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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쓰촨성의 여성이 구치소에서 박해로 사망

10월 20일 후윈화이(胡雲懷)가 주(州) 1병원에서 링거를 맞다

2010년 10월 23일 오후, 쓰촨성(四川省) 시창시(西昌市) 후윈화이씨(여, 54세)는 구치소에서 비인간적인 학대를 5개월 이상 겪은 후, 량산주(涼山州) 제1인민병원에서 심한 천식과 호흡곤란으로 인해 사망했다.

지난 10월 18일, 구치소에 있는 후씨를 가족들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겨우 병원에 가서 검사받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족에게 검사비를 부담하도록 요구했다. 검사받는 과정에서, 극도로 허약해진 후윈화이에게 갑자기 쇼크가 일어났다. 의사의 즉각적인 응급처치로 깨어났다. 당시 구치소의 뤄(羅)씨 성을 가진 경찰이 그 자리에 있었다. 21일, 시 병원에서는 가족을 불러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게 수속을 밟게 했다. 가족은 울려고 해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여러 차례 병보석을 신청했지만 이제야 받아들여 진 것이다. 그러나 현재 후윈화이는 산소공급기도 감히 뽑지 못하는데 어떻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이때 ‘보석’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후윈화이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한 후부터, 몸이 매우 건강했다. 이후 어떤 질병에도 걸리지 않았으며 병원도 간 적이 없다. 이웃과의 사이도 매우 좋아, 서로 다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전부 노동에 의거하여 속이지 않고 신용을 지키며 훌륭한 손재간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매일 옷을 만들러 온 고객들을 접대하고, 아들을 도와 손자를 보내고 마중하며 가무를 하는 등 바삐 보냈다. 심지어 천리 밖에 있는 청더우(成都)로 가서 물건을 구입했지만 피곤한 줄 몰랐다. 후윈화이는 이번에 납치당할 때만해도 여전히 정력이 왕성했으며 얼굴색이 좋았다. 짧은 몇 달 사이에 도리어 구치소에서 무참하게 ‘갇혀 죽었다’.

2010년 5월 7일 점심, 후윈화이는 시창시1소학교로 어린 손자 마중을 갔다. 바로 1소학교 대문어귀에서 한무리의 시창시 국가보안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이어서 국가보안 경찰은 그녀의 집 매장에 뛰어들어 재단하고 옷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컴퓨터와 프린터를 강탈해갔다. 국가보안은 컴퓨터 안에 ‘밍후이왕’이란 세 글자가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컴퓨터를 강탈했다고 말했다.

납치 과정에서 후의 남편은 경찰에게 어린 손자가 다치지 않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 어린 손자는 일종 희귀한 혈액병에 걸려, 본지 병원에서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당시 청더우 화시(華西)병원에 입원했다가 1~2만 위안을 쓰고 돌아왔기에 몸이 어떠한 압력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병이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젊은 경찰은 그래도 듣지 않고 아이의 팔을 꽉 잡았다.

경찰의 폭력으로 어린 손자의 팔은 즉시 보라색을 띠면서 혈액병이 또 재발했다. 이번의 뜻밖의 일로, 후윈화이의 며느리는 부득이 품팔이하는 일을 그만두고, 또 아이를 천리 밖에 있는 청더우 병원에 보내 치료를 받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후윈화이가 시창시 퉈황구치소에 감금당해 박해 받는 동안 그들은 후윈화이의 틀니까지도 강제로 뽑아갔다. 구치소의 생활은 극도로 열악하여 매일 두 끼 밥을 주는데, 음식의 질이 좋지 않았으며 밥은 늘 차고 굳어있었으며, 일 년 내내 기름기 하나 없는 맹물에 끊인 반찬 한 가지 뿐이었다. 후윈화이는 틀니를 빼앗겨 밥을 먹는 것조차도 매우 어려웠다. 6월, 그녀는 음식을 씹지 못해 넘기기가 매우 힘들고 , 목구멍 식도 부위에 이물질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6월 23일에 구치소 측에 몸이 불편하니 검사를 받게 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구치소에서는 무시해 버렸고, 그 후 계속해서 여러 차례 몸 상태가 괴로우니 검사를 받게 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구치소 소장 저우롄(周聯)은 역시 아무런 조치도 해 주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급속히 수척해 졌으며, 몸무게는 50여kg에서 35kg으로 줄어들었다.

가족은 매우 조급했다. 또 여러 차례 시 공안국, 시 위원회 ‘610’(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 기구, 공검법위에 군림)에 반영해, 구치소에서 후윈화이에게 가장 기본적인 검사와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후윈화이는 이미 피골이 상접해졌지만 시 국가보안측은 조금도 후윈화이에 대한 박해를 늦추지 않았으며 끊임없이 그녀에게 국가보안이 억측한 날조한 것들을 ‘교대’하도록 핍박했다. 바로 후윈화이의 가족이 기소서를 받기 전날 저녁, 시 국가보안 대대의 대대장 우훙톄(吳洪鐵)와 시 610 부주임 천치(陳其)는 또 구치소로 가서 직접 후윈화이를 ‘심문’하여, 이른바 후윈화이의 ‘구두 자백’을 핍박해 받으려고 했다. 9월 20일, 시창시 법원에서는 불법으로 후윈화이에게 법정 심리를 해서 위증으로 모함하려고 시도했다. 이미 허약해진 후윈화이는 몸 상태가 더욱더 악화됐다.

10월 15일, 구치소에서는 후윈화이가 확실하게 매우 심각해진 걸 보고서야, 부득이 후윈화이를 주 2병원으로 검사를 받게 보내는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의사는 “왜 이 지경이 되어서야 왔느냐”고 물으면서 병원에 입원하라고 요구했지만 구치소 측은 동의하지 않았다. 10월 16일, 구치소에서는 또 후윈화이의 가족에게 후윈화이의 건강 상태가 매우 좋다고 거짓말을 했다.

쩐, 싼, 런(眞, 善, 忍)을 신앙한 이유로, 후윈화이의 일가족은 세 사람이 심각한 박해를 받게 되었다. 지금 후윈화이는 박해로 사망하고, 후윈화이의 사돈 (둘째 며느리의 어머니) 허정츙(何正瓊)은 막 7년의 불법 판결을 받았으며, 허정츙의 이모 허셴전(何先珍)도 역시 7년의 불법 판결을 받았다.

문장발표: 2010년 11월 12일
문장분류: 첫 면> 주보 189호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1/12/232375.html