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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옥살이 당했던 상하이 수련생 리웨이링, 또 납치당해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상하이 보도) 상하이(上海) 파룬궁수련생 리웨이링(李瑋聆)은 2011년 3월 19일에 외출했다가 상하이 창닝구(長寧區) ‘610’경찰에게 납치당했다.

리웨이링은 8년간 억울한 옥살이 박해를 당하고 출옥한지 겨우 2년째다. 그녀의 모친과 언니도 역시 수련생이다. 언니는 이미 전에 야만적인 음식물주입으로 박해를 당해 이미 억울하게 세상을 떴고, 70여 세인 노모도 여러 차례 납치를 당했다. 12년 이래 일가족은 거의 평온한 나날을 보낸 적이 없다.

리웨이링은 올해 53세로 상하이 창닝구 창닝지로(長寧支路) 318롱(弄)4호 403실(室)에서 살고 있으며, 이미 전에 상하이시 식품1점의 영업원이였다. 3월 19일에 상하이 창닝구 ‘610’은 그녀가 외출했을 때 그녀를 납치했다. 저녁에 흉악한 경찰은 리웨이링 몸 위에서 수색해낸 열쇠로 그녀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녀의 딸이 막 퇴근해 집에 돌아오자 흉악한 경찰은 많은 개인 물품을 강탈해갔다.

이미 전에 8년 불법 판결을 당한 적이 있는 리웨이링

리웨이링은 이미 전에 여러 차례 납치, 불법 구류를 당한 적이 있다. 1999년에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이후, 리웨이링은 진상을 설명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현지 흉악한 경찰에게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다. 게다가 강제로 중추신경을 파괴하는 약물을 주사당했다. 2000년에 그녀는 두번째로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후(滬)로 돌려보내진 후 창닝구 구치소에 감금당했다. 구치소에서 있던 기간에 리웨이링은 단식으로 항의했다가 악경에게 야만적인 음식물주입 박해를 당했다. 몇 명의 흉악한 경찰과 졸개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어떤 이는 손을 붙잡고 어떤 이는 수갑을 채웠으며 어떤 이는 그녀의 배 위에 앉아서 야만적으로 힘껏 입에 호스를 꽂았다. 그녀는 식도가 파열돼 피를 아주 멀리까지 뿜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현지 경찰측과 가도에서 끊임없이 교란한 원인으로, 리웨이링은 핍박에 못이겨 집을 떠나 정처없이 유랑하는 생활을 했다. 그 후 산둥(山東)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현지 공안 ‘610’인원에게 납치돼 상하이로 돌려보내졌다. 그 후 8년 불법 판결을 선고받아 2001년에 상하이 여자감옥으로 보내져 박해를 당했다.

감옥에서 그녀는 이른바 시험에 협조하지 않고 참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흉악한 경찰 청웨위안(程躍淵)에 의해 꼬박 오후 동안 움직이지 못하게 세워두는 고문을 당했다. 본래 몸이 허약했던 리웨이링은 두 다리가 세워져서 검고도 굵게 부어올랐다. 동시에 매일 고온 날씨에 점심에 휴식시키지 않고 강제로 체조 연습을 하게 했다. 어느 하루는 밤중에 흉악한 경찰 중대장 장훙메이(張紅梅), 대대장 허우루이친(侯瑞琴)이 감방에 뛰어들어 리웨이링의 이불을 벗겼다. 그녀가 두 다리를 틀어올린 것을 보며 감시기에서 그녀가 잠을 잘 때 연공을 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때문에 그녀에게 다음과 같은 하나의 ‘규정’을 내렸다. 이후 잠을 자든지 안자든지를 막론하고 두 다리는 반드시 곧게 펴야 한다는 것이다(꿈속에서까지도 다리를 틀어올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음). 그 후 그녀가 죄를 시인하지 않고 노역을 하는 것을 거부한 이유로 저녁에 흉악한 경찰 왕신란(王新蘭) 등에 의해 침대 위에서 강제로 끌려내려왔고 잠을 제때에 재우지 않았다. 대대장 허우루이친과 중대장 쉬잉(徐英), 주관대(主管隊) 대장 궈웨이화(郭衞華)는 그녀가 혈압이 200으로 올라간 줄 뻔히 알면서도 휴식시키지 않았다. 낮이면 세워두는 고문과 앉혀놓기를 시켰고, 강제로 대법을 모독하는 동영상과 감옥 규정을 듣게 하면서 저녁 11시 이후에야 잠을 재웠다. 그녀는 정념으로 박해를 반대하자, 결국 경찰들은 어쩔 수 없이 그녀가 11시에 잠을 자도록 동의했다. 당시는 마침 무더운 여름철 고온시기였지만 흉악한 경찰은 그녀에게 목욕을 시키지 않고 기껏해야 약간의 물로 닦게 했을 뿐이었다.

酷刑演示:野蛮灌食
고문 시연: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2007년, 가족은 리웨이링이 이미 2006년 4월에 고혈압과 심장병으로 입원했으며 또 담결석, 담낭염, 담총관염(膽總管炎)과 미확인 근종과 뇌에 산소부족으로 기절했음을 알게 되자, 감옥측에서 병보석으로 석방해 치료를 받게 해주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감옥측에서는 동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이미 병보석으로 풀려난 모친 위페이잉(喻培英)과 그녀가 면회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당시 같은 감옥에 있었으나 면회하지 못하게 했음) 5대대(원래 이름은 파룬궁 전관대대인데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대대임)에서는 그녀에게 문을 나서고, 화장실로 가며 도서관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용품도 양을 제한했고 매 3개월이 되어서야 가족과 한 번 면회시켰다. 그러나 언니 리웨이훙(李瑋紅)과는 만나지 못하게 했고 아버지와 남동생이 그녀를 만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어머니가 그녀를 만나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줄곧 2008년 말에 이르러서야 그녀는 8년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지금까지 겨우 2년이 넘었다.

박해로 인간 세상을 뜬 언니 리웨이훙

리웨이훙(여)은 당년에 43세 쯤이였다. 이미 전에 상하이 난징(南京)시 시루(西路)상점 영업원이였다. 1999년에 리웨이훙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후(滬)로 돌려보내진 후 불법 감금을 당했다. 2000년 10월에 리웨이훙은 푸둥신구(浦東新區)에서 진상을 알릴 때 불법 체포를 당했고 경찰서 창틀 위에 매달려 채워졌다. 그날 저녁 리웨이훙은 정념으로 소굴에서 뛰쳐나왔는데, 그 후 줄곧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보냈다. 2000년 말에 그녀는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납치당했다. 원저우 경찰은 강제로 그녀에게 위장 호스를 꽂고 고춧물을 주입했는데 그녀는 고통으로 땅위에서 마구 뒹굴었다. 인성이 없는 야만적인 박해는 그녀의 식도, 간, 창자와 위 등 기관에 심각한 상처를 입혔다. 리웨이훙은 원저우 위(僞)법원에 의해 1년 불법 판결을 선고 받았다가 그 후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게 됐다. 가족은 그녀를 상하이 칭안구(靜安區) 중심병원에 입원시켰다. 의사는 수술한 후에야 그녀의 창자와 위가 모두 괴사됐음을 발견했다. 2003년 4월 19일에 리웨이훙은 박해로 사망했다.

여러 차례 납치박해를 당한 노모

리웨이링의 모친 위페이잉은 올해 77세로 상하이시 자베이구(閘北區) 융싱로(永興路)에서 살고 있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위페이잉은 여러 차례 납치와 불법 구류를 당했다. 2001년 5월에 파룬궁 진상자료를 배포했다는 이유로 2년 불법 노동교양을 선고받았다.

위페이잉은 노동교양을 당한 기간에 줄곧 영창실에 갇혀,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면 곧 앉히기 고문을 당하기 시작해서 줄곧 저녁 11시, 혹은 더욱 늦어서야 그녀에게 휴식시켰다. 70여 세 노인이 매일 15시간 이상 앉히기 고문을 당했는데 너무 앉아서 둔부까지도 다 곪았다.

노인이 노동교양소에서 집으로 돌아온 지 오래지 않아 2003년 4월에 큰 딸 리웨이훙이 인간세상을 떠났다. 2004년 3월에 위페이잉이 또 불법 체포를 당했을 때, 현지 ‘610’악인은 그녀가 이미 연로하고 또 큰 딸 리웨이훙이 이미 박해로 사망하고, 작은 딸이 8년 불법 판결을 선고받아 여전히 감옥에 있는 것도 고려하지 않고 여전히 위페이잉에게 3년 판결을 내렸다. 그녀가 쑹장(松江) 여자감옥에 보내졌을 때 노인은 이미 말을 할 수 없었다.

노인은 2005년 9월에 뇌졸중에 걸린 이유로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게 됐다. 상하이 ‘610’과 현지 거민위원회에서는 약간의 동정도 없이 그런 노인에 대해 여전히 감시하고 미행했다. 작년 상하이 세계 엑스포 기간, 2010년 4월 18일부터 노인은 즉시 중공의 불법 인원에게 24시간의 엄밀한 ‘감시’를 당하기 시작했다. 위페이잉이 어디로 가든지를 막론하고 이들 사람들은 계속 따라다녔는데, 심지어 어느 한 번은 그녀에게 “당신이 무슨 물건을 사려하면 우리가 당신을 대신해서 사주겠다”고 말했다. 노인은 그에게 “내가 목욕하려 한다면 당신이 나를 대신할 수 있는가?”고 반문했다. 이들 사람들은 줄곧 목욕과 이발을 한 세트로 서비스해주는 곳까지 따라갔으며, 직원들을 방해하면서 노인을 찾아보려 했다. 사리에 밝은 직원은 그들을 거부했다. “이곳에는 당신들이 찾으려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결과 이들은 또 한 경찰을 불러와서는 직업에게 경찰증을 보였다. 직원은 어쩔 수 없이 동정스러운 눈길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세 명의 악도의 감시 하에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몇 년 동안의 박해는, 위페이잉 노인의 건강을 악화시켰다. 가장 문제가 된 점은 기억력 부족인데 노인은 지금 말하는 반응까지도 모두 느려졌다.

가족이 여러 차례 납치당하자 늙은 부친이 충격으로 뇌졸중에 걸리다

리웨이링의 노부친은 무수한 가택 수색을 당하는 충격으로 심각한 심장 쇠약과 당뇨병 합병증에 걸려 장시간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늘 병원에 보내 응급처치를 받았는데 매번 거민위원에서 ‘감시’한다는 통지를 하기만 하면 노인의 병은 한 번씩 도지곤 했다. 작년 상하이 엑스포 기간에, 노인이 부인 위페이잉이 또 감시당했음을 안 뒤에 또 한 차례 땅위에 쓰러졌다. 리웨이링이 집에 바삐 도착하자 노인은 두 손을 떨면서 딸의 손을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나는 두렵다. 나는 너희들이 다시 일이 생길까 봐 두렵구나.” 지금 딸이 또 박해 당했음을 알게 된 노인은 마비돼 자리에 몸져누워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고 정신도 거의 붕괴될 뻔 했다.

리웨이링을 납치하고 감금하는 데 참여한 그들 ‘610’ 인원들이여, 당신들은 집에 부모와 집안 어른이나 자매와 아내 그리고 딸이 없단 말인가?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보라. 만약 당신의 가족이 좋은 사람으로 되려는 신념을 견지해서 박해를 당해 가정이 파괴되고 가족이 죽고 뿔뿔이 흩어졌다면 당신들은 어떤 느낌일 것인가? 오늘날 리웨이링의 부친은 마비돼 자리에 몸져 누었는데, 당신들은 정말로 법을 집행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선량한 국민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인가?

관련 책임 부서와 책임자:

상하이 경찰국 창닝분국

주소: 웨이닝루(威寧路)201호 우편 번호: 200336

전화 교환대: 021-62906290

국장 저우정(周正): 021-62906290 전화교환대에서 39206로 전환하세요.

국보지대

대장 위구이샹(俞桂香)

경찰: 왕줴(王玨)13061996102, 웨이리광(魏理光), 쑤지(蘇驥)

사무실 직선 전화: 021- 23039443 , 021-23039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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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창닝경찰분국:

기율검사위원회 주임 직선 전화: 021-23039409 전화 교환대 전화: 021-62906290에서 39409로 전환하세요.

처장 직선전화: 021-23039411 전화 교환대 전화: 021-62906290 에서 39411로 전환하세요.

민원 접대실 직선 전화: 021-23039190

창닝 구치소:

주소: 칭츠루(淸池路)108호 전화번호: 우편번호: 200335

접대 전화: 021-23030809, 021-62394720

감독 전화: 021-23039403

구치소 주재 검찰실 전화: 021-52189514

문장발표: 2011년 04월 02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4/2/23844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