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촌민의 지지 받는 촌장, 두 차례 노동교양 박해당해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산둥보도) 산둥(山東) 린이페이현(臨沂費縣)의 인쉬화(尹旭華)는 파룬궁을 수련한 후, 촌민들이 가장 믿을 만한 좋은 간부이. 1999년 중공(중국 공산당)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래, 그는 단지 ‘진선인(眞ㆍ善ㆍ忍)’ 신앙을 견지해 좋은 사람, 좋은 관리가 되려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러 차례 잔혹하게 폭력적인 박해를 당했다.

인쉬화(남)는 1958년에 출생하고 고중 학력 정도이며, 산둥 린이페이현 스징진(石井鎭) 무창촌(木場村)에서 살고 있다. 1977년에 본 진의 관리구역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인쉬화는 사람됨이 충직하고 성실하며, 사람 도와주기를 좋아하고 또 재능이 있었기에 1984년에 촌장으로 선출됐다. 인쉬화는 대법이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신기함을 직접 보고 1998년부터 파군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인쉬화의 삼촌은 그해에 60여 세였다. 식도암에 걸려 진 병원과 현 병원, 린이 인민병원까지 가서 진단을 받고 치료를 해 많은 돈을 썼지만, 병원에서는 치료를 할 방법이 없다며 돌아가 후사를 준비하라고 말했다. 삼촌은 집으로 돌아와 이미 사경을 헤매고 있었으며 당시 이미 관을 다 만들어놓고 죽기를 기다렸다. 이때 인쉬환는 우연하게 한 파룬궁을 수련하는 수련생을 만났는데 그는 파룬궁이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신기한 효과를 이야기했다. 인쉬화는 삼촌에게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찾아와 시험삼아 해보려는 생각을 품고 매일 『전법륜』을 그의 삼촌에게 읽어 드렸다. 생각지 못했던 것은 그의 삼촌은 몸이 하루 하루 좋아졌으며, 1997년 연말에는 몸이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했다.

이 신기한 일은 현지에서 사람들을 아주 크게 진동시키고 뒤흔들어 놓았다. 인쉬화는 이듬해에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으며 그들 마을 사람들은 당시 파룬따파를 배우는 사람이 특별히 많았다. 인쉬화의 삼촌은 1997년에 대법을 얻어서부터 위험에서 벗어나게 됐다. 노인은 지금 이미 78세인데 몸이 건강하고 기운이 있어 농사일도 할 수 있게 됐으며, 또 페달용 삼륜 자전거를 타고 재래시장에 가서 작은 장사를 하고 있다.

특히 인쉬화는 대법을 수련한 후 촌민의 곤란을 자신의 책임으로 여기고 돕고 해결해 주었으며 개인의 득실을 따지지 않았다. 그의 마을에 한 부녀가 집을 떠난 적이 있었다. 인쉬화는 자기 집의 돈을 갖고 외지로 가서 사방으로 분주히 다니면서 알아보고 찾았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마침내 장쑤(江蘇)의 한 곳에서 찾았다. 또 현지 정부와 파출소를 통해 마침내 사람을 집으로 데려와 가족과 단란히 모이게 했다. 인쉬화는 촌민들을 위해 근심을 해소하고 어려움을 해결해 주었으나 청렴결백했다. 있는 방법을 다 생각해내 촌민들이 사용하는 전기와 물을 마시는 문제를 해결해 주었는데 사람들이 인정하는 좋은 인솔자이며 촌민들이 가장 믿을만한 좋은 간부였다.

이렇게 좋은 간부는 1999년 장쩌민과 사악한 공산당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한 이래, ‘진선인(眞ㆍ善ㆍ忍)’ 신앙을 견지해 좋은 사람으로 되려하고 좋은 관리로 되려했다는 이유만으로 2000년에 페이현 사악한 610에게 왕촌(王村) 노동교양소로 납치돼 3년이란 노동교양을 받았으며, 정신과 육체가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2004년 8월 20일 오후 7시경, 린이페이현 공안국 국보과 과장이며 610두목인 천웨이둥(陳維東) 등 악인들은 또 스징진 무창촌에 뛰어들어 인쉬화를 납치했으며 아울러 페이현 504감옥(즉 이른바 ‘문명 구치소인—페이현 구치소’임)에 불법 감금을 했다.

당시 당직을 선 사람은 페이현 형사경찰대대 4중대의 성이 왕(王)가인 악경대장인데 사람들은 왕대장이라고 부른다. 그는 인쉬화에게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인쉬화가 그의 물음에 잘 대답하지 않자 왕대장은 노발대발하면서 “때려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하여 4~5명의 경찰들이 인쉬화에게 덮쳐들었다. 그들은 인쉬화를 구류하는 사무실의 땅위에 넘어뜨리려 눌러놓아 얼굴은 바닥으로 향하게 하고 사지는 통제를 받아 땅위에 엎드려 지게 했다. 왕대장은 인쉬화의 몸위를 건너뛰면서 온통 상스러운 말로 계속 욕을 퍼부었다. 그리고 커다란 두 손으로 끊임없이 뺨을 때리고 인쉬화의 얼굴 위, 귀, 코, 입 위를 주먹으로 결사적으로 때렸다. 다른 악경도 무차별 폭력을 가해 인쉬화는 코와 입에서 피를 흘렸다. 악인은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아 또 고무 몽둥이로 인쉬화의 온몸을 연속 혹독하게 때렸으며, 둔부를 벗기고 20여 대를 때렸다. 당시 왕대장과 몇 명의 악경들은 지쳐서 호흡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몇 시간 동안의 혹독한 구타로 박해를 당해 인쉬화는 내상과 외상을 입어 온통 상처투성이고, 떨려서 설 수도 없게 됐으며, 머리는 멍청해지고 두 눈앞은 번쩍거렸다. 그리고 두 귀는 밤낮 귀울음소리가 나고 청력과 시력도 내려갔다. 왼쪽 고막은 손상을 입고 기억력은 감퇴됐다.

한 개월 이후, 폐이현 610은 또 온몸에 상처투성인 인쉬화를 불법으로 산둥 왕촌의 사악한 노동교양소로 보내 다시 한 번 불법 노동교양으로 박해했다. 당시 왕촌 노동교양소의 악경은 인쉬화가 온몸에 상처투성이고 피부에 시퍼런 멍이 채 없어지지 않은 것을 보고 말했다. “당신들 페이현 구치소는 이렇게 흉악한가?”

인쉬화는 페이현 구치소의 왕대장 등 악경에게 잔혹한 폭력으로 박해를 당해 남긴 후유증을 끌고, 왕촌 노동교양소에서 3년 동안 시달려서야 2007년에 만기가 되어 석방돼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후 인쉬화는 페이현의 현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았다. 의사들은 자세한 사정을 물은 다음 인쉬화에게 말했다. “그들이 당신을 이렇게 심각하게 구타했는데, 당신은 법정에 그들을 고소해야 합니다.”

2007년 연말 현 610, 진의 인원들은 본 촌의 간부들의 동반 하에 답방한다는 명목을 걸고 또 인쉬화의 집으로 가서 교란했다. 그리고 대법책 두 권을 조사해냈다는 이유로 현 610 악인은 세 번째로 인쉬화를 왕촌 노동교양소로 납치해 1년 반의 노동교양을 시켰다. 노동교양소에서는 인쉬화의 혈압이 240에 달하자 수감을 거부했다. 결국 감옥 외에서 집행하게 보석 수속을 밟아주었다. 페이현 610은 인쉬화에게 3천 위안의 담보금을 갈취했는데, 1년이 지난 후 페이현의 사악한 610은 담보금을 몰수한다는 통지를 내렸다. 이유는 바로 인쉬화가 아직도 계속 파룬궁을 연마한다는 것이다.

문장발표: 2010년 12월 05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2/5/村民爱戴的村长两次遭中共劳教迫害-23330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