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보도) 마싼자(馬三家) 강제노동수용소(勞動教養院)는 랴오닝성(遼寧省) 선양시(沈陽市)의 북쪽 교외에 위치해 있다. 선양시 정류장에서 차를 타고 도중에서 차를 바꿔 타는데 대략 50분쯤이면 이 수용소에 도착한다. 이 수용소는 아래에 세 개 강제노동수용소가 있다. 그중 남자 2개, 여자 1개의 수용소가 있다. 그곳의 건축은 표준 방향이 없는데 근본 동서남북을 가릴 방법이 없이 마치 미궁에 들어선 듯하다. 정원 안의 길마저도 모두 기형이고, 그곳의 하늘은 열흘에 여덟 날은 모두 검은 구름이 머리를 내리누른다. 수용소의 상공은 늘 많은 까마귀 떼가 있고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정원 안의 호숫가는 많은 개구리와 두꺼비들이 마구 울어대고, 날씨는 늘 짙은 안개로 자욱하다.
마싼자 노동수용소는 겹겹이 조직되어있다. 원장 장밍챵(張明强)을 우두머리로 해서, 아래로는 정(庭), 청(廳), 처(處), 과(科-교도관과를 포함했는데 역시 특무과라고 함), 각 노동수용소 등이 있다. 여자 노동수용소만 해도 소장, 정위, 대대, 중대, 소대를 배치했으며 각 대대 대대장의 사무실은 처벌하는 장소다. 각 부서에는 모두 전문적인 교도관과 감옥 왕초가 있다. 파룬궁수련생은 대대, 중대, 소대에서 박해를 당한다. 만약 사악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곧 종합루(綜合樓-노동수용소라고도 부름)로 보낸다. 다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곧 교도원과 이를테면 특무과로 보낸다. 다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체포령을 내린다. 이 수용소에는 각종 형구가 마련돼 있는데, 포락(炮烙)을 제외한 이외, 동서고금의 각종 형구가 다 갖추어져 있다. 그중에 지하 감옥, 전기 곤봉, 돼지 족쇄, 호랑이 의자, 탈(面具), 큰 괘(大挂), 늘이는 침대, 사인 침대(死人床), 과궁기(括宮器), 독방, 매다는 끈 등이 있다. 이상의 각종 형구는 모두 파룬궁수련생을 겨냥한 것들이다. 이 수용소에는 또 한 세트의 여론 박해 체제인 방송 프로그램, 라디오 방송국, 녹화 영상, 뉴스 신문사가 있다.
이 수용소는 세 개의 동에 각각 파룬궁수련생을 가뒀다. 이 세 개 동은 완전히 봉쇄, 반 봉쇄, 완전 개방의 세 종류로 나눴다. 처음은 파룬궁수련생을 단독으로 방안에 가둬 강제로 전향하게 한다. 교도원과 감옥 왕초를 지시해 인신공격을 감행하는데 속임수, 모욕, 죄를 뒤집어씌우고 모함하고, 엄혹하게 관리하고, 체벌을 주고, 잠을 재우지 않고, 무차별 폭행을 가하는 등이다. 그들 확고한 파룬궁수련생에 대해서는 진일보해서 박해를 가중시키는데, 종합루나 세뇌반으로 보내 하나하나씩 각종 고문으로 박해를 감행하려 했다. 11년 중, 얼마나 많은 파룬궁수련생이 특무와 악경(사악한 경찰)에게 학살을 당했거나 구타로 불구로 되었는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재물을 갈취하는 것은 더욱 악경들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데 늘 있는 일이다. 아래에 몇 개의 박해 사례를 이야기하려 한다.
파룬궁수련생 리바오제(李寳傑)가 무참하게 목 졸려 죽다
리바오제(여, 34세, 한족, 키165cm)는 판진현(盤錦縣)의 사람인 그녀는 매우 청순하고 아름다웠다. 리는 이 수용소에 불법 납치를 당한 10여 개월 동안에 각종 고문을 받았지만 그녀는 전향을 거부했다. 리는 여전히 단식으로 저항하고 항의했다. 악경들은 다른 사람이 소리를 듣지 못하는 한 방안에서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했다. 음식물을 주입할 때, 악경 및 감옥 의사 등 여러 사람이 함께 손을 써서 리를 무참하게 목 졸라 죽였다.
참여한 악경으로는 장춘광(張春光), 리밍둥(李明東), 리밍위(李明玉), 류융(劉勇), 옌쓰광(闫司光), 천징민(陳井民), 리쥔(李俊), 왕치(王棋), 마진산(馬金山), 장쥔(張君), 판(繁)씨인 감옥의사(얼굴 위에 검은 반점이 있는 여성 감옥 의사, 40여 세), 또 키가 작은 남자 감옥 의사(키는 164cm쯤)이다. 악경들은 리를 살해한 후 사실을 감추었다. 같은 감방에 있는 파룬궁수련생은 4개월이 지나서야 그녀가 사망했음을 알게 되었다.
파룬궁수련생 친칭팡(秦清芳)이 무참하게 구타로 사망하다
친칭팡(여, 54세)은 푸순시(撫順市) 사람이다. 이 소굴로 납치당한 이후, 악경의 일체 불법 명령을 거부하고 전향을 거부했으며 죄수복을 입는 것 등을 거부했다. 악경들은 곧 친칭팡을 특무과로 납치해 박해를 가했다. 그녀는 감옥 숙소 건물 2층 화장실 옆의 방안에서 무참하게 구타로 사망했다. 구타로 사망한 후, 악경들은 친칭펑의 숙소 사람들을 모두 쫓아냈다. 그런 다음 친의 시신을 그녀의 침대 위에 놓고는 이불을 덮었다. 그리고 끈을 친의 목 위에 걸어놓아 친이 자살한 것처럼 꾸며 친과 같은 감방에 있는 사람과 친의 가족을 속였다. 친의 살해에 참여한 흉수는 여전히 리바오제를 살해한 그 무리의 악경들이다. 또 장쥔(張君), 왕수쩡(王淑增)이 있다.
파룬궁수련생 선뤄린(沈若林)이 고문당해 불구로 되다
선뤄린(여, 58세)은 광둥(廣東) 마오밍시(茂名市) 사람이다. 그녀는 악경의 지시에 협조하지 않고 전향을 거부해, 또 특무과로 납치돼 심한 박해를 당했다. 그녀에게 매일 큰 괘에 올리기 고문을 몇 차례씩 가했는데, 두 손목과 두 아랫다리에는 거의 살이 없었다. 그리고 한 점 한 점씩 검은 자색의 문드러진 살은 마치 피투성이 같았다. 하얀 큰 물집은 온몸에 퍼졌고 두 다리는 문드러져 걸을 수 없었다. 머리는 구타로 매우 크게 부어오르고 눈은 거의 앞을 보지 못할 정도에 이르러, 화장실도 벽을 짚고 기어가야 했다. 악경들은 여전히 뒤에서 마구 두들겨 팼는데, 만약 벽을 짚지 못하면 공처럼 땅위에서 차였다. 꼬박 60날 동안, 악경은 모두 이렇게 그녀를 학대했다. 이런 고문학대는 그녀로 하여금 사지가 전부 지각을 잃고 근육이 위축되게 했다. 멀쩡하던 사람이 이렇게 불구가 되었다.
참여한 악경으로는 리밍둥(李明東), 마진산(馬金山), 스위(石宇-과장), 리쥔(李俊), 왕치(王棋), 장쥔(張君), 장슈룽(張秀榮-대대장), 샹쿠이리(向奎麗), 옌쓰광(闫司光), 판(繁)씨인 감옥의사, 또 한 사람은 무슨 원장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었는데 50여 세이며 지금은 수용소 안에서 위생을 검사하는 우두머리이다. 그리고 저우쳰(周謙), 쑤징(蘇靜)( 여, 소장), 자오라이시(趙來喜) 등이 있다.
고문으로 신수화(信淑華)는 새하얀 뼈와 힘줄이 드러나다
신수화(여, 59세)는 랴오닝성(遼寧省) 번시시(本溪市) 사람이다. 그녀는 2004년에 이 수용소에서 박해를 당했다. 그녀는 전향을 거부해 악경에게 화장실 안에 갇혔다. 당시는 2005년 12월부터 2006년 1월인데, 악경은 그녀의 옷을 몽땅 벗겨 실 한오라기 걸치지 않은 그녀를 방열기 위에 묶어놓고 화장실의 창문을 열어 그녀를 두 시간 동안 추위에 떨게 했다. 그녀에게 매 끼마다 옥수수떡 하나에 짠지 몇 낱만 주었다. 이렇게 며칠 동안 밥을 보내주고, 악경은 또 수법을 바꿔 신수화를 식당으로 납치해 밥을 먹게 했다. 신수화에게 겉옷을 입게 하고 두 손과 두 발은 모두 쇠 고랑이로 채워 매일 위층에서 아래층까지 끌고 다녔다. 갈 때는 족쇄를 잡아당겼는데 발목을 위로 향하게 잡아당겼다. 한 계단씩 지날 때마다 모두 ‘댕댕’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녀의 전체 등과 뒷머리는 끌려서 피범벅이 되었다. 층계 위와 식당으로 가는 길 위는 전부 핏자국 이었다. 돌아 올 때면 그녀의 수갑을 잡아당겼는데 온 몸이 엎드려진 채 끌려 돌아갔다. 이때 그녀의 몸은 마찰로 살가죽마저도 없었으며, 새하얀 뼈와 힘줄이 밖으로 드러났다. 매일 이렇게 세 차례씩 계속되었다. 신수화의 온몸은 한 점이라도 성한 피부가 없었다. 식당으로 가는 길은 또 300m인 모래와 자갈로 된 길인데 자갈 위는 모두 그녀의 선혈과 문드러진 살이었다. 그녀는 바로 이렇게 잔악무도한 박해 중에서 온몸이 여러 차례 불구로 되었다. 악경들의 행위는 매우 은폐되었다. 신수화를 끌고 갈 때는 하나의 비밀 통로로 갔다. 참여한 악경들로는 리밍둥(李明東), 하오리신(郝立新), 런화이핑(任懷平)이다.
2009년에 장궈링(張國玲), 텅즈윈(騰志雲), 신수화와 파룬궁수련생 자오수즈(趙淑智), 류레이(劉磊), 쭝수쥐안(宗淑娟) 등은 노역노동을 거부해 단식으로 항의했다. 악경 유란(尤然-대대장), 양젠(楊建-소장), 정위 왕나이민(王乃民), 대장 왕핑(王萍), 소장 저우친(周琴) 그들은 10여 명의 파룬궁수련생들에게 큰 괘에 올리기 고문을 가했다. 그녀들을 모두 걸어놓고 곧 숨이 넘어갈 듯하면 풀어주었다. 그런 다음 다시 큰 괘에 올려놓았다. 그녀들은 시달림을 받아 피투성이 되었다. 양젠, 왕나이민과 저우친은 또 더욱 모질게 하라고 말했다. 자오수즈는 구타로 두개골이 다 내려앉아, 뇌 속에 종양이 생겼다. 신수화의 손가락 힘줄은 피부 밖에 나와 펼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신경이 전부 감각을 잃었다.
육순 파룬궁수련생 리수전(李淑珍)이 독방에 갇히다
리수전(여, 64세)은 푸순시(撫順市) 사람이다. 그녀가 이 수용소에 감금당한 기간인 2006년 6월, 남방에 산사태가 나서 리의 아들은 재난으로 사망했다. 리의 남편은 그녀를 면회하러 가서 이 일을 그녀에게 알려주려고 생각했다. 당시 리가 전향하지 않았기에 수용소에서는 가족과의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리의 남편은 어쩔 수 없이 편지 한 통을 리에게 남기는 수밖에 없었다. 악경 리밍위(李明玉), 장춘광(張春光)은 이 편지를 보고 손장단을 치며 남의 재앙을 보고 기뻐하면서 말했다. “당신의 집에도 일이 생기지 않았는가?” 리는 이 때 매우 비통했다. 이렇게 리밍위와 장춘광은 또 이 기회를 빌어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던지듯이 리를 독방에 가두고 그녀가 다른 사람과 만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두 사람은 또 리를 전향하도록 핍박하기 시작해 꼬박 반 달 동안 괴롭혔다. 리는 아들을 잃은 고통 속에서 또 악경들이 그녀에 대한 정신적 학대를 감당해야 했다.
파룬궁수련생 톈사오옌, 박해로 노동능력을 상실하다
톈사오옌(田少艶-여, 59세)은 랴오닝성(遼寧省) 후루다오시(葫蘆島市) 이현(宜縣) 사람이다. 톈은 2006년에 불법 감금당했다. 어느 한 번, 악경은 톈과 수십 명의 일반죄수 그리고 파룬궁수련생들에게 독성이 있는 4경화탄(四氫化碳)과 3양화탄(三氧化碳)으로 기름때를 닦게 했다. 어떤 기름때가 너무 완고해 적은 양의 약물로는 닦지 못했다. 작업실을 관할하는 구(故)원장은 강제로 약물을 많이 사용하게 해, 수십 명의 사람들을 전부 중독 시켜 땅위에 기절해 쓰러지고 끊임없이 구토하게 했다. 이틀 이후, 톈의 사지도 지각을 잃고 걸을 수 없게 되었다.
대략 1년 시간이 되기 전에 현지 악경들은 다시 한 번 그녀를 이 수용소로 납치했다. 그녀는 당시 여전히 완전히 낫지 않았으며 이미 노동능력을 상실했었다. 비록 이렇다 할지라도 그녀를 작업실로 업고가 그곳에 앉혀놓고 약간의 할 수 있는 일들을 시켰다. 이렇게 몇 달 동안 지속했다. 그 후 이 대대에서 런훙잔(任洪占)을 대장으로 바꿨다. 바오자(包夾) 리거(李閣)는 곧 런훙잔에게 톈이 꾀병을 부린다고 회보해 말했다. 런훙잔은 자오위전(趙玉珍)과 장안눠(姜安娜)를 지시해 톈을 때려서 기절시켰다. 톈이 정신을 차리자 런훙잔은 또 왕수쩡(王淑增)과 결탁해 톈에게 큰 괘에 올리기 고문을 가했다.
그 이후로 톈은 늘 일주일씩 실종되었는데 런훙잔과 왕수쩡에게 비밀실로 끌려가 큰 괘에 올리기 고문을 당했던 것이다. 맨 마지막에 톈은 정신이 붕괴되어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했으며 밥을 먹는 것도 다른 사람이 먹여주어야 했는데 그야말로 식물인간이었다. 이렇다 할지라도 여전히 계속 그녀를 때리고 그녀를 땅위에 던져버려 추위에 떨게 했다. 게다가 그녀에게 하나의 담요만 주어 덮게 했다. 그녀는 늘 바지 안에 오줌을 누었다. 파룬궁수련생들은 그녀의 더럽혀진 바지를 벗겨버리고 다시 그녀에게 깨끗한 바지를 갈아 입혔다. 대략 7개월 동안, 그녀는 수시로 바오자 자오위전과 장안눠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어떤 때에는 그녀의 머리칼을 틀어잡고 쇠 침대 위에 부딪혔다. 그녀의 머리칼은 악경에게 몽땅 뽑혔다. 그 후 좀 자라났는데 악경은 다시 그녀의 머리칼을 깡그리 갂아버렸다. 그녀의 온몸은 청자색이 되었고 몸은 성한 피부가 없었으며 맨 마지막에 석방될 때는 들것으로 차 위로 들어 올려졌다.
박해에 참여한 악경으로는 런훙잔, 왕수쩡, 쑨빈(孫彬), 장위(張宇), 유란(尤然)이다. 감옥의 왕초는 마구이메이(馬桂梅), 자오위전, 장루핑(張路萍), 쑹링링(宋玲玲), 왕수전, 장안눠이다.
극히 악명이 높은 마싼자 수용소는 이 중공 깡패집단의 교사 하에 대부분의 악경들에게는 눈곱만큼의 양심도 없이 잔악하며 인성이라고는 완전히 없었다. 사람의 목숨을 초개같이 여겼는데, 지금까지 이 소굴에서 박해로 사망한 사람은 정확하게 통계할 방법이 없다.
문장발표: 2010년 12월 12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2/12/辽宁马三家教养院黑幕曝光续篇-23355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