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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수련생 리이, 여러 차례 박해로 세상을 뜨다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보도) 선양시 위훙구 파룬궁수련생 리이(李夷, 리광하오(李廣浩))는 수년간 중공(중국공산당)의 불법체포와 감금으로 두 차례나 생명이 위독해져 가족이 업어서 데려왔다. 결국 2011년 3월 26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당시 겨우 42세였다.

리이는 1998년 3월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수련한 후 신체가 건강해지고 심태가 낙관적으로 변했고, 늘 ‘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서 심신의 정화와 승화를 얻었다. 1999년 7월에 중공이 파룬궁을 탄압한 후 리이는 성위원회로 청원하러 갔다가 직장의 담보로 돌아왔다. 1999년 12월 25일에 중공사당은 파룬궁수련생들이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리이를 다시 현지 파출소에 납치하여 하룻밤을 불법으로 감금했다.


선양 파룬궁수련생 리이, 박해로 세상을 떠남(좌: 박해 받기전, 우: 박해 받은 후 세상을 떠난 사진)

2001년 7월말, 리이는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중공사당의 거짓말에 해독을 입은 악인에게 신고당해 2년의 불법노동교양을 선고받고 선양시 장스노동교양원에 불법 감금되어 직업을 잃었다.

2005년 3월 4일 오후부터 한밤중까지’랴오(遼) AH××××’ 번호판을 단 흰색 찐베이(중국산 승합차의 일종, JINBEI)와 검은색 승용차에서 6~7명이 리이의 집 아래층에서 잠복해 있었는데, 리이는 벗어났다. 다음날 오후, 흰색 찐베이에 있던 한 사복경찰은 리이의 집에 온 여동생을 차로 납치했고, 그녀를 협박해 집 문을 열었다. 악인은 리이의 집 전화에서 통화 기록을 적었다.

2006년 4월 5일 저녁, 톄시구공안분국 웨이궁파출소 경찰 마웨이, 구신 등은 톄시분국 국보대장 양하이(杨海) 등과 결탁해 약 10명의 악경들을 데리고 리이를 불법납치했다. 톄시구 웨이궁 공안파출소 안에서 양하이, 리모와 얼굴이 둥글고 머리가 약간 대머리인 악경 등 세 명과 웨이궁 공안파출소 경찰 구신 등은 고문으로 리이에게 자백을 강요했고, 하루 종일 잠을 재우지 않았다. 몇 명의 악경은 리이의 두 손을 거꾸로 해서 의자 뒤에 매달고 강제로 머리를 눌러 땅에 앉혔다. 그리고 두 다리를 한데 모아 곧게 펴게 해서 계속 수갑을 위로 올렸다. 악경 양하이는 신발을 신은 채 리이의 다리 위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밟았다. 한 악경은 그의 등 위에 앉아 신발로 허리를 사납게 찍었다. 리이의 두 손은 피가 통하지 않아 부어올랐고, 손목에는 두 갈래의 찍힌 상처가 남았으며 허리는 곧게 펼 수 없어 걷기도 어려워졌다. 악인 구신이 오토바이 헬멧을 머리에 씌워 리이는 거의 질식할 뻔 했다. 악인은 구타하다가 지치자 두 명의 ‘협방(協防)인원’을 찾아서 리이를 지키고 관할하게 했다.

酷刑演示:踩腿挑铐子
고문시연 – 다리를 밟고 쇠고랑이를 들어 올리다

이튿날 오후, 톄시국보대대의 리가 성을 가진 악경은 리이를 웨이궁파출소 당직실 옆에 있는 ‘간경휴게실’로 데려가서 두 손을 의자 뒷면에 수갑으로 매달아놓고 물었다. 그리고 계속 리이의 두 팔과 이마를 만져보면서 떨고 있는지, 땀이 나는지를 조사했다. 반응이 없자 “아직 멀었어. 계속해라. 이 자식이 꽤나 잘 버텨낸다.”라고 말했다.

酷刑演示:上下背铐
고문시연 – 아래위 뒷짐 결박

리가 성을 가진 악경은 점심때가 가까워져도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하자 화가 나서 리이를 협박했다. “당신을 때려 죽여도 때려죽이지 않은 걸로 친다. 때려죽이면 자살로 친다.” 그 후 현장에 있던 파출소 경찰 위양을 시켜 전기곤봉을 찾았다. 위양은 한 바퀴를 돌아보아도 찾지 못하고 그만 두었다. 리가 성을 가진 악경은‘둥근 얼굴에 뾰족한 머리’인 경찰을 시켜 국보대대에 가서 고압 전기곤봉을 가져오게 했다. 이 경찰은 말했다. “리이는 그것에 민감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리가 성을 가진 악경은 리이가 그것에 마음을 움직이지 않은 것을 보고는 담뱃불을 코에 쏘여 질식시켰다. 침대 위에 누워있던 웨이궁파출소 경찰 위양과 마웨이는 생각을 짜내서 말했다. “아직 모자라면 여기에 라오간충(더욱 독한 잎담배)이 있다.” 리가 성을 가진 악경은 ‘협방인원’을 시켜서 한 대를 말았다. 악경 양하이는 당직실에서 들어와 말했다. “말하지 않으면 당신은 이곳을 호텔로 여기고 머물라. 내일 저녁에도 당신을 풀어주지 못한다.” ‘둥근 얼굴에 뾰족한 머리’를 한 경찰은 리이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흔들면서 파출소의 방이 너무 작아 수완을 발휘하지 못하겠다며, 만약 그들이 국보대대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 거라고말했다. 그리고 강제로 사진을 찍었다. 리이가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은 채 협조하지 않자, 그들은 악경 양하이를 불러 누른 채로 사진을 찍었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그 후 몇 명의 악경은 화가 나고 부끄러워 리이를 뒷짐결박한 쇠고랑를 위로 계속 들어올렸다. 리이가 큰소리로 ‘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좋습니다)’를 외치자 악경은 그만 두었다.

오후 6시에 리이는 선양시 톄시구구치소로 납치되어 불법감금을 당했다. 구타로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톄시구구치소에서는 수감을 거부했다. 웨이궁파출소 경찰 구신 등은 리이를 선양 의학 2원으로 보내 신체검사를 했는데, 허리부위의 연조직 타박상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리이는 이어서 톄신구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리이는 구치소에서 단식으로 항의하다가 불법 감금을 당했다. 다섯째 날, 몸은 극도로 허약해지고 마비되었으며 피가 통하지 않았다. 허리를 곧게 펼 수 없어 혼자걸을 수 없었다. 4월 10일에 가족에게 업혀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지 며칠 되지 않은 6월 14일, 리이는 아버지와 함께 집에서 톄시공안분국 웨이궁파출소 리전위(李振宇) 등 세 명의 경찰에게 톄시공안분국 법제과로 납치되었다. 법제과의 주씨 성을 가진 경찰은 리이에게 이른바 ‘노동교양 결정’을 낭독했다. 리이는 그들에게 정중히 말했다. “파룬궁 박해는 법률적 근거가 없다.” 주씨 성의 경찰은 앞뒤가 맞지 않게 “우리는 신앙문제를 관할하지 않는다.”고 말하고는 “파룬궁은 선전하지 못한다”고 말했다.리이는 그날 아버지와 집으로 돌아왔다.

사당 인원은 계속 좋은 사람을 박해했다. 같은 해 7월 6일, 선양톄시구 공안분국과 톄시구 웨이궁파출소의 경찰 수십 명은 리이를 집에 가두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수십 명의 악경들과 여러 명의 ‘사회 구역 협방인원’이 여러 대의 경찰차로 그의 집 아래에서 감시했고, 운전기사는 리이를 납치했다.

2008년 6월 6일 오전 10시경, 리이는 다시 한 차례 납치당했다. 당시 리이는 한창 장스개발구 선양 청다(誠大)냉동유한회사에 출근했다. 선양 톄시공안분국 국보대대 악경 자오 모는 선양시 톄시구 웨이궁파출소의 악경 왕마오빈 등 일행 세 사람과 갑자기 뛰어들어 한창 근무하고 있는 리이를 납치했다.같이 근무하던사람이 무엇 때문인지 물었을 때, 악경은 그가 물건을 훔쳐서 지명수배를 당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어서 리이를 톄시구치소로 보내 불법감금했다. 오후 네 시에 웨이궁파출소 악경 왕마오빈은 파룬궁수련생 리이의 집에 와서 ‘구류 통지서’를 보이면서 가족의 서명을 받으려 했지만 거부당했다. 악경은 서명하든지 하지 않든지 상관없다고 큰 소리를 치고는 화가 나서 돌아갔다.

리이는 구치소에서 다시 한 차례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하다가 음식물 주입 박해를 당했다. 여덟째 날, 몸은 상당히 허약해졌다. 중공 사당인원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생명이 위독해져 사경을 헤매는 리이를 가족에게 돌려보냈는데 당시 가족들은참혹하여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가족은 그를 업고 집으로 돌아왔다.

酷刑演示:灌食
고문시연 – 음식물 주입

몇 년간 여러 차례 붙잡혀 감금과 박해를 당한 후, 리이는 예전의 건강한 상태를 회복할 수 없었고 결국 박해로 사망했다. 집에는 70이 넘은 노인만 남았다. 사당은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해서 또 하나의 피맺힌 원수를 지었다.

리이의 박해에 참여한 단위 및 책임자

선양시 톄시구웨이궁 공안파출소

소장 푸수광(傅曙光)

장(張)가 성의 교도원

부소장 마웨이(馬威), 스원장(時穩江)

경찰:구신(顧鑫), 위양(于洋), 왕마오빈(王茂斌), 왕제(王傑), 먀오리성(苗立勝), 리전위(李振宇), 마광비(馬光畢), 자리칭(賈立清), 리펑(李朋), 자타오(賈濤), 추××(褚××)

선양시 톄시공안분국 우(武)가 성의 국장

톄시구공안분국 국보대대

대대장 장바이쉰(張百勛), 장창스(張長是), 리수원(李樹文)(전 대대장)

대원 양하이(楊海), 리정(李錚), 리챵(李强), 정즈궈(鄭志國), 슈더청(修德成), 량××(梁××), 차오××(曹××)

부대장 왕안위(王安宇)

정치위원 펑더리(馮德利)

선양시 톄시구구치소(왕자허쯔(汪家河子))

소장 펑(馮)모, 왕(王)모

경찰:쥐구이즈(琚貴智), 구청(顧成), 리린(李林), 양스순(楊士順), 류웨이(劉偉), 쉬위궈(徐玉國), 주잉파(朱英發), 푸궈(富國),저우 (周)모, 린(蔺)모

감옥 의사 커우(寇)씨

문장발표:2011년 03월 28일
문장분류: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3/28/沈阳市法轮功学员李夷遭多次迫害离世-2381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