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보도) 62세인 파룬궁수련생 한칭차이(韓慶財)는 원래 랴오닝성(遼寧省) 랴오중현(遼中縣)공안국 정치처 주임이었다. 2001년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중공에게 불법 판결을 선고받아 랴오중현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가 박해로 사경을 헤메자 2003년 8월 8일 집으로 돌아왔다. 한칭차이는 집으로 돌아온 뒤 11일 만인 8월 19일 사망했다.
대법제자 한칭차이의 생전 모습
2001년 12월 7일 저녁, 랴오중현에서 수련하던 9명의 파룬궁수련생은 차를 타고 베이징에 대법을 실증하러 가던 도중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찰들이 에워싼채 또 현 공안국으로 납치했다. 한칭차이와 몇 명의 파룬궁수련생들은 정념으로 벗어났지만 그의 아내 류위잉(劉玉英)과 다른 몇 명은 선신(沈新)교양원으로 납치당했다.
량오중현 공안국에서는 친멍즈(秦夢植)를 우두머리로 한 악경(사악한 경찰)들은 그만두지 않고, 몇 십명의 경찰들을 동원해 그날 저녁 한칭차이의 집으로 쳐들어가서 불법 가택수색을 했다. 문을 부수고 열쇠를 열고 들어와 마구 뒤지며 물건을 도처에 던져 버렸다. 그것들은 방문과 탁자장의 열쇠마저도 부수었는데 본 단위의 거주자의 자물쇠마저도 부수었다. 그들은 한칭차이를 찾지 못하자 곧 그의 큰 아들 한청(韓成)을 둘러싸고 아버지의 행방을 말하도록 핍박했지만 실패했다. 몇명은 아들에게 공갈협박하여 심신에 극심한 상해를 입게 해 결국 2007년 3월 28일에 인간 세상을 떠났다. 그들은 한칭차이를 찾기 위해 밤새도록 멀리 농촌에 있는 친척 집으로 달려갔다. 그것들은 어떠한 합법적인 절차없이 공공연하게 사사로이 민가에 뛰어들어 불법 수색을 했으며 또 한칭차이와 친구사이라고 거짓말까지 했다.
그러는 동안 한칭차이의 집은 그들에게 불법 감시 당하고 전화는 감청당했으며 친척과 친구들마저도 연루되었다. 한칭차이는 집을 나간 뒤 10여 일 만에 다시 한 번 불법 체포 당해 그날 밤 선신 교양원으로 보내졌다. 한칭차이는 다른 죄수들에게 감시 당하고 온몸을 수색 당했으며, 밥을 먹고 잠을 자며 화장실로 가는 것마저도 자유가 없었다. 한칭차이의 부부에게 신앙을 포기하게 하기 위해, 악경은 또 한칭차이의 부부를 선양 장스(張士)교양원 세뇌반으로 보내 박해했다. 두 사람에게 매일 4백 위안의 생활비로 경제 박해를 실시했으며, 밤낮없이 잠을 자지 못하게 하면서 정신과 육체적으로 그들을 학대했지만 그들 부부의 수련의 신심과 결심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박해는 멈추지 않았다. 바로 그들이 집으로 돌아온 2개월 후, 이를테면 2002년 4월 6일 저녁, 악경 웨이윈보(魏雲柏-웨이인보는 그후 주정을 부려 말썽을 일으킨 이유로 공안국에 의해 해고 당해 업보를 치렀음)와 다른 몇 명의 악경은 불법적으로 한칭차이를 랴오닝성 구치소로 납치했다. 그곳에서 한칭차이는 완전히 인신자유를 상실하고 가족과의 면회권리마저 박탈당했다. 좋은 사람으로 되는 한마디 말까지도 악인들은 모두 반동 선전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한칭차이에게 일행을 끌고 ‘베이징에 말썽부리러 갔다’는 모자를 씌웠다. 이렇게 한칭차이에게 4년의 불법 판결을 내리고 또 공직에서 면직시켰다. 이것이 바로 악경들이 득의양양해한 이른바 ‘127 대사건’이다. 이 사건은 둥제(東街)파출소 소장 스창옌(石長彦) 등 악경들이 공을 세워 상을 받고 정치자본을 얻는 칩으로 되었다(바로 스창옌이 득의양양해 할 때인 2003년 가을 그는 이선암(胰腺癌)에 걸려 2004년 3월에 업보를 당해 사망했음).
2002년 6월 말에 한칭차이는 불법 판결을 선고 받았다. 랴오중 구치소에서는 한칭차이가 단식해 몸이 아주 좋지 않다는 전화를 걸어왔다. 가족이 그를 보았을 때 모두 깜짝 놀랐다. 한칭차이의 몸이 아주 허약하고 얼굴색이 창백하며 땀방울이 송골송골 얼굴 위에 맺혀있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그리고 말하는 것도 기운이 없이 휘청거리면서 걸었는데 사람으로 하여금 차마 더 보지 못하게 했다. 이때, 신민(新民)에서 법관 두 사람이 와서 노기등등해서 “한칭차이의 태도가 좋지 않아서 4년의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으며 아울러 두 명의 경찰을 파견해 윤번으로 지키게 했다. 이러한 감시와 박해하에 근 1개월 기간에 한칭차이의 몸은 하루하루 달라져 결국 몸져누웠음에도 관련부처에서는 여전히 그를 그냥 두지 않았다. 구치소와 중급인민법원은 서로 책임을 떠밀면서 그를 공안병원으로 보냄으로써 일을 끝내려고 했다. 그후 그가 정말로 위독지자 집으로 돌려보냈다. 며칠 후인 2003년 8월 19일에 한칭차이는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멀쩡하던 한 사람이 진리를 견지하다가, ‘眞ㆍ善ㆍ忍’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으로 되려다, 자신의 신앙을 확고히 하려다 이렇게 중공에게 박해 당해 인간세상을 떠난 것이다.
문장발표: 2011년 01월 30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30/辽中县公安干部韩庆财被迫害离世经过(图)-2355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