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허베이보도) 허베이성(河北省) 안신현(安新縣) 교통국 직원인 한웨이신(韓衞新)은 파룬궁을 수련해서 췌장염과 당뇨병이 완쾌되었다. 그러나 1999년 7월 이래, 여러 차례 박해를 당했다. 2002년 8월 27일에 한웨이신과 몇 명의 파룬궁수련생은 허베이 쉬수이현(徐水縣)의 산꼭대기에서 텔레비전으로 천안문 분신자살 가짜사건을 폭로한 시디를 틀어놓아 중공(중국 공산당) 경찰에게 납치돼 혹독한 구타와 시달림을 당했다. 불법법정심리를 할 때, 한웨이신은 그 자리에서 시디 내용을 틀어놓도록 요구해서 중공 법원에 의해 15년의 불법판결을 당했다. 허베이성 제4감옥에서 7년간 박해를 당해 생명이 위독한 상황 하에 그제야 가족이 집으로 데려갈 수 있었다.
파룬궁을 수련해 질병이 완쾌됐으나 도리어 거듭 중공의 박해를 당하다
한웨이신(남·46)는 허베이 안신현 파룬궁수련생으로 1984년부터 안신현 교통국 감리소(監理站)에서 근무했다.
한웨이신은 1998년 7월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수련 전, 그는 급성췌장염과 당뇨병을 앓았는데 단기간의 수련을 거쳐 부종이 생겼던 몸은 102kg에서 75kg으로 줄어들었으며, 온몸에 힘이 없던 증상에서 정신이 맑고 기분이 상쾌한 상태로 변했다. 그는 태어난 이래 이렇게 가벼운 감각을 체험한 적이 없었으며 法輪大法(파룬따파)의 초상적 병 치료 효과를 실증했다. 수련한 후에 한웨이신은 ‘眞ㆍ善ㆍ忍’을 좋은 사람이 되는 원칙으로 삼고 끊임없이 심성을 제고하고 좋은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좋지 않은 습관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근무에서 열심히 책임져 동료와 과거의 의형제마저도 그의 사람됨을 찬탄했다. 그러나 잔혹한 박해 중에서 그는 7년 동안 감옥 박해를 겪고 몸에 심각한 병상태가 나타나 지금까지 완전히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다.
1999년 5월, 그와 다른 두 명의 파룬궁수련생은 함께 신안현 정부 민원실로 청원하러 가서 자신이 연공을 한 후 이로움을 얻은 상황을 반영함으로써 파룬궁을 위해 합법적인 수련 환경을 얻으려고 힘썼다. 이후 교통국 운수 관리소의 국장 왕궈쩡(王國增), 운수 관리소의 소장 멍젠서(孟建設)는 세 개의 팀을 조직해 10여 명이 그를 불법감시하면서 그가 어디를 가든 지 따라다녔다. 그 후, 또 당직을 서게 한다는 명목으로 20여 일 동안 그를 운수 관리소에서 지내게 했다. 1999년 9월에 그들은 한웨이신을 교통국 4층으로 끌고 가서 지키고 관리했는데, 그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갈까봐 두려워 불법으로 그를 20여 일 동안 가뒀다. 돌아온 후, 규율검사 서기 류샤오장(劉小江)은 그에게 아직도 파룬궁을 연마하겠느냐고 물었다. 당시 한웨이신은 자신의 신앙을 견지했다. 이 때문에 그는 늘 이 사람들에게 교란을 당해 2000년 11월에 핍박에 못 이겨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녔다.
천안문 분신자살 모함사건 폭로, 납치돼 혹독한 구타당해
2002년 8월 27일, 한웨이신과 몇 명의 수련생은 허베이 쉬수이현의 산꼭대기에서 텔레비전으로 천안문 분신자살 가짜사건의 진상을 틀어놓았다. 그들이 돌아오는 길에서 쉬수이현의 폭동 방지 경찰들은 전신 무장을 하고 불법체포를 감행했다. 6명의 파룬궁수련생 중에서 5명이 납치돼 당시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한 수련생은 경찰 곤봉 혹은 벽돌로 맞아 머리에 큰 구멍이 나고 구타로 중상을 입었다. 그들은 한웨이신을 쉬수이현 형사 경찰대대 큰 사건팀으로 끌고 가 불법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했다. 그를 호랑이 의자 위에 묶어놓고 경찰 곤봉으로 후려쳤으며 전기 곤봉으로 전기충격을 가하고 발의 복사뼈를 후려쳤다. 그리고 경찰 곤봉으로 그의 등을 구타해 곤봉까지 한 개 부러졌다. 그날 저녁에 그들은 감방의 수감자에게 한웨이신을 하루 저녁 자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이튿날 한웨이신을 핍박해 성냥을 포장하는 일을 시켰으며 하지 않으면 곧 구타했다. 악경은 가족이 면회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또 엄밀하게 소식을 봉쇄했다. 모든 파룬궁수련생을 따로 따로 격리시키고 매일 감시기로 파룬궁수련생들의 일거일동을 밀접하게 주시했다. 파룬궁수련생들을 매일 또 핍박해 정원 안에서 일하게 했으며 또 늘 불법심문을 했는데 매번 돌아오면 모두 온몸에 상처가 있었다. 악경들은 또 수감자들을 부추겨 파룬궁수련생들을 폭력적으로 구타했다. 한웨이신은 21일간 단식으로 불법감금에 항의했다. 단식한 기간에 감방의 수감자들은 한웨이신을 화장실 안으로 끌고 가 잠을 재우지 않았으며, 눈을 감기만 하면 얼굴 위에 냉수를 끼얹었고 수시로 몇 번씩 구타했다.
15년의 불법판결 당하고 감옥에서 시달림을 받을 대로 받다
그 후 검찰원에서 불법 기소서를 하달했는데, 법정에 올라 변호할 준비를 하기 위해 한웨이신은 그제야 단식을 멈추었다. 불법재판을 할 때, 몇 명의 수련생들은 그 자리에서 시디의 내용을 틀어놓도록 요구했으나 법정에서는 감히 틀어놓지 못했다. 10월에 몇 명의 수련생들은 모두 불법으로 중형을 선고 당했다. 한웨이신은 15년의 불법판결을 받고 바오딩(保定) 제1감옥으로 보내져 불법감금당했다.
7일 후 한웨이신 등 4명의 수련생은 허베이성 제4감옥으로 보내졌다. 한웨이신은 제4감구에 감금당했는데 주관 대장은 가오쥔링(高峻嶺)이었다. 그들은 한웨이신에게 강제로 일을 시켰지만 한웨이신은 하지 않았다. 며칠 후, 그는 감옥 교육과 세뇌반으로 보내져 강제전향을 핍박당했다. 매일 3~4명의 수감자들이 따라 다니면서 강제로 작은 나무 걸상에 앉혔는데 앉지 않으면 트집을 잡아 구타하기 시작했다. 교육과에서 세뇌를 주관한 악경 리리커(李利科)가 몇몇 수감자들에게 작은 걸상으로 한웨이신의 둔부와 허리부위를 힘껏 내리치게 해서 걸상이 쪼개졌다. 그들은 한웨이신을 저녁 12시까지 강제로 앉게 하고나서야 휴식시켰다. 새벽 5시에 기상이고 아침은 작은 찐빵 하나 점심과 저녁은 각각 두 개만 주었는데 전혀 배불리 먹을 수 없었으며 라면도 못 사게 했다. 밥과 반찬을 배불리 먹지 못해 늘 기아에 시달렸던 탓에 두 눈은 푹 꺼졌다. 부득이 1층과 2층에서 다른 사람들이 먹다가 남아서 복도에 버린 음식물을 주워 먹었다. 그 후 한웨이신이 핍박으로 2일간 단식해서야 그들은 마음대로 먹게 허락했다.
2005년에 한웨이신은 박해로 심각한 병상태가 나타났다. 감옥병원의 검사를 거쳐 당뇨병 2기 진단이 내려졌다. 2006년에 또 폐결핵이란 진단을 받아 감옥의 전염병 작은 격리소에 갇혔다. 2008년 11월에 한웨이신은 박해로 갑자기 당뇨병합병증이 도져 생명 위험이 나타나 감옥 측에 의해 스자좡(石家莊) 흉부과 병원으로 보내져 응급처치를 받았다. 병원의 검사를 거쳐 흉부에 심하게 물이 고여 있고 폐가 쇠약해져 한쪽 폐에 괴사가 나타났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그리고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두 눈이 실명되었으며 음식을 먹어도 소화되지 않았다. 감옥 측은 책임과 의약비용을 감당하기 두려워 가족에게 통지해 병원에 가게 했다. 한웨이신의 아내와 아들 그리고 누나와 형부 등이 돌아가며 보살펴주었다. 85~90kg의 몸무게에 키가 180cm로 건장하던 사람이 어떻게 뼈만 남게 되었는가. 가족은 보자마자 병이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한웨이신은 병원 1층 응급실에서 몸져누워 생활을 스스로 하지 못했으며, 야위어서 뼈만 앙상하게 남아 매일 링거를 맞았는데 수시로 생명위험이 있었다. 한웨이신의 가족은 핍박으로 입원비용 2만여 위안을 지불했다. 가족은 연속 세 차례나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도록 요구했으나 모두 감옥 측에게 거부당했다.
2009년 3월에 한웨이신의 병세가 극히 심각한 상황 하에 감옥에서는 한웨이신의 가족에게 사람을 데려가라는 통지를 내렸다. 그리고 안신(安新)‘610’과 공안국에서 증명하도록 요구했으나 이들은 거부하며 증명을 내주지 않았다. 3월 6일에 감옥에서 책임을 감당하기를 원하지 않은 상황에 어쩔 수 없이 가족이 한웨이신을 집으로 데려가는 것을 동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웨이신의 심신은 장기간의 박해를 당해 줄곧 오늘까지도 완전히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때로는 좋아졌다가 때로는 나빠져 몇 번이나 생명 위험이 나타났다.
문장발표: 2010년 01월 25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25/揭露天安门自焚栽赃案-韩卫新遭七年冤狱-2353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