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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중공 감옥과 노동교양소의 박해 총론 (사진)

[밍후이왕] (밍후이기자 하이타오(海濤) 종합보도) 1999년 7월부터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수련자를 박해한 이래, 중국대륙 파룬궁수련자들은 겹겹의 봉쇄을 돌파하고 밍후이왕을 통해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외부에 박해의 진상을 폭로했다. 박해 범위는 넓고도 잔혹한데 일반적인 사람들의 상상을 훨씬 초월했다.

잔혹한 박해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2010년 밍후이왕에서 중국 파룬궁수련생들이 박해를 당한 사례를 발표한 가운데서, 중공의 주요 박해 장소인 각 지역의 노동교양소와 감옥 안에서 발생한 박해 사례는 1,680여 사례이다. 박해는 중국 대륙의 28개 성(省), 시(市)에 분포돼 있는데, 랴오닝(遼寧), 헤이룽장(黑龍江), 산둥(山東), 지린(吉林), 허베이(河北)가 가장 심각한 곳이다.

2010년에 적어도 78명이 박해로 사망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2010년 1월에 각종 고문, 폭력, 강제적 ‘전향’으로 불법 감금당한 기간에 생명을 잃은 파룬궁수련생은 78명이다. 11년 이래, 민간 경로를 통해 전해진 소식에서 이미 3,419명의 파룬궁수련생이 박해로 사망했음을 알게 되었다.

2010년 7월 3일, 헤이룽장성 하얼빈시(哈爾濱市) 약물치료 노동교양소(戒毒勞教所)에서, 순박하고 선량한 여성 파룬궁수련생 류수링(劉術玲)이 학대로 사망했다. 목격한 증인이 폭로한 데 따르면, 류수링은 경찰복을 입은 경찰에게 철제 의자위에 묶여 전기봉으로 전기충격을 당해 무참히 사망했다. 류수링의 왼쪽 목 아랫부위에는 전기충격을 당한 검은 반점이 한 바퀴 생겨나 있었다.

류수링과 남편 치자오쳰(齊兆千)

2010년 7월 21일 오후, 톈진시(天津市) 강베이(港北)감옥의 대장 류차오(劉超)는 죄수들을 시켜 파룬궁수련생 주원화(朱文華)를 수감구역의 물건 저장실로 협박해 데려가, 외부에 대해서는 그에게 ‘교육’을 진행하다고 말하고, 오후부터 줄곧 저녁까지 6 ~ 7시간 동안 잔혹히 학대하여 주원화를 무참하게 때려 죽였다. 주원화는 두 눈을 뜬채로 죽어도 눈을 감지 못했다. 현장에 있었던 사악한 경찰들이 각종 방법을 다 동원해도 그의 두 눈을 감기지 못했다.

허베이성(河北省) 옌산현(鹽山縣) 샤오잉향(小營鄕) 한장쥔촌(韓將軍村)의 초등학교 교사 후롄화(胡連華)는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중공 당국에게 박해를 당했다. 2010년 9월 2일 다시 한 차례 산둥성(山東省) 칭윈현(慶雲縣)공안국으로 납치당했다. 10월 4일에 옌산 공안국에서는 가족에게 후롄화가 이미 사망하여 시신을 시체실에 안치했다는 통지를 보냈다.

허베이성 옌산현 소학교 교사 후롄화

지린성 룽징시(龍井市) 세무국의 우수 공무원이자 파룬궁수련생 차이푸천(蔡福臣)은 2010년 9월 15일에 궁주링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는데 당시 나이 겨우 40여 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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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수련생은 도덕이 고상한 좋은 사람이다

고대 로마제국의 폭군은 기독교를 박해하기 위해, 이미 전에 수하의 문인을 이용해서 거짓말을 꾸며 군중을 미혹시켰는데, 기독교인이 성(城)에 불을 놓고, 유아의 피를 마시고, 물에 독극물을 타고 또 인류를 저주한다고 말했다……오늘날의 사람들은 이것이 일격에도 견디지 못하는 거짓말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2천여 년 전에 사람들은 도리어 거짓말과 증오로 두 눈이 가려졌다. 돌이켜보면 역사는 어찌 이처럼 비슷한가!

파룬궁수련생 한중(韓忠)이 안후이성(安徽省) 퉁링시(銅陵市)구치소에 있을 때, 죄수가 그를 구타했는데 한 죄수가 다른 사람에게 “한중을 어떻게 때려도 상관없다. 그가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중공의 강력한 세뇌와 거짓말을 주입한 상황하에서 일부 사람은 양심을 상실한 채 이익을 위해 박해에 참여했는데, 한마디로 “그는 파룬궁이다”라고 말하면 마치 죄를 감출 수 있는 듯 했다. 사실상 파룬궁수련생이 ‘眞ㆍ善ㆍ忍’을 수련함은 몸소 체험하고 힘써 실천한 것으로 사회상에서는 하나의 가장 선량하고 정직한 좋은 사람들이다.

왕강(王剛)이 생전에 찍은 사진

허베이(河北)성 줘저우(涿州)시 이허좡향(義和莊鄕)의 한 농민 파룬궁수련생 왕강은 10년의 억울한 재판을 당했다. 감옥에서 고문을 처참하게 당해 오른쪽 다리 절단 수술을 받고 감옥에서 8년 동안 감금당한 뒤 세상을 떠났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모두, 왕강은 의리가 있는 좋은 사람이다고 말했다. 어느 한 번은 집으로 사온 화학비료가 한 자루 더 많은 것을 발견했다. 왕강은 자전거를 타고가서 돈을 주었다. 돼지를 팔러 가는 길에, 한 사람이 차가 전복되어 라디에이터에 의해 화상을 입은 것을 보자 위로하며 그에게 백 위안을 주었다. 그 후 이 사람이 집에 찾아와 감사의 뜻을 표해서야 아내가 이 일을 알게 되었다. 그 해 한 사람이 병이 들어 온 몸이 어지러운 채 큰 길가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사람이 오갔지만 관할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두말 없이 그 사람을 업고 병원으로 갔다……왕강은 평소에 ‘眞ㆍ善ㆍ忍’에 따라 처세하고, 장사를 함에 부당한 재물을 한푼도 벌지 않아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고객들 중에서 칭송이 자자했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중공 매체에서 ‘살인,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사건, 재물 수탈’ 등 유언비어를 날조해 파룬궁을 먹칠한 사실을 폭로했는데, 중공은 감옥에 가두는 것으로 입을 봉하고 사망케 했다.

안후이성(安徽省) 보저우시(亳州市) 파룬궁수련생 양진잉(楊金英)은 2003년 11월에 중공 사악한 경찰에게 박해로 사망했다. 그녀는 당시 아직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두 아들이 있었다. 며칠 전에 양진잉의 큰 아들 왕레이(王磊)는 어머니가 박해로 사망한 이 사건을 보저우시 차오청 공안국에 고소해 법에 의거해 직접적인 책임자를 밝혀내도록 요구했다.

어머니는 사리에 밝고 마음씨가 착하지만 체질이 약하고 잔병이 많았는데10여 종의 병들이 늘 그녀를 괴롭혔다. 사방으로 병을 치료하러 다니고, 더군다나 두 아들이 학교에 다니니 경제 상황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1996년 어머니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해 병은 기적처럼 천천히 좋아지고 몸 무게도 증가되어 불그스름한 얼굴 위에는 오랜 만에 웃음기가 돌았으며 온종일 밥을 짓고 돼지와 소를 먹이며 또 밭일을 하고 할머니에게 효도를 다하면서 안팎에서 바삐보내고도 힘들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2003년 4월 어느 날, 관탕(觀堂)파출소에서 강제로 막 밭에서 일하고 돌아온 어머니를 끌어갔다. 1년 반 동안의 감금 가운데서 어머니는 고문과 학대를 당해 몸무게는 50kg에서 20~25kg으로 뚝 떨어졌다. 같은 감옥의 사람들은 어머니가 불쌍해서 가족이 자신들에게 가져다 준 소고기를 어머니에게 일부 나눠주었다. 이렇게 어머니는 소고기 5 ~ 6 봉지를 모았다. 어떤 사람은 “당신은 이렇게 수척한데 당신에게 준 소고기를 무엇 때문에 먹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다. 어머니는 대답했다. “내 두 아들들은 모두 대학시험을 쳐야 해요. 그들에게 영양이 더욱 필요해요.”

파룬궁수련생은 사회와 가정에서, 어머니는 자애롭고 아이들은 효성이 있으며, 또 의리가 있게 사람을 도와주고 개인의 이익을 탐내지 않는다. 바로 신념이 있기 때문에 그들로 하여금 마음속에 선념(善念)으로 충만되게 했는데, 도리어 중공의 참혹한 박해를 당했다.

고문, 모욕, 강제‘전향’

중공이 정보에 대해 봉쇄했기 때문에, 현재 여전히 각지 감옥과 노교소 그리고 구치소 등 곳곳에 감금당하고 있는 파룬궁수련생의 인원 수는 여전히 확실하게 통계할 방법이 없다. 불완전 통계에 따르면, 지금 산둥성 지난(濟南)여자감옥에는 여전히 2백여 명의 파룬궁수련생이 감금되어 있는데, 집중 훈련대만 해도 1백여 명이 아직도 상해를 입고 있다. 그리고 산둥성에서 중공에 의해 지정된,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감옥과 노동교양소로는, 또 산둥성 제1감옥(남자 감옥), 웨이베이(濰北)감옥, 타인안(泰安)감옥, 지난 장수이촨(漿水泉) 여자노동교양소, 지난 류창산(劉長山)노동교양소, 지난 장추(章丘)노동교양소, 칭다오시(青島市)노동교양소, 쯔보 왕춘(淄博王村)제2여자노동교양소, 쯔보시(淄博市) 추구(秋谷)노동교양소, 웨이팡 창러(濰坊昌樂) 노동교양소 등이다. 한 개의 성(省)이 이러한데, 전국으로 확대하면 아직도 얼마나 많은 파룬궁수련생들이 암담한 감옥에 갇혀 박해를 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감옥에 납치한 후, 파룬궁수련생을 핍박해 수련을 포기시키기 위해, ‘3서’(보증서, 회개서, 적발서)를 쓰게 하는데, 사악한 경찰의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는 차츰 심해진다. 위협하고 공갈 협박하던 데로부터, 또 무차별 폭력을 가하고 고문을 사용한다. 일단 폭력 하에서 타협한다면 악인은 강제로 세뇌시키며 파룬궁을 모독하는 CD를 보게 한다. 하루에 사상보고서를 한 부 써내게 해서, 파룬궁이 자신의 심신에 가져다 준 이로운 점을 말살시키며, 중공에게 ‘죄를 승인’하게 하고 ‘은혜에 감사를 드리게 한다’.

중공 감옥과 노동교양소의 피비린내 나는 고문은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다.

중공 노동교양소의 여러가지 고문

랴오닝성 마싼자(馬三家)노동교양원(勞動教養院)의 하급인 각 노동교양소에는, 지하 감옥, 전기곤봉, 돼지 족쇄, 호랑이 의자, 면구, 큰 괘, 늘이는 침대, 사인 침대(死人床), 과궁기(括宮器), 끈 등 각종 형구가 마련되어 있는데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겨냥한 것이다. 2010년에 여전히 1백 50여 명의 파룬궁수련생이 마싼자 노동교양소에 불법 감금당해 있다. 최근 마싼자노동교양원에서 여러 손을 거쳐 파룬궁수련생의 박해를 폭로한 몇 부의 편지가 전해 나왔다. 2010년 10월 중순부터 시작해, 마싼자 감옥 경찰들은 파룬궁수련생을 핍박해서 ‘3서’를 다시 쓰게 했다. 주쉐민(朱學敏)과 런창쉐(任常學)는 각각 2010년 10월 25일과 11월 5일에 마싼자 3대대 둥강(東崗)에서 여러 명의 사악한 경찰들에게 학대를 받아 늘이는 고문을 당했다.

시안(西安) 파룬궁수련생 쑨이(孫毅)는 2009년 12월부터 2010년 3월 사이에 랴오닝성 마싼자노동교양원 경찰 위장(于江) 등에게 연속 4개월 동안 ‘큰 괘에 올리기’고문을 잔혹하게 당했다.

광저우시(廣州市) 제3노동교양소는 늘 세 칸 짜리 영창실을 준비하고 있는데,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자쭝(扎粽)’, ‘끈 그물(繩網)’ 등 고문을 가했다. ‘자쭝’은 먼저 파룬궁수련생의 두 손을 뒤로 묶는다. 그런 다음 다리를 뒷로 묶어 위로 들어올린 후 두 손을 묶은 곳에 함께 묶어 놓는다. 그리고는 함께 뒤로 잡아당겨 순식간에 사람으로 하여금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증을 받게 한다. 이런 학대가 시간이 좀 오래 가게 되면 사람으로 하여금 극심한 고통에 기절하게 한다.

헤이룽장성 이춘시(伊春市) 파룬궁수련생 류옌화(劉艶華)는 수련을 견지한 이유로, 2년 넘는 동안에 줄곧 헤이룽장 약물치료 노동교양소에서 단독으로 격리돼 박해를 당했다. 2010년 7월 1일, 약물치료 노동교양소의 경찰에게 ‘큰 괘에 올리기’ 고문을 당해 15일 동안 매달려져 있었다. 그런 다음 철제의자로 학대를 당했다.

산둥 여자 감옥에서 사악한 경찰은 죄수를 지휘해 파룬궁수련생의 옷을 벗겼는데 팬티까지도 몽땅 벗겨내어 그녀들로 하여금 맨몸으로 있게 했다. 생리가 와도 팬티도 입히지 않았고 생리대도 없었다. 죄수들은 파룬궁수련생들을 모욕하고도 오히려 부끄러움도 몰랐다.

노동교양소와 감옥에서 감옥 경찰들은 또 고강도로 파룬궁수련생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폭리를 도모했다. 밍후이왕 보도에 따르면, 랴오닝성 여자감옥의 각 수감구역에서는 수감구역장(과급 경찰)이 도급을 맡는데, 매년 감옥에 몇 백만위안의 가공비용을 바치고 나머지는 감옥 경찰들에게 월급으로 지급한 다음, 남은 것은 모두 감구역장이 가진다. 감구역장은 돈을 벌기 위해 잔혹하게 착취했다. 전 감옥은 보통 매일 15시간의 노동을 했는데, 반년 이상의 시간을 또 초과 근무를 해야 했기에 매일 17시간 강제노동을 했다.

파룬궁수련생들과 같은 입장에 서야 한다

이런힘든 상황 하에서 파룬궁수련생은 수련을 견지하고 사람으로 되는 도리를 견지해 사악한 중국 공산당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일부 수련생이 심신이 감당하지 못한 극한의 상황 하에서 한 순간에 잘못을 했을지라도, 압력이 줄어 들었을 때는 즉시 정신을 차려서 강제적 세뇌를 폐기하고 ‘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성명할 것이다! 고문은 자신이 직접 파룬따파중에서 이로움을 본 사실을 개변하지 못하고, 강제는 영원히 사람의 마음을 개변하지 못한다.

많은 파룬궁수련생은 감옥에 갇힌다 해도, 지금껏 자신이 유죄라고 승인한 적이 없기에, 죄수복을 입지 않고, 죄수들의 규정을 외우지 않고, 강제노동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관련 부문에 고소하면서 수련하는 합법적인 권익을 실현하기에 노력했다. 동시에 접촉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인 수감된 죄수와 경찰에게 파룬궁의 진상을 이야기하여 그들의 양심과 선념을 깨우쳐주었다. 끊임없이 알린 진상과 수련자 본인의 고상한 언행은 확실히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많은 죄수들은 감옥에서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해 파룬따파의 감화를 받아 악행을 버리고 선(善)을 행했다.

파룬궁수련생의 가족들도 차츰 파룬궁을 수련함은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고, 중공의 박해야말로 법을 어기는 범죄임을 깨달았다. 가족들은 행동을 취하기 시작해, 끊임없이 각 수감소로 가서 사람을 풀어달라고 요구하고, 각급 관련부문으로 가서 상소했으며, 어떤 이는 정의로운 변호사를 선임해서 자신의 가족을 위해 무죄변호를 했다. 많은 변호사들은 중공의 각 방면의 압력을 막아 내고 법정에서 “파룬궁이 眞ㆍ善ㆍ忍을 수련하는 이것은 사회에 대해 백가지 이로운 점만 있을 뿐 한가지 해로운 점도 없다”고 지적했다. 오늘날 중국의 법률에 따른다 해도, 파룬궁은 역시 완전히 합법적이다. 도리어 중공의 모든,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무리한 감금과 박해행위가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또 동네 이웃들이 연대서명해서 파룬궁수련생을 위해 상소하고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일도 있다. 예컨대 2010년 12월 21일, 헤이룽장성 푸진시(富錦市) 파룬궁수련생 위안위룽(袁玉龍)과 아들 위안서우장(袁守江) 그리고 며느리 궁진펀(龔金芬)은 현지 사악한 경찰에게 납치를 당했다. 중성촌(中勝村)의 촌민들은 연대서명을 하여 상소했는데, 전 촌의 95%이상의 주민들이 “위안씨네 세 식구는 모두 좋은 사람으로 법을 어기는 일을 하지 않았기에 공안국에서 즉시 사람을 풀어주기를 바란다”고 서명해 힘써 보호했다. 푸진 공안국에서는 부득이 사람을 풀어주는 수 밖에 없었다.

한 차례 한 차례의 정의로운 목소리가 한데 모아져 하나의 역량으로 되어, 바로 암흑을 충격하고 있다. 파룬궁수련생들의 입장에 서서, 도의적으로 그들을 지지해 주기 바란다. 박해는 결국에는 멈출 것이며 사람들은 자유의 환경에서 숨을 쉴 수 있을 것이다. 그 때에 가서 당신이 “나는 내가 해야 할 바를 다했다”는 한마디를 말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문장발표: 2011년 01월 14일
문장분류: 톱기사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14/2348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