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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호적담당 경찰 장셴, 중공의 납치, 노동교양, 갈취를 당하다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허베이보도) 파룬궁수련생 장셴(張憲)은 경찰로서 근무 중에 국민을 배려해서 여러 차례 나랑팡시(廊坊市) 우수 호적 담당 경찰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眞ㆍ善ㆍ忍’에 따라 수련한 좋은 사람이 중공(중국 공산당)의 10여 년 동안의 파룬궁 박해 중에 끊임없이 교란, 납치, 고액의 갈취, 불법 노동교양 박해를 당해 심신에 극심한 상해를 입었다.

장셴(남, 38세)은 허베이성 인민경찰학교를 졸업하고 1995년에 공직에 입문했으며 같은 해 7월부터 파룬궁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사회에 첫발을 떼면서부터 파룬궁의 ‘眞ㆍ善ㆍ忍’을 신앙한 장셴은 좋은 사람이 되려고 자신을 요구해서 책임자와 국민의 인정을 받았다. 1996년에 파출소로 전근되어 호적 담당 경찰이 되었다. 그는 근무 중에 국민을 고려할 수 있었기에 1998년 말에는 랑팡시 우수 호적담당 경찰로 평가받았고, 1999년 초에는 성정부의 표창과 장려를 받았다.

1999년 4월 25일, 파룬궁수련생들이 평화로운 청원을 한 후 공안국 책임자는 파출소에 압력을 가했다. 파출소 책임자는 장셴의 부모를 찾아가서 ‘眞ㆍ善ㆍ忍’에 대한 장셴의 신앙을 포기시키라고 요구했다. 문화대혁명을 겪은 부모는 마음속에 깊은 공포감이 있었다. 그들은 장셴에게 ‘연공을 하지 않는다’는 보증서와 파룬궁 서적을 바치라는 요구를 했다. 그 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사무처와 국무원 판공청 민원국은 매체에서 공개적으로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는 태도를 표시했다. ‘眞ㆍ善ㆍ忍’에 대한 갈망과 정부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장셴은 다시 나가서 아침연공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1999년 7월 20일 전, 공안국의 책임자는 다시 한번 장셴을 찾아서 근무와 연공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연공을 선택한 장셴은 직장에 구류 당해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2000년 말에 장셴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낙후한 민경’(정치사상이 불합격임을 뜻함)으로 인정되어 랑팡시 공안국 간부훈련처(幹訓處)에 가서 학습하게 되었다. 학습 기간인 2001년 새해 휴가 기간에 장셴은 합법적인 청원을 하러 베이징에 가서 파룬궁 창시자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의 결백을 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같은 해 4월 말에 그는 경찰에서 해직 당했다.

2001년 5월에 장셴은 핑안(平安)보험공사 랑팡분공사에 가서 취직훈련에 참가했는데, 샹허현(香河縣)공안국의 민경은 보험공사까지 따라와 방해했고 그는 취업자격을 얻을 수 없었다. 그 후 친구의 공장에서 일을 했는데 샹허현공안국의 민경은 또 공장에 찾아갔다. 그는 또 핍박에 못 이겨 떠났고, 가족들은 그의 행방을 말하라고 직장과 공안국의 교란을 받았다.

2001년 말에 집으로 돌아온 장셴은 밀고로 현 ‘610’(중공이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기구로 공안, 검찰, 법원 위에 군림하고 있음)의 세뇌반에 납치당했다.

2003년 음력설 전에 장셴은 파룬궁 자료를 복사한 것 때문에 현 ‘610’이 조직한 세뇌반으로 납치당해 사악한 속임과 공갈협박을 당했다. 자료를 복사해준 좋은 사람은 경찰에게 거액의 경제적 박해를 당했고, 장셴도 인민폐 5천 위안을 불법으로 갈취 당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세뇌를 받아 사상이 흐려진 장셴은 ‘610’ 인원의 협박으로 쳰툰(鉗屯) 등지에서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정신적 박해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는 박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여러차례 미안한 마음을 표했지만, 양심의 가책은 늘 부끄럽고도 깊은 자책감을 느끼게 했다.

2004년 6월, 장셴은 다시 한번 랑팡세뇌반으로 보내졌다. 그는 며칠 동안 정신적 박해를 겪은 후 세뇌반에서 달아났다. 집으로 돌아온 후 중공의 연좌식 박해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세뇌반으로 돌아갔다. 세뇌반의 악인 한즈광(韓志光)과 샹허현공안국 국보대대는 그를 구치소에 일개월 동안 감금했고, 인민폐 5천위안을 불법으로 갈취하고 몸에 지닌 2천 위안을 탈취한뒤 자취를 감췄다.

2005년 10월 28일, 장셴은 다시 한번 샹허현공안국 국보대대에 납치당했다. 집안의 컴퓨터를 압수당하고 2년의 불법 노동교양을 당했다. 장셴의 ‘眞ㆍ善ㆍ忍’에 대한 신앙을 포기시키기 위해 노동교양소의 악경은 그를 독방에 가두고 일반 죄수 한 명을 이용해 24시간 동안 감시하게 했으며 몇 명의 앞잡이들이 교대로 정신적인 박해를 했다. 밤 12시부터 아침 6시까지만 휴식시키고 나머지 시간에는 작은 걸상에 앉은 채 벽을 마주보게 했다. 2005년 12월 14일 저녁, 악경 장리(張力)와 둥신궈(董新國)는 한 무리의 일반 죄수들을 거느리고 장셴을 옆방으로 끌고 갔다. 이 방에는 침대 몇 개가 있었는데 두 침대 사이에는 공간이 있었으며 안에는 낡은 일인용 소파가 놓여 있었다. 방안에 들어서자 악경은 그에게 두 시간 동안 가부좌를 틀게 했다. 장셴이 다리를 내려놓으려 하자 악경 둥신궈는 주먹으로 입을 때렸고, 그 자리에 있던 악인들이 모두 덮쳤다. 어떤 사람은 주먹으로 입과 얼굴을 사납게 때려 장셴의 입에서는 선혈이 줄줄 흘렀다. 몇 사람이 다가와서 억지로 장셴의 다리를 틀어 올렸다(결가부좌 형태). 그런 다음 두 침대 사이의 소파를 움직여 갔고, 장셴을 두 침대 중간으로 끌고 갔다. 한 편에 한 사람씩 서서 두 팔을 철침대 가로 막대기 위에 뒤틀어 힘껏 내리눌렀다. 뒤에 한 사람이 서서 머리를 통제했고, 앞에 한 사람이 소파에 앉아서 두 발로 힘껏 다리를 밟았다. 장셴은 스자좡(石家莊)노동교양소에서 육체적 박해뿐만 아니라 중공의 사당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게 하는 등의 정신적 박해를 당했다.

2008년 5월 29일, 장셴은 션윈(神韵)공연 시디를 배포하다가 진상을 잘 모르는 사람의 무고로, 샹허현공안국 순경에 의해 큰길에서 납치되어 다시 한번 스자좡노동교양소에 불법 체포당했고, 두 번째로 노동교양 박해를 당했다.

2009년 설 전후, 샹허현의 일부 불법인원들은 장셴의 집에 뛰어들어 감옥에 반년 넘게 갇혀 있는 장셴에게 죄명을 뒤집어 씌우려고 했다. 장셴은 노동교양소에서 악경의 구타를 제지하다가 20여 일 동안 영창에 갇혔다.

2009년 초에 장셴, 리스터우(李石頭), 신바오둥(辛寳東), 장시궁(張錫功, 70세의 고령)등은 독방에 갇혀 파룬궁을 모독하는 책과 문장을 읽고 쓰라고 핍박당했다. 노동교양소에서 리스터우와 장셴 등은 독방에 갇혀 약 1년 동안을 격리당했다. 정신적인 괴로움은 그들의 심신에 극심한 상해를 조성했다.

10여 년 동안의 박해 중에서 장셴도 박해에 참여했던 경찰들을 증오한 적이 있었다. 그 후 리훙쯔 선생님의 책을 공부하면서 차츰 박해에 참여한 자들이 불쌍함을 깨달았다. 중공 사당은 줄곧 일부 사람들을 이용해서 다른 일부 사람들을 못살게 굴었다. 사람을 못살게 한 자는 마지막에 또 그것의 희생양이 되고 버림을 받아야 한다. 중공이 중국을 장악한 60여 년을 전면적으로 관찰해 보면 절반에 가까운 중국인이 박해를 당했다.

문장발표: 2011년 03월 17일
문장분류: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3/17/优秀户籍警张宪遭中共绑架、劳教、勒索-23765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