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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촨와쯔’가 어머니를 부르다

글/ 청위(誠宇)

[밍후이왕] 올해 47세로 전에 청더우(成都)주재 쓰촨성(四川省) 광위안시(廣元市)정부 사무소 간부였던 주이팡(祝藝芳)여사는,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중공(중국공산당)에게 납치박해를 당한 적이 있다. 7박7일을 매달리고 수면을 박탈당했었다. 쓰촨성 부서기 리충시(李崇禧)는 그녀를 쓰촨성 중점 박해대상으로 삼았다. 성(省) ‘610’(주-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해 설립한 불법 조직으로 공안, 검찰, 법원 위에 군림)에서 직접 간섭해 지시하고, 광위안시 ‘610’과 청더우시 ‘610’이 연합해 그녀에 대한 박해를 집행했다. 광위안 구치소에서 그녀는 오마분시(五馬分尸-고대의 형벌로, 죄인의 사지와 머리를 다섯 마리의 말에 묶은 후 말을 몰아 잔혹하게 찢어 죽임) 형태로 철제 침대의 네 모서리에 채워졌다. 2010년 10월 8일, 주이팡은 광위안시 왕창현(旺蒼縣)법원에 의해 불법 재판을 당해 7년 불법 판결을 받고 청더우 여자감옥으로 납치당했다.

쓰촨성 ‘610’은 그녀를 쓰촨성의 블랙리스트(黑名單) 중의 중점 인물, 핵심 인원으로 삼았다. 감옥에서는 그녀를 장시간 격리했다. 독방에 감금해 엄격한 관리를 실행했다. 주이팡은 시종 자신의 신앙을 견지했으며, 자신이 ‘眞ㆍ善ㆍ忍’에 따라 좋은 사람으로 되려함은 잘못이 없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또 어떠한 법률도 위반하지 않았기에 죄수가 아니므로 죄수복을 입는 것을 거부했다. 경찰은 곧 죄수를 부추겨 그녀의 브래지어와 팬티만 남기고 몽땅 벗겨버린 다음, 그녀를 장시간 동안 한사람도 제대로 서 있을 수 없는 작은 방안에 단독으로 감금했다. 그리고 어떠한 사람도 그녀와 말하지 못하게 하고, 또 가족과의 면회도 거부했다.

주이팡에게는 아명이 촨와쯔(全娃子)라고 부르는 아들이 있는데, 어머니가 박해를 당해 그도 따라서 연루를 받았다. 어머니가 감옥에 납치당하자 아들이 면회하러 왔다. 그러나 어머니가 확고하게 수련하고 감옥 경찰에게 타협하지 않은 이유로 감옥에서는 면회를 거부했다.

어쩔 수 없어서 아들은 높은 담장 밖에서 높은 소리로 ‘어머니’라고 불렀다. 아들의 익숙한 목소리를 들은 주이팡은 철창을 향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이곳에 있다!” 그러나, 그녀는 이 한마디 때문에 감독 관리하는 죄수에게 넘어뜨려졌으며 입이 막혔다. 이튿날, 아들과 조카가 그녀를 보러 왔는데 감옥에서는 여전히 만나지 못하게 했다. 아들은 곧 감옥 옆의 비파나무숲에서 높은 소리로 “어머니”하고 불렀다. 어머니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도록 하기 위해 아들은 자신의 아명은 ‘촨와쯔’라고 외치면서 “어머니”를 불렀다. 이 처참한 목소리는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했다. 주이팡은 들은 후 철창 앞으로 달려가 아들과 조카에게 손을 저었다. 감독 관리하는 죄수는 다시 한 번 그녀를 땅에 넘어뜨렸다. 아들은, 어머니를 불러서 죄수의 학대를 당하게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두 아이는 놀라서 달아났다.

하지만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전문 관할하는 경찰 자오훙메이(趙紅梅)가 소식을 들은 후 다른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2009년 새해가 다가올 때, 자오훙메이는 주이팡에게 말했다. “내가 감옥장을 찾아서 당신에게 ‘친정(親情) 면회’의 지표를 달라고 하겠어요. 그러나 당신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마세요.” 자오훙메이가 말한 “당신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마세요”란 바로 주이팡에게 파룬궁을 결렬하는 ‘3서’(신앙을 포기하는 반성문 등)를 쓰라는 것이다. 주이팡은 자오훙메이의 위선을 간파한 다음, 이런 교환을 단호히 거부했지만 자오훙메이는 그렇게 해야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면회하는 당일, 아들과 조카가 감옥으로 갔지만 주이팡은 단호하게 만나지 않고 죄수복을 입지 않았다. 경찰은 곧 4명의 죄수를 시켜 주이팡을 땅위에 넘어뜨리고 눌러 강제로 죄수복을 입혔으며 아울러 그녀를 아래층으로 밀고 내려와 아들과 조카를 만나게 했다. 그녀는 핍박에 못이겨 죄수복을 입고 가족을 만났는데 상심해서 눈물을 흘렸다. 자신은 평소 모욕을 당해도 죄수복을 입기를 거부했는데 자신이 죄수임을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도리어 죄수복을 입고 가족을 만나고 있었는데, 이것은 그녀에 대한 가장 큰 모욕이고 파룬따파의 존엄에 손상을 가져온 것이다.

두 아이를 만나자 주이팡은 눈물이 쏟아졌다. 감옥 경찰은 이 장면을 보자 또 그들이 장난친 ‘친정 교육’이 효과를 본 것이라고 여기면서 급히 그들의 사진을 찍고 녹화했다. 경찰들이 그들을 주의하지 않을 때, 주이팡은 신속하게 옷을 헤치고 가족에게 자신이 당한 박해 상황을 보게 했다. 배는 마치 임신한지 10개월 되는 부녀처럼 부어오르고, 다리 부위도 부어올라 피부색이 다 변했었다. 그녀는 자신이 땅을 딛기만 하면 마비되고 다리도 이미 걷지 못하게 된 사실을 아이들에게 알려 주었으며, 아울러 자신이 감옥에서의 생활 상황도 상세하게 말했다. “장시간 동안 밥만 먹이는데 소금을 먹지 못하고 야채와 과일도 먹지 못했다. 그리고 또 합성 세제, 생리대, 위생 종이를 사게 허락하지 않았다. 목이 마를 때면 한 죄수가 버린 음료수병으로 물을 마시는데, 소변을 본 다음에도 이 음료수병으로 물을 받아서 가셨다……”

장시간 동안 문을 잠그고 감금을 당해 햇빛을 보지 못한데다 음식물도 또 심각하게 영양이 부족하고, 더군다나 정신과 육체적으로 극한을 초과한 학대를 당한 이유로, 주이팡은 전신에 부종이 생겨 걸을 수 없게 되고 배도 부어올라 복수 증상이 나타났으며, 등에는 큰 혹이 생겨났다. 경관(警官)병원에서 매일 네 명의 남자 죄수가 강제로 그녀를 침대 위에 누르고, 헝겊띠로 그녀의 손발을 침대의 네 모서리에 묶은 다음 배와 다리도 헝겊띠로 침대 양쪽에 묶었다. 그런 다음 간호사가 그에게 독극물을 주사했다. 독극물을 주사한 후 그녀는 마음이 당황하고 혈관이 아프며 배가 부어오르는 감을 느꼈다. 처음에는 매일 두 병(작은 병)만 주사했다가 또 큰 병으로 바꿔서 두 병을 주사했다. 그리고 또 큰 병 두 병에서 네 병을 주사했다. 그 후 여덟 병까지 증가했다. 매일 또 그녀에게 독극물 주사약을 맞혔다. 처음에는 주사를 한대만 맞혔다가 그 후에는 두대를 맞혔는데 둔부마저도 주사를 맞아 헐어서 곪았다. 이렇게 병원에서 5개월 넘는 박해를 당했다. 지금까지 둔부 위에는 아직도 백 여 개의 주사 바늘 자리가 있으며 주사 바늘 자리는 녹색을 띠고 있다.

2009년 6월, 주이팡의 여동생과 아들 ‘촨와쯔’가 병원으로 그녀를 면회하러 갔다. 6월의 청더우는 매우 무더웠지만, 그녀는 도리어 몸에 솜옷을 입고 있었고 손으로 허리띠가 없는 바지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여동생과 아들은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놀라서 멍해졌다.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면서 말했다. “이 사람이 제 어머니인가요, 이 사람은 정신병 환자이지 제 어머니가 아닙니다. 저의 어머니는 아주 예쁘고 기질도 매우 우아하며 모두들의 존경을 받는 분입니다!” 지난번 면회부터 지금까지 겨우 반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주이팡은 이미 박해로 완전히 외모가 변했다. 경찰이 다가와서 그녀가 주이팡이라고 확인한 후에야 아들은 어머니를 인정했다. 여동생은 언니의 몸이 더럽고도 악취가 풍기는 것을 보고 물어봐서야, 그녀가 이미 반 년 동안 목욕을 못했음을 알게 됐다.

촨와쯔가 어머니를 불러서부터 어머니를 만나고 다시 어머니를 알아보지 못한 면회 과정, 이 하나의 측면에서 중공이 인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한 빙산의 일각을 폭로했다. ‘촨와쯔’가 ‘어머니’를 부른 목소리는 이미 전에 감옥 상공에 메아리쳐 선량한 사람들의 마음을 들먹인 적 있다.

문장발표: 2011년 01월 06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6/23458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