못해, “막 수술을 마쳐서 매일 고통으로 잠도 잘 수 없는데 어떻게 일어날 수 있습니까? 당신들은 너무 지나칩니다”라고 말했다. 병원 의사도 그들에게 둥구이잉의 병세를 알려주면서 그녀는 암이 이미 전이됐었기에 기껏 해야 반년 밖에 살지 못한다고 말해서야 흉악한 경찰들은 언짢아하면서 병원을 떠났다.

퇴원 후 그녀는 법공부와 연공을 다그쳤다. 마음도 좋아지고 몸도 재빨리 건강을 회복했다. 흉악한 경찰들은 이 상황을 본 뒤 그녀를 노동교양소로 납치해 돌려보내 연속박해를 가하려고 생각하고, 또 여러 차례나 집으로 찾아와 나쁜 짓을 했다. 가족과 본인의 제지 하에 잠시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둥구이잉은 퇴원부터 세상을 뜨기까지 또 여러 차례 납치와 가택 수색을 당했다. 어느 한 번은 둥리분국에 붙잡혀 가서 한 흉악한 경찰에게 뺨을 혹독하게 맞았다. 그리고 그들을 그녀를 발로 차면서 또 저질적인 말로 모욕을 주면서 땅위에 때려눕혔다. 장시간 동안 땅위에 누워있어도 상관하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본인의 요구 하에 그제야 병원으로 갔다.

2006년 6월 20일, 톈진시 둥리구 610과 국보대대 흉악한 경찰 류창, 창완신, 펑위치는 둥구이잉의 아들을 납치하고 집에 들이닥쳐 강제로 둥구이잉 등 7명의 여성 수련생을 납치했다. 7월 20일, 텐진시 둥리구 법원에서는 둥구이잉 등 네 명의 수련생에 대해 불법 재판을 감행했고, 밀모해서 4년 판결을 내리려 했다. 이후 그들에게 2개월 동안 감금당한 후 수년간의 박해로 몸에 또 위중한 상태가 나타났다. 그들은 안에서 죽을까 봐 가족에게 데려가게 했다.

바로 이렇게 ‘眞ㆍ善ㆍ忍’에 따라 수련하는 좋은 사람이 자신의 신앙을 견지하다가 중공 악당에게 박해를 당해, 결국 2009년 11월 17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많은 가족은 모두 그녀가 당한 박해를 알고는, 그녀의 죽음을 위해 불공평함을 호소하면서 언젠가는 꼭 그녀를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겠다고 말했다.

문장발표: 2011년 04월 06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4/6/2386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