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성 보도) 2002년 3월 초 어느 날 저녁, 넌장현(嫩江縣) 둥펑가(東風街)에서 살고 있는 자영업자이자 파룬궁수련생인 둥리민(董麗敏)은 넌장농장파출소와 헤이룽장 93농지개간 ‘610’(중공이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 기구)인원들에 의해 93구치소로 납치돼 강제로 독극물 주사를 맞았다. 2002년 7월 18일에 둥리민은 93농지개간법원에 의해 14년 불법 판결을 선고받아, 7월 29일에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당했다. 8년이 지나서 둥리민은 박해로 심장병이 심각해졌고 사지가 무기력하며 여위고 허약해졌지만 여전히 헤이룽장 여자감옥[하얼빈(哈爾濱)여자감옥] 5감구역 감옥경찰에게 박해를 당하고 있다.
둥리민(여)은 1962년 7월 1일 출생했다. 2002년 3월 초의 어느 하루 저녁 11시, 넌장농장파출소의 두 명의 경찰(1남1녀)이 헤이룽장 93농지개간 ‘610’ 사람과 함께 갑자기 그녀의 집에 뛰어들어 그녀를 93구치소로 납치했다. 그녀가 단식으로 박해를 항의했던 이유로 3일 후 강제 음식물 주입을 당한 동시에 또 93구치소 내의 위생소에서 강제로 독극물을 주입 당했다. 매번 주사를 다 맞은 다음이면 그녀는 머리가 터질듯 아팠는데 그들은 ‘영양제’라고 말했다.
고문시연: 독극물 주사
2002년 7월 18일, 둥리민은 헤이룽장성 93농지개간법원에 의해 14년의 불법 판결을 선고 받아, 7월 29일에 헤이룽장성 여자감옥 9감구역(지금은 6감구역)으로 이송됐다. 당시 9감구역 대대장은 양화(楊華)와 장춘화張春華)이고 감옥 경찰은 자원쥔(賈文君), 왕사오젠(王少健), 양펑링(楊鳳玲), 쉬잔링(徐占玲) 등이다. 감옥 경찰은 죄수를 이용해 둥리민과 다른 파룬궁수련생을 지키게 했다. 죄수 두목은 왕쉐전(王學珍)이라고 했는데 그녀가 다른 죄수를 감독해서 둥리민을 지키게 했고 꼬박 하루 동안 쭈그려 앉히는 고문을 가하게 했다.
2003년에 감구역장을 정제(鄭傑)로 바꾸었다. 둥리민 등 20여 명 파룬궁수련생은 2003년 가을부터 2004년 가을까지 꼬박 1년 동안 죄수가 지키고 있으면서, 강제로 시멘트 바닥에 앉게 했으며 또 방석에 앉지 못하게 했다. 끼니마다 다만 절반되는 찐빵만 주었을 뿐, 반찬도 없었으며 또 물건도 구입하지 못하게 했다. 매일 5시 반에 일어나 앉기 시작하면 밤중 11시 반 이후까지 앉게 해서야 잠을 자도록 허락했다. 박해에 참여한 죄수는 지춘옌(季春艶), 장춘옌(張春艶), 허우구이친(侯貴芹) 등이다.
2005년 4월 11일에 4~5명의 죄수가 지시를 받고 둥리민 신변으로 가서 그녀를 욕하면서 둥리민에게 그녀들을 보면 웃으라고 했다. 잠시 후 또 둥에게 그녀들이 준 대법을 비난하는 책을 갖도록 했으며 받지 않으면 구타했다. 두 사람은 둥리민을 땅에 때려눕혔다. 그녀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자 또 붙잡아 일으켜 연속 차면서 구타했다. 그런 다음 두 사람은 또 연속해서 둥리민을 여러 차례나 땅에 때려눕혔다. 이렇게 여러 번이나 들볶은 다음, 그 키가 작은 죄수는 지치자 둥의 두 손을 땅위에 놓고 발로 문질렀다. 둥은 그녀들에게 선악(善惡)에는 보응이 있으며, 지시를 받고 사람을 구타해도 역시 위법임을 알려주었다.
당시 둥리민을 구타한 죄수는 타오훙(陶紅)이라고 부르고 죄수 두목은 차오춘옌(喬春艶)이라고 불렀다. 이때 감구역장은 이미 옌위화(顔玉華)로 바뀌었다. 그녀는 본래 감구역에서 혼자서 파룬궁수련생들을 세뇌하는 ‘전향반’을 설립했으며, 아울러 둥리민도 ‘전향반’에 가둬넣어 매일 강제로 그녀들에게 텔레비전을 보게 하고 녹음을 틀어놓았는데 내용은 모두 대법을 비난하는 것들이었다. 며칠 동안 3~4명의 조수들을 지시해 둥리민을 둘러싸고 한바탕 욕하게 했는데 이렇게 1년 넘게 지속됐다. 이때 죄수를 지시한 부감구역장은 자원쥔(賈文君)이고 감옥경찰은 왕사오젠(王少健)이며 죄수는 쉬전(徐珍), 차오춘옌(喬春艶), 타오훙(陶紅), 리더즈(李德芝), 자오훙샤(焦紅霞), 장팡(張芳) 등이다.
2006년 4월에 둥리민은 또 강제로 1감구역으로 이송됐다.
2006년 10월 28일, 감옥장 류즈챵(劉志強)은 또 한차례 파룬궁수련생에게 독수를 뻗쳐,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생들에 대해 ‘전향’ 박해하는 두 개의 격리 감구역인 11감구역과 13감구역을 성립했다.
2008년 4월에 둥리민은 또 강제로 11감구역으로 보내져 강제적 ‘전향’을 당했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자 2008년 9월에 둥리민을 또 5감구역으로 보내 여태껏 감금했다.
당시 11감구역의 대대장은 왕야리(王亞麗)와 타오단단(陶丹丹)이고, 죄수 두목은 추이샹(崔香)이며, 5감구역의 대대장은 우후이리(吳慧麗)와 위안징(袁靜)이다. 그리고 ‘610’을 주관한 감옥 경찰은 왕야난(王亞南)이고 감옥경찰은 위먀오(於淼)와 비레이(畢磊)다. 지시를 받고 박해에 참여한 죄수 두목은 자오윈제(焦雲傑)다. 장시간 동안 그녀 신변을 지킨 죄수는 장위링(薑玉玲)이다.
2001년 12월 17일, 둥리민은 헤이룽장성 넌장농장으로 가서 파룬궁 진상자료를 배포했다는 이유로, 넌장농장파출소에 의해 불법 체포를 당했다. 이튿날에 헤이룽장성 93국(九三局)구치소로 보내져 10일 동안 괴로움을 당한 후(이 기간에 단식으로 항의했던 이유로 강제로 음식물주입을 당해 몸은 매우 허약했음) 93병원으로 보내졌다. 그날 ‘610’의 두 사람은 병원으로 가서 그녀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 다음 그녀 가족에게 통지해서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게 했다. 당시 그들은 그녀 남편에게 5천 위안을 내야 풀어준다고 했다. 남편이 그렇게 많은 돈이 없다고 하자 결국 2천 위안을 내게 해서 그녀를 풀어주었다.
이 외에, 둥리민의 남편은 둥리민이 14년의 불법 판결을 당한 이유로 그녀와 이혼을 했다.
문장발표: 2011년 03월 17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3/17/23768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